개념글 모음

그녀들은 정말 멋있다.


신성한 하늘의 강줄기, 천상수에게 강인하고 의로운 마음을 인정받고 힘을 얻은 소녀들.

더러움을 뿌리는 『포이즈너』의 침략으로부터 눈부신 빛으로 사람들을 지키고 싸우는 소녀들.


나보다 어리고 여린 소녀들의 몸에 깃든 순수함과 강함,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밝음.

그리고 그 별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끈적거리는 몸뚱이를 휘두르는 불결한 괴물.


서울의 마천루 한 가운데에서 모두가 일상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들의 싸움을 눈에 담고 있다.


태양빛을 머금은 구름처럼 새하얀 차림, 황금보다 찬란한 금발과 머리 위의 헤일로. 

공들여 세공한 보석처럼 예쁜 눈동자는 달려드는 그림자를 올곧게 응시한다.

날아오는 거대한 맹독 주먹을 앞에 두고 피하지 않는 그녀는 조용히 손을 치켜들었고─


지잉─!


손 끝에서 만들어낸 빛나는 물방울을 쏘아, 주먹과 함께 괴물의 거구를 꿰뚫어버렸다.


이제 단순한 진흙과 다름 없어진 오물 덩어리는 반짝이는 물보라와 함께 넓은 도로 한복판에 쏟아졌고,

저 괴물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황금빛 소녀는 고요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보다가 빌딩 너머로 날아 사라졌다.


"와아아!! 개쩐다, 나 마법소녀 실제로는 처음 봐···!!"

"샴페인은 역시 실물이 훨씬 예쁘구나···."

"속보입니다, 현재 서울역 근처에서 마법소녀 샴페인이 중형급 포이즈너와 교전을···."


싸움이 끝나자마자 달아오르는 분위기, 환호 소리와 박수, 모두가 마법소녀의 승리를 축하한다. 


그래, 마법소녀.


"크으."


난 그녀들의 팬이다.


찰칵─


핸드폰을 하늘 높이 들어, 샴페인이 날아가면서 남긴 구름의 궤적을 신중하게 찍어낸다.


싸움에 정신이 팔려있느라 실물 샴페인을 찍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거라도 어디야.

애초에 샴페인은 전투를 끝내면 시민의 안전만 확인한 뒤 곧바로 사라지는 신비주의 마법소녀.

전투 중인 그녀의 사진을 선명하게 찍어내는 건 전문적인 사진사에게도 매우 힘든 일이다.


눈에 띄게 아름다운 외모, 무뚝뚝한 포커 페이스 속에 감춰져있는 상냥함에서 오는 갭모에.

무엇보다 대형급을 상대로 한 번도 패배한 적 없고, 포이즈너 간부와 맞붙었을 정도의 강함.


단연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마법소녀는 샴페인일 것이다.


그런 샴페인이 남긴 비행운을 내 핸드폰에 담다니, 날아갈 정도로 행복하다.


툭─


"응?"


"죄송합니다, 여러분! 실례합니다! 잠깐 길을 비켜주세요!"

"죄송합니다, 정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일정거리를 유지해주세요!"


뒤에서부터 달려온 목소리가 내 어깨를 스쳐 방금 떨어진 오물 덩어리를 향해 달려간다.

시민들을 통제하고, 포이즈너의 시체를 둘러싸는 그녀들의 머리 위에도 보이는 빛나는 고리.


그녀들은 남겨진 오물을 향해 손을 뻗고, 깨끗하게 빛나는 물줄기를 쏟아내 더러움을 씻기고 있다.


포이즈너를 정화하러 온 처리반 소속 마법소녀들이구나.


소형급 포이즈너라면 몰라도 중형급부터는 남겨진 시체에서 독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물론 독의 효과는 미약하지만, 방치할 경우 서서히 맹독으로 변해버려 빨리 정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포이즈너 처리반, 전투 외의 업무를 처리하는 마법소녀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약하다.


"저기, 빨리 좀 할 순 없어요? 급한데."


"죄, 죄송합니다! 중형급이다보니 독소가 너무 많아서··· 그, 금방 처리해드릴게요!"


