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립보행으로 시작하는 남녀역전


— 직립 보행을 위해서는 좁은 골반이 유리함. 


— 하지만 좁은 골반은 여성에게 있어 출산 과정에서 불리함을 야기함. 하필 인류는 신생아 머리둘레가 독보적으로 큰 편임. 이로 인해 인류에게 있어 출산은 오랫동안 상당히 위험한 행위였음. 


— 여성의 몸집 자체가 커지면 출생의 위험도는 감소함. 따라서 인간 여성의 신장은 절대 일정 수준 이하로 감소하지 않음. 오히려 남성보다 더 큰 수준으로 커져도 무방할 정도임. 


—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수컷들이 적극적으로 좋은 식량을 독점하기 때문임. 몸집을 키워야 다른 수컷들과의 경쟁에서 내 암컷과 무리를 지킬 수 있고, 그게 무리 전체의 생존에도 유리하므로, 수컷들은 적극적으로 좋은 식량을 독점하고 최대한 섭취하려 함. 이는 인류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형 포유류들에게 해당됨. 


— 따라서, 성장기에 암컷이 섭취할 수 있는 영양분은 제한됨. 적은 영양분만으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은 신체가 유리하고, 따라서 대부분의 대형포유류에서 암컷의 성장은 일정 수준 아래로 억제됨. 


— 참고문헌: Why are women smaller than men? When anthropology meets evolutionary biology , Priscielle Touraille & Pierre-Henri Gouyon


— 그러나 상기한 골반 폭 문제로 인해, 인류는 다른 대형 포유류들보다 암컷의 크기가 커질 당위성이 충분함. 수컷의 영양분 독과점 문제만 해결되었다면 점차 여성의 몸집도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였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음. 


— 예를 들어, 특정 시기 동안 호모 사피엔스 또는 그 근연종이 큰 경쟁 없이 영양분을 과잉공급받을 수 있는 온난한 기후가 충분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 각 개체가 섭취할 수 있는 영양분에는 한계가 있으니 무리의 여성들 역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최대한으로 신체를 성장시킬 수 있었을 것임. 


— 대개의 생물은 출산의 유리함을 위해 암컷이 약간 더 큰 것이 보편적이므로, 인류는 상기한 골반 문제를 더해 이러한 암수간 크기차이가 보다 극단화되었을 가능성도 있음. 


— 신체능력의 우위를 통해 암컷에게 번식을 강제하는 전략이 제한된 수컷들은 보다 다양한 전략을 통해 암컷의 선택을 받고자 할 가능성이 높음. 


— 추후 환경 변화로 제한적인 식량을 놓고 무리 내에 경쟁이 발생할 경우에도, 신체적으로 밀리지 않거나 오히려 우월한 암컷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위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임. 


— 장기적으로 무리를 지키는 역할조차 암컷들에게 넘어가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임. 




2. 남녀간 신체조건이 역전된 초기 인류사회의 구조 예상 


— 현실의 경우, 무리 생활을 하는 포유류에게 있어 암컷은 ‘보호’되어야 할 ‘전략적 자원’임. 포유류의 임신과 출산 주기는 대단히 긴 편이고, 한 번의 출산을 통해 낳는 새끼의 수 또한 극도로 적음. 대부분 하나이고, 그 이상인 경우는 극히 드묾. 


— 따라서 무리가 위험에 처한 경우, 신체적으로 우월하며 공동체의 생육에 끼치는 영향이 적은 수컷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자연스러움. 수컷은 좀 적어도 무리의 회복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 방어가 불가능할 수준으로 줄어들지만 않으면 됨. 


— 이제 남녀역전 사회를 가정함. 신체적으로 우월한 여성들은 무리가 위험에 처할 경우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음. 그러나 여성체의 손실이 여전히 공동체의 유지에 있어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음.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전략(=설정)이 취해질 수 있음. 


