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천예 저수지 어린이 집단 실종사건









처음에는 지렁이였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현장에 투입되었던 브라보 팀 요원의 보고서에서 발췌






***






“비밀기지? 진짜로?”

“그렇다니까!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저수지 안쪽에 공간? 방? 같은 게 하나 있는데, 거기 안에 공간이 엄청 넓었다니까? 엄청나게 큰 건물이 지하에 있었다고!”






천예읍.



이름을 아는 사람조차 별로 없는 이 시골 마을에서는 놀 거리라는 게 거의 없었다.



워낙 작고 노후되었으며, 학생도 거의 없었기에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과 집에 있는 수저며 젓가락의 개수까지 거의 다 알았다.



그 날도 일찌감치 수업을 마치고 하교한 뒤.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들을 피해 놀 거리를 찾던 와중이었건만.



친하던 친구 한 명이 문득 이렇게 말한 것이다.



천예 저수지 안에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고.



저번에 물이 빠졌을 때 슬쩍 보여서 들어가봤는데, 지하로 이어지는 엄청나게 넓은 건물이 있었다고 했다.



저수지 안에 있는 비밀스러운 건물이라니.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머리로도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였기에, 처음에는 당연히 또 이 녀석이 장난을 치는구나 하고 웃어 넘겼지만.






“아니, 진짜야. 진짜 진짜라니까? 내기할래?”

“내기? 그 정도야?”

“진짜 내가 다 걸 수 있어. 우리 집 삼순이까지 걸 수 있다니까?”

“야 됐어! 니네 집 개 가져봤자 뭐 하냐. 아무튼…… 그럼 한 번 가볼까? 어차피 할 것도 없었잖아, 우리.”

“응! 심심했는데 잘 된 거지. 그럼 내가 다른 애들 모아올게. 조금만 기다려 봐!”






어딘가 진지해 보일뿐더러, 내기로 자신이 제일 아끼던 강아지인 삼순이까지 건다는 녀석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진실성이라는 것이 조금 느껴져버렸다.



마을은 좁았고 아이들은 서로를 잘 알았다.



하교하고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을 모아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포함하여 5명의 아이들이 천예 저수지 앞에 모였다.



정말로 비밀 공간이 있다면 두근두근해서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무서울 것 같다는 여자아이도 있었으며, 어차피 거짓말일거 다 아는데 대충 하고 집에 가자는 사내 녀석도 있었다.






“해 지기 전에 후딱 보고 가자. 저녁 시간 늦으면 엄마한테 혼난단 말이야.”

“알겠어, 알겠어. 그러면…… 이리 와 볼래?”





처음 비밀 기지를 발견했다는 녀석은 신비한 보물을 찾으러 가는 탐험대의 대장이라도 된 듯,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저수지 깊은 곳까지 착착 나아가기 시작했다.



평소 조금 소심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던 친구였다만. 자신이 선봉에 서서, 친구들을 이끌고 비밀스러운 공간을 탐험한다는 호승심은 어린 아이에게 충분한 용기를 주었기에.



어른들은 천예 저수지에 가면 아이들에게 혼을 내었다.



해가 지면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물이 조금은 깊었기에 혹여 빠지기라도 하면 시체도 찾을 수 없다는. 그런 굉장히 상식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농사일을 하느라 바빴던 어른들은 언제나 그랬듯 아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여기야!”

“뭐, 뭐야. 진짜……”

“저수지에 이런 데가 있었어? 진짜로 공간이 있네?”

“터널 아니야?”

“야! 이 멍청아. 터널은 동그랗게 되어 있고, 또 엄청 작잖아. 그런데 여기는 네모낳고, 또 안 작잖아. 그러니까 터널이 아닌 거지.”






아이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정말로 수풀과 쓰레기 사이에 묻힌 공간이 나타났다.



수위가 낮아진 저수지의 물들이 계속해서 졸졸 흘러 들어가고 있던, 군데군데 빨간색 페인트가 발라져 있던 네모난 지하실 문.



마치 이리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딱히 이렇다 할 잠금장치도 없이 살짝 열려있던 문 안쪽은 어두웠고, 또한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들어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기까지 했다.






“들어가 보자!”

“안에 넓으려나?”

“분명 넓겠지!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 비밀기지로 쓰는거야. 어때?”

“그건…… 나쁘지 않은데. 근데 니네는 안 무섭냐?”

“뭐? 무섭다고? 으하하, 겁쟁이래요. 겁쟁이래요.”

“우씨! 겁쟁이 아니거든? 나는 안 무서운데, 니들이 무서울까봐, 그냥 그래서 물어본 거거든?”

“그럼 너희 다 안 무서운 거지? 그냥 들어가 본다?”





아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잠시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모두가 어딘지 무섭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빼버리면 앞으로 최소한 몇 달 간은 계속해서 겁쟁이라고 놀림을 받아야 했으니,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거다.



선봉에 섰던 아이를 필두로 하여 천천히 지하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그저 어둡기만 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

“불이 켜졌어!”






막상 들어가서 조금 걸어보니, 파앗- 하고.



