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용사, 세상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여신님의 파편을 내려받아 마왕을 베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온 자.


모두가 날 응원하고 믿어왔다.


그 마음이 때로는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워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용사니 여신님의 힘을 받았다느니… 결국 나도 평범한 인간이니까.


그래도 옆에서 지켜주며 이 무거운 짐을 같이 짊어준 동료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도달했다.


딱 한 발짝, 그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주저앉은 내가 참 한심하다.


그럼에도 세상엔 평화가 찾아왔다.


왜? 어째서?


우리 뒤를 항상 쫓아다니던 한 꼬마 아이.


마르고 앙상한 몸에 다가가 말을 걸면 겁을 먹고 달아나던 영문을 모르던 소녀.


아직 10살도 되지 않았을 어린 소녀는 마지막 내가 모든 걸 포기하려던 순간 뛰어들어 온몸으로 마왕의 검격을 받아냈다.


목이 베이고 팔이 떨어져 나가고 야윈 다리가 바닥을 구르고… 고통에 젖은 앳된 비명이 멈추질 않았다.


그럼에도 팔이 떨어지면 발로 발이 없으면 자라난 손으로… 사지가 뜯겨져 나가면 이빨로.


베이고 또 베여도. 


몸이 동강 나고 바닥을 피로 적심에도 내 앞을 막아섰다.


눈과 머리에 검이 꽂혀도, 입과 목에 거대한 주먹이 쑤셔 들어와 턱이 나가고 목이 빨갛게 부음에도… 계속 내 앞을 지켜냈다.


최후의 보루이자 자기 합리화로 도망가게 한 동료가 아닌 이 여행의 마지막엔… 곧 쓰러질 것 같은 소녀가 배시시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왜 이렇게까지… 한 거야?"


고통스러울 거 아니야.


아팠을 거 아니야.


무서웠을 거 아니야.


"왜 이번엔… 도망가지 않았어?"


"…… 사실 무서웠어요."


당연하지. 나도 놈을 마주하자마자 여지껏 겪어본 적 없던 공포가 밀려왔으니까.


"엄청 아팠어요. 울고 싶을 정도로 아팠어요."


그래도 도망가긴 싫었어요.


"용사님이 우리 친구들 묻어주면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던 거 들었어요."


"친구들?"


"네. 1달 전에 우리 고아원 친구들을 묻어줬잖아요. 헤헤."


"……."


기억난다.


잠깐이나마 사명을 내려두고 용사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게 해줬던 순수하디 순수한 아이들의 쉼터.


그렇기에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모든 걸 뒤로 미루고 정신없이 달리고 달려 고아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아이들은 마족의 손에 도륙이 나 죽고 이 아이만 차게 식은 애들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지.


"제가 혼란스러울 때도, 이상한 말을 해도, 이 세상과 날 부정해도… 항상 절 있는 그대로 봐주고 솔직하게 다가와주던 친구들이었어요."


우리 친구들을 위해 묻어주고 우시던 용사님도 그러면… 제 친구인걸요.


친구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절 도와줬으니까 저도… 오빠를 도와준 거예요. 헤헤. 저… 잘했죠?"


마음을 난도질한 괴로움과 아픔을 숨기려는 듯 해맑게 웃으나 눈물을 흘리며 어둡게 가라앉는 소녀의 눈동자.


잘했냐고?


말로 해야겠어? 꼬마야. 넌 잘한 거야.


남들에게 용사라 치켜세워지는 나보다 더 용감하고 대단한 아이야.


말로 답을 하는 대신 아이에게 다가가 그녀의 작고 여린 몸을 껴안았다.


"크흡! 고마워… 고마워……!!"









그리고 난 우리 파티 성녀랑 결혼했다.


라는 엔딩 보기 싫으면 마저 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