"하아, 뭐야··· 중형급 처리는 알아서 경력자를 보내야지. 얘네 딱 봐도 7급 신입들이지?"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저 사람들도 일을 배워야 잘 할 거 아니야. 진급도 해야 할 거고."


그녀들에게는 샴페인이나 에너지 같은 마법소녀들과 같은 막강한 힘이 없다.


전투에 나서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들이 상대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인간형이나 소형급 포이즈너.

그렇기에 중형이나 대형, 간부와의 전투는 피하고 1급 마법소녀들의 서포트를 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함과 대비되는 약함, 밝음과 어두움, 그녀들은 '잡일꾼'이라고 불렸다.


"······."


난 쑥덕거리는 말소리를 지나, '레모네'라고 적힌 명찰을 걸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간다.


"앗, 저기! 가까이 오시면 안 되, 는데···?"


"여기, 총 네 분 맞죠?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봉투에서 커피 4잔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커피를 받아들고 머뭇대면서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레모네.


난 그녀 역시 응원하고, 지금부터 그녀의 팬이 될 것이다.


시민을 위해 일하고 앞장서는 마법소녀에게는 급 따위 중요하지 않다.

싸우지 않아도, 뒤에 서 있기만 해도, 맡은 일에 충실하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지켜지고 있는 우리도 그녀들의 노력을 알아주고 지지해주면 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레모네라는 마법소녀처럼 귀엽고 예쁜 신인은 응원으로 키워야지!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얼떨떨하게 굳어있던 그녀는 품안에 캔커피를 안고 나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어준다.

고작 7급 신입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의지할 수 있는 팬도 있었다는 걸 알아준 것일까.


뭐가 어쨌든, 그녀도 언젠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도 모두가 우러러보는 빛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어색하고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애써 웃어주는 레모네를 보고 진심으로 바란다. 


"그럼, 수고하세요!"


저렇게 귀여운 마법소녀랑 하루종일 대화를 나눠보고 싶지만, 더 이상은 민폐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여서 감사를 전하고 뒤로 돌아 빽빽한 군중들 사이로 숨어든다.


"하으으···!"


뒤늦은 부끄러움에 새빨개진 얼굴, 달아올라오는 열기를 손부채로 만든 바람으로 식힌다.


굳이 정화 현장까지 다가가서 '응원하고 있다'라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나? 아니겠지?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 마법소녀들한테 7급 신입이라느니, 그런 말을 하며 무시하니까 나도 모르게···.

아니지, 마법소녀 오타쿠처럼 보였을지라도 반짝이는 신인도 찾았고, 짧게 대화도 나눴으니 손해는 아니다.


마법소녀 레모네, 기운만 되찾는다면 엄청나게 귀여워질 것 같은 미녀였다.

물론 지금도 엄청 귀엽긴 하지만 뭔가 어깨에 힘이 빠진 것 같아 보인단 말이지.


역시 주변의 평가를 신경쓰고 있는 걸까?


띠리링─


모처럼 반짝이는 기분으로 가득찬 머릿속에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한숨을 내쉬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대충 화면을 두들기고 귓가에 가져간다.


"네, 네, 여보세요. 삼촌, 나 안 그래도 포이즈너 때문에···."


'엥? 유성현 이 새끼 목소리 보소? 짜증을 내도 내가 내야지, 뭐지? 그 겁나 귀찮은 듯한 말투는?

너 임마 콜 하나 끝내고 사무실로 온다며! 그래서 커피 좀 사달라고 했더니 왜 1시간 넘게 안 와?!'


"와 씨, 아니 조카가 포이즈너를 만났다는데 커피부터 찾아? 나 걱정 안 해줘?

그리고 1시간이면 그냥 사무실 앞 편의점에서 하나 사서 마시는 게 빠르겠다!"


'지랄, 지랄, 헛소리하네. 포이즈너는 무슨, 또 마법소녀들만 헤벌레 보고 있었겠지.

아무튼 곧 피크 타임인데 너도 다시 일하기 전에 밥은 먹어야할 거 아니냐. 빨리 커피 사 와!'


삼촌의 큰 호통소리와 함께 끊어지는 전화.


뻘쭘함에 괜히 귀를 파면서 길가에 세워두었던 오토바이를 향해 걸어간다.

