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몬붕이라고 해.


굳이 이런 걸 편지로 써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원래 우리가 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와본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거니까 그냥 편하게 들어줘.


여기는 지구상에선 찾을 수 없는 안개의 대륙이라는 곳인데, 마치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자연경관같이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세계야.


동양풍의 건물들이 많고 외관도 화려해서 마치 판타지 세계의 고대왕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여기서는 나를 포함해서 소수의 인간들과 마물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서로 적대하지 않고 사이좋게 융합되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생활해.


그리고 안개의 대륙에선 마천루보다 더 높은 산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어느 정도냐면 고개를 꼿꼿이 세워서 산을 올려다봐도 구름 때문에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야.


산의 정상까지 가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없어.


여기 주민들은 그곳을 '선경(仙境)'이라고 부르며 신성시하는데, 일단 정상의 위치도 너무 높고 등반하기도 험준해서 감히 내가 올라가 볼 생각은 못했지.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곳에선 신선들이 산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소문은 소문일 뿐이겠지?


참고로 여기는 아주 넓은 데다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많아서 인간이든 마물이든 여기서 오래 살아본 현지인들과 같이 동행하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야.


나도 한 번 길을 잘못 들였다가 다음날 새벽이 되고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을 정도라니깐?


그래도 지역이 넓은 만큼 먼 곳에서 온 다양한 마물들과 인간들이 한 자리에 모여 화려하게 축제를 벌이기도 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본 어떤 축제보다도 더 성대하고 화려했어.


아마 예전에 인간들과 마물들이 서로를 적대시하던 과거의 기억은 떠나보내고 서로 화해하자는 의미에서 이런 행사를 벌이는 것 같기도 해.


나는 최근에 와서 잘 모르지만, 과거에는 눈만 마주쳐도 싸움이 났을 정도라니까 말이야.


대충 안개의 대륙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이제부턴 내가 여기에 오게 된 이유를 말해보려고 해.


사실 나는 여기에 자의로 온 게 아니라 어떤 마물 노예상에게 팔려왔어.


지금 생각해도 좀 부끄러운데, 헌혈을 하면 ** **** 한정판 굿즈를 준다는 말에 그대로 의심도 안 하고 속아 넘어간 거지.


한창 그 게임에 빠져있을 때라 한정판 굿즈를 받아서 어디에 전시해 둘까 하는 생각뿐이었고.


거기 계셨던 간호사분이 최근 6개월 이내에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냐고 물어본 게 사실 에이즈 같은 성병검사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배우자의 유무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그렇게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헌혈을 마치고 나가려고 하니까 갑자기 자동차 입구와 창문이 금속소리를 내며 닫히는 거야.


처음에 그 간호사가 오타쿠들을 겨냥해서 소악마 코스프레를 한 건 줄 알고 서비스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인간 남성의 정기를 빨아먹는 진짜 서큐버스였던 거지.


그리고 "희망을 버려라!"는 목소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차에 갇힌 상태로 어디론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진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니까?


그렇게 나와 함께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은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장소로 떨어졌고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 같은데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우리들을 멀뚱멀뚱 쳐다본다는 느낌을 받았지.


그 충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멍한 상태로 계속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그 헌혈차에 있었던 서큐버스가 포박된 우리들을 연단에 올려 보낸 뒤 앞에 있던 수많은 마물들한테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가라고 소리치는 거야.


그렇게 가장 서열이 높아 보이는 마물이 제일 잘생기고 반반한 녀석을 데려가더니 얼마 안 지나서 다른 마물들이 납치된 우리들을 서로 데려가려고 하다가 난장판이 되었고 나중엔 나와 커다란 눈동자를 하나 가진 마물만 남았지.


사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거대한 몸집에 푸른색 피부를 가진 데다 커다란 눈 하나밖에 없어서 징그러웠는데, 왠지 저항했다간 그대로 잡아먹을 거 같아서 그대로 따라갔어.


그렇게 먼 길을 걸어서 산꼴 자기에 있는 어느 집에 도착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별개로 날 엄청 따뜻하게 대해주더라.


미리 내가 올 거라고 예상했는지는 몰라도 나를 위해 식사는 물론 부족함 없는 깔끔한 개인 방까지 준비해 줬어.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대장장이이며, 이름은 사이클롭스라고 소개해줬는데, 원래는 신들의 일원이었지만 외모 때문에 마물로 격하당하고 쫓겨났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첫인상이 괴물 같다고 생각한 속마음이 들통난 것 같아서 가슴이 뜨끔했지..


나도 궁금증이 생겨 이 산속 깊은 곳에 살면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자신이 직접 만든 갑옷이나 무기가 여기선 최상급으로 쳐서 아주 비싼 값에 팔리는데, 덕분에 공을 들여 소량씩 만들어도 재정적으로 부족할 일이 없다더라.


이 분야만큼은 자신이 다른 마물들보다 재능이 있어서 물건을 만들면 이런 산간오지까지 찾아와서 구매해갈 정도래.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엄지를 치켜들며 대단하다고 했더니 바로 얼굴이 빨개지면서 눈을 피하더라.


사실 그녀는 외모랑은 다르게 성격은 소심할지도?


현재는 그렇게 몇 달이 지났고 현재는 그녀의 잡일을 도와주면서 사는데, 한편으로는 원래 살던 세계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 현재 생활도 아주 만족하는 편이야.


물론 대장장이가 하는 일을 돕는 만큼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직장에 다니면서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돈에 쪼들려서 사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해.


오히려 이렇게 편하게 지내도 괜찮나라는 생각도 들고.


원래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궁무진한데, 지금 그녀가 돌아올 시간이 되었으니 오늘은 이만큼만 쓸게, 안녕~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고~


아, 그 한정판 굿즈는 노예 대금으로 받았어.


이제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니 이런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