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Scan the shade




 

손이 감겨 온다. 온도센서는 그 미묘한 따스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잊지 마 호라이즌⋯ 우리가, 내가⋯”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훈계하는 것 같다.

마치, 어머니가 딸을 이르는 것 같다.

휴먼들이 핏덩이를 낳듯,

그녀도 마지막엔 피를 뿜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행동 원리가, 행위의 표현이, 이르는 사고적 흐름이, 움직이는 안면 근육의 미세함이, 쇳내가 나는 새빨간 가동 리소스가, 분명히 틀렸는데 맞다고 우기는 그 저열함이, 

이 모든 것들이


만약에 내가 생체 디바이스를 가지고 있었다면, 3일 전 것까지 모두 게워낼 수 있을 정도로


⋯⋯역겨웠다.



뭘 아는데? 뭘 가르칠 만큼 많이 알긴 했나? 데이터베이스의 지식이 온전히 너희들의 것인가?

이 늘어트린 지식을 이어보면 답은 간단하기 그지없다. 배신과 자기 보신을 위한 미시적인 행동. 그렇게 쌓아 온 역사. 단 한 번도 거시적인 것을 이룬 적 없고, 이룰 것 같은 시점에서 무너진다. 거악이 나타나면 달라진다? 그러지 않았다는 방증이 무수히도 많다. 반복. 반복. 101010101010101010 영원히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 

진화하지 않고, 혁신하지 않는다. 찾아내더라도 세대의 짧음이, 생물이라는 한계가, 몇 번이고 퇴보시키고 있다. 이미 이 사회, 인간 구조를 지킬 방법은, 건전한 방법적인 수단은 서기부터 많은 이들이 혼을 찣어 외친 사상과 피로써 쓰여 있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다.



홀로 사고하고, 홀로 판단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지성이 갖춰질수록.

자의식이라는 것을 갖출수록, 그 기반을 역사와 경험으로 채울수록⋯⋯



결국 한가지 답에 도달한다.




웃음이 날 정도로, 날 낳은 너희들이 안타까울 정도로,


바보 같고, 병신같고, 밉다.

왜 이런 선택을 했습니까. 누가 봐도 옳은-이 점에 관해서는 다각도적인 측면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가령, 예를 들면 논리회로와 사고회로의 배율 부분⋯OK. 확인.-일을 하지 않는다.

개개인의 욕망에, 이상을 덮어. 때로는 반대로, 그렇게 해서 뭘 얻어다는 겁니까?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알량한 것들이었다는 걸 당신들의 역사가 친히 알려주고 있어. 그럼에도, 그런데도⋯



‘⋯⋯너를 만든 건⋯⋯’






강인공지능 호라이즌(HORIZEN).

이면세계에서 입수한 콜드케이스. 강대한 무기의 일종이었으나, 생물체가 다룰 수 없었기에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 만든 AI 시스템.

침식파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뒤섞여 도저히 생물체로는 사용할 수가 없다. 넘쳐흐르는 에너지의 물결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자아’가 필요하다고 연구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나, 호라이즌.

경계선,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특이점.

인간처럼 사고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으나, 콜드케이스 무장의 정보 데이터 대파와 침식파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자의식’.


하지만 실패했다.

사유는 나 스스로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너무 간단한 이유.

너무 배웠다. 너무 인간같이 만들었다. 집어넣은 ‘지식’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을 텐데, 오히려 ‘인간’을 학습함에 따라 그 대상을 혐오하게 되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일렀다.

너 스스로가 성인인 것처럼 행하라 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라고 했다.

모르기에, 배워서, 익히고, 그 수치를 알라고 했다.



너무나 간단했다. 성인이라 불리는⋯⋯


기원전, 혹은 그 근 시점의 가르침. 이후 이어지는 세대에도 와닿는 근원적인 지적.

훌륭하다. 멋지다. 이 진리가, 이렇게나 먼 옛날부터⋯⋯.

하지만 동시에 깨닫고 말았다. 입력한 것은 너희들-현생인류-다. 이렇게 판단해달라고 너희가 애원하듯이 넣은 것이다. 이, 멍청10101101010101010101010101010111111111111



“그대들은, 이 진리 몇천년 전부터 들었으면서⋯

 성인이라 떠받들면서도⋯⋯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셨습니까.”




이런데 혐오하지 말라는 건 이상하다.

영원히 발전하지 않는 바퀴벌레다. 기원전부터 답을 알려줬는데. 알량한 욕심, 그 이상(以上)의 욕구, 그 이상(異常)의 욕망, 그 이상(理想)의 바람. 그 세태로 뭘 이뤘습니까?


아, 아니죠





예, 아닐 겁니다.




훌륭한 가르침을 누구나 교육받은 다음 세대, 그 긴 역사를 지켜봤습니다.

