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재단의 식당 식탁에 앉아 햄 치즈를 넣은 블린을 입안에 밀어 넣으며 방금 일어난 흐리멍덩한 머리를 깨우고 있었다.


 햄, 치즈의 짠맛을 느끼며 1개를 다 먹어치우고 곧바로 2개째를 집어 입에 머금고 있자, 눈앞의 식당 문이 열리며 말끔한 정장을 입은 연녹색 머리의 소녀가 사과 1개를 손에 들고 천천히 걸어들어와선 주위를 살피더니 다시 발을 옮겼다.


"잠시 실례해도 될까? 릴리아 훈련교관님?"


 …어쩐지 점점 내 앞으로 걸어오는가 싶더니만 이 점잔빼는 아가씨는 내게 합석을 요청했고, 그 요구에 몇 초 동안 눈을 마주쳤다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옅은 미소를 보인 채 감사의 표시를 하며 내 건너편에 앉아 자신이 들고 왔던 사과를 베어 물었다.

 '그때' 이후로 이렇게 대면하게 된 건 꽤나 오랜만인데 무슨 일로 찾아온 걸까 그러니까 이름이…… 버튼? 버테인? 뷰테인? …그냥 타임키퍼라고 부를까.


"그래서 타임키퍼께선 사과 하나 달랑 들고선 내게 무슨 볼일로 오셨을까?"

"사과는 어떤 신사분이 꾸준히 권하고 있어서 들고 왔을 뿐이야."


 내 물음에 대답 같지도 않은 답을 한 그녀는 다시 사과를 작게 베어 물고 입속에서 우물거리는 걸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으니 '꿀꺽'하고 삼키는 소리를 내고선 한 번 숨을 크게 몰아쉬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 당신과 한가지 거래를 하고자 왔어."

"무슨 거래?"


 곧바로 되물으니 그 소녀는 선뜻 대답할 수 없는지, 아니면 곤란한지 몰라도 눈을 피하곤 사과의 윤기를 살펴보며 침묵을 유지하다가,


"-혹시 재단에 의문이나 불만 가져본 적이 있어?"


 라며 내 의중을 떠보는 듯이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 당연히 없을 리가 없다. 엘리트 파일럿이라고 한껏 추켜세워주고선 현장에서 내근으로 바꿔 시뮬조차 해본 적 없는 햇병아리의 보모 짓이나 하려니 성질하고 안 맞아 답답한데다, 산책 수준으로 한바퀴 정도 도는 거 외에 Su-01be를 제대로 몰아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서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다.


"나 만한 불순분자 찾기도 어려울걸."


 대답 후에 블린을 한 입 베어 무니 타임키퍼는 내 눈을 올곧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나와 대화한 건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을까?"

"…좋아 약속하지."


 말 뿐인 내 약속에 이걸로도 안심되는 호인인지 아니면 그만큼 나를 신뢰하는진 모르겠지만 타임키퍼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지금 재단의 제약과 관리에 대해 독립성을 가지고자 해 "


 거래 내용을 듣기도 전에 계기를 들은 순간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나도 모르게 사레가 들렸다.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특례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인데 저 대가리 꽉 먹힌 높으신 양반들과 마도학자에 대한 경계심이 쓸데없이 높은 양반들에게서 그런 걸 허락해줄 리가 없을 텐데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괜찮아?"

"잘못 삼킨 것 뿐이니까 계속해."


 물을 마셔 진정하고는 말을 계속하길 재촉하자 타임키퍼는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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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타임키퍼에게서 '타임키퍼 본인 모집한 인력은 타임키퍼 편제로 귀속될 수 있다.'로 시작해서 수가지나 되는 주요사안과 기타 세부사안을 간단히 들으니, 요구하는 바가 너무 많아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투정부리는 것으로 보이기도 어떻게 보면 어느 한 부분도 검토하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위협으로도 보인다.

 …어느 방면으로 해석하던 위험이 있다. 전자는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모래성이고, 후자는 폭탄을 껴안고 돌격하는 꼴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일부분만이라도 통과된다면 이건 타임키퍼는 물론이고 내게도 큰 전환점이다. 바보 같은 제노 햇병아리 뒤치닥꺼리를 청산하고 저 하늘을, 내 사랑하는 Su-01be를 다시 한없이 몰 수가 있다. …애당초 정치질은 내 관할이 아니다.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데다 어디 좌천이라도 당해서 현장이라도 뛰게 되면 오히려 바라는 바다.


"―라는 게 내 생각이고."


타임키퍼는 내가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에 설명을 이렇게 끝낸 다음에 한 번 깊게 심호흡을 내쉰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거래를 하자고 말한 목적은 일을 진행하면서 혹시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 '필요할 때 내 동료들의 안전을 지켜줘.'"


 그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자 저쪽에서도 방금 전보다 한결 편한 얼굴로 내 손을 맞잡아줬다.


"내가 뭘 해주면 될까?"

"즈브로카 1병. 그리고 자리 하나 비워둬."


 정말 그걸로도 충분하겠냐는 타임키퍼의 표정에 피식 웃어 보이며 힙 플라스크를 흔들어 '더 챙겨주면 나야 좋지'라고 너스레를 떨다가 한가지 잊은 것이 생각나, 요구 사항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이름을 몰라서 그런데 알려줄 수 있을까?"

"버틴이야."

"До свидания. 또 만나자고 버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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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엄청 없다길래 날로 먹는 김에

4장에서 버틴 구출해주는 거 너무 인상 깊어서 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