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와 같은 상황이 제목에 대한 대답을 아주 잘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함

여자는 사지멀쩡한 일반인으로, 원하는 행동을 할 자유도 있고 팔다리를 움직여 그 행동을 할 능력도 있음

분명 구속되지 않았다면 팔을 뻗어 문을 열고, 다리를 움직여 곧장 방을 빠져나갔을 것임

그러나 여자는 온몸이 구속된 상태이고 행동할 자유와 능력을 모두 잃음

여자는 손을 사용해 문고리를 잡을 수 없고, 다리가 묶였으니 1m만 움직이려 해도 온 몸을 비틀어야 함

만약 팔과 다리를 연결한 hogtie 자세로 묶인다면? 이제 허리가 뒤로 꺾이는 고통에 제대로 몸을 가다듬을 수도 없음

만약 볼 개그를 물린다면? 도움을 요청하거나 범인과 협상할 기회를 잃음

만약 안대를 씌운다면? 이제는 행동을 논하기 이전에 스스로 어떤 상황에 빠졌는지조차 알 수 없음


구속된 사람은 본래 가지고 있던 자유, 능력, 감각, 존엄성 등 가지고 있던 위상들을 점차 포기당하고 종막엔 그저 신음 소리를 내는 통나무와 다를 바 없이 추락함

이게 바로 구속물의 묘미이고, 그렇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꼴리지 않는 구속은 없음


엄지 수갑은 이러한 구속을 개념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물건이라고 생각함

길이는 아무리 길어도 15cm를 넘지 않고, 무게도 일반인 몸무게의 5%가 채 되지 않음

온몸에 두르는 밧줄이나 하네스와 달리 구속하는 부위도 고작 손가락 단 2개뿐

그러나 그 작은 것에 가장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는 손이 사실상 봉인되고, 심지어 등 뒤에서 채웠다면 온 몸의 자세가 손가락 2개 때문에 뒤틀리기 시작함


소프트한 것보다 하드한 게 좋다면 갖은 구속을 활용한 완전구속도 좋음

구속은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대상으로부터 행동할 여력을 빼앗고, 그 사람을 가장 열등한 꼴로 전락시킴

온몸이 구속되어 어떠한 움직임도 할 수 없을 때,

안대 / 귀마개 / 재갈에 감각을 빼앗기고 심지어 전신 라텍스를 입어 촉각마저 잃었을 때,

무엇도 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채로 딜도와 바이브레이터로 성적 쾌락만을 강요받을 때

여자는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거세당하고, 의미없이 저항하거나 비참한 몰골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남지 않음

물론 그것을 관찰하는 우리 입장에선 너무나 꼴리는 일임


가뭄에 콩 나듯 정말 드물게 셀프 본디지를 다루는 동인지나 영상을 발견할 때가 있음

셀프 본디지를 하는 당사자는 당연히 구속당할 이유가 전혀 없음

그러나 본인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묶고, 교성을 낼 뿐인 고깃덩이로 떨어짐

공공연히 밝히기 어려운 취향인만큼 타인에게는 비밀로 해버리면서, 자연스럽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권리도 포기해버림

그렇게 자기자신에 대한 후회,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저항, 그 과정에서 기뻐하는 스스로에 대한 모순 등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얼마나 인물이 어리석고 크게 추락했는지 조명됨

아주 좋아하는 상황이지만, 다뤄주는 작가가 적은 게 그저 아쉬울 따름임


위의 암컷 용 만화 때문에 최근 활발해진 강한 여자가 구속되는 장르도 셀프 본디지와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함

딱히 구속될 필요도 없고, 구속을 충분히 피할 수도 있는데 결국 구속된다는 점이 그러함

그리나 이 장르에서는 구속될 의도가 없지만 자신의 실수나 변덕의해 강제로 묶였기 때문에, 셀프 본디지의 포인트 중 자신에 대한 후회가 말도 안 되게 극대화됨

그리고 상대방과의 능력 차이가 심한만큼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생기는 거대한 정복감이 새로이 추가됨

마지막으로 강한 힘을 가질수록 높은 위치를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속으로 인해 추락하는 위상은 다른 등장인물과 비교할 수 없음

이런 고유한 특징들이 합쳐져 강한 여자가 구속되는 장르를 불타게끔 만드는 것 같음


원래는 할 수 있었던 것을 묶여 있다는 이유로 할 수 없을 때,

예전에는 높은 지위를 가졌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암퇘지에 불과할 때,

손가락만 움직여도 산을 움직이지만 그 손가락마저 밧줄에 휩싸여 있을 때

구속은 가장 꼴린 페티시가 되고, 특유의 매력을 양껏 드러내기 시작함

이것을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동인지의 일부분을 올리며 여기서 마치겠음



그리고 글 쓰는 김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챈에 고어 떡밥 돌린 첫 글에 내가 고어에 동의하는 댓글 썼었음

여긴 구속챈인만큼 구속물을 주제삼아야 하는 걸 잊었던 내 잘못이고, 몇 없는 구속물 관련 챈 터뜨릴 뻔한 거 일조해서 미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