— 예를 들어, 여성의 성비를 늘리는 것. 개인적으로 성비 박살내는 설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쓸모가 적은’ 수컷의 비중을 줄이고 암컷의 비중을 늘리는 것은 생존에 있어 유효한 전략일 수 있음. 번식 속도는 암컷의 수에 비례해 증가하고, 수컷은 있어 봤자 번식과 잡다한 노동 외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그러나 이는 유전자풀이 극도로 제한된다는 문제를 불러올 수 있음. 


— 성비를 유지한다고 할 경우, 무리는 수컷을 ‘소모적’으로 사용하여 생존전략을 재고할 수 있음. 수컷의 수는 일정 수준 이하로 줄어들지 않는 이상 무리의 번식능력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므로, 적절한 ‘솎아내기’ 차원에서 수컷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 또한 유효한 전략일 수 있음. 이 경우 남성의 가치와 권리는 현실의 여성 이상으로 제약받을 것임. 가장 고귀한 수컷조차 가장 하등한 암컷의 아래 서열로 취급받는 하이에나 무리와 유사한 엄격한 계급제가 적용될 수도 있음. 


— 또다른 방법은 무리의 크기 자체를 불리는 것임. 여성의 강함과는 별개로, 임신하거나 수유 중인 여성은 공동체를 방어하는 임무의 수행에 지장이 생김. 따라서 역전세계의 인류 공동체는 한정된 여성 자원을 번식과 방어, 육아 중 어느 곳에 우선적으로 투입할 지 끝없는 고민을 해야 함. 

무리에 속한 여성 인구를 늘려 양쪽에 투입 가능한 인적자원 자체를 늘리는 것은, 통합이 안정적일 수만 있다면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음. 인구가 깡패라는 말은 역전세계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적용될 것임. 


— 이러한 변화는 문명의 발달을 촉진하고 보다 고차원적인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음. 아울러 인적자원을 다루는 데 필요한 정치학과 수학 등 각종 학문 역시 빠르게 발달할 수 있음.  만약 근대에 이르른다면 복지국가에 관한 논의가 보다 일찍 이루어질 수 있으며,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등 다양한 사상 역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임. 



3. 일부다처, 일처다부, 일부일처. 또는 난혼. 그리고 아버지. 


— 현실 세계에서, 문명 발생 이후 대부분의 결혼제도는 일부일처를 기본으로 함. 일부다처제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는 대부분 동아시아의 처첩제와 같은 권력층의 과시 혹은 중동의 형사취수제로 대표되는 자립능력이 없는 여성을 구제하기 위한 고육지책에 가까운, 보편적이지 않은 경우였음. 


—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인 사회제도가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음. 다양한 유전적 형질을 보존하는 데 유리하고, 부모가 같은 자식들 간의 친밀함을 통해 신뢰 가능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으며, 암컷을 놓고 벌어지는 과도한 경쟁을 방지하여 집단의 분열을 예방하고 그 에너지를 다른 방향에 투입할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음. 문명 발생 이후에는 재산의 분산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음. 


— 수컷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유전적 후계를 볼 수 있는 확률을 극도로 높여주는 제도라는 장점도 있음. 내 아내가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다한다는 가정 하에, 아내의 자식은 곧 내 자식임. 부계 불확실성이 확실하게 줄어듬. 일부일처제 사회라고 뻐꾸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수컷들과 끝없는 무한경쟁을 펼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음. 


— 남녀역전 사회에서도 위의 장점들 대부분은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임. 특히 혈족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가 형성 가능하다는 장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보여짐. 


— 그러나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자식의 유전자 계승에 불확실성이 없으며, 역전세계에서는 어머니가 가정의 보호자로서의 역할 역시 겸하는 만큼, 역전세계의 가정에서 ‘아버지’가 갖는 위상은 다소 낮을 가능성이 있음. 이런 경우 가정에서 아버지란 ‘어머니와 함께 나를 만든 부친’ 보다는 ‘어머니의 배우자’ 정도로 받아들여져, 자식과 부친 간의 유대가 다소 약할 수도 있음. 


