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조선인 징병을 준비하던 1942년, 총독부는 조선 경찰에게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조선인 징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일본인들만이 부담하던 병역 의무를 조선인까지 확대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죠.



그리고 그 결과는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많은 일본인들은 조선인 징병 자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교장, 대구 민방위 부대장, 광주 일개 상인' 까지 모두요.


이들이 조선인 징병을 반대하는 이유는 대략 이렇게 정리됩니다.



- 조선인들은 군대에 갔다오면 일본인들을 넘보며 더 기고만장해질 것이다.



- 이들은 군 복무 대신 참정권, 보통교육, 가봉(加俸, 식민지 근무 특별수당) 등을 요구할 것이며, 이런 요구는 처음부터 찍어눌러야 한다.



- 군 복무하고 돌아온 조선인들은 자연스레 일본인과 대등한 지위를 요구하기 시작할 것이고, 이러면 일본인들은 자연스레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 만약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이 불리해진다면, 조선인 군인들은 적군에 가담하여 일본을 향해 총부리를 돌릴 것이다.



- 조선인 가슴 깊이 묻어둔 민족의식과 사대주의는 그렇게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조선인들이 군대에 다녀오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일본인으로서는 절대 달가운 소식이 아니라는 거죠. 


평생 조선인은 '2등 시민' 으로 남아야 자기들이 꿀을 빨 수 있는데 '맞먹으려 드면' 그 혜택이 사라진다는 겁니다.



실제로 1944년 전후에 본격적으로 징병제가 발표되었을 때 총독부는 조선인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1946년부터 조선인의 투표 참여를 허용한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본격적으로 조선인 참정권을 실현시켜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저 위의 일본인 중 하나가 걱정한 시나리오가 실제로 실현된 겁니다.



물론 식민지에 할당된 의석은 귀족원(상원)이 총 10석(조선 7석, 대만 3석),


중의원(하원)이 총 28석(조선 23석, 대만 5석)으로 일본 본토에 할당된 의석보다 턱없이 적었고, 선거권을 가진 사람도 국세를 15엔 이상 내는 25세 이상 남성으로 제한되어 보통선거에도 한참 멀었지만 어쨌든 조선인도 일본 국회의원을 뽑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 차이가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 거에요.



위의 참정권 말고도 조선인들 사이에선 우리도 차별없이 일본 관리와 똑같은 월급을 달라(=가봉 보너스까지 똑같이 줘라), 내선일체면 더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 등의 요구가 터져나왔습니다. 심지어 친일파들 사이에서도요.


친일파라고 마냥 덴노헤이카 반자이만 외친 사람만 있는게 아니고, 저렇게 일본제국 체제 하에서 조선인의 입지를 올리는 걸 목표로 한 사람도 있었는데 이들에겐 징병제를 핑계로 자신의 목적을 이룰 기회가 찾아온 겁니다. 드디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요.



물론 후세의 평가는 얄짤없어서 결국 이들도 다 친일파로 싸잡혀 분류되긴 하지만, 그래도 당시 일본인 입장에선 이들은 진정한 '친일파' 로 보이진 않았을 겁니다. 어딜 감히 조센징 주제에 맞먹으려 드냐는, 우월의식이 여전했거든요.


그래서 '저런 목소리를 차단' 하는 목적에서라도 조선인을 징병해선 안된다고 외친 겁니다. 참 복잡하긴 해요.




출처: 우치다 준 지음, 한승동 옮김, '제국의 브로커들', 도서출판 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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