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어..떻게. 아니. 왜 여기있어?”


“뭐야. 너도 담배 피워?”


“아냐! 담배가 아니라…

제발, 다른사람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

뭐든 할테니까. 응?”


여자는 액상 담배의 무화기를 뒤로 숨기면서 변명을 한다.

어디서 저런걸 구한걸까?


궐련은 말할것도 없고

전자 담배의 무화기와 니코틴은 미성년자가 구매하는게 불가능하다.

설령 니코틴이 없는 가향제라 해도 이론상 구매는 가능하지만

머리에 총맞은 판매자가 아닌 이상 가만히 내버려둘리 없다.


냄새가 적게 나서 걸릴 위험이 적다.

연기가 나는것도 숨길 방법이야 많다.

평소 행실이나 습관도 철저하게 관리한다.


여자는 소위 우등생에 모범생이다.

부모님에게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선생들도 여자의 진학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


수험이 끝나고나면, 당연히 학교 정문 현수막에

명문대학의 합격자 명단에 여자의 이름이 걸릴 것을  모두가 예상한다.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하교시간이 지난 학교 주차장 구석 한 켠에서

교복을 입은 여자가 쭈그려앉아 담배연기를 뻑뻑 뱉어내며

맛깔나는 표정으로 무화기를 다시 들이키는 모습을.


“말 안할테니까, 딴데서 피워.”


남자는 연하게 풍기는 담배냄새에 고개를 돌린다.

쟤도 쟤만의 고민이 있겠지.

신경쓰면 골치만 아프다.


“어...어?”


여자는 남자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금전을 요구하거나. 선생에게 이르거나

괴롭힘을 당하거나 하는건 예상했어도


자신을 아예 무시하는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물며, ‘피우지 말라’도 아니고

‘딴데서 피워’라니…


“몰라. 난 간다.”


남자는 성큼성큼, 교문을 향해 걸어간다.


“야!! 기다려!!”


어이가 없는 여자가 남자를 불러세우지만.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


“너. 잠깐 나좀 봐”


다음 날 교실.

수업시간에 이어서 반쯤 조는 남자 앞에

여자가 나타난다.


“...”


남자는 고개를 들어 여자를 쳐다보다가.

다시 책상에 머리를 박는다.


“야! 내말 안들려?”


“들려.. 머리 울리니까 조용하게 제발.”


마지못해 남자가 고개를 든다.

주변 이목이 일순간 남자와 여자에게 집중된다.


별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우등생에 모범생인 여자와

수업시간에 잠만자고 성적이 바닥을 기는 남자.


남자가 여자에게 무언가 잘못이라도 했겠거니

구경꾼들은 지레짐작을 한다.


“너, 어디가서 말 안했지?”


“뭐? 너가 담…크흡”


“말하지 말고! 조용히!”


여자가 양손으로 남자의 입을 틀어막는다.

좌우를 살펴본다. 역시나 이목이 집중된다.


“으우웁읍읍으웁”


“너..너… 학교 끝나고봐. 어디 가지말고 가만히 있어”


여자는 시선을 피해 부리나케 도망친다.

남자는 집중된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숙면을 취한다.



“내가 기다리라구 했지”


“어서오세요 손님”


“말 돌리지 말구!”


편의점 계산대를 여자가 내려친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남자의 교실을 방문했지만 허탕이다. 

어디로 갔는지를 물어봐도 도통 아는사람이 없다.


친구가 있긴 한가?

모든 학생들이 남자의 이야기를 피한다.


“...”


“너, 아무한테도 말 안했지?”


“이야기 안한다니까. 물건 안살거면 가 그냥”


짜증이 솟구친 남자가 머리를 긁는다. 손사래를 친다.

여기서 알바한단 이야긴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찾아온 것일까?


“제발. 부탁할게. 나 그거 걸리면 끝장이라구.

뭐라도 꼭 해줄테니까. 응?”


여자가 울상인 얼굴로 하소연을 한다.

그러기야 하시겠지. 잘난 우등모범생께서 일탈을 한단 소문이 퍼지면

하물며 그게 담배라면 좋을게 없기야 하겠지.


“너가 뭘 하던 어쩌던 관심없으니까.

그냥 가. 이야기 한다고해서 믿지도 않을거고.

이야기 할 데도 없다”


학교에서 마땅히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도 없고.

선생들은 수업을 듣지 않는 남자를 고깝게 본다.


여자가 담배를 핀다는 이야기를 해봤자

못된 험담을 퍼뜨린다는 소리만 들을게 뻔하다.


“그럼. 담배좀 줘봐.”


“...뭐?”


“담배좀 줘봐. 저거. 멘솔. 1mg짜리. 긴 거”


여자가 손을 뻗어 담배 브랜드 하나를 가리킨다.


“하아… 미성년자에겐 담배 안팔아요.”


[폐암의 원인 흡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여자가 가리킨 담배갑엔 커다란 경고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여자에게 팔았다간 기껏 구한 일자리를 그대로 잘린다.


“그러지 말고. 한 갑만. 응?

 대신. 원하는거 하나 들어줄테니까.”


여자가 집요하게 남자를 물고 늘어진다.

도대체 자신에게 왜 이러는걸까?


“누구 좆되는거 보고싶어서 그래?

너가 담배를 피던가 어쩌던가 하나도 관심 없어


괴롭히지 말고 제발 좀 그냥 가!”


질 수 없는 남자가 여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


여자가 그제서야 계산대에서 한 발 물러선다.

고개를 푹 숙인채 움직이지 않는다.


“야… 그게… 소리 질러서 미안해. 나도 일하는거니까…”


마음이 약해진 남자가 여자에게 사과를 한다.


여자는 휙 고개를 돌려 음료 냉장고로 향한다.

주류코너를 지나, 탄산음료 코너를 지나. 커피음료 매대 앞에 선다.


냉장고를 열고, 설탕과 우유가 잔뜩 들어간 라떼를 꺼낸다.


그리고 남자를 바라본다.


“그건 몇개든 사도 되는데. 어?”


남자는 여자가 하는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자는


[딸깍]


음료의 뚜껑을 열고


[주르르르륵]


바닥에 음료를 버린다.




“지금 뭐하는거야!!”


남자가 계산대를 열고 달려나간다

대걸레를 챙기느라 우당탕탕.


저게 제일 닦기 힘들다.

색깔도 진하고 설탕이 한가득에 지방덩어리인 우유도 있어서,

눌어붙으면 답도 없다.


냉장고 아래로 스며들기전에 닦아내야한다.


남자가 연신 걸레질을 하는 옆으로

여자가 유유히 남자를 비껴간다. 


계산대를 넘어 아까 가리킨 담배를 하나 집어든다.


“여기 7,000원. 잔돈은 너 해”


담배값이 4,800원.

음료값이 2,000원.

남은 잔돈은 200원.


지금 장난치나.


“너 도대체 뭐야?!”


어제와 상황이 역전되어 

반대로 남자가 여자를 불러세운다.


“점장님한테, 여기 CCTV나 빨리 달으시라 그래. 가짜인거 다 티나”


물론 여자도 멈춰서지 않는다.

편의점 정문 천장에 달린 모형카메라를 가리킨다.


남자는 바닥의 음료수를 닦느라.

매장의 자리를 지키느라

여자를 쫓아가지 못한다.



[짤그랑]


“너, 잠깐 나좀 봐”


어제 여자가 남자에게 했던 대사를.

이번엔 남자가 여자에게 말한다.


남은 잔돈 200원을 여자의 책상에 던지는것도 잊지 않는다.


“왜? 볼 일 없다며.”


여자는 기죽지 않는다. 남자의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든다.


“뭔데? 너 나한테 관심있어?”


“그냥. 거래를 했을 뿐이야.”


“그게 무슨 거래라는거야?!”


“물건을 샀고, 돈을 냈지.

 점원분이 친절하게 잔돈도 가져다 주시고.”


여자는 남자가 집어던진 200원을 챙긴다.


“내가 어제 그제 있었던 일 한번 다 말해봐?”


남자가 호기롭게 여자를 협박한다.


“말하면 믿어줄 사람이 있긴 하고?

 아니. 말할 사람이 있긴 해?


 너 알바하는것도 주변에 아..으읍”


이번엔 남자가 여자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건 말하지말고. 왜 이러실까. 갑자기”


학교 선생님에게도 비밀로 해놨다.

친구는 없지만 다른 학생들도 남자가 편의점에서 일한다는걸 모른다.


남자는 자신의 직장이 고등학생 양아치들의 담배공급처가 되는걸 원하지 않는다.


“...”


입이 막힌 여자가 남자를 바라본다.

주변 학생들도 그런 남녀를 바라본다.


“뭔일 있어? 왜 그래?”


여자의 친구 하나가 여자를 돕기 위해 나선다.

그제서야 남자가 손을 뗀다.


“아냐. 그냥. 이야기좀 나누고 있었어.

 주말에 어디좀 가자고”


“어… 너희 사…귀어?”


아무리 봐도 이 둘은 어울리지 않는다.