— 모유 수유가 끝나는 대로, 혹은 그 이전에도 노동에 투입되어야 할 어머니를 대신해 대부분의 가사와 육아활동은 아버지가 전담할 것으로 보임. 


— 가장을 잃은 남성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로서, 그리고 상류층의 과시를 위한 일처다부제가 보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음. 


— 서녀와 서자들의 처우 문제는 현실보다 나을 것으로 보이는데, 가정에서 어머니의 위상이 공고한 만큼 가문의 계승과 상속 역시 모친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임. 


— 현실에서는 처첩의 소생과 정실의 소생이 확실히 구분되지만, 역전세계에서는 왕(여성)이 마음먹고 우기기 시작하면 전근대 사회에서 이를 확인할 방법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임. 


— 많은 자식을 둔 경우, 유산이 분할되어 가문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서녀들을 배제하기보다 장녀 상속제가 강화되는 것이 우선일 것으로 보임. 


— 한편 이러한 사회 하에서, 남성들은 자신의 ‘자식’이 자신의 씨로 난 자식인지에 대해 대단히 집착할 가능성이 큼. 온갖 사이비 확인법이 횡행하고, 이로 인한 정실과 측실(들) 등 남성들 사이의 암투 역시 현실의 여성들 사이에서 벌어진 것보다 광범위하고 극단적인 형태로 벌어질 가능성이 있음. 


— 승계 문제와 얽힐 경우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짐. 후계자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일 텐데, 이를 확인할 방법은 오직 아내의 확인 뿐이기 때문임. 


— 이는 가정 내에서 아내의 발언권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데, 만약 후계자로 지목된 딸이 A의 자식이라도, 아내가 ‘우리 애는 B의 씨로 난 자식이다’ 라고 선언할 경우, A에게는 이를 반박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임. 어지간히 닮지 않고서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남자의 유전적 불확실성이 장애물로 작용할 것임. 아마 본인도 확신하기 어렵지 않을까?


— 결론적으로, 가정에서 ‘아버지’란 ‘어머니의 정실 남편’ 정도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며, 일처다부제를 지탱 가능한 상류 사회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큼. 이에 따라 신분과 환경의 차이에 따라 ‘아버지’란 존재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개인마다 큰 격차를 가질 것으로 보임. 



4. 복식: 바지인가 치마인가


— 현실에서 바지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복식으로, 치마는 여성의 복식으로 정의됨. 시대의 발전에 따라 여성의 바지 착용에 관한 제한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남성의 치마 착용에 대한 터부는 여전히 보편적인 관념임. 


— 그러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님. 인도 아대륙과 동남아시아, 동부 아프리카와 폴리네시아 군도 일대에서는 치마 형태의 전통적인 복식이 여전히 흔한 복식이며, 대중에게 남성용 치마로 가장 유명한 예시인 스코틀랜드의 킬트 역시 여전히 그 일대에서 일상용 복식으로도 사용되고 있음. 


— 전통이라는 명분, 혹은 고온다습한 기후라는 지역적 특성이라는 이유가 있기는 하나, 이러한 예시를 통해 바지와 치마에 관한 고정관념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음. 


— 바지와 남성성이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바지의 탄생 경위와 관련이 있음. 


— 바지는 사람의 하체 형태로 자른 두 장의 천을 겹치고 다리와 허리가 나올 구멍을 제외한 곳들을 봉제하여 만들어짐. 

 

— 반면 치마는 통 천을 하나 가져다가 양 끝을 박음질하기만 하면 됨. 더 간단하게는 박음질조차 필요 없이 허리춤에 둘둘 두르고 대충 묶어도 됨.  

 

— 즉, 바지는 치마 형태의 복식에 비해 만드는 품이 많이 들며, 보다 고도의 봉제기술이 요구됨. 초기 문명의 구성원들은 이를 개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많은 문명의 복식들이 남녀 불문하고 치마 형태를 띄었음. 지중해 문명권의 튜닉, 하상주 시대 중국의 복식 등이 대표적인 예시임. 


