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상의 이유로 시골에 집을 얻어 살게 되었다.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던 중 마을의 할머니에게 이곳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얀 소복을 입은, 2m가 훌쩍 넘는 여자 귀신이 나타나 젊은 남자를 홀려 영영 돌아오지 못 할 곳으로 데려간다는 이야기였다.

 

요즘 세상에 무슨 귀신 이야기람?

만에 하나 사실이라 해도, 2m가 넘어가는 거인의 유혹 따위에 넘어갈 사람은 없으리라.

 

당시의 나는 그렇게 코웃음쳤다.

하지만…



큰일이다. 귀신이 좀 많이 예쁘다.



팔척귀신 이야기

 

1일째.

귀신은 나를 따라다니되, 스무 걸음보다 가까이 다가오진 않는다.

키는 생각보다 크진 않았다. 팔척(240cm)이라더니... 190정도 될까?

뭐, 소문이라는 게 원래 과장되고 그러는 거니까.

 

키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귀신의 미모였다.

귀신만 아니었다면 유명한 배우나 모델이었지 않을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강한 햇빛이 비추는 드레스 너머로 언뜻언뜻 비치는 속옷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을 빼앗긴다.

 

이크, 안 되지.

할머니의 경고를 되새기며, 나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2일째.

귀신은 어제와 같이 먼발치서 나를 따라다닌다.

 

길에 풀이 무성해서일까, 옷자락을 들고서 걷는 모습이 유독 많이 보인다.

펄럭이는 드레스 사이로 길게 뻗은 다리가 아슬아슬하게 드러난다.

 

힐끔힐끔 다리를 훔쳐보는 나의 시선은 알 바 아니라는 듯,

귀신은 시종일관의 무표정으로 내 발자국을 밟을 뿐이었다.

 

 

3일째.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풀숲 한가운데에서 풀을 헤치며 걷고 있었다.

귀신 역시 그런 나를 따라 옷자락을 쥔 채 풀숲을 헤치며 걸어온다.

 

풀은 내 허리까지 올라와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고,

어제보다도 우거진 길에 귀신의 치마폭 역시 어제보다 높이 들어올려진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노골적으로 귀신의 다리를 힐끔거렸지만, 

역시나 귀신은 태연한 그대로였다.

 

 

4일째.

갑작스레 쏟아진 소나기에 그늘로 몸을 피했다.

귀신은 비를 피하는 기색도 없이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얇은 천이 비에 젖어 몸매가 드러난다.

지금까지는 최소한의 양심으로 그녀의 몸을 볼 때 곁눈질로 몰래 훔쳐보기만 하였으나,

오늘은 무슨 용기인지 그녀를 정면에서 당당히 뜯어보았다.

 

 

비에 젖은 여자를 관음하는 범죄같은 행위.

평소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 했을 짓을 당당히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요동친다.

그런 내 앞의 그녀는 빗속에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귀신에게도 자아가 있을까?

사실은, 아무 생각도 의식도 없이 프로그래밍된 대로 나를 따라다니기만 하는 로봇같은 존재가 아닐까?

 

마네킹같은 그녀의 태도에 죄책감이 비에 씻겨 내려간다.

그녀를 사물이라 인식하고 나니 죄악감 대신 흥분과 배덕감이 가슴에 들어찬다.

길거리에서 야한 잡지를 주운 꼬맹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비가 그치기까지 한 시간.

나는 빳빳이 발기된 물건을 주머니를 통해 몰래 주물럭거리며 흠뻑 젖은 그녀의 몸을 감상했다.

 

 

7일째.

그녀에 대한 나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대담해졌다.

 

바라보는 시선을 숨기지 않게 된 것은 물론이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불룩한 바지춤을 대놓고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보통 여자 같았으면 진작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을 행동에도 그녀의 태도는 평소와 같았다.

 

무반응.

 

저런 상대라면 그 몸을 마음대로 만져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음흉한 생각에 그녀에게 다가가 본 적도 있지만,

그녀는 그럴 때마다 자석처럼 나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 물러날 뿐이었다.

 

만지는 건 무리지만, 정말 내가 뭘 하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다면...

'그런 짓'을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8일째.

귀신을 데리고 인적 없는 강가로 갔다.

데리고 갔다는 표현은 이상할지도. 그녀가 멋대로 따라올 뿐이니.