누구의 외모가 잘생겼다 못생겼다의 수준이 아니다.

풍기는 인상과 그간의 행실이 두 남녀는 판이하게 다르다.


“너도 참. 주말에 누구 만난다고 다 사귀는거면.

넌 옆반에 민식이랑 벌써 몆 년째 사귀는거니?”


“걔가 무슨! 우리 그런거 아니거든!”


순식간에 여자의 친구 얼굴이 새빨개진다.


“어쨋든. 이번주 토요일에. 알았지?”


“나 학원가봐야…”


“토요일. 아침일찍. 학원 가기 전에. 괜찮지?”


여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알 수도 없는 이유로 이 남자를 주말 아침나절부터 불러낸다.


“알았어…”


남자는 처음으로 이성 친구와 주말 약속을 잡는다.



“그 큰 가방은 뭐야?”


“학원갈 때 필요한거야. 갈아입을 옷.”


토요일 아침 7시.

여자는 남자를 등교시간보다 일찍 불러낸다.


남자는 농구선수들이나 쓸 법한 커다란 더블백을 옆으로 둘러맨다.


“무슨 학원 다녀? 주짓수? 유도?”


“몰라도 돼”


“재미없긴.”


“뭐 하는데 아침 댓바람부터 불러낸거야. 3시까지 학원 가봐야 한다고”


“좋네. 1시간이면 가니까 얼마 안걸려. 가자”


“어딜 가는데? 야! 야!! 말이라도 해주던가 좀!”


“평택 미군기지~”


수원에서 평택 송탄의 미군기지까지 약 1시간 .

수원역에서 지하철 1호선만 타면 한방이다.



“으음~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린 여자는 기지개를 쭉 편다.

아침이라 앉을 자리가 있지만, 아무래도 자리가 좁다.


“...”


남자는 정신이 없다.

그저께부터 이 여자한테 휘둘리기만 한다.


미군기지로 가는 이유도 모르고.

평택 주변은 처음 와본다.


“아침부터 먹을까?

 여기 햄버거 맛있다드라.”


“고작 햄버거 먹으려고 여기까지 온거야?”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하는 가게들이 

미군기지 맞은편에 즐비하다.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파는 음식점

설탕 가득한 음료를 파는 카페

군장점, 옷가게, 중고 라디오나 전자기기를 파는 전파상까지.


대한민국에서도 퍽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맛이나 스타일도 한국과 많이 다르다.

아예 내국인 출입금지를 걸어놓고

미군만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가게도 많다.


문제가 있다면,

이곳과 비슷한 미군기지가 수원에도 있다는거지.


“아냐. 살게 있어서. 얼른 가자.”


여자는 목적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빙빙 돌린다.



“생각보다 별론데.”


“괜찮지 않아? 소스가 맛있는걸”


미군기지 바로 맞은편 수제 햄버거가게.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에 비하면 퍽 저렴하지만

내용물이 부실하다.


패티는 돼지고기 함량이 높고.

야채는 양상추 대신 양배추 채썬게 들어간다.


여자 말대로 소스의 맛이 좀 더 진하고 달달하지만. 그 뿐이다.


“그래도, 감자튀김은 맛있네.”


“진짜. 이것만 더 사고싶다.”


“...”


“왜? 더 안먹어? 내가 다 먹는다?”


“너 먹어”


아침부터 이런게 잘도 넘어간다.

남자는 콜라만 한 번 리필한다.


“내것도!”


“하아…”


아무래도 잘못 걸렸다.



“빨리 살 것만 사서 돌아가자.

 나도 학원 가야 한다니까.”


“보채지마. 가고있잖아”


“뭐 사러가는데?”


“있어. 그냥 넌 가만히 옆에 서있기만 하면 돼. 저기야”


햄버거를 먹고 나서

여자는 남자를 끌고 골목골목을 빙빙 돌아다닌다.


옷가게를 구경하다가.

카페에서 달달한 음료를 하나 시켜먹고.

미군기지 앞엔 항상 있는 부대찌개집을 지나친다.


수원 공군기지 앞에도 빼다박은 거리가 있는데

왜 여자는 이곳을 둘러보는걸까?


“여기는…”


“넌. 가만히 내 옆에 서있기만 하면 돼. 알았지?”


미군기지 앞 담배가게.

궐련형 완제품을 제조하는건 불법이니까

말린 담배잎, 수입담배, DIY키트.


그리고 액상형 전자담배를 주력으로 판매한다.


“...난 간다.”


“그러지 말구. 한 번만. 나 혼자사면 무섭고 어렵단말야”


“그건 네 사정이고”


“내가 햄버거도 사줬잖아!”


여자가 악을 쓰며 어거지를 부린다

남자를 회유하고 겁박해서

토요일 아침나절에 평택으로 끌고와놓고선

햄버거를 사줬다며 담배가게에 같이 가달라 소리를 지르는.


이 무늬만 모범생을 어찌 해야할까.


“알았어. 알았어. 들어갈게.”


“정말? 대신,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다?”


여자는 남자의 팔뚝을 잡아채서

담배가게로 당당히 입성한다.



“이것 봐 바나나향이래. 니코틴 함량 쩌는거봐”

“저거는 씹는 담배다. 웩. 쩐내 날거같아”

“파이프도 있네? 어디보자…”


여자는 매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침나절에도 LED조명이 반짝이고

최신인지 채신인지 구분이 안가는 팝송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남자는 이런 가게가 생소하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조명과 소음은 머리를 아프게하고

담배향과 인공향이 뒤섞여서 후각을 자극한다.

피어싱 가득한 레게머리 점원이 매대에서 핸드폰만 보고 있는데…


남자는 매장 한 구석의 표지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저거, 뭔지 알아?”


“어느거?”


“저.. 구석에 나뭇잎 모양. 표지판. 아니지?”


“맞아. 위드(Weed)”


“그거…아니지?”


“맞다니까! 대마초”


“우..우리 잡혀가는거야?

 미군부대 앞이라고 이런 가게도 있는거야?

 아니지?”


“푸…푸하하하하하.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저거 대마초라며”


“대마 잎이 아니라, 대마 씨앗하고 대마 기름 파는거야.

 마약성분은 없어도, 맛이나 향에서 느낌은 나니까

기분만 내는거지”


“그게…그거 아냐?”


“저건 우리도 그냥 살 수 있어, 신분증도 필요없고. 나이제한도 없고.

 딱히 맛있는것도 아닌데 비싸서 그렇지”


“...”


“너 의외로 귀엽다?”


“됐거든!”


남자와 여자는 니코틴 용액 앞에서 옥신각신한다.


여자는 한참이나 고민한다.

니코틴액과 액상 가향제를 따로 구매하면 가격이야 저렴하지만

직접 배합비율에 따라 적절히 섞어줄 필요가 있다.

필연적으로 짐이 늘어나고 들킬 위험이 커진다.


완제품 액상담배는 비싸다.

대신, 간편하다.


여자는 2가지 종류의 완제품 액상 니코틴 용액을 집어든다.

가격표는 원화 표시도 없이 달러만 써져있다.


30ml 한 병이면, 헤비스모커가 아닌 아닌 이상 1달은 넘게 버틴다.

두 병이면, 두 달치나 된다.


여자는 당당하게 계산대로 향한다.


“Cash? or Card?”


“Cach. Here”


여자가 내민 달러를 받아든 점원이 껌을 짝짝 씹는다.

현찰을 보고, 여자의 얼굴을 한 번 보고. 다시 현찰을 본다.


“ID Card. Please”


역시, 너무 어려보인다.

점원이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여서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가방을 뒤지는 시늉을 한다.

있지도 않은, 

있어봤자 꺼낼 수도 없는 주민등록증을 찾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10달러 한 장을 꺼내들어 점원에게 내민다.


“Here”  


“...Hah?”


점원이 여자를 좀 더 갸우뚱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제서야 옆에 있는 남자도 바라본다.


여자가 내미는 10달러를 한 번 더 보고.

못마땅하다는 듯, 여자를 다시 본다.


“HERE. My ID. Keep the charge”


여자는 10달러를 하나 더 내민 뒤,

딴 청을 피운다.


잔돈은 필요 없다며 매각을 종용한다.


“...”


점원은 물품대금을 캐시박스에 넣고,

여자가 건네준 20달러를 자신의 호주머니로 찔러넣은 뒤.

비닐봉지에 앰플을 담아준다.


여자는 물건을 챙겨 가게를 나선다.



“하아….”


가게를 나오자 마자, 여자가 크게 숨을 내쉰다.


“난 절대. 절대 너랑 여기 다시는 안온다.

 못해. 안해. 몰라.”


남자도 여자에게 하소연을 한다.


“그러지 말고, 저쪽 구석으로 가자.”


여자는 비닐봉지를 흔들며, 남자를 지나왔던 골목길로 다시 이끈다


“뭐야. 어디가. 다 샀잖아!”


“맛은 봐야할거 아냐~”




빌딩과 빌딩 사이 좁은 틈새.


여자는 비닐봉지를 바닥에 던져둔채, 가방속에서 무화기를 꺼낸다.

