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스슨니, 스슨니! 나도 스슨니의 검 배울래!” 


"...얌전히 낮잠 자면 나중에 알려줄게." 


"시러, 시러! 저번에도 그렇게 말해놓고는 안 알려줬자나!"


"흠...."


보육원에 있는 가장 큰 놀이방 전체가 낮잠을 위한 이불로 덮힌 12시 30분.


이미 다른 원생들은 낮잠에 빠졌음에도, 끝내 잠에 드는 걸 거부하는 한 원생의 반발에 아리엘은 고민하고 있었다.


‘검을 알려줘야 하나.’


에반. 이 아이의 이름이자, 후에 검성으로 불리며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모이는 영웅 중 한 명의 이름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런식으로 때를 쓰는 5살배기 꼬맹이에 불과했지만.


'누가 검박이 아니랄까봐 어릴 때부터 검술에 미쳐가지고는....'


아직 15살이 되지 않아 검신의 축복을 받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까지 검을 좋아하는 건 선천적이라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원래라면 여기서 단호하게 나가는 게 선생님이 할 일이었다. 


어찌됐든 너도 저기서 꼬물거리고 있는 애들 옆에 누워서 자야한다고.  


하지만....


'검을 잡은 모습을 보여준 내 잘못도 있긴 하니….'


뒷마당을 청소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깨달음이 화근이었다.


몸이 근질거려 주변에 있던 목검을 잡아 초식을 점검했을 때,


-와...! 원잔니, 그게 검술이야?


에반이 그걸 목격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에반은 내게 검술을 알려달라고 졸라댔고, 심지어 지금은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스승님’이라는 호칭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하아.”


'억지로 눕히면 엄청나게 반발하겠지….'


그걸 말리는 건 굉장히 귀찮았다.


그리고, 그런 소리가 퍼지면 지금 막 잠에 들기 시작한 다른 애들도 깰 우려가 있었다.


그것보다는, 육체적으로 피곤하게 만든 뒤 골아떨어지게 하는게 최선이었다.


"부원장님 몰래 나가자. 알려줄게, 검술."


"정말요?"


검술을 알려준다는 말에 나를 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방금전까지 때를 쓰던 나쁜 애는 어디가고, 여기에는 호기심 가득한 순한 양만이 존재했다.


"대신, 원장선생님이랑 약속 하나 하자."


"약속...?"


"자, 약속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지?"


"새끼손가락!" 


"좋아. 걸고…그렇치. 잘하네."


검술을 배우게 하기 전, 당부하고 싶은 건 딱 하나였다.


“에반, 검술을 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쓰렴." 


“….”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고,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이 위험에 처한다면 한발자국에 달려가주는 사람이 되는 거다?”


이건, 그가 원작에서 가장 크게 후회했던 일과 연관되어 있다.


그가 커서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


어떤 괴한들이 아카데미를 습격하게 되는데, 평민 학생들이 귀족 학생들을 지키라는 명령이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명령에 따르다, 에반과 가장 친했고, 또한 연심을 품었던 평민 여학생이 죽어버리게 된다.


에반은 어떻게든 그녀를 살리려고 했지만…귀족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에반은 성장한 훗날까지도 이 일을 후회하고, 그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으로 남게 된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은, 약간의 참견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어린 에반이 다시금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작은 소망이 담긴 참견.


“응! 내 검술로 전부 지킬게!”

  

에반은, 그런 내 참견에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긍정적인 대답은 나오긴 했지만….’


5살 애한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도 좀 그렇지.


머리로는 기대감을 죽임과 동시에, 입으로는 에반과 같이 명량한 음율로 "약~속~."이라고 말했다. 


이게 우리 보육원의 약속 규칙이었으니, 딱히 부끄러움은 없었다.


***


파앙!


공기가 갈리는 소리가 선명히 귓가에 스쳤다.


"스승님!"


눈에 피가 질척하게 들어가 시야는 제한적이었지만, 그것조차 그의 넓어진 등판을 전부 가리지는 못했다.


"...뭐하러 여기 왔어. 이미 애들은 전부 다 대피했는데." 


애써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지만, 실시간으로 체력이 바닥나고 있는 목소리는 전혀 숨길 수 없었다.


"예전에 약속했잖습니까." 


내게 보란 듯이 흔들리는 그의 새끼손가락을 보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애한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꾹 참았다.


"아리엘, 예전에 약속한대로 구하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