 

강을 한 번 가로지르니 그녀의 옷은 소나기 때 이상으로 흠뻑 젖어 몸매가 훤히 비쳐 보였다.

 

꿀꺽-

 

그런 그녀를 앞에 두고 나는...

 

 

부스럭-

 

바지를 내리고 젖은 그녀를 반찬삼아 자위를 시작했다.

이런 짓을 하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앞에서, 그것도 이런 미인 앞에서, 심지어 야외에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조금 선을 넘은 것 아닐까.

슬며시 그녀의 반응을 살폈지만 아니나 다를까, 아무 일도 없는 듯한 멍한 눈빛에 마지막 남은 주저심조차 사라진다.

 

 

뷰륵-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사정에도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옷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뒤따라오는 그녀의 행동이 마치 배웅처럼 느껴졌다.

기분 탓일까?

따라오는 그녀와의 간격이 평소보다 조금 줄어든 듯한 느낌이었다.

 

 

14일째.

그녀를 세워두고 자위를 하는 것은 어느새 내 하루 일과가 되었다.

그 와중에 어떻게든 그녀의 맨살을 보기 위해 갖은 수를 써 봤지만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하다못해 치마 속이라도 볼 순 없을까 하는 생각에 언덕 위에 그녀를 세워두고 바닥에 엎드려도 봤지만 그마저도 실패였다.

아쉬운 대로 슬쩍 드러나는 허벅지를 보며 자위를 마치고 나니, 문득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초딩도 아니고 여자 속옷 하나 보겠다고 며칠째...

 

 

냉정해진 머리에, 마을 할머니에게 들었던 경고와 함께 각종 괴담에 나오는 '귀신의 홀린 남자'들의 말로가 떠올랐다.

남자를 홀려 어딘가로 데려가는 귀신.

덜컥 겁이 난다. 이거 귀신에 홀리는 흐름 아닌가?

 

어차피 만질 수도 없고 먼발치에 서 있을 뿐인 여자다.

잘 만든 마네킹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래. 이런 짓은 오늘로 끝내자.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아무 반응도 없는 귀신 따위, 나도 없는 셈 치고 살면 그만이야.


결심을 다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끼익-


집에 들어가기 직전 문득 귀신이 신경쓰였다.

그녀를 만난 뒤로 이토록 오랫동안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둔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별인사라도 하고픈 기분이었을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뒤를 돌아본 그곳엔...

 

 

―――!!!

 

드레스를 활짝 젖힌 귀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그렇게 보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는 듯한 차가운 무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에,

나는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으로 도망치듯 집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15일째.

그녀는 평소와 같다.

반짝이는 미모도, 바람에 드러나는 다리를 감출 생각도 없는 무방비함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는 이전처럼 그것을 대놓고 훔쳐볼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내 행동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녀는 마네킹이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자신을 훔쳐본 것을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변태 같았겠지.

경멸하고 있을까.

비웃고 있을까.

 

 

질렸다는 듯, 거지에게 던져주는 동냥마냥 자신의 옷을 들추어 보여주던 그녀의 차가운 표정이 머리에 맴돈다.

없는 셈 치고 살자는 그저께의 결심이 무색하게도, 내 머릿속은 온통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16일째.

 

아이고~ 젊은이가 도와주니 일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그랴.

 

마을 어르신들의 밭일을 도와주는 동안 귀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뭐... 귀신이니까. 혼자 있을 때 나오는 게 당연하겠지.

 

그런데... 청년, 내가 저번에 말했던 귀신 이야기. 기억하고 있제?

어떤감? 본 적 있는감?

 

나는 왜 대답을 망설였을까.

또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아뇨. 못 봤습니다.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혹시나 나중에 보더라도 절대로 눈길조차 줘선 안 된다.

만약 마주쳤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귀신이 네가 사는 곳을 알게 하지 말아라.

어르신의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일까? 이 자리를 벗어나 빨리 혼자가 되고 싶은 마음 뿐이다.

 

 

......

 

 

저녁.

 

일이 마무리되고 돌아가는 길.

왜인지 내 발걸음은 집이 아닌 외딴 산길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내 뒤를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걷기만을 몇십 분.

 

다리가 아파온 나는 마침 보인 바위에 걸터앉았다.