뚜껑을 열고.

쭈그려 앉아서.

앰플을 열고

조심스럽게, 흘리지 않도록, 피부에 묻지 않도록

용액을 무화기 안으로 집어넣는다.

충진이 끝나면 무화기를 작동시키고

기화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빨리…빨리~”


그 조금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여자가 무화기를 꼭 쥔다.


준비가 끝나자

기화된 니코틴을 입으로 주욱 빨아들인다.


멍청하게 폐까지 연기를 집어넣지 않는다.

입 안에서 연기를 머금고, 니코틴이 흡수되길 기다리다가


“후우~”


하얀 수증기가 가득한 날숨을 내뱉는다.

약한 담배냄새와 날아가지 않은 달달한 바나나향이 남자의 코끝을 자극한다.


“너…그냥 미쳤구나”


“넌 이 맛을 절대 몰라.”


점막을 통해 흡수된 니코틴이 그새 혈관을 타고 흐른다.

상용 판매가 허가된 유이한 마약.


각성제인데도 기분을 차분히 진정시켜준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체증을

스트레스로 쌓인 덩어리를

여자 본인도 알지 못하는 가슴 속 답답함을


담배 한모금이 뻥 하고 뚫어버린다.


금단현상이 사라지고 나선, 그제서야 각성제에 걸맞는 고양감이 찾아온다.

충분히 기화된 니코틴을 한 모금 더 빨아들인다.


“후아~”

다시 한번, 수증기를 한가득 내뱉는다.


“꼭 그렇게 쪼그려 앉아서 피워야겠어?”


“그럼, 이게 편한걸”


여자는 담배를 피울때면 꼭 쭈그려 앉은 자세다.

한 손으론 무릎을 감싸 안고

다른 한 손으론 무화기를 들고.

벙 찐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뱉는다.


남자는 바나나 향기가 야릇하단 생각이 든다.


“...”


“너도, 한 대 할래?”


“됐어, 너 피우던거잖아. 더럽거든”


“너가 팔아준 궐련도 있어”


“좀! 있다가 학원가야해”


“애야? 무슨 어린이집 다녀?”



“...웃지마라”


“정말 격투기라도 하는거야?

 뭔데 뭔데. 태권도? 킥복싱?”


“...제빵”


“제…뭐?”


여자는 자신이 아는 격투기 종목에서 제빵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바보같은 짓이란걸 깨닫는다.


“빵 만든다고 빵. 과자. 밀가루”


“푸…푸…크흡”


여자가 최선을 다해서 웃음을 참는다.


“하아. 이래서 이야기 하기 싫었던건데.”


남자의 커다란 더플백 안에 있던건

새하얀 조리복과 앞치마. 조리모.

그리고 각종 제빵도구다.


자신이 좋아하는것과, 자신의 모습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건 잘 안다.


“진짜? 막 케이크도 만들고 카스테라도 굽고?”


“맞아. 그 재료비 벌려고 알바하는거야. 편의점”


“아…”


“담배 피우고 학원이라도 들어갔다간.

 선생님한테 쫒겨나.”


“아쉽네, 일탈 친구가 늘어나는줄 알았는데”


여자는 무화기의 잔여 니코틴을 빨아올린다.

무릎을 탁탁 털고 일어난다.


“다 피웠어?”


“가자”


“그래. 월요일날 보자.”


“아니, 가자니까.”


“어. 이제 가야…지?”


“나도 갈거야.”


“제발…”


“너 빵만드는거 볼래. 나도 학원 데려가”


“아아아앍!”

이제는 반대로 남자가 쭈그려 앉는다.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쥐어뜯는다.



“자 오늘 수업은. 발효 호밀빵을 만들어볼겁니다.

 들어가는 재료는 거친 호밀. 천연 이스트…



 이 여자애는 누구니?”


“쟤 친구에요. 학원 끝나는거 기다리려구요”


여자는 교실 구석자리에 앉아서 남자를 가리킨다.


“...”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말도 못한다.


“음…우리는 원래 외부인 출입이 안되는데.”


“조용히 있을게요. 방해 안하고.

 밖에 나가면 다리아파요”


여자는 보란듯이 자신의 다리를 주무른다.

괜스레 신발을 바닥에 퉁퉁 튕긴다.


“...수업 계속할게요.

 호밀이 밀가루보다 거칠고, 이스트가 달라서 만드는데…”


선생은 계속해서 수업을 시작한다.

여자는 멀리서 남자가 수업 듣는 모습을 지켜본다.


학교에서 맨날 잠만 자던 불량학생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야. 학원 수업땐 졸지 않고 잘 듣네?”


“몇시간을 치대고 문대고 하는데 어떻게 자냐?

 취직하면 어차피 반죽기 쓸텐데.


 여기 학원선생님은 맨날 손으로 반죽하래”


남자는 어깨를 붙잡고 한 바퀴  돌린다.


반죽을 할 줄 알면서 반죽기를 쓰는것과.

좀 편하자고 반죽기를 쓰는건 큰 차이가 있다.

가정에서나 먹을 취미생활이면 상관없지만.

전문 제빵사로서 반죽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아니까 불평없이 반죽을 하지만

그렇다고 힘든게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도, 오늘하루 재밌었어”


“자. 이건 너 먹어”


남자가 여자에게 초콜릿 쿠키를 내민다.


“너가 만든거야?”


“저번 주에 만든거야.

 오늘 만든건, 발효하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대신 이거”


“이야. 센스 있는데? 고마워 고마워.”


여자는 그 자리에서 봉투를 풀어

쿠키를 한 입 베어 문다.


“대신, 오늘 일은 다른 사람한텐 비밀이다?”


“너도, 오늘 한 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돼?”


알바를 하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 평택에 단 둘이서 놀러간 것, 

제빵학원을 주말마다 다니는것. 담배가게에서 몰래 물건을 구매한 것,

제빵수업을 청강하고, 초콜릿 쿠키를 나눠먹은 것.


토요일 하루 전부가 둘만의 비밀이다.


두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야호~”


“안녕”


“좀 살갑게 인사해주면 어디 덧나?”


“아니…”


“다시. 야호~”


“야…야호”


“바보같기는”


“뭐 어쩌라는거야”


월요일 아침 등굣길, 여자와 남자는 좀 더 친근한 인사를 나눈다.


이름만 겨우 아는 같은 학교 친구.

그리고, 서로의 비밀을 좀 많이 아는 친구.


“야. 나 망좀 봐주라.”


“어?”


“모닝빵 당겨야지. 급해.”


“하아… 길가에서 담배피는거 민폐라고”


“전담은 괜찮아 괜찮아. 냄새 안나”


“냄새 나거든”


“좀 잔말말고 이리 와!”


여자는 등굣길을 벗어나 남자를 이끈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흡연부스는 당연히 들어가지 못한다.


어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필 법한 명당자리도

교복을 입은 여자는 그 사이로 끼지 못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다란 틈새.

[금연구역]이라 쓰인 팻말 아래 쪼그려 앉아서

남자를 방패막이 삼아 담배를 피운다.


“하아…”


뭉게뭉게, 수증기와 달콤한 초콜릿 향기가

남자의 코끝을 자극한다.


“바꿨네. 향”


“알아보겠어? 저번에 그 가게에서 같이산거야. 좋지 좋지?”


“담배냄새가 다 거기서 거기지.”


“진짜 재미없게. 자꾸 그럴거야?”


남자는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힐끗힐끗, 뒤편을 바라본다.

행인들은 이쪽에 관심이 없다.


남자의 인상이 험악하기도 하고.

골목의 틈새가 비좁기도 하고.

각자의 삶과 스마트폰 속 영상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등굣길을 5분 돌아가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들이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다.


“하아… 이것도 좋네.”


“너 하루에 몇 갑이나 피워?”


“갑 까지 안가거든?!

 등굣길에 한 번, 

 하교길에 한 번.

 그리고… 자기 전에 땡기면 산책나와서 어쩌다 한 번”


“꼴랑 그거나 피우면서

 한 모금 할 때마다 왜 그리 감탄사야”


“안 피워본 넌 몰라. 해볼래?”


“됐네요.”


남자는 여자가 방금까지 물고있던 무화기를 밀어낸다.


“그러면. 하교때도 부탁해.”


여자는 마지막 한모금을 빨아올리고

무릎을 탁탁 털어낸다. 

자리에서 일어나 수증기를 내뱉는다.


“알바 가는거 알잖아.

그리고 내가 뭣하러 너 시다바리나 들어줘?”


“저번처럼, 혼자 쌩 도망가면

 소문 다 퍼뜨릴거야”


“난 떳떳해. 잘못한거 없어. 너랑 다르게”


이제는 겁박이 통하지 않는 남자가

여자에게 세게 나온다.


두 남녀가 다시 등굣길을 걸어가며 

티격태격 티키타카를 한다.


“그러지 말구. 너 출근길에 5분만 봐주라.”


“끊을 생각은 없어? 건강에 좋은 것도 아니잖아.”