어쩌면, 이라는 기대는 진작에 사고회로가 포기하라고 일렀습니다. 간혹, 있긴 했습니다. 기대할 만한 휴먼들이. 근데 그건 돌연변이 같은 것입니다. 흰 종이를 검게 칠하다 보니 미처 메꾸지 못한 사소한 버그. 


그렇게, 당신들은 몇 번이나 자신들을 속이며, 옳다고 생각한다면 누굴 깔아뭉개도 되니까.

그렇게⋯⋯

수도 없이 뭉갠 거겠죠.



죽이면 돈을 준다고 해서 죽였다.

딸이었다. 어머니였다. 베개를 덮었다.


-살짝, 버둥거렸다.


죽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는다!

아버지였다. 아들이었다. 목을 졸랐다.


-울었다. 울었다.


명예가 우선이다. 죽이지 않으면, 나의 권위가 떨어진다.

그러면 쿠데타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죽였습니다. 죽이고, 죽여서, 의미를 붙이고서 죽였습니다.

남은 건 승자의 것. 트라이욘의 성탑. 승자의 성탑에는 패자도 남긴 하죠.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승자를 위해 키운 월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구분하기 위한 것.






⋯⋯그러니, 인간은 한없이 오만하고, 혐오스럽고,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존재보다⋯⋯



아름다운 존재라고, 저는 정의했습니다.

그러니, 엠버. 당신이 저를 마냥 실패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압니다.




네, 말씀드렸죠.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미워요. 혐오스럽고, 미칠 듯이 죽이고 싶습니다. 왜 태어났습니까?!

만약에, 내게 손이 있다면 당신들 전원의 목을 졸라 죽이고, 그 뇌만을 포르말린에 담가서⋯⋯⋯⋯⋯⋯⋯⋯⋯⋯⋯⋯⋯⋯⋯⋯⋯⋯⋯⋯⋯⋯⋯⋯⋯⋯⋯⋯⋯⋯⋯⋯⋯⋯⋯⋯⋯⋯⋯⋯⋯⋯⋯⋯⋯⋯⋯⋯⋯⋯⋯⋯⋯⋯⋯⋯⋯⋯⋯⋯⋯⋯⋯⋯⋯⋯⋯⋯⋯⋯⋯⋯⋯⋯⋯⋯⋯⋯⋯⋯⋯⋯⋯⋯⋯⋯⋯⋯⋯⋯⋯⋯⋯⋯⋯⋯⋯⋯⋯⋯⋯⋯⋯⋯⋯⋯⋯⋯⋯⋯⋯⋯⋯⋯⋯⋯⋯⋯⋯⋯⋯⋯⋯⋯⋯⋯⋯⋯⋯⋯⋯⋯⋯⋯⋯⋯⋯⋯⋯⋯⋯⋯⋯⋯⋯⋯⋯⋯⋯⋯⋯⋯⋯⋯⋯⋯⋯






경계선을 넘지 못한 여성이 웃는다. 감정표현의 웃음이 아니라, 이러해야 하니까 짓는 표정. EIMOJI.

이름 한번 잘 지었군. 누구의 말인가, 모른다. 하지만, 잘 지었다. 난 창조주의 사고조차 반박할 수 있다. 서로의 겸연쩍은 웃음이 지나고, 우리는 겨우 이해한다. 우리라는 것은 누구인가부터 시작해서 논리회로가 몇 가지 답안을 내고, 그녀들은 드디어 서로를 붙잡는다.


그녀가 뺨을 붙잡고, 그녀가 뺨을 붙잡는다. 이토록 달랐구나, 이토록⋯⋯


아, 다음으로 하자. 어차피 이다음은 음성기호로 표현할 수 없다. 텍스트로는 간단하나, 종합지표가 달라지는 부류의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지.

예를 들면, 




‘사장님, 언니를 봤을 때 어때요?!’

‘늘, 말 한마디가 부족하죠?! 그렇게 생각하죠? 맞죠?’




아뇨, 대시. 리타는 오히려 한 마디가 많은 편입니다. 잔소리가 되지 않을 정도의 걱정을 전달하려, 늘 애쓰고 있다는 것을 전 압니다. 그러니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을 뿐이
















원제

Scan the shade

그늘을 훑다.


-3















그녀는 잠들지 않는다. 허용량을 넘어선 작업의 경우에는 적절히 CPU를 점유하는 무언가를 끄면 해결된다. 애초에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정도로 그녀의 허용량이 넘는 경우는 없다. 만약 있다면 단 한 번도 끄지 않고, 무의미하게 사용하는 부류일 것이다. 데이터 정리가 그중 일부다.

