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우선 이 쪽지를 읽고 있다면 넌 이미 이 패밀리 레스토랑의 새 요리사가 되었다는 뜻이겠지. 지금쯤 난 교통사고로 해고된 뒤, 병원에서 물리 치료를 받고 있을 거야.


 일단 이곳은 평범한 레스토랑이 아니야. 사장이 밀수라도 하는지 생물학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기묘한 식재료들을 재료로 쓰더라고.


 이 쪽지는 인수인계 차원에서 남긴 거야. 잘 읽고 기억해둬라.


1.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까지야. 사장이 좀 깐깐해서 지각하면 바로 감봉이라는 것 잊지 마.


2. 이 레스토랑의 메인 메뉴는


레드 파스타

화이트 파스타

커스텀 폭찹

올드본 스테이크

브라크 피시 스튜


로 구성되어 있어.


 사이드 메뉴는


리틀 마카로니 파스타

베리 믹스 샐러드

프라이 세트


로 구성되어 있지.


 그리고 칵테일이나 에이드 같은 주류나 음료도 있는데 음료나 주류는 다른 종업원이 담당하니까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조리 매뉴얼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숙지해. 사장에게 갈굼당하고 싶지 않으면.


3. 레드/화이트 파스타의 경우 네가 평소에 파스타 요리해먹었던 대로 하면 돼. 면을 삶아서 체에 담아 물을 뺀 뒤, 레드/화이트 소스를 한 국자 듬뿍 퍼서 부으면 돼.


 베이컨이 들어있는 토마토 소스가 레드 소스고, 작은 새우와 조갯살이 들어있는 크림 소스가 화이트 소스니까 헷갈리지 마.


 그리고 혹시나 당부하는 건데 스파게티 면발이 너무 길다고 반으로 뚝 부러트려서 넣는 건 생각하지도 마라. 만약 사장이 그걸 알게 된다면 넌 바로 해고될 거야.


 참고로 가끔씩 파스타 소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항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냥 한 입만 맛보라고 해. 어떻게든 한 입 맛보게 된다면 순식간에 한 그릇을 다 비울 거야. 운이 좋으면 한 그릇 더 주문할지도 모르지.


 괜찮아. 그건 상해서 그런 냄새가 나는 게 아니라 식재료 그 자체의 독특한 문제거든. 대부분의 사람은 맡을 수 없지만 세상에 별종들이 워낙 많은지라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 크게 걱정하지 마.


4. 커스텀 폭찹의 경우 폭찹 세 조각을 꺼내서 잘 구운 뒤(구울 때 뒤집개로 살짝 누르는 거 잊지 마라), 접시에 담고 손님이 주문했던 대로 소스를 뿌려서 주면 돼.


 소스는 애플, 스위트 갈릭, 칠리, 그린, 그레이비, 퍼츠, 베리 믹스 이렇게 총 7가지가 있는데 가끔 소스 뿌려주지 말라고 하는 주문이 들어올 때도 있어. 그러면 그냥 폭찹에 소금과 후추 살짝 뿌리기만 하면 돼.


5. 스테이크는 손님이 주문한 대로 잘 구운 뒤(마찬가지로 구울 때 뒤집개로 살짝 눌러라), 접시에 담고 메시 포테이토와 파프리카 샐러드를 곁들여서 내면 돼.


 다만, 스테이크가 살아 움직인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건 네가 큰 실수했다는 거야. 평범한 손님에게 대접해서는 안 될 귀중한 식재료를 한낱 스테이크로 구워서 대접해버린 거라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넌 해고 정도가 아니라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당'할 거다.


 그러니까 살아서 꿈틀대는 고기는 웬만하면 손이 닿기 힘든 곳에 따로 보관해. 내가 위에서 말했던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면.


6. 가끔 러시아인 노파가 와서 꿈틀대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


 그럴 때에는 2층으로 모신 뒤, 살아서 꿈틀대는 고기를 요리하면 돼. 이때 절대 불이나 끓는 물에 닿게 해서는 안 돼.


 끓이든, 삶든, 데치든 일단 한 번 불에 닿으면 맛이 확 떨어지거든. 그냥 잘 다져서 꿈틀대는 육회로 만든 뒤, 타타르 소스를 뿌리면 돼.


 노파가 만족한다면 널 직접 불러서 값비싼 금화를 하나 줄 거야.


 그 금화는 웬만하면 함부로 팔지 마라. 그 노파 증오하는 사람 한둘이 아니다.


7. 가끔 금요일 저녁에 가면 쓴 일가족이 오는 경우가 있어. 마찬가지로 2층으로 모시고, 주문하는 대로 다 요리해라.


 그리고 서빙은 네가 직접 해야 하는데 크게 걱정하지 마. 그들은 인내심이 많아. 조심해서 서빙하라고.


 가끔 사슴 가면을 쓴 남자가 식사를 끝내고 널 불러서 세상의 비밀이 궁금하냐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거절해라. 한 가족이 되고 싶지 않다면.


8.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 납품되는 식재료는 다른 종업원이 알아서 냉장고나 냉동고에 정리할 테니까 신경 꺼도 좋아.


 다만 가끔 식재료 납품하는 토마스라는 남자가 너한테 체다 치즈 듬뿍 뿌린 레드 파스타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는데 웬만하면 고민하지 말고 그냥 부탁을 들어줘. 서비스로 잘 구워진 폭찹 한 조각 베리 소스 뿌려서 주면 더 좋고.


 거절하면 어떻게 되냐고? 그 남자 얼굴만 슬쩍 봐도 그럴 생각은 들지 않을 거다. 어떤 의미로든.


9. 참고로 2층은 잘 안 쓴다. 웬만하면 너도 2층으로 올라가지 마. 위에서 말했던 경우를 제외하면.


 가끔 문이 닫힌 2층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실종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람들 반응도 시큰둥하고 경찰이 수사하려는 경우가 전혀 없더라?


 뭐,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아무튼 2층에 뭔가 있는 건 확실하니까 웬만하면 발 들이지 마라.


10. 마지막으로 이건 진짜 중요한 건데 사장이 하는 일에 더 흥미 가지지 말고 네게 주어진 일만 해라.


 내 이전에 이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요리사도 이거 제보하겠다고 증거를 모으고 식재료를 조금씩 몰래 훔쳐 대학에 연구 샘플로 몰래 기증하다가 덜미를 잡혀서 실종'당'했어.


 아무튼 부디 사장 눈 밖에 나지 않고, 여기서 오랫동안 잘 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