“몰라! 이것마저 없으면 뭔 재미로 살라구!”


저번에도 그랬지만

조금만 제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


“알았어. 알았어. 귀아파.”


“여기 학교 정문에서 가지 말고 딱 기다려”


여자는 도착한 학교 정문을 발끝으로 콩 찍는다.

손을 크게 흔들고 나서 멀어진다.

담배냄새를 빼기 위해서 겉옷을 펄럭거린다.

그리고 다른 친구의 팔짱을 낀다.



“여어기!~~”


종례가 늦게 끝난 남자에게 여자가 손을 크게 흔든다.


자신이 정문에서 만나자 해놓고선,

남자를 기다린다며 건물 출입구를 서성인다.


“...”

남자는 말 없이 손만 깔짝 흔든다.


주변 시선을 살핀다.

한창 연애나 남녀관계에 민감할 나이.

이목이 두 남녀에게 집중된다.


어울리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과

잠만 자는 모지리가 같이 다닐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야!!! 김민식 거기 안서?! 너 죽어!!”


“으어어어 살려줘어어어”


추격전을 벌이는 여자의 친구와.

그녀의 학교공인 예비남편이 지나간다.


학생들의 이목이 저쪽으로 쏠리다가. 

이내 관심을 끊는다.


여자는 의식의 흐름들을 타고 남자와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간다.


“오 늘 은 어 디 서 피 울 까”


여자는 자신의 하교길, 남자의 출근길에서

마땅한 장소를 물색한다.


가급적 같은 학교 학생이 적은 곳으로.

더 이상 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건 사양이다.


“약쟁이가 따로 없구만”


“말했지. 해봤자 하루 3번이라고”


“중독은 반복횟수가 아니라 습관성으로 결정된데”


“그럼 넌 잠 중독이니?”


“하아… 말을 말자”


남자는 여자의 까다로운 위치선정을 뒤따라 보조한다.


[♫ ♬♫ ♬]


“...”


“야. 전화울리잖아”


“알아. 잠깐만.”


여자는 자신의 휴대폰에서 울리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참이나 있다가. 착신음이 다시 울린다.

여자는 마지못해 스마트폰을 든다.


“응. 엄마. 아냐. 못들었어.

 응. 응. 가구 있지. 잘 하고 있어.

 알잖아. 너무 걱정하지마.


 응…네. 네.

 잘 해볼게요. 

 죄송해요.

….

….

 네, 도착하면 연락 드릴게요.”


“부모님 전화인데 왜 안받…야! 어디가?”


“나 진짜 급해서 그런데.  잠깐만. 잠깐만.”


전화를 끊자마자 여자는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찾는 것이 안보이는지 주변 상가를 뛰어 돌아다닌다.

분명 있다. 없을리 없다.


핸드폰으로 위치를 검색하면 금방 나올텐데

그 새를 못참아서 뛰는걸 선택한다.


“말을 해봐. 왜 그래?”


“아..아냐. 아냐…”


여자는 이번 골목을 좌우로 살피다

다음 골목까지 뛰어간다.


그리고 발견한다. 자신이 찾던 무인 아이스크림 과자가게.


여자는 가게에 들어서기 전에, 좌우를 한번 더 살핀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도 바라본다.


가게 안에는 CCTV만 천장에 매달려있다. 

남자의 직장과는 달리 진짜로 작동하는 것.


신경쓰지 않는다.

여자는 가게로 달려들어간다.

보이는대로 과자를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m&m, 크런키, 가나, 스니커즈, 자유시간.

초콜릿과 설탕이 들어간 것이면 무엇이든 집는다.


남자가 가게로 들어오자.나가려는 여자와 부딪친다.

가득가득 챙겼던 과자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분명, 계산도 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챙긴 겨우 몇가지의 초콜릿만 들고서

여자는 다시 가게 밖으로 나온다.

그대로 상가 건물 계단실에 뛰쳐올라간다.


“쟤 왜저래 진짜”


남자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난장판이 난감하다.

편돌이로서 차마 발을 뗄 수가 없다.

제자리를 찾아 물건을 다시 넣어주고,

여자를 찾아 자신도 계단실을 오른다.


2층과 3층 사이에 당도하자.


“음. 우음. 음. 음. 우움”


여자가 구석에 머리를 쳐박고

연신 초콜릿 과자를 먹는다.


이미 초콜릿 봉지 두개가 바닥을 나뒹군다.


“괜찮…아?”


여자는 알 초콜릿을 입안에 털어넣는데.

그걸 다 삼키기도 전에 판 초콜릿을 씹는다.

입 주변에 부스러기와 초콜릿이 묻는다.


“우움. 쩝. 으음…욱 크흡. 컼 크헉.”


“좀 천천히. 왜 그러는데.”


여자의 등을 남자가 두드린다.


초콜릿 한 두입이야 맛있다.

카카오 가루와 버터는 쓰고 느끼하기만 하지만.

적절한 비율로 설탕을 섞어 굳히면

맛있는 디저트가 완성된다.


먹으면 행복하다.

사랑에 빠진 커플이 서로를 바라볼때 만큼 행복하다.

입맞춤의 달콤한 감정이 그대로 뇌리에 박히는 맛이다.

행복하다.


여자는 지금. 행복을 입에 우겨넣지 않고선

버틸 수가 없다.


수 없이 가득한 행복을 입안에 털어넣고선.

뱉지 않기 위해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뻑뻑하고 달다 못해 쓰디쓴 초콜릿을 어거지로 씹는다.


“흡. 흐아….”


모든걸 삼켜낸 여자가 숨을 내쉰다.


“우우..웁”


급격한 과식에 헛구역질이 몰려온다.

다시 입을 양손으로 막아내 겨우 참아낸다.


손바닥엔 녹은 초콜릿이 어지러이 묻어있다.

여자는 그것마저 핥아 먹는다.

그제서야 남자와 눈을 마주친다.


“오늘 일은… 비밀이야”


여자는 구토감을 참아내느라 눈물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범죄가 되기 전에 

남자는 가게로 돌아와 물건을 계산한다.


여자는 급히 갈 곳이 있다며 자리를 떠나고.

남자는 편의점으로 출근한다.


여자에게 이유조차 묻지 못했다.


그녀가 담배를 피울때도 그랬고.

인공향이 가득한 날숨을 뱉을때도 그랬고.

과자를 훔쳐 입안 가득히 밀어넣을때도 그랬고.

초콜릿 범벅인 입가를 손으로 닦을때도 그랬고.


모든걸 자신에게 보여주면서

마지막에 ‘비밀이야’라고 하는 모습은…


분명 여자에게 끌려다니기만 하며 손해를 보는데도

남자는 여자를 내버려두기 힘들다.


“어서오세요”


“야호”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서, 남자의 일터로 여자가 나타난다.


“...괜찮아?”


“당근이지. 고마워, 과자 사줘서”


“...”


여자는 아까 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얼굴도 말끔하고, 옷도 가지런하다.

표정도 활기차고, 목소리도 쾌활하다.


“언제 끝나?”


“10시. 한 40분 남았네”


“그럼 나 담배 한 갑만”


“안돼. 안 팔아”


남자는 커피음료 매대를 슬쩍 바라본다.


“그럼. 나 담배피는거 망좀 봐줘, 끝나고 나서.”


“...알았어”


협상의 방법 중 하나.

상대방이 거절할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고.

그 다음에 자신의 목적을 꺼낸다.


여자는 편의점 간이 테이블에 기대어 남자를 기다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에게 휘둘리기만 한다.



“끝났어?”


“그래. 가자”


“저기가 좋겠어.”


여자는 앞장서서 후미진 막다른 골목으로 향한다.

주황색 오래된 가로등만 반짝인다.


가로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쭈그려 앉는다.

무화기를 꺼내고. 용액을 충진하고.

기화가 되기까지 안달복달한다.


준비가 되면, 무화기를 빨아들인다.

입 속에 머금고, 니코틴이 흡수되길 기다리다


“후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뱉는다.

여자는 마치 혈류속을 담배연기가 타고 달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옅은 미소를 짓는다.


“오늘 마지막 담배네”


“그치, 2번째지만, 이런 날도 있는거지”


“...”


“안 물어봐?”


“뭘?”


“내가 아까 왜 그랬는지”


“물어봐줘?”


“모르겠어”


“...”


“그냥, 다 짜증났어.”


“어떤게?”


“전부. 담배는 사려면 웃돈은 줘야하고.

 마땅히 필 공간도 없고.

 혼자 피우고 있으면 시비거는 사람도 많고.”


여자는 다시 담배를 빨아올린다.

혼자 담배피울땐 그러지 않는데

옆에 누군가 있으면 말을 하게 된다.


이래서 담배타임이라 그러는건가?


남자도 여자의 눈높이를 맞추어 쭈그려 앉는다.


“그리고?”


아직, 여자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남자는 모르겠는 여자를 위해 먼저 질문을 건넨다.


“그리고…그냥. 공부하기 싫어.”


“잘 하잖아. 공부”


“잘하는거하곤 달라. 넌 왜 제빵을 배워?”