벽면에 달려있는지도 몰랐던 불이 천천히 켜지며, 이내 지하 공간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어두움이라는 공포가 사라지자 아이들은 이제 별로 무섭지 않았다.



버려졌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 공간에 아직까지 전기가 공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긴 했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



그리하여 훤히 볼 수 있게 된 지하 공간의 안쪽은 생각보다 특이했다.






“다 빨간 색이네.”

“으음…… 신기하다.”






벽면에는 전부 다 빨간색 페인트가 발라져 있었다.



입구 부분에는 그저 누군가가 군데군데 빨간색 페인트를 발라놓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들어와 보니 온 벽면이 전부 새빨간 유광 페인트로 반짝거리고 있었던 거다.



또한 곳곳에 철제 문이 있었다.



살면서 보았던 그 어떤 문보다 두꺼운 철문.



마치 이 안쪽에 있던 어떠한 것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놓고 가둬놓으려고 설치해진 듯한 철 문이, 하나 두 개도 아니고 계속해서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여러 가지 방들도 있었다.



똑같은 빨간색 페인트와, 똑같이 두꺼운 철문으로 나눠진 방들.



철문을 열고 그 안쪽을 들여다보아도 똑같이 새빨간 복도가 계속해서 이어질 뿐이었으니.






“여기…… 진짜 엄청 넓구나.”

“우리 마을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말이 되나?”

“얘들아. 이건 어른들 불러와야 하는 거 아닐까? 응?”

“야! 미쳤냐? 천예 저수지 들어온거 들키면 또 회초리 맞으면서 엄청 혼날텐데. 우쒸, 너 말하기만 해봐!”

“아, 알았어. 알았어. 그럼…… 더 들어가 볼 거야?”

“흐음. 어디까지 이어져 있나 궁금하긴 한데.”





아이들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상상하지도 못했을 정도로 넓고 광활했던, 저수지 안쪽 지하공간의 넓이에 조금은 압도당해 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 자리에 가만히 멈춰서는 여러 탁상공론이 오가던 순간.






“으악!”

“아 깜짝이야! 왜 그러는데?”

“아이 씨. 저기 봐봐. 지렁이들이 엄청 많잖아.”

“지렁이? 야, 저수지에 널린게 지렁이인데.”

“그 정도가 아니라니까? 저기, 저 문 뒤에!”

“응? ……아이씨!”






밋밋하고 눈 따가운 빨간색 벽들이 무한히 이어지던 와중,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다.



벽에 달려있던 철문.



하지만 그 철문은 어딘가 달랐다.



반쯤 열려있던 철문 아래로 무언가, 붉은색 밀가루 반죽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반죽은 조금씩 꾸물대는가 싶더니. 이내 잘게 나눠져 꿈틀거리며 움직이기까지 했다.



그랬다. 지렁이였다.



수십, 수백마리의 지렁이들이 한데 모이고 뭉쳐서. 서로의 몸과 몸을 비비적거리며 꿈틀거리고 있었던 거다.



시골 마을에 살면서 벌레와 곤충 따위에는 익숙해진 아이들이었지만, 이렇게나 많은 지렁이들이. 그것도 이런 의문의 지하실에 있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무서웠다. 미지에서 오는 공포였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하기도 했다. 호승심.



심지어 내 뒤에는 든든한 친구들까지 여럿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런 말도 없이, 아이들은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그 철문으로 다가가 안쪽을 열어보았다.






끼이익-






“와아.”





새빨간 복도가 계속해서 반복될 뿐이었던 다른 문 안쪽과는 역시 달랐다.



빨간 지렁이들이 곳곳에서 꾸물거리고 있었고, 더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 또한 존재했으니.



가장 신기했던 것은 역시나 다른 사람의 ‘물건’이 있었다는 거다.



잉크가 다 번져버려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종이뭉치라던가.



빵, 삼각김밥 따위의 다 먹은 쓰레기.



낡은 운동화, 흙이 잔뜩 묻은 옷가지. 그리고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수 많은 쓰레기들이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지렁이들이 있었다.



아주 많은, 마치 온 저수지의 지렁이들이 전부 이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라 느껴질 정도로 수 많은 지렁이들이 곳곳에서 꾸물대고 있었다.



죽은 녀석들도 많았지만 시체 위에서 또한 꾸물대는 지렁이가 있었다.



바닥에 놓여진 작은 박스 하나를 뒤집어 털어보니 역시나 지렁이 두엇마리가 툭 떨어져 꾸물거렸다.






“으으…… 이게 뭐야.”

“안쪽으로 내려가 볼까? 진짜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아 싫어! 진짜 이건 아닌 것 같아. 그냥 돌아가자. 응?”

“뭐야. 너 겁 먹었냐? 겁쟁이야, 겁쟁이?”

“그래. 나 겁쟁이다. 겁쟁이 맞으니까 그냥 돌아가자. 진짜 느낌 이상하단 말이야. 아까부터 뭔가 어지럽기도 하고. 아무튼 싫어!”

“아, 알았어. 뭘 그렇게 소리까지 빽빽 지르고 그러냐. 알았어. 돌아가자.”

“으윽, 아이 씨 깜짝이야!”