(좌: 기원전 4세기경 고대 그리스 튜닉)

(우: 오스프리에서 고증한 주나라 시기 복식)


— 치마와 달리 사타구니와 다리 안쪽까지 가려주는 형태의 복식을 만들 필요가 발생한 것은, 다들 알다시피 기마술 때문임. 


— 기마민족에게 있어 바지는 필수적인 복식이었음. 치마와 달리 아무런 방해 없이 다리를 벌리고 말에 탈 수 있으며, 사타구니와 허벅지 안쪽이 말가죽과 마구에 쓸리지 않도록 해 주고, 스텝 초원 지대의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바지는 유목민들의 교류를 타고 급속하게 번져나감. 


— 가장 오래된 바지 형태의 복식 유물들이 위구르와 몽골,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만 봐도, 바지가 기마민족의 복식으로 처음 세상에 나타났다는 것은 명백함. 춘추전국시대의 한족들이 바지를 ‘호복’, 즉 오랑캐의 복식으로 통칭했으며, 고대 로마인들 역시 바지를 ‘야만족의 상징’으로 취급했다는 것으로도 바지의 기원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음. 


(위구르 지역에서 발견된 바지 유물. 기원전 10~13세기.)


— 그러나 고대 농경국가들 역시 바지의 이점을 알아보고 군인들을 중심으로 점차 바지를 착용하기 시작했음. 로마 군인들은 온난한 이탈리아 반도에서 북쪽의 갈리아로 진출하며 켈트족의 바지를 도입했고, 중국은 전국시대에 북부의 조나라를 시작으로 기마술과 함께 오랑캐들의 ‘호복’을 도입함. 


— 여기서 우리는 바지가 전사들의 복식으로 다루어졌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음. 


— 현실에서 전사란 장성한 남자의 역할이었음을 고려하자면, 바지가 남성의 복식이 된 이유는 명백함. 


— 실제로 서유럽에서 바지가 양민들에게도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게르만의 도래와 서로마의 멸망으로 인한 혼란을 종식시킨 전사 계층, 즉 후일 유럽 각국의 귀족이 된 이들의 복식을 따라한 것이라는 설도 있음. 물론 실용적인 부분도 무시하지 못했겠지만, 상류사회를 따라하려는 영향도 없지 않다는 것. 

 

— 남녀가 역전된 사회의 경우, 고대부터 여성이 전사로 활동하고, 기마민족과 교전할 일이 잦았던 정주 문명이라면, 바지는 군사적인 복식으로 분류되어 여성의 전유물이 될 것임. 남성들은 치마 형태의 복식들을 계속해서 착용하다가 근대 이후에야 바지 착용이 보편화되었을 것으로 보임. 


— 반면 기마 민족의 경우 남녀 모두 말을 타야 하므로 바지가 성별에 관계없이 보편적이었을 것이며, 기마민족과 접촉할 일이 없는 환경, 즉 열대의 정글이나 섬, 혹은 탑승 가능한 가축이 존재하지 않는 대륙에서 거주하는 이들의 경우에는 남녀 모두 치마 형태의 복식이 보편적일 것임. 


— 각 성별의 복식이 굳어진 상황에서, 남성의 바지 착용에 반발하는 주류 사회가 다양한 ‘의학적 소견’을 낼 수도 있을 것임. 현실의 1차 세계대전 시기, 사회에 진출하는 ‘신여성’들의 복식과 생활방식에 우려를 표한 것처럼. 


— 예를 들어, 바지는 다리 사이에 있는 남성기를 압박하고 환기를 방해하여 생식능력과 건강을 해친다거나, 남자는 아래를 차게 해야 하는데 바지는 그럴 수 없다는 ‘의료계의 소견’이 언론에 소개될 수 있음. 


— 바지와 치마 이외에도, 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여성의 복식은 보다 활동적이고 간소하게 바뀔 가능성이 큼. 헤어스타일 역시 투구를 써야 하는 전사 계층을 따라 단발을 유지할 것으로 보임. 조선시대 상투와 같이 투구에 최적화된 헤어스타일이 민간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을 것. 만주족, 몽골족의 변발이나 일본의 촌마게 같은 극단적인 스타일도 도입될 수 있겠으나, 별로 보고 싶지는 않음. 