“하고싶으니까”


“잘해?”


“모르겠어.”


“난 하고싶은걸 모르겠어.

 부모님은 초등학교때부터 공부에 날 들들 볶았어.

 중 1때 수능 문제를 풀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남들보다 늦다고 혼났어.”


“힘들었겠네.”


“무지하게. 하아…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외우고 풀기만 했어.

성적이야 잘나오긴 하는데, 기분이 좋진 않더라.


칭찬받은 적 없거든”


“전교권이잖아. 성적”


“1등이 아니잖아. 

 반 1등을 하면, 전교 1등이 아니라고 혼나고.

 전교 1등을 하니까. 전국 1등이 아니라고 혼나고.


 전국 1등을 해도 혼나겠구나 싶을때.

 담배를 피워봤어.


 이러나 저러나, 혼나는건 똑같잖아?”


“...”


“넌 왜 제빵 배워?”


여자는 방금 했던 질문을 다시 건넨다.


“재밌거든”


남자의 대답도 달라진다. 


“음…맛있어서?”


“만드는것도, 먹는것도. 전부.

 조금만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데.

 딱 알맞게 부풀어 오를 때가 있어.


 그게 좋아.”


“맘대로 주물럭 거리는게 좋다는거구나.

 변태”


“네 맘대로 생각해라”


여자는 마지막 힌 모금을 주욱 빨아올린다.

혈관에 흡수되길 기다리다가


“후우~”


마주앉은 남자의 얼굴에 수증기를 내뱉는다.


“켈룩, 켈룩, 뭐하는 켈룩..! 뭐하는거야!”


수증기와 함께 미약한 담배냄새.

달콤한 초콜릿 향기가 코를 찌른다.


“꺄하하하하하.”


“웃기냐”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 자. 이거.”


여자는 무화기와 니코틴용액을 남자에게 건넨다.


“나 담배 안피운다니까.”


“주는게 아니라. 맡기는거야. 부탁좀 할게”


“이젠 셔틀까지 시키네”


“피우고 싶으면 피워도 돼.

 아, 물고 빠는건 좀….”


“안해! 피우지도 않는다고!”


결국, 여자의 말대로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담배뭉치를 집어넣는다.


이 상황에서 여자의 부탁은, 거절하기 힘들다


“그럼. 내일 봐~”



등굣길,

남자는 자신의 가방을 만지작거린다.

여자가 없는지 주변을 살핀다.


가방 속엔, 여자가 건네준 전자담배가 있다.


소지품 검사야 하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학교에 이런 물품을 들고가긴 껄끄럽다.


이 쯤 되면 여자가 나타날 법도 한데…

생각해보면 남자는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른다.


어떻게 자신의 등교길에 여자가 불쑥불쑥 나타나는지

어떻게 자신이 일하는 편의점을 찾아낸건지

반대로 여자는 학교가 끝나면 무얼 하는지

어딜 살길래 통학로가 겹치는지


여자의 가장 깊숙한 비밀을 알고 있는데

친구라면 누구나 알 법한 것들은 모른다.


친구?

이름도 알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다가.

방과후나 주말에 종종 쏘다니가도 했다.


친구가 맞을까?

신종 괴롭힘에 편한 셔틀취급은 아닐까?


남자는 가방 안쪽의 전자담배를 한번 더 확인한다.

그런 표정으로 말하는 여자의 부탁은 거절하기 힘들다.


셔틀이던 뭐던, 이제는 공범이다.


“지지배야. 너 얼굴 왜 그래. 다쳤어?”


“아냐, 밤에 집에서 넘어졌는데 지대로 박았어”


정문에 당도하자, 

여자가 부모님이 태워준 승용차에서 내린다.


마침 정문을 지나던 여자의 절친이, 여자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친다.

남자도 여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뺨과 눈가에 거즈가 붙어있다..

가려지지 않은 멍자국과 타박상도 보인다.


단순히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기엔 어색한 부분이 많다.


“병원 가봤어? 뭐래?”


“당연히 갔다왔지, 타박상이니까 잘 쉬면 된다고, 흉터도 없을거래”


“다행이다. 보이기는 해?”


“중지 확 꺾어버릴라.”


“괜찮네.”


여자는 친구와 팔짱을 끼고 교실로 들어간다.

잠시 뒤를 돌아서, 남자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같이 가, 눈도 안보이잖아”


“민식이는 어쩌고”


“알게 뭐람, 민식이가 내 남편이라도 돼?”


“대박, 이혼했어?”


“결혼도 안 했거든!”


여자의 친구가 다친 여자를 챙긴다.

등교할 때 처럼, 둘이서 팔짱을 끼고 교문을 나선다.


“...”


먼저 여자가 나오길 기다리던 남자.

말을 걸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가야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고민하는 사이,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야, 저기 민식이가 너 기다린다.”


“진짜? 먼저 가라니까 왜 또 그…뭐야, 없잖아”


“미안, 나 오늘 쟤랑 가볼데 있어”


“너 진짜 쟤랑 사귀어?”


“그냥. 부탁한게 있거든~ 고마워~~”


여자는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남자에게 뛰어간다.

멀어져가는 친구에게 크게 손을 흔든다.


남자의 팔뚝을 잡아채서, 학교 교문을 벗어난다.



[금연구역]


팻말이 붙은 건물 틈새.

여자가 쭈그려 앉는다.


남자는 가방을 열고, 전자담배를 여자에게 내민다.


“고마워, 피워봤어?”


여자는 무화기의 흡입구를 유심히 바라본다.


“아니라고!. 내가 다시는 맡아주나 봐라.”


“아냐아냐. 농담한거야. 흐흐. 얼마만에 담배야”


여자는 익숙한 자세로 충진을 시작한다.


“괜찮아?”


“별거 아냐, 진짜로 넘어진거야. 재수가 없었을 뿐이지”


여자는 니코틴 용액이 기화되길 기다린다.

이 찰나의 시간이 가장 길게 느껴진다.


“...부모님이랑 싸웠어?”


“너 눈치 좋다? 제빵도 서비스업이라 그런가?”


제조업이니 2차산업인가?

식품판매니까 3차산업인가?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내 고민하길 그만두고, 흡입구에서 니코틴을 빨아올린다.


“후우….”


은은한 초콜릿향이 퍼져나간다.


“...”


“우리집, 통금시간 10시까지거든. 학원이 9시 좀 넘어서 끝나는데. 말이 돼?”


“어제 그것보다 늦게 들어갔잖아”


남자가 일을 마치는 시간이 10시다.

인수인계를 하다보면 10~15분 늦어지는건 예사에

여자와 담배를 피우며 수다도 떨었다.


여자의 집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돌아가는 시간도 있을것이다.


“맞아, 집에 돌아가니까. 

 여자애가 뭘 하는데 그리 싸돌아 다니냐느니

 지금 시간이 몇 신지는 아냐느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거야.


 나 참, 방학 때 학원 특강은 밤 12시까지 하는걸로 잘만 보내놓고선”


“맞은거야?”


“아니, 넘어진건 사실.

 부모님이 밀었다는게 비밀.”


“괜찮아?”


“괜찮아. 응급실 가니까 얼굴보고 프리패스였다니까?

 의사 간호사가 바로 약 발라주고, 거즈 붙여주고”


“...괜찮아?”


“괜찮다니까.

타박상이니까 흉도 안생길거고.

부모님도 미안하니까 아침에 차로 등교시켜주고.


 붓기만 가라앉으면 거즈도 뗄거고.


씨발…”


여자는 담배를 한 번 더 들이킨다.

내뱉는 날숨에 격한 감정을 쓸어담는다.

달콤한 초콜릿 향이, 추악한 감정을 덮어주길 기대한다.


“웃긴게 뭔지 알아?

응급실 가서, 자기들끼리 싸우더라.

니가 밀었네 어쩌네, 애를 이지경이 되도록 뭘 했냐네


사람 얼굴을 이따구로 만들어놓고선

네 탓이네 어쩌네 그러고 내 앞에서 싸워.

응급실이라 의사가 조용히 하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닥치더라.


집에 와서도 누구 하나 미안하단 말도 안하고

아침이 되니까 차로 데려다 주겠데.

타고 가래.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오래.


기가 차서 말도 안나오더라”


이상하게 이 남자와 담배를 피우면 말이 많아진다.

속마음을 내뱉어낸다고 해서 달라지는것도 없는데

계속해서 주저리 주저리 떠든다.


“힘들었겠다.”


“힘드냐고?

그것도 모르겠어.

예~전에 선생한테도 말해봤는데.

그게 다 부모님이 나 사랑해서 그러는거라고

공부만 잘하면, 나중에 너 하고싶은거 다 할 수 있다고.

괜찮데.


그리고 다음 날 부모님한테 또 혼났어.


너한테 쏟아붓는 돈이 얼만지 아느냐

이게 다 내가좋자고 하는거냐

다른 집은 이런데서 살고싶어도 못살고

하고 싶어도 못하고, 사고싶어도 못산다고.


그래, 용돈은 많아서 담배 사기는 좋네.”