아이 한 명이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모두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라보니, 글쎄 자신의 다리 사이에서 뭐가 꿈틀거리길래 손을 넣어 꺼내봤더니, 지렁이가 나왔다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지렁이가 네가 모르는 사이에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이겠지.



문득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이상하다 느끼고는 있었다.






“어지럽긴 해. 나도 아까부터.”

“뭔가…… 졸리지는 않아?”

“오늘 체육 시간에 축구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렇겠지. 하암, 나도 그렇긴 한데.”

“몸에 힘 빠지는 기분이야. 축축 쳐진다고. 빨리 돌아가자.”

“알았어, 알았어. 돌아가야지.”





이제 돌아가자.



탐험은 재미있었고, 어른들에게 혼나기 전에 몰래 빠져나가서.



저녁 시간에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자야 했으니까.



아이들은 돌아가기 위해 지나온 길을 도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타박, 타박.






지하 공간 곳곳에 있던 지렁이들은 한데 모여 꾸물거렸다.






내 발소리는 저벅 저벅.



지렁이들은 꾸물 꾸물.



곳곳에서 떨어지고 있던 물방울들은 철벅 철벅.






“아, 졸려.”

“집 가서 바로 자야겠다. 그치?”

“으…… 뭔가 몸이 미끌거리는 것 같아. 난 가서 샤워하고 잘래.”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것을 무엇이라 생각하면 좋을지 그 누구도 수식하거나 형용할 수 없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마치 온 몸의 살이 가죽과 분리되는 것 같은.



아니, 애초에 가죽과 살이 붙어있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크게 소리내어 ‘이상하다’라고 말하지 못했던 거다.






손가락의 감각이 점점 옅여진다.



발가락의 감각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만 같다.






툭,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흙이 잔뜩 묻어있던 내 신발이 떨어져 있었다.



언제 벗겨졌더라.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이었는데. 막 뛰어다니면서 축구를 할 때도 벗겨지지 않았던 신발이었는데.






“아, 내 신발.”





저걸 주워서 가야 했다. 생일 때 받은 거라서, 혹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크게 혼이 날 테니까.






“얘들아. 잠깐 신발만 주워서…… 아.”





문득 아이들은 말이 없어진 채였다.



나 또한 묵묵히 앞만 보면서 걸었다.



쨍한 유광 페인트가 빼곡이 발라진 지하실의 벽면을. 간혈적으로 꿈뻑거리던 전등의 불빛을.



이유 모르게 곳곳에 있던 커다랗고 두껍던 철제 문을.



얼마만일까.



친구들의 얼굴을 무심코 바라보았던 순간 깨달았다.






“나도 주워서 가야 되는데.”






난 신발만 놓고 온 게 아니었구나.








지렁이들이다.



지렁이들이 꾸물거렸다.



수십, 수백, 수천, 수만마리의 지렁이들이.



새빨간 밀가루 반죽처럼 한데 뭉쳐서, 서로의 몸과 몸을 맞대면서 계속해서 꾸물거리고 있었다.



지렁이다. 그래 지렁이들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지하실 안에 얼마나 많은 지렁이들이 있는지.



왜 이 지하실 깊숙한 곳, 저 방 안에 수 많은 지렁이들이 꾸물거리고 있었던 것인지를.



꾸물거린다. 전부, 모든 게 꾸물거리고 있었다.






“내 몸……”





친구들의 가죽이 점점 벗겨지고 있었다.



힘 없이 축 늘어지다가, 결국.



바닥에 턱 하고 떨어졌다.



벗겨진 가죽이 꾸물거렸다.



그 안에도 지렁이들이 있었다.






***






사건 발생 인지 이후, 천예읍은 봉쇄되었다.




요원들의 투입과 마을의 전수조사가 실시되었으며.



해당 저수지의 지하 공간 근처에는 임시 폐쇄병동과 C급 연구실이 설치되었다.






이하 주요 실험 기록에서 발췌.






[Test 34#]



해당 지하 공간에서 발견한 아이들의 가죽을 해당 생명체의 앞에 가져다 두었다.



혼란스러워 하던 생명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가죽을 발견했고, 이내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 아아. 음마아.



마아아아아아아.



엄마아아아.






꾸물거리면서 지렁이들의 반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놀라울 정도로 완벽히 분리된 가죽 안으로 수많은 지렁이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눈에도, 코에도, 손가락에도,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가죽을 최대한 채우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머리가죽이 찢어지고, 코 사이사이로 지렁이들이 뭉텅이로 튀어나와 꾸물거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의 집착은 대단했다.



어떻게든 가죽 안에 대부분의 지렁이들을 채워 넣은 뒤, 손가락을 움직여보았다.



기괴하게 목이 꺾인 채. 가죽을 채운 지렁이들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아슬아슬하게 일어나나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앞아 털썩 넘어졌다.






파사삿— 하고 가죽을 채운 지렁이들이 충격에 흩어진다.






몇몇은 몸이 터졌다.



몇몇은 힘겹게 꿈틀거린다.






최소한 자신의 몸가죽을 알아보고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지각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실험 종료]















***











낲갤에도 올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