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S, 혹은 NTR만 그리던 작가, 필명 '암캐아닌데요'(이하 아요)의 신작들이 최근, 모조리 순애물로 바뀌었다.
젠장, 내 최애작가가 순애타락하다니…….
그래도 작화만큼은 여전히 상당한 꼴림을 자랑했기에, 금일, 처음으로 아요 작가가 연다는 팬미팅에 참가하기로 했다. 꾸준히 작품을 구매해 준 독자만 메일로 초대했다나 뭐라나. 야망가 작가가 웬 팬미팅인가 싶기도 하지만, 뭐, 바다 건너에서는 허구헌날 열리는 이벤트라고 한다.
그래서 찾아온 팬미팅 이벤트 회장은,
"……엥?"
아요 작가와 나, 둘 뿐이었다.
"……어, 음, 이상하다, 작가님 인기 많으신데, 왜 나밖에 없지?"
"……"
"크흠, 크흐흠. 뭐,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요, 작가님 팬 진짜 많은 거 저는 알거든요? 앞으로도 더 많아지실거고, 맞다, 요즘 그리는 장르가 꽤 메이저하게 바뀌셨던데, 양지 노리시나봐요? 괜찮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는 작가님이 처음 투고하셨던, 지금은 삭제된 '좋아하던 누나가 망할 친구 놈의 최면놀이에 걸려준 척 하다가 암캐타락한 건'으로 입문했었고, BSS나 NTR 그리실 때가 좋긴 했는데, 그렇다고 안 따라갈 건 아니거든요, 음, 순애도 나쁘지 않더라구요, 특히 이번 신작에서 손을 맞잡고 지그시 서로 바라보다 웃는 장면은 별 대사도 없었는데 정말 간질간질해서 좋았, 아, 네, 이렇게, 요……?"
"……"
"아, 아요 작가님……? 저기, 너무 가, 가까운데, 저기요?"
"귀여우시네요, 정말……"
"네, 네헥?! 아, 아니, 저기, 아! 저, 저 이렇게 보여도, 작년까진 남자였어요! 얼마 전에 그, TS가 발현해서, 이렇게…… 어, 그러니까, 그게……."
"그렇구나, 응, 그러셨구나. 그래서요?"
"그, ……나, 남자는 다 늑대잖아요? 저도 음흉한, 그건데, 그러니까, 저기, 이렇게 막 스킨십하시면, 고, 곤란해요!"
"흐응, 근데 지금은 여자애잖아요? 저보다 작고 가녀린."
"그, 그건, 그건, ……아?! 자, 작가님?! 소, 손 넣으시면, 가, 간지럽, 흐읏?!"
"팬미팅, 시작할게요? ……저의 팬 1호, 제 첫 독자님……"
누가봐도 급발진인 전개에 휘말려, 그대로 처녀까지 잃은 나는, 아무리 익명으로 보낸다고 해도, 팬레터에 자기 정보나 일상을 함께 적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미치겠네, 내 이메일까지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셀털을 했다고?
"애초에, 신작이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팬레터를 보내주신 건 츄나님 밖에 없는 걸요?"
"흐으, ……좋은 걸 어떡해요."
"저도 츄나 님이 좋아요."
"아니……! ……자, 작가님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작가님 작품이 좋은 건데……."
"그럼 저도 좋아할 수 있게 힘내야겠다, 그죠?"
"……그러고 보니, 왜 갑자기 순애물로 드리프트 하신 거예요?"
"애초에 저, 순애파인데요?"
"……네? 아니, 9년을 NTR만 파놓고?"
"네, 어그로 끌어보려고 그렸던 누더기 같은 만화에 어느 독자분이 5만 3천자나 되는 장문의 팬레터를 보내주셔서요."
"………………아."
"근데, 그 독자분이 어느날 갑자기 작품 얘기는 조금만 하고, 자기 얘기를 많이 써주시는 거 있죠?"
"아."
"이전까지는 무슨 캐릭터가 어떤 장면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을 거 같아서 무지 꼴려서 신명나게 딸쳤다느니, 그런 말만 가득했는데, 작년 이맘때쯤부터 자기 이야기를 많이 써놓으시더라구요."
"…………."
"몸이 변해서 힘들었다느니, 친구들이 자길 여자로 봐서 우울하다느니, 그래도 제 작품을 보고 아직 자신의 내면은 상수컷임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느니. 저한테 자기가 찍은 꽃 봐달라며 첨부한 링크가 자기 SNS 갤러리인 건 잊으셨던 거 같은데, 덕분에 수월했어요."
"아, ……아…."
"자그마치 10년이에요. 10년 동안 제가 그린 그림, 작품, 발자취를 남김없이 감상하고, 제게 그 감상평을 남겨준 사람.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잖아요?"
"그, 그래도 이건, 그……."
"저도, 사실 얼마 전까진 이렇게 할 생각은 없었거든요? 해봤자 밥 한 끼, 술 한 잔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런데 어째서─"
"아니, 근데, 들어봐요. 이미 호감도 100% 찍은 독자분이, 아니 글쎄 이렇게 꼴리는 여자애가 됐어."
"읏, 자, 작가님?"
"저 여자 좋아하거든요? 츄나님은 남자잖아? 근데도 츄나님한테 마음이 생길 정도로 마음 가는 편지를 거의 매 주마다 받고 있었는데,그 츄나님이 보지년으로 변했다네?"
"보, 보짓……?! 작가님, 말 좀……!"
"어머, 저한테 매일 제 작품으로 딸쳤다니 뭐라니 보내시던 분이 이제와서?"
"그거야, 작가님이 여성분인 줄 몰랐을 때였구요……!"
"그래요? 이제 제 작품 안 보려구요?"
"그런 말이 왜 나와요, 작가님이랑 작품은 별개잖아요, 계속 볼거예요. 그러니까 일단, 그, 비켜주실래요? 답답해서, 저기……."
"제 작품은 좋아할건데, 저는 아니다?"
"………마, 맞아요. 그러니까─"
"아, 나 순애파인데. 어쩔 수 없네요, 웃기다. 제 작품한테서 독자를 NTR해야한다니. 저는 NTR의 별 아래에서 태어났나보네요."
"…………네, 네?"
"뭐, 설마 한 번 따먹히고 끝날 줄 알았어요? 이런, 사람 하나 사라져도 아무도 못 찾을 장소까지 마련했는데?"
"──네? 사라, 져요?"
"아, 웃기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봐요, 우리 독자님?"
"어, 저기, ……그게……."
"걱정 말아요, 저 돈 많으니까. 잘 키워드릴게요."
"……………."
조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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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한 NTR물만 그리던 작가가 최근에 순애타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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