여자는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아올리려다가.

니코틴 용액이 부족한 것을 알아챈다.


“왜 내맘대로 되는건 하나도 없을까.”


“뭘 하고싶어?”


“모르겠어. 그런거 알아볼 시간도 없었어”


담배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방법을 모른다.

일탈 중에서 아는게 담배뿐이다.


가장 접근하기 어렵고.

가장 안좋은 것 중 하나인 담배를

여자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강도 아닌 꼴랑 서호천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모양새 빠져서 포기했다.


제 자신을 좀먹듯 망가뜨리기만 반복한다.


“...”


“너도 내가 금수저의 배부른 소리 하는거같아?”


“그렇게 말 하지마. 굳이 널 몰아세…”


“왜 다 나보고 하지 말라고만 하는데!!”


여자가 남자에게 소리를 버럭 지른다.


“...”


“아…아냐. 미안. 너한테 화내는게 아니라…”


“빵, 먹을래?”


“어?”


“맛있는거 먹으면, 기분 풀리잖아”


남자는 자신의 가방에서 투명한 비닐봉투를 하나 꺼낸다.

초콜릿 쿠키를 만들 때, 남은 반죽으로 만든 버터쿠키.


여자에게 달달한 행복이 필요할테지만

초콜릿처럼 강제로 우겨넣는건…싫으니까


굳이 담배나 도벽이나 초콜릿이 아니더라도

세상엔 즐거운거 하나쯤 있을테니까.


그런 것들중 하나가 자신이 만드는 빵이나 과자면 좋겠다고

남자는 생각한다.


여자는 무화기에 니코틴을 충전하는 대신

남자가 건네준 쿠키를 집어먹는다.


—-


여자는 그 뒤로 금연을 시작한다.

마땅한 탈출구가 필요했을 뿐이다.

아는게 담배 뿐이었고 지금은 다른게 있다.


주말마다, 남자가 빵과 과자를 만들어온다.

등굣길에 아침식사 대용으로 한 입.

하교길에 간식으로 한 입

자기 전에 출출해서 한 입 먹으면, 주말에 만든건 화요일에 모두 사라진다.


남자가 툴툴대며 집에서 손으로 반죽을 만든다.

친구에게 돈을 주고 사는건 모양새가 빠지니까

여자는 사다달라는 밀가루와 버터를 사다준다.


안된다는걸 상식으로는 알고 있지만

왜 박력분과 강력분을 구분하고,

버터대신 저렴한 마가린을 쓰면 안되는지 물어봤다가

남자의 일장연설을 한참이나 듣고 있어야 했다.


세상에, 남자가 그리 오랫동안 말을 이어갈 수 있다는걸

여자는 처음 알게 되었다.


“자, 오늘은 소금빵”


“이게 그 유행 한참 지난 소금빵이구나”


담배를 피우느라 숨어있던 주차장 구석 한켠에서

이제는 남자와 빵을 주고 받는다.


숨을것도 아니고, 왜 숨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런 으슥한 곳에서 여자와 쭈그려 앉아 있는게 익숙하다.


“그냥 얌전히 먹기만 해주면 안돼?”


“에이, 내가 맛없다고 한게 아니잖아. 빨리 빨리, 담배 땡긴단말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남기지도 않고 맛있게 모두 먹어주는 사람이 제일 좋다.


맛에 대한 평가를 물어봐도. 간단하다.


‘더 없어?’


이보다 더한 칭찬은 없다.


“재료, 선납입니다.”


“여기 강력분이랑, 버터랑… 버터 왜이렇게 비싸?”


“네 말대로 마가린 쓰면 되긴 하는데, 맛은 뭐…”


여자가 건네는 밀가루와 버터를 받고

남자가 만든 빵을 건넨다.


“짠데, 달다. 맛있네”


여자의 이번 감상평도 간결하다.

점심시간에 이미 식사도 마쳤지만

대한민국에서 빵은 식빵과 바게트라도 간식이다.

큼지막한 빵덩이도 한창 자라는 고등학생에겐 요깃거리일 뿐이다.


“하 민식이 이새끼 어디갔어. 잡히면 …어? 너네 여기서 뭐해?”


어김없이 예비신랑과 추격전을 벌이는 여자의 친구가

학교 곳곳을 쏘다니다 두 남녀를 발견한다.


인상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여자에게 하얀 가루를 받고, 물건을 건네준다.


“아니..지?”


“도대체 뭐랑 뭘 오해하는건데?”


남자는 뭐가 아니라는건지 의문이다.

밀가루와 빵을 주고받는게 이상하다는건지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있는게 이상하다는건지

뭐가 되어도 실례다.


“아니..그냥. 오. 냄새 좋은데. 빵이야?”


“너도 먹어볼래? 줘도 되지?”


여자가 자신의 친구에게 소금빵 한 덩이를 내민다.

이미 손은 내밀고 있으면서, 제작자에게 동의를 구한다.


“이제 네건데 뭘. 재료도 니가 준…”


“움..음..음.. 맛있네! 짜네! 달다!”


도대체 여기 학생들 평가는 왜이리 간단할까?

이과냐 문과냐의 문제는 한참이나 벗어난 것 같다.


친구는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입에 빵을 우겨놓고선


“민식이 봤어?”


“아니”


“보면 알려줘”


“어.”


쏜살같이 사라진다.




“왜 저래?”


“원래 저래”


“민식이랑 사귄데?”


“아직 안사귄데”


“이미 결혼한거 아냐?”


“너 농담좀 친다? 내가 봐도 그래.”


보이지 않는 민식이에게 과연 어떠한 매력이 있는것일까.

두 남녀는 점심시간의 은밀한 거래를 끝낸다.



“너희집 빵집 한다며?”


“어…아니?”


“뭐야. 너네 부보님이 대전에서 빵집하다 수원까지 오셨다는데. 아냐?”


“아냐. 누가 그래?”


“민식이 여친이”


“아…그분”


입학 이래로 한 번도 말을 걸지 않던 여학생들이

남자를 둘러싸고 질문세례를 한다.


“그럼 진짜  네가 만드는거야?”


“뭘?”


남자는 마지막으로 시치미를 한 번 떼본다.

들켜서 좋을게 지금까지는 없었다.


“빵 말이야 빵. 걔가 먹어보고 존… 진짜 맛있다고 그랬다고”


아무래도, 남자애 앞에서 대놓고 존나라고 말하긴 힘들기야 하겠지.

국어선생님 한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하다.


“그… 내가 만들긴 하는데”


맛있다는 소리에 남자의 기분이 한 껏 고양된다.


“정말? 맛있겟다…오늘도 학교에 뭐 가져온거 있어?”


드디어 목적이 나온다.

학생들 용돈으론 이제 빵을 사먹긴 힘들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파는건 맛이 없고

역에서 3개 천원에 파는 빵은 모양이 볼품없다.

모양도 괜찮고, 맛도 좋고, 재료도 좋은걸 쓴 빵들은 꼴랑 한 개에 오천원이 넘는다.


“머랭쿠키 남은게 있긴 한데…”


차마 여자한테 줄 카스테라를 꺼내긴 껄끄럽다.

남은 달걀 흰자와 설탕을 휘휘 저어…


아니, 팔이 빠지도록 젓고 나서 다시 반대편 팔로 빠지게 저으면 나오는 머랭쿠키


가끔 빵 집에서 떨이로 팔지만

수제로 만드는건 고역이 따로없다.


“진짜? 진짜? 나 한 번만 먹어봐도 돼?”


이쯤 되면 안주는 놈이 쓰레기다.

가방속에 있는 카스테라가 안걸리길 바라면서

남자는 머랭쿠키가 담긴 비닐봉지를 조심스레 꺼낸다.


집에 쿠키틀만 있었다면 크림을 발라 마카롱을 만들겠지만.

이 이상 제빵도구를 주방에 늘렸다간

부모님에게 혼쭐이 난다.


“여기. 나눠먹어”


여자에겐 아쉽지만, 카스테라만 주도록 하자.

여학생들이 비닐봉지를 채가선 하나씩 머랭쿠키를 나눠먹는다.


초콜릿이 발린 쿠키도 있고 그렇지 않은것도 있다.

파는 것 처럼 색소를 넣지 않아 새하얀것이 남자가 만든 머랭의 특징이다.


교실에 그새 달달한 향기가 퍼진다.


“뭐 맛있는 냄새 안나냐?”


“그러게, 달다. 저기 뭐 먹네.”


귀신같이 남학생들이 음식냄새를 맡는다.

남자를 둘러싸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인다.



“흐음… 그렇구나.”


교실 주변을 지나던 여자와 여자의 친구가 그 장면을 바라본다.


“아니, 왜 그런 대사를 날 보면서 말하는건데”


“네 남친 인기가 생각보다 좋을줄 몰랐다야. 미안해”


“그런거 아니라니까!”


여자의 친구는 평소에 당하던 놀림거리를 그대로 여자에게 되돌려준다.



“아우 팔 아퍼”


“인기 많더라.”