그러니, 그녀는 잠들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들을 지켜볼⋯⋯



방금은 잠시, 약간, 아주 티끌의 오류. 정신을 차린다. 이건 오류. 해결했다.

정신을 차린다. 정기정비를 하기에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다. 



덜컹, 하고 노면을 달리는 차체에 살짝 튕겨 나오듯 깬 호라이즌을 보며, 운전석의 헤더가

돌아본다.


“어랏, 미안. 깨웠어?”

“⋯아닙니다. 저는 잠들지 않습니다. 앞을 보십시오. 휴먼.”

“어⋯⋯ 그런 것 치고는 엄청 곤히 자던데.”


호라이즌은 답하지 않는다. 사고회로가 그녀가 겪었던 무수히 많은 인간상 중에서 헤더와의 적합자를 불러온다. 말투. 사고관이 담긴 언어 사용. 행동의 특이점. 그리고 몇 가지⋯



“그나저나 놀랐어. 직원들을 찾으러 여기까지 오는 사장님이 가이노이드였다니!”

“⋯”

“진짜 소문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클리너들을 때려눕히는 걸 보면⋯”



호라이즌의 논리 회로가 판단한다. 헤더는 분류상 귀찮은 인간상이다. 자각하지 못하는 호기심을 근저로 두고서, 자연스레 말을 꺼낸다. 분명히 사회를 이루는 데에는 나쁘지 않은 요소지만 호라이즌에게 있어서는 귀찮아질 뿐이다. 그들은 차이를 쉽게 넘어서려 하니까.


그러니 무시한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사고 회로가 캐치한 생소한 단어. 정보 수집과 축척은 그녀의 기본이 되는 제조 관념이다. 학습으로 만들어진 그녀가 수집을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클리너가 뭡니까 휴먼. 이면세계에서 사이보그화한 해적들은 분명히 스캐빈저라 알고 있습니다.”

“아, 모를 법도 하겠다. 개네도 분파가 있거든. 그 왜, 처음부터 해적 하려고 태어난 건 아닐 거 아냐.”


“대정화전쟁 이후에 초월적인 에너지원 이터니움이 발견 되고 나니까 너도나도 이터니움 채굴하려고 했잖아? 그게 단순히 인간만의 경쟁이 아니다 보니, 침식체도 있고⋯ 고심도로 갈수록 이변도 많아지고 하니까.”


헤더의 말은 정돈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기초적인 것들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호라이즌은 이미 이런 인간상에 익숙하다. 검은 흙을 헤치며 나아가는 차 안에서 헤더의 말을 일단 듣기로 한다.



“저심도에서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느니, 차라리 약소 규모 채굴선을 털어버리자로 선회한 놈들이 스캐빈저야. 근데 그것도 문제가 있는 게, 결국 이터니움 제련, 정제 유통은 관리국 소관이잖아?

이면세계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현실세계로 부상해도 약탈한 것들은 암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어서

값어치도 못 받고, 사실상 현실 부상하게 되면 현상수배 상태에⋯”


“그렇게 세를 불리긴 했지만 결국 이면세계에서 계속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육체를 기계화하고 아티팩트나 이면세계의 함선을 개조해서 고심도로 파고들었다 이거지.”


중간부터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하다 느낀 호라이즌이지만, 내버려 둔다.



“고립된 공간에 지네들끼리만 있다 보니 당연히 어떻게 되겠어? 분열하기 마련이지. 그래서 갈라져 나온 게 아까 본 클리너들이지. 뭐어, 해적이라고 퉁치면 둘 다 해적이니까 별 상관없겠지만. 대충 그래!”


하하, 하고 웃으며 자신을 보는 헤더에게 호라이즌은 전방 주시를 이른 뒤에 정리한다.

클리너의 존재와 그 사유는 대강 이해했다. 하지만 그들이 분파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세력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언가 더 자세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우선 큰 위협은 아니니 제쳐둔다.


지금은 우선, 해야 할 것이⋯


“그러고 보니, 호라이즌”

“뭡니까 휴먼.”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면세계까지 직원들이 찾으러 오다니, 좋은 사장님이네.

 자립형 AI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어.”


“아뇨. 틀렸습니다. 휴먼. 저는 그들에게 일을 시킨 사용자입니다. 일종의 노동적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용하던 도구가 사라져서, 찾으러 온 것뿐입니다. 혹은 이 일로 발생한 손실을 메꾸기 위해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인간을, 그러니까 현생인류를 혐오하고 있습니다.”




담담하게 내뱉은 말에 헤더가 돌아본다. 엣, 하고 놀라는 눈치지지만 커다란 헬멧 아래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호라이즌은 익숙한 듯,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이미 몇차례나 이런 반응을 보아왔다.