시동을 걸고 헬멧을 쓴 다음, 포이즈너의 주변에 몰린 구경꾼들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커피 다시 사야겠네···."






계단을 올라가 영수증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고 문앞에 음식이 담긴 봉투를 내려놓는다.

볶음밥 곱배기 하나, 오늘도 똑같은 메뉴를 주문한 단골 고객의 요청 사항대로 초인종을 누린다. 


딩동─


"맛있게 드세요!"


초인종을 누르고 큰 소리로 인사한 뒤, 재빨리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자 곧 뒤에서 들려오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봉투가 바스락대는 소리.

배가 고팠던 건지 음식을 챙기자마자 집 안으로 쏙 들어가버리는 작은 인기척.

고객이 확실히 음식을 챙긴 것을 확인한 뒤 휘파람을 불며 계단을 다시 내려온다.


항상 이 집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 사람은 낯가림이 엄청나게 심한 모양이다.


처음 배달왔을 때 어쩌다가 현관을 나온 저 고객이랑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뭔가 묘한 경험이었다.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컴컴한 집안에 나를 보자마자 어둠속에서 굳어버린 그 사람.

뭔가 걱정스러워서 말을 걸어보아도 아무 대답 없이 음식만 챙긴 뒤 조용히 들어가버리더라.

그래서 저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몇 살이고 뭐하는 사람인지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굳이 알아낸다고 좋을 건 없지만, 어딘가 신경이 쓰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난 매일 저녁밥으로 볶음밥을 주문하는 저 고객님에게 항상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하고 있다.

나도 왜 이러는지 몰라도 이러다보면 언젠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해서.


그냥,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힘들어보이는 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마법소녀들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도······.


"···스토커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


혼자 우스갯소리를 중얼거리며 원룸 빌라 아래에 세워두었던 오토바이에 다시 올라탄다.


그리고 천천히 엑셀을 당겨서 좁은 길거리를 벗어난다.


부웅─


아니, 벗어나지 못한다.


"······?"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건 한 블럭을 지나고 주변을 돌아봤을 때였다.


살짝 저물어가는 해, 주황색으로 물든 하늘,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멈춘 것처럼 보인다.

나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고요함은 오토바이의 시동음까지 삼켜 완벽한 침묵을 만들어낸다.


"뭐야, 뭔데···."


오싹함.


평소와 다를 것 없어보이는 풍경에 드리운 낯선 분위기가 닭살을 돋게 한다.


다시 한 번 하늘을 바라본다.


살짝 저물어가는 해, 주황색으로 물든 하늘,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보라색···?


내가 아는 것과 다른 무언가, 허공에 일렁이는 보라빛 바다의 수면처럼 보이는 장벽.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한 그 물의 장막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본다.


퍼엉─!!


"으악?!"


손끝이 거의 닿을 뻔한 그때, 장벽에서 뿜어져 나온 물보라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날 덮쳤고 그 충격에 몸이 뒤로 날아간다.

바로 뒤에 있던 콘크리트 담벼락에 등이 부딪히고 차에 치인 것 같은 충격에 멋대로 공기를 토해내버리는 폐.


"우윽?! 콜록, 콜록···!!"


뇌를 뒤흔드는 고통에 재빨리 숨을 들이쉬고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가 금방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제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쿨럭, 하, 읏···!!"


남았던 힘마저 눈처럼 녹아 사라지고, 벽에 기댄 채 축 늘어지는 몸.


이상하게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설마 방금 뒤집어쓴 물보라 때문인가? 그 보라빛 장막은 대체···.


"톡신의 말대로 정말 독특한 인간이시군요."


"······?!"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중,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어느새부터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보랏빛을 뿜어내는 공허한 눈동자로 날 응시하고 있던 여자.

도화지보다 더욱 깨끗한 흰색의 창백한 피부, 짧은 연보라빛의 머리카락, 몸에 달라붙는 검은 슈트.


"안녕하십니까, 저는 애시드라고 합니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외모의 그녀는 자신을 '애시드'라고 소개했다.


대체 뭐야, 인간형 포이즈너? 아니면 소형급? 아니, 아니야.