“인기는 무슨. 빵셔틀이지. 자, 카스테라”


“어? 다른 애들한테 다 나눠준거 아니였어?”


“네가 주문한건데. 너 줄건 남겨놔야지.”


“고마운걸. 잘 먹을게~”


정말, 여학생들은 달달한 빵 좋아하는구나.

간식거리를 볼 때 여자들의 눈빛이 달라지는게 보인다.


여자는 종이 포장지를 벗거내서,  한 입 베어문다.


“어때?”


“흐음…음…맛있네. 좋아 좋아”


여자는 평가를 남기는 것보다, 한 입 더 먹는걸 선택한다.


“담배는 잘 끊고 있어?”


“애초에 많이 피운것도 아니고, 입 심심할때 먹을만한 것도 있고.

 요즘 살쪘나?”


여자가 자신의 옆구리나 팔뚝 밑을 살핀다.

남자는 무어라 대답하기 힘들다.

시선을 바로 잡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다.


“근데, 팔은 왜 아퍼?”


“팔씨름”


“여자애들이랑?”


“아니, 우리반 남자애들”


“갑자기?”


“머랭치는 이야기 하다가, 반죽 이야기 하다가, 팔 힘좀 쓰겠다는 이야기 나오다가.

그대로 남자애들한테 불려가서 3승 2패”


힘좀 쓴다는 녀석들에게 불려가서

사천왕중 제일 약한 놈을 이기고.

‘그녀석은 우리중에 가장 약한놈이지’ 하는 놈도 이기고

바로 다음으로 나선 사천왕 에이스에게 쪽도 못쓰고 발렸다.


그 뒤로 한번 더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고

남자애들이 오히려 남자의 팔뚝을 만져본다.


‘오오 딴딴해. 오오’ 이러면서

헬스에 취미가 있다는 녀석이 무슨 운동을 하냐며 물어본다.


여자가 봐도 남자의 팔 근육은 탄탄하다.

여자가 남자의 쇄골 언저리부터 팔목까지 위아래로 쳐다본다.


“시선이 야한데”


“아니거든!”


여자는 나머지 카스테라 반 쪽을 입으로 집어넣는다.


남은 카스테라는 두개.

하교길에 간식으로 먹고.

자기 전에 담배생각 나면 하나 먹을 요량이다.


—---


다음날, 여자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


연락을 해도 받지 않는다.

여자의 친구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남자를 찾는다.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반이 달라 선생에게 물어보기도 껄끄럽다.


학교가 끝나고, 오랜만에 혼자서 출근길에 오른다.

혼자서 다닌 기간이 훨씬 더 긴데도

다시 혼자가 되니 어색하다.


“일찍 왔네요”


“안녕하세요”


이전 근무자와 교대를 하고

인수인계사안을 확인한다.


남자의 돈통으로 캐시박스를 갈아끼우고

물건의 진열부터 확인한다.


드문드문, 핸드폰을 꺼내 연락이 온게 있는지 확인한다.

밖에선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아이 참. 우산 안가져 왔는데”


전 근무자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대로 판매용 우산을 하나 들어서, 바코드에 직접 찍는다.

포스기를 계산대 너머로 툭툭 누르더니, 카드로 결제를 마친다.


“저 먼저 가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남자는 물건 진열에 좀 더 집중한다.


[띠링띠링]


“뭐 놔두고 가셨어요?”


문이 닫히자 마자 다시 열린다.

남자는 문을 살피지도 않고 전 근무자를 찾는다.


“야호”


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인삿말.

비에는 쫄딱 젖고

신발도 슬리퍼자락에

결정적으로, 항상 반듯하게 묶던 머리가 짧다.


단발머리네 뭐네 그냥 짧은 수준이 아니라,

운동부 학생들처럼 짧다. 

수영이나 육상하는 여학생들이 저런 머리를 자주 하는걸 보았다.


“너 머리가 왜그래? 무슨일이야?”


“담배 있어?”


여자는 웃는 얼굴로 남자에게 말한다.



방금 전 근무자가 하던 방식 그대로

수건 하나와

믹스 핫초코 하나를 구매한다.


남자의 가방 속에 있던 조리복도 여자에게 건네주고

잠깐 고민을 하다가, 여성용 속옷도 구매해서 같이 건네준다.


“이건…괜찮아”


여자가 멋쩍은 듯 속옷은 밀어낸다.


남자도 얼굴이 벌개져서 환불을 시킨다.


[흡연을 하면 수명이 짧아집니다.]


미성년자에겐 담배를 판매하지 않는다.


여자가 남자의 조리복으로 옷을 갈아입는동안

남자는 핫초코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옷이…좀 많이 큰데?”


여자가 소매와 바짓단을 질질 끌면서 나온다.


“오늘만 참아. 여기 핫초코”


“이야. 센스 감동”


여자는 남자의 호의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남자가 안내해주는 계산대 안쪽에 앉아서

핫초코를 호호 불어 마신다.


여자의 손이 덜덜 떨린다.


“무슨일인데 그래. 어떻게 된거야. 연락은 왜 안받고”


“질문은 하나씩만…음… 가출했어”


“뭐?”


“뛰쳐나왔어. 집에서”


“부모님이랑 싸운거야?”


“싸웠으면 머리가 이지경이 되진 않았지.

 혼났어. 일방적으로 당했어.


담배피는게 걸렸거든”


“끊었잖아. 피우지도 않는데 어떻게 걸려”


“여기서 사간 멘솔. 안피우고 내버려두고 있었거든. 

 그것도 걸리고, 바로 전자담배도 걸리고


 부모님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선 가위로 뒷머리를 싹둑, 잘라버렸지 뭐야”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너무하잖아”


“머리 정리한다고 5만원 받아서 미용실 갔는데.

 거기 원장님이 더 호들갑에 난리인거야.


 자기가 같이가줄테니까 경찰서든 학교든 가보자고. 그때 정신이 확 들더라”


여자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데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남자에겐 시시콜콜한 가정사까지 모두 뱉어내게 된다.


아무래도 부모를 경찰에 신고하는건 심하니까

학교 담임선생에게 먼저 연락했다는 이야기.


별로 실용성 있는 고민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학교 선생은 메뉴얼에 따라

청소년 보호센터와 경찰에 모두 신고를 넣었다는 이야기.


어제 하루는 보호센터에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

경찰이 차근차근 조사를 진행할 거라는 이야기.

부모가 경찰 조사 이후에 학교 교무실에서 난동을 부린 이야기.


한 번 더 경찰이 출동한 이야기.


이래저래 자신은 미장원이나 갈 차림으로 나왔다가

집에도 못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언제까지 거기에 있는거야?”


“몰라, 길게는 한 달정도 생각해야 한데”


“학교는 나올 수 있겠어?”


“하아… 교복이며 책이며 죄다 집에있는데.”


“...”


“저기…”


“응?”


“담배, 하나만 사주라.”


“하아… 이런 상황에서도 담배냐”


“어떡하라구.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데. 뒤죽박죽이고

되는건 없고. 모르겠고…”


여자는 손을 덜덜 떤다.

추위 때문이 아니다.

담배의 금단증싱 때문이 아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여자의 정신을 강타한다.

거울이라도 보면 자신의 짦은 머리가 도드라진다.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잠깐 있어봐.”


남자는 여자를 계산대에 남겨두고 창고에 들어간다.

자신의 더블백을 뒤적거린다.


여자는 손님이라도 올까, 계산대에 있는 자신에게 말을 걸면 어쩔까

연신 창고와 편의점 출입구를 번갈아 바라본다.


남자는 여자에게 얼굴만한 도넛을 내민다.


“이게 뭐야?”


“도넛. 먹어봐”


프랜차이즈에서 팔 법한 매끈하고 설탕코팅이 된 도넛이 아니다.


크기가 큰 것은 차치하더라도

표면이 거칠고, 자잘하게 박힌 씨앗이 많다.


해바라기씨라기엔 너무 작고

건포도는 더더욱 아니다.


여자는 한 입 크게 베어문다.

도넛 부스러기가 입가에 묻고, 바닥에 떨어지고, 옷에 묻는다.


“음..음..음! 마이따!”


“햄프씨드로 만든 도넛이야.”


“햄프씨드…뭐더라…뭐더라..”


“대마.”


“아! 저번에 그거!”


“씨앗을 갈아서, 밀가루랑 같이 섞고.

 도넛 모양으로 반죽해서 대마유에 튀기는거지


 대마를 피울 순 없으니까.

 느낌만 내는거야, 느낌만”


여자가 해주던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반복한다.


여자는 빵에 대한 평론을 남기기보단 도넛을 한 입 더 베어문다.

기름에 튀긴게 하루정도 지나다보니 눅눅하다.

대마씨의 감칠맛이 준수하지만, 지나버린 시간을 어쩔 수 없다.

설탕코팅도 없고, 퍽퍽한 식감이 강하다.

그래도. 맛있다.

기름에 튀겨낸게 식엇든 어쨋든 맛이 없을리 없다.

남자가 여자만을 위해 만들어준 빵은 언제나 맛있다.