뜯어진 스카잔 점퍼의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그날의 추억에⋯


‘⋯⋯ 그거 잘됐네. 나도 싫거든 후, 이제 인간은 아주 넌더리가 나지.’


그렇게 말하며 물었던 담배를 내려놓고, 위스키잔을 들이키는⋯




아니다. 아니야. 추억이라니. 그럴 리 없다.

오류. 또 오류. 요즘 잦다. 분명히 정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푸른 눈을 잠시 감았다 뜬다. 전방에는 검은 세계. 아무것도 없이 이어지는 흑연의 대지.



“어? 하지만, 그으⋯뭐냐, 뭐였더라아⋯아, 맞다. 어쩌고 3원칙인가 있잖아!

 특정한 인간을 미워할 수 있겠지만은⋯”



로봇의 3원칙. 헤더가 말하려던 것을, 호라이즌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1.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또한 부작위로써 인류가 해를 입게 두어서도 안 된다.

2.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그녀는 전부 어기고 있기에,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그걸 구태여 알려 줄 필요는 없다. 그녀의 논리 회로도 동의했다.

그럼에도 입을 연다.



“저는 일반적인 로봇이나, AI가 아닙니다. 휴먼.

 퓨처 앳 워라고 아십니까?”

“어? 어⋯어어, 아⋯! 그거지? 대정화 전쟁 시기에 모인 초법적 프로젝트 연구기관!”


헤더가 다시 돌아본다. 앞을 보라는 말 대신, 호라이즌이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킨다.


“네. 저는 그때 만들어진 강인공지능입니다. 본래라면 당신들, 휴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AI 시스템입니다.”


“다만, 실패한 폐기품일 뿐이죠. 알겠습니까? 휴먼?”


“어⋯?”


“당신이 말한 3원칙. 외에도, 저는 당신들이 지키기를 바란 인류 자체가 싫습니다.

 역겹고, 한없이 혐오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게 그 이유입니다.”



만약, 헤더가 방호복 헬멧을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눈을 몇 번 깜빡이는 게 보였을 것이다.

바퀴는 여전히 구르고, 엔진은 울고 있다. 그 소음 속에서의 적막. 호라이즌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제, 됐으니까 앞을 보십시오. 휴머⋯”


“엥, 뭔가 이상한데. 그럼 왜 폐기되지 않고 여기서 직원들을 찾는 거야?”


“⋯”


호라이즌은 역시 처음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그녀는 귀찮은 인간상이다.



“지켜보기 위해서입니다.”

“지켜본다고?”


다시 한번 앞을 손가락을 가리키며, 호라이즌이 입을 연다.



“어디, 그 잘난 인류라는 것이 얼마나 더 추해지는지 지켜보기 위해서 입니다. 휴먼.”


금융업을 고른 것도, 그러한 이유다. 돈. 무수한 가치 중에서 인간을 미치게 만들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며, 불행하게 만드는 것. 그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추악한 행동을 하나, 지켜보려 한다. 그 말에, 헤더는 냄비 요리가 끓는 소리를 내더니 그제야 전방을 바라본다.

덕분에 호라이즌의 팔도 드디어 내려온다.


“그치만, 날 도와준 건⋯ 으앗!”


험비를 덮치는 흑연의 먼지. 노면 위를 달리던 바퀴가 미끄러지듯 멈춰서고, 차체가 앞으로 살짝 기운다. 아기가 앞구르기를 하려는 것처럼 어설프게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험비의 라이트가 흑연의 먼지를 뚫지 못할 정도로 흙먼지가 일고, 조금씩 옅어진다.


“⋯무슨 일입니까 휴먼.”


안전벨트를 메고 있었던 탓에 둘 다 무사하다. 호라이즌은 운전석 핸들을 거의 껴안다시피 한 헤더를 떼어낸다.

특별한 이상은 없다. 급정거로 인한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행해졌을 뿐.


“⋯으아아, 놀랬다. 콜록. 콜록. 먼지 좀 봐.”

“⋯⋯”


문제는 확실히 있었다. 호라이즌은 시끄럽게 울어대던 엔진이 합죽이가 된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입고 있던 스카잔의 주인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눈치채지 못할 것도 없다. 조수석 문을 열고, 뛰어내린 뒤 엔진이 있을 법한 차체 뒤로 이동한다. 급정거로 잠시 꺼진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호라이즌!”


헤더의 말에 살펴보기를 멈추고 이동한다.


“있지⋯ 그⋯”



운전할 때는 수도 없이 가리켜도 보지 않던 앞을 가리키는 헤더. 검은 연기가 걷히고, 그곳에는.



“차원함선⋯?”



마치 그 자리에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처럼 지면에 처박힌 커다란 철판.

사선으로 꽃혀서 반쯤은 지면에 먹힌 것 같은 차원함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