— 반대로 전장과 노동으로부터 먼 상류층 남성 패션은 장식적이고 형식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큼. 헤어스타일도 훨씬 다양할 것이며, 근대 서유럽의 가발 유행은 보다 거대하고 극단적이며 심미적인 형태로 확대될 것임. 또한 남성의 노출에 있어서도 시대에 따라 보수적인 관점이 보편적일 가능성이 큼. 


— 속옷의 경우, 활동성을 중시해야 하는 여성의 위치상 코르셋 등 여성용 보정의류 수요가 크게 축소될 것임. 여성성의 상징을 과시하기 위한 체형보정용 패드(뽕) 등은 유지되겠으나, 실용성과 위압적인 현시를 위한 복식에 어울리지 않을 것들은 애초에 발명되지 않을 가능성이 큼. 브래지어 역시 가슴을 보정하기 위한 용도보다는 격한 운동 중 가슴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제작될 수 있을 것임. 이럴 경우 형태는 현대의 탱크탑이나 브라렛과 유사할 것으로 보임. 


— 반면 남성용 보정의류 수요는 확대되어 있을 것임. 르네상스 시기 유럽 남성들의 코드피스와 유사한 남성기를 강조하는 패션이 유행할 수도 있고, 남성의 정절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을 경우 정조대와 코드피스가 결합한 숭악한 물건이 튀어나올 수도 있음. 보냉과 보행 시 신경쓰며 걷도록 하기 위해 치마 아래에 아무 속옷도 입히지 않을 수도 있음. 


— 여성에게 부재하고 남성에게 있는 부위를 성적인 매력을 지닌 것으로 취급하여 드러내거나 가리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목젖을 가리기 위한 높은 셔츠 깃이나 목도리, 초커 등의 패션 아이템이 유행할 수 있다. 남성의 유두는 수유라는 목적을 지닌 여성의 것과 달리 오직 성적인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므로 가려야 한다거나, 반대로 적극적으로 드러내거나 피어싱 등을 통해 장식하는 문화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5. 처녀와 동정, 성행위, 출산


— 통념과 달리, 처녀막은 질 안쪽에 있는 얇은 막이 아니라 질 입구 주위의 섬유조직을 뜻한다. 완전히 막혀 있지도 않고, 사람마다 형태가 다르거나 아예 없기도 하다. 아예 막 형태로 막힌 경우는 처녀막 폐쇄증이라 칭하며, 월경혈이 고여 부패하며 질병에 감염될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절개하여야 한다. 또한 처녀막이 있더라도 올바른 윤활과 적절한 이완 후에는 출혈이 동반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혈류량이 많은 부위도 아니어서 파열되더라도 한두 방울 나고 마는 경우도 많다. 


— 그러나 이러한 의학적 사실과는 별개로, 많은 남성들은 ‘처녀막’과 이로 인해 보장되는 처녀성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다른 이들이 손대지 않은 여성에 대한 증명, 즉 자신이 차지하여 임신시킬 경우 자신의 자식임을 확신할 수 있다는 일종의 본능도 기여한 선호일 수 있다. 


— 역전세계의 여성의 경우, 누구의 씨를 받건 내 배에서 나왔다면 내 자식인 것은 분명함으로 동정에 대한 선호가 현실 남성의 처녀성에 대한 선호만큼 크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일처제 하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꾸릴 경우 ‘자신이 독점하는’ 남편에 대한 선호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 이 경우 역전세계의 여성들에게는 실제와 다소 다른 ‘동정 구분법’이 퍼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방법일지는 창작자가 설정하기 나름이겠으나, 현실과 유사하다면 포경 여부가 가장 유사한 구분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포피를 강제로 벗겼을 때 출혈이 동반된다면 동정이라던가. 