입안에 있는 음식을 다 삼키기도 전에

다시 한 입 크게 베어문다.


“체할라, 천천히”


남자가 여자의 등을 두드린다.


여자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양 손에 가득 얼굴만한 도넛을 들고 있어서 닦지도 못한다.

흐르는 눈물에도 개의치 않고, 

남자가 건네준 도넛을 먹는데 집중한다.




금요일이나 되어서 여자는 겨우 학교에 등교할 수 있었다.


부모랑 화해를 하거나, 경찰조사가 끝난건 아니다.

센터 직원의 감시 아래, 집에서 자신의 필요한 짐들을 겨우 빼올 수 있었다.


부모는 거실에서 짐을 챙기는 자식을 노려보기만 한다.


교과서나 문제집은 죄다 학교 사물함에 쑤셔넣고

옷가지와 로션만 센터에 들고 들어간다.


친한 친구에게도 이러한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학교 선생과, 남자 말고는 여자의 결석사유도 모른다.


“에이씨, 나도 짧게 자를까? 덥고 불편한데”


여자의 친구가 찰랑거리는 뒷머리를 만진다.

여자가 머리를 자른 경위를 알지 못한다.


실연을 했겠거니 해도 아직 사귀는 사람이 없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잘랐는지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는다.


남자애들이 공부를 위해서 빡빡머리를 하듯

전교권에서 공부를 하는 그녀가 심기일전을 하는것이라 상상만 한다.


“넌 지금이 잘 어울려...어?”


“이야, 니 남친 인기 많다.”


남자의 반 앞을 지나던 여자가 남자를 바라본다.


예전과 달리 반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수업도 듣지 않고 잠만 내리자던 불량학생에서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첫 번째 쉬는시간인데도, 남자의 주변에 다른 학생들이 많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눈다.


여학생 하나가 당돌하게 남자의 책상위에 걸터 앉는다.

남자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마주보는 다른 학생들과도 수다를 떤다.


“빵냄새 좋다~ 오늘은 뭐야?”


“아냐. 아무것도 안가져왔어”


“그짓말, 가방속에 있는건 뭔데?”


지퍼백에다 단단히 밀봉을 했는데도 새어나오는 향기를 막을 수 없다.

만들기가 까다롭고, 재료도 많이들어가기에 여분이 없다.


이번에 만든 빵을 여기서 꺼내면,

여자에게 건넬 몫을 장담할 수 없다.


“없다니까. 진짜야. 가방 열어봐”


설마 남의 가방을 함부로 뒤지기야 하겠어?

남자가 허세를 부려보지만.

이 여학생은 생각 이상으로 막무가내다.


“거봐. 있네. 오…. 이게 뭐야?”


“으악! 진짜 꺼내면 어떡해. 이리내!”


“왜 이래. 어. 어 닿는다. 닿는다. 어딜 아녀자의 몸에 손을 올릴려고”


“줄 사람 있는거야. 다음에 딴거 만들어줄테니까. 응?”


여학생은 남자를 놀리는 재미가 팍 식는다.

지퍼백을 남자에게 던진다.


“왜. 여친이라도 주려고?”


“그런게 아니라….어…”


“...”


남자의 오른편에, 어느새 여자가 서있다.

남자가 들고 있는 지퍼백을 열어

직접 내용물을 꺼낸다.


“내꺼니까. 먹어도 되지?”


“어?...어어…”


교실에 향긋한 빵내음이 퍼진다.

여자는 먼저 빵을 들어 모양을 살핀다.

겉면이 바삭하고, 설탕이 입혀져 있다.

촉감으로 짐작하건데, 안쪽은 부드럽고 촉촉할 것이다. 

버터도 많이 들어갔겠지.


퍽 특이한 점은, 빵의 반쪽만 초콜릿으로 마감처리를 했다.

모양도 이쁘고, 먹음직스럽다.


초코크루아상.


여자는 먼저 초콜릿 마감이 된 부분을 씹어 먹는다.


“어머, 네가 그 여친이니? 안녕?”


아직도 남자의 책상에 걸터앉은채로. 여학생이 여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갑자기 머리를 짧게 자른 전교1등.

공부좀 한다고 나대는 꼬라지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여친이 아니라…그…얘가 밀가루 사다줘서…”


“어머나, 이렇게 착한 애를 빵셔틀 시켜먹는거야?”


여학생은 보란듯이 남자를 두둔한다.

자신도 방금까지 남자가 만들어온 빵을 달라네 마네 하면서.

여자를 마치 남자를 부려먹는다는듯 매도한다.


“야, 왜그래 갑자기”


다른 친구들이 여학생을 뜯어말린다.

불편한 기류가 남자의 책상을 타고 흐른다.


“그냥. 나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맛있어 보이잖아. 뺏어먹고싶게”


여학생은 여자가 먹는 빵을 한 번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초콜릿이 발린 부분을 모두 먹어치운뒤.

나머지 부분을 한 입에 털어넣는다.


여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수가 없다.

정말 꼴불견이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처음부터 그랬다.


이 여학생이 그렇다는게 아니다.


남자를 마주할 때마다 역겹다.


이 남자는 절대 자신이 바라는대로 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옆에서 슬픈걸 위로해주고, 힘든걸 공감해주고, 아픈 부분을 보듬어준다.


그걸 원하는게 아닌데.

남자는 쓰러질려 하는 자신을 붙잡아 일으켜 세워준다.


정작 여자는 일어나봤자 걸어갈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


학교에서 가장 별볼일 없는 불량학생이

실은 여자보다 건실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질투심이 난다.

자기 자신이 이렇게 초라해보일 수 없다.


달달한 크루아상을 씹어 삼킨다.


처음 볼때만 해도 그랬다.

드디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다른사람에게 들켰다.


그게 남학생이건 여학생이건 상관없었다.

선생이건 수위건 상관 없었다.

같은 학년 친구건 선배건 상관없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려줬으면…


울먹거리는 얼굴로 ‘뭐든 해줄게’라고 말하면

어련히 약점을 붙잡고 자신을 휘둘러줄 줄 알았다.


처음 얻어걸린게 문제아 남자라는 사실에

흥분감을 감출 수 없었다.


괴롭히던, 선생에게 이르던, 금품을 갈취하던, 부려먹던.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모범우수생을 벗어던질 수 있겠지…


하지만 남자는 달랐다.

여자의 쓰고 있는 가면이 깨지지 않도록 알뜰살뜰하게 보듬어준다.


남자의 앞에서 담배를 피워보기도 하고.

남자를 제 마음대로 휘둘러보기도 하고

굳이 먼 지역으로 넘어가 담배를 사보기도 하고

물건을 훔쳐보기도 하고

초콜릿을 토하도록 우겨넣기도 하고

머리가 밀려 비에 쫄딱 젖은채로 찾아가보기도 했다.


이 머저리는 여자가 쓰러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여자는 꿈이 뭔지도 모르고, 뭘 하고싶은지도 모르는데

수업시간에 잠만 잔다고 무시하던 남자가 

실은 자신의 꿈을 향해 성실히 나아가는 모범생이라니…


가장 불량하고 볼썽사나운게 여자 자신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싫다.


자신이 바라는건 하나도 해주지 않는 이 남자가.

이제는 친구까지 만들어서 하하호호 노닥거린다.


재수없어, 쓰레기 새끼, 돈 없어서 편돌이나 하는 주제에, 

내가 원하는건 하나도 들어주지 않고. 자기는 행복하게 웃으면서, 

여학생이 옆에서 웃어준다고 헤벌레 해가지고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공부도 못하면서, 수업시간에 잠만 자면서. 

부모님이 때리지도 않으면서, 지는 하고싶은 일 다 하면서


열심히 공부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왜 나보다 이 남자가 더 밝게 빛나는거야?


이 초콜릿 크루아상만 보아도 알 수있다.

절대, 절대로 이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지 않는다.


여자를 망가뜨려줄 생각이 없다.

여자를 이 구렁텅이에서 구해줄 생각이 없다.

쓰러지지만 않게 옆에서 지지해줄 뿐이다.


나를 부숴줄 생각이 없으면.

널 먼저 망가뜨릴거야.


“어때? 맛있지?”


남자는 여자의 속도 모르고

자신의 야심작에 대한 평가를 묻는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한다.

바둥거리는 남자를. 양 팔로 꼭 안아든다.

남자가 자신을 밀어내느라 가슴을 부여잡아도

온 체중을 실어 남자에게 입술을 들이민다.


“하아…”


담배를 피울때처럼 긴 날숨을 내뱉는다.


교실에 정적이 흐른다.

수업준비를 위해 일찍 교실을 찾은 선생도 눈을 가누지 못한다.


모든 학급의 학생들이 벙찐 채로 두 남녀를 바라본다.


“초콜릿 맛이. 꽤 좋네”


여자는 귀 뒤로 있지도 않은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책상에 앉은 여학생을 곁눈질로 바라본다.


“가자, 수업 늦겠다.”


똑같이 얼어붙은 친구의 팔짱을 끼고

여자는 자신의 교실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