 

털썩-

 

으응?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지금껏 언제나 간격을 유지하던 그녀가, 내 행동에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던 그녀가 내 바로 앞 바위에 나를 따라 앉은 것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긴 속눈썹도, 시원하게 찢어진 눈꼬리도, 작게 다문 분홍빛 입술도 선명하게 보인다.

 

왜 갑자기 다가왔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평소와 다른 그녀의 태도에 무방비해진 마음 사이로 쌓아뒀던 응어리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저기...

 

무반응.

 

...지금까지 미안했어.


무반응.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아니, 변명 맞긴 한데...

난 네가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어.


무반응.

 

용서해 달라거나 그런 말은 아니고 그냥... 

마지막으로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싶었어.

그럼...


그래. 이걸로 정말 끝이다.

마지막 남은 미련조차 남김없이 털어내고 마음을 정리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덥썩


어?


그녀의 손이 내 팔을 붙들었고,

 

 

말캉

 

????????????????????


팔에 감긴 장갑의 감촉에 놀랄 틈도 없이 그녀는 내 손을 당겨 자신의 가슴에 갖다대었다.

 

와, 와앗!!


나는 당혹과 부끄러움에 손을 떼려 했지만,

 

 

꽈악-

 

그녀는 더욱 강한 힘으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상 외로 따뜻한 체온.

눈 앞을 채우는 비현실적인 미모.

손에 다 잡히지도 않는 크기의 가슴.

무엇보다도 절대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녀를 만지고 있다는 사실.

 

할머니의 경고는 이성과 함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덥썩!!

 

거칠게 가슴을 움켜쥐는 손길에도 그녀는 어떤 거부감도 표하지 않는다.

 

 

반응 없는 그녀의 몸을 거칠게 바닥에 밀어 넘어뜨리고 정신없이 그 몸을 탐한다.

그녀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공허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이라면, 가능한 것 아닐까?

 

가슴에서 배로, 배에서 골반으로, 골반에서 다리로.

내 손은 그녀의 몸을 훑으며 점점 내려갔고...

 

스륵-


 

그렇게도 갈망하던 드레스 밑의 속살이 내 손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꿀꺽..

 

 

그리고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속옷을 벗겨내려는 순간...

 

 




젊은이!!


 

---!!

 

부름에 놀라 돌아보니, 마을의 할아버지가 등산로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이런 데서 보는구먼. 자네도 등산이 취미였나?

 

아, 그게...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곁눈질로 방금까지 그녀가 누워있던 자리를 보았지만,

그 곳에는 풀 몇 포기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17일째.

 

18일째.

 

19일째.

 

……

 

27일째.

 

……

 

이상하다. 그녀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시골에 온 후로 항상 내 뒤를 따라다니던 그녀였는데. 무슨 일일까?

혹시 이번에야말로 화나게 만들어버린 건…

 

……

 

길을 걸으면서도, 밭일을 도우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그녀의 모습이 머리에 맴돌았다.

하루 종일 멍하니 있는 나를 어르신들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지만 나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녀가 보고 싶다.

 

28일째.

눈을 뜨자마자 마을 밖으로 나섰다.

어르신들의 밭일을 도와주기로 했던 날이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루 종일 혼자서 마을 주변을 맴돌았으나 결국 그녀를 만나지 못 한 채 집에 돌아왔다.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고 잠을 청하고 있을 때…

 

똑… 똑…

 

응?

 

 

!!!

 

그녀였다.

나를 만나러 집까지 찾아온 것이다.

 

기쁜 마음에 침대에서 튀어오르듯 일어났다.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말거라

귀신이 네가 사는 곳을 알게 하지 말거라

 말 어렴이 전에  한 기이 

 

나는창문을열었다

 


그녀가앞에있고아무것도생각할필요없다

그녀가다가온다나도다가간다

















































 

 

 ......



......



......


 

 

29일째.

한 달 전 이사온 청년의 실종으로 마을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경찰까지 동원되어 마을 인근을 샅샅이 뒤졌지만 실종자는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의 그 누구도 이를 이상히 여기지는 않았다.

 

 

……

 

 

마을에는 어떤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하얀 소복을 입은, 2m가 훌쩍 넘는 여자 귀신이 나타나 젊은 남자를 홀려 영영 돌아오지 못 할 곳으로 데려간다는 이야기였다.

 

 









끝.



밀당 잘하는 퐉스련 팔척귀신 이야기 써보고시퍼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