— 반대로 여성의 처녀는 기존의 여러 작품들대로 자위행위나 격한 운동으로 잃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을지. 중동의 할례 의식도 처녀막을 제거하는 것으로 치환될 가능성도 있다. 


— ‘박는다’는 단어의 성적 의미는 다소 감소할 것이다. BDSM 계열에서나 제한적으로 사용되지 않을지. 대신 ‘먹는다’는 단어의 성적 의미가 다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 여러 문화권에서 남성의 정액은 주술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이해되곤 했다. 브리튼의 켈트족 분파들은 정액을 섞은 푸른 물감으로 전신에 워 페인트를 그렸으며(접착성이 있는 재료가 필요해서 그랬으며, 당연히 사람 정액만은 아니고 계란 흰자 등도 섞었다고 한다), 중세 연금술사들은 정액 안에서 온전한 사람의 원형, 호문쿨루스를 찾고자 하기도 했다(여성이 열등하며 남성이 스스로 온전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나)고 한다. 따라서 남성의 정액에 대한 관심은 역전세계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 개중에는 정액 특유의 냄새를 잡기 위한 시도도 있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화류계나 귀족 사회에서 남성의 식생활을 제한하여 정액의 맛과 향을 통제하는 문화가 발생할 수 있다. 중국에서 복숭아만 먹여 복숭아향이 나는 소녀를 만든다는 일본발 도시전설과 유사한 사례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도낭 전설’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며 사례도 보고된 바 없는 헛소문이지만, 남성의 정액은 실제로 섭취한 음식에 따라 구성성분에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므로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된다면 전근대 사회에서도 가능할 수도 있다. 


— 남성의 발기는 성관계에 동의한다는 의사표시로 밝혀질 가능성이 크며, 현실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정절을 중시하는 사회로부터 겪어야 했던 고초가 역전세계의 남성들에게는 더욱 심화된 형태로 피해를 입힐 것으로 보인다. 


— 출산 과정에서 고통 대신 강렬한 엑스터시를 경험한 여성들의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역전세계의 경우, 출산의 선택권이 여성에게 있을 것임으로 쾌락이라는 보상체계를 갖추는 것은 개체의 번식욕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보다 많은 자손을 남기도록 유도할 것이다. 따라서 역전세계의 여성은 이러한 형질이 유전되어 출산 중에 쾌락을 느끼는 경우가 보편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 몽정과 월경에 대한 취급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지게 될 것이나,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는 전적으로 창작자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두 현상의 차이가 너무 큰 관계로 일대일로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월경 자체를 생략하거나(월경을 하지 않는 포유류도 많다) 몽정 혹은 유정을 월경과 같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바꾸는 등의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묘사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24.05.03 추가



— 남녀의 성기에 관한 이미지도 뒤바뀔 가능성이 있음. 예를 들어, 남성의 음경은 배설과 번식이 한 구멍으로 동시에 이루어지는 만큼 불결하고 불완전하며, 여성기는 질과 요도가 분리되어 각기 다른 기관으로 번식과 배설이 이루어지므로 목적에 완결성이 있고 청결하며 완전하다는 고정관념을 상상해볼 수 있음. 


— 또는 여성의 신체가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몸 전체가 곡선을 따라 완결적으로 이어지는 형태가 완전함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신체구조상 직선적인 남성의 몸과 돌출된 성기가 불완전함의 표상이자 남성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증거라는 철학적 궁구도 이루어질 수 있겠음. 



쓰고보니 일만자가 넘네 

대체역사 설정 짜보겠다고 마법 같은 초자연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채 짜본 남녀역전세계 설정이빈다

사고실험이라고 제목에 적긴 했지만 남녀역전이라는 결론을 내려두고 끼워맞추는 식이라 실험이라고 하기도 뭐합니다

제가 뭐 인류학 전공자도 아니고 이럴 것이다! 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설정딸 쳐보니 이런 느낌일 것 같다- 하는 망상글로 봐주십쇼

긴글 봐줘서 고마워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