"우, 으······!"


간부.


포이즈너라고 하는 괴생명체들을 이 세상으로 보내는 장본인들 중 한 명.

1급 마법소녀 중 최고인 샴페인도 한 번 밖에 만나보지 못한 알 수 없는 괴물.


그런 존재가 바로 옆에 서 있는데 도망은커녕,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다.


"괜히 힘 쓰지 마십시오. 저희의 마비독이 전신이 퍼졌으니 어차피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묻고 싶은데, 입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포이즈너의 간부가 일반인을 습격했다는 뉴스는 본 적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속으로 욕만 수십 번을 뱉어대며 끙끙대고 있으니, 애시드가 더욱 다가왔다.


"확실히, 톡신이 왜 오랜 시간을 들여 당신을 관찰한 건지 알 것 같습니다.

마법소녀란 인간 여성을 개조하여 만든 천상의 전쟁병기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녀들에게서만 보이는 빛이 어째서 남성인 당신에게도 보이는 걸까요? 신기합니다."


"으, 읏···?"


나한테서 마법소녀들이랑 같은 빛이 보인다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게다가, 마법소녀가 전쟁병기라고? 개소리, 마법소녀는 그딴 게 아니라고.


"네, 바로 그 반짝임을 말하는 겁니다. 저희들을 썩어버린 땅에 가둔 그 빛.

그 병기들처럼 당신에게도 천상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시드는 처음으로 비릿하게 미소짓고는 품속에서 검은 고리를 꺼내며 내 눈앞에 흔들었다.


"저희들이 만드는 포이즈너 합성수는 그녀들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항상 패배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도 '마법소녀'라는 병기를 만들어 천상에 대항하려고 했으나, 저희는 만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특기를 살린다면? 마법소녀를 더럽히고, 타락시키고, 빼앗아서 저희의 것으로 만든다면?"


"으, 윽······!!"


"네, 이 고리는 그것을 위한 발명품입니다. 당신은 저희들의 병기, '마법소녀 강탈자'가 되어주셔야겠습니다."


애시드는 작게 소리내어 웃고는 내 머리에 그 검은 고리를 씌웠다.

내 머리에 올려진 고리는 지직대는 소리를 내며 검은 빛을 뿜어낸다.

그리고 마치 마법소녀들의 헤일로처럼 머리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잘 진행되고 있군요, 이대로 절 따라오십시오. 나머지 세뇌 개조는 썩어버린 땅에서 진행하겠습니다."


"·········."


애시드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검은 헤일로, 그리고 그 고리에 조종당하는 내 몸이 멋대로 움직인다.


싫어, 싫어, 시발! 나 이대로 포이즈너가 되는 건가? 그 괴물들처럼 된다고?

마법소녀와 팬미팅은 무슨,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어버린다니, 그건 싫다.


그리고 마법소녀들을 타락시켜서 포이즈너한테 갖다바쳐야 하는 것도 존나 싫어. 

타락이라는 것 자체는 좋아하긴 해도 어디까지나 창작물 속에서나 좋아하는 거라고!

무엇보다 왜 마법소녀들을 전쟁병기 취급하는 건데? 그녀들은 무기 같은 게 아니다.


마법소녀는 마법소녀, 그 자체라서 좋은 거다!!


"마법소녀의 정의라고는 모르는 꼴알못 포이즈너 새끼들아!!"


"읏?! 뭐, 뭡니까? 당신, 어떻게 검은 고리의 세뇌를···?!"


짜증과 울분에 질러대고 있었던 가슴 속의 고함이 입밖으로 튀어나왔고, 몸도 내 뜻대로 움직인다.

애시드도 갑작스러운 고성에 놀라 뒤를 돌아보며 상황을 살피고 있지만, 제일 당황한 건 나다.


방금까지 몸을 묶고 있던 저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오히려 훨씬 가벼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다가 고리가 뿜어내고 있는 그 빛은··· 마법소녀···!"


─머금고 있던 불길한 검은 빛 대신 고리는 맑은 물과 같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마법소녀? 아니, 아래에 내 친구는 아직 잘 붙어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꼼짝없이 괴물이 되는 신세는 면했다.


하지만···.


"···당신은 실패했습니다. 혹시 모르니 지금 여기서 죽여야겠습니다."


포이즈너의 간부라는 괴물이 웃음기를 거두고 살벌한 말과 함께 내게 다가온다.

샴페인도 해치우지 못한 괴물을 내가 이길 수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히 도망가야 하는데, 사방은 투명한 장막으로 가로막혀 도망갈 길이 없다.


어떻게 해야······.


촤아악─


"읏?! 차가워···."


다가오는 애시드의 발걸음에 맞춰 뒷걸음질을 치던 와중, 내 손 안에 푸른 빛이 모여들었다.

모여든 빛 알갱이들은 곧 맑은 물방울이 되었고, 물방울들이 모여 야구공 크기만큼이나 커졌다.


진짜 모르겠다.


죽기 싫으니 뭐든 해보는 수밖에.


난 손에 모여든 빛나는 물의 공을 애시드를 향해 내밀었다.


"······!!"


무언가 눈치챈 듯한 애시드는 순식간에 나에게 달려들었고, 난 물의 공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내 손에서 벗어난 공은 물보라가 되어 흩어지고 애시드는 순식간에 날 붙잡았다.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혀 또 충격에 헐떡이는 사이, 애시드는 무감정한 표정으로 내 목에 칼날을 붙였다.


"우웁?!"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인간, 더군다나 남성이면서, 그것도 천상수 마법을···.

역시 당신은 여기서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톡신에게 앞으로 실험의 대비를···."


그리고 그 순간.


철퍽!


"읏?!"


분명 물보라가 되어 흩어졌다고 생각한 물의 공이 공중을 헤엄쳐서 애시드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다.


당황한 애시드는 곧장 고개를 들어올렸지만, 빛나는 물은 이미 그녀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우읏?! 이게, 무슨···!! 쿨럭! 이런 마법, 들어본 적, 없······!! 꼬르륵···!!"


애시드의 입과 코, 더 나아가 얼굴, 머리를 완전히 뒤덮어 가둬버린 물의 감옥.

그녀는 가는 손가락으로 물을 잡아뜯어내려고 하지만, 물을 잡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렇게 한참을 버둥대던 애시드가 뱉은 공기 방울 때문에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툭─


격렬하게 움직이던 그녀의 양팔이 힘없이 옆구리 위에 떨어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몸은 쓰러지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움찔, 경련해대고 있을 뿐이었다.


"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그 광경에 혼잣말을 뱉던 와중, 새하얀 얼굴을 덮었던 물의 감옥은 그녀의 귀, 코, 입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꼬르륵, 응굽, 읏·········."


맥 빠지는 신음 소리와 함께 다시 드러난 애시드의 얼굴.

그녀의 눈동자는 위로 굴러가있었고, 헐거워진 입에선 긴 혀가 흘러나와있었다.


어딘가 좀 야릇해보이는 애시드의 표정에 괜히 침을 삼키며, 슬며시 뒤로 물러난다.


"·····저기요?"


그리고 아주 조심히, 천천히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린 순간.


애시드의 눈동자와 혓바닥은 제자리를 찾고, 정확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 그냥 도망갈 걸 그랬다 후회하며 비명을 지르려던 그때 그녀가 말했다.


"개체 일시 장악 완료, 개체의 마법소녀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푸른색으로 물든 공허한 눈동자로, 인위적으로 밝아진 목소리로, 생긋 웃으면서.

마치 다음 지시 사항을 기다리는 기계 장치처럼 날 바라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개체의 마법소녀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 *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일도 바쁘고, 몸도 많이 아프고해서 착정세뇌가면이 완결이 났음에도 찾아오질 못했네요.

이 소설은 다음작으로 연재될 소설인데, 오랜만에 굳은 뇌도 풀어주고 새시작에 기반도 다질 겸 찾아왔습니다.

마법소녀 타락, 악의 조직 여간부들의 백타락, 항상 쓰고 싶어서 입맛만 다시던 소잰데 드디어 시작하려니 두근거리네요.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매일 찾아오진 못하겠지만 꾸준히 올게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정말로요.


근데 아직 제목 미정이라서... 추천도 받습니다! 적극적으로 참고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