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하니 자넨 아직 동정인 모양이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양아치들에게 돈을 뜯기고 있던 중년 남성을 구하자, 감사의 인사는커녕 동정이라고 되묻는 질문을 받아버렸다. 이런 예절이라고는 없는 아저씨라는 것을 알았다면 구하지 않았을 텐데. 

 

 

“그 정도는 보면 알지.”

 

 

내 당황 섞인 대답에 중년 남성은 피식 웃고는 한 손을 가볍게 펴며 내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내게 충격적인 발언을 건네는 중년 남성.

 

 

“이래 봬도 나도 동정이거든.”

 

 

...알고 싶지 않았다. 양아치들에게 삥이나 뜯기는 아저씨의 성 경험 횟수 따위.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아저씨는 눈을 부릅뜨며 내게 내밀었던 손을 움켜쥐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라고 말하고 싶나?”

 

“예에, 뭐, 실례라고는 생각하지만요.”

 

“실례될 건 없어. 난 올해로 48살이 된다네. 아직은 47살이지만.”

 

“그런데도 도, 동......?”

 

“그래, 동정이다.”

 

 

나는 지금 뭘 듣고 있는 걸까. 야심한 새벽, 잠시 야식을 사러 편의점을 들르는 길에 반쯤 다 까진 대머리 아저씨에게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걸까.

 

자신을 동정이라고 소개한 중년 남성은 움켜쥐었던 손을 펼쳐, 넥타이를 고쳐 매었다. 47살 동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우아한 동작이었다.

 

 

“남자는 말야, 25살이 넘어서도 동정이면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지.”

 

“예?”

 

 

마법? 갑작스러운 판타지 단어에 뇌가 멈춘 기분이었다. 정말로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지? 사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47살 동정 아저씨를 만나는 꿈을.

 

내가 현실 도피를 하기 위해 한숨을 내쉰 순간, 아저씨는 다시 한번 굳은 의지가 돋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넥타이를 고쳐 매는 손등에는 곧게 솟은 핏줄이, 나를 바라보는 그 강렬한 눈매가 아저씨의 말에 신뢰를 더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다만.”

 

“다만...?”

 

“설령 마법사가 됐다 하더라도, 한 번이라도 경험을 해버리면.... 즉 동정을 잃어버리면, 그 시점에서 자네는 마법의 힘을 잃어버린다네. 알겠나? 마법사로 남기 위해서는 사람은 동정을 계속 지켜야만 하는 거다!”

 

 

중년 남성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동정을 지킨다는 행위에 어떠한 신념이 담겨있다는 것만큼은 알 것 같았다. 점점 아저씨의 알 수 없는 말에 빠져들던 순간...

 

 

“잠깐만요, 어째서 제게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야, 자네는 25살 생일까지 한 달 정도 남지 않았나?”

 

“그, 그걸 어떻게...!”

 

“말하지 않았나, 나는 마법사라고. 여러 가지로 ‘보인’다네.”

 

 

마법으로 사람의 신원을 알 수 있는 건가.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이건 마법이라기보다는 불법이지 않은가. 내가 당황해 하는 순간 아저씨는 다시 한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닐세. 운명이지.”

 

“무, 무슨 말씀이에요. 갑자기...”

 

“자네, 마법사가 되지 않겠나?”

 

“그 말은 즉...”

 

 

평생 동정을 지키라는 뜻인가?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 있는 아저씨처럼 40대 중반까지 동정을 지키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마법사라는 것도 아직 긴가민가한데...

 

내가 당황과 불신이 섞인 눈으로 아저씨가 뻗은 손을 바라보고 있자,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내게 뻗었던 손을 도로 회수했다. 갈 곳을 못 찾은 손은 다시금 아저씨의 넥타이로 향했다.

 

 

“내가 너무 성급했군. 자네같이 훌륭한 아이는 오랜만에 보는 거라.”

 

“......”

 

 

칭찬이 분명한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 즉 눈앞에 아저씨처럼 평생 동정으로 살 얼굴이라는 뜻이 아닌가. 내가 한숨을 내쉰 순간, 아저씨는 넥타이를 풀어 해치며 말을 이었다.

 

 

“일단 증거를 보여야겠지. 25살까지 동정을 지키면 자네의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잠깐만요! 이 미친 아저씨가 옷은 왜...!”

 

“해제.”

 

 

‘해제’라 중얼거린 아저씨의 몸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인조로 만들어진 빛이 아닌, 따사로운 햇살과 비슷한 빛이 내 피부에 닿는 게 느껴졌다. 마치 봄볕을 그대로 쐬고 있는 듯한...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한 빛에 아저씨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강렬한 빛에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지만, 손가락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어두운 새벽의 골목길을 한순간 낮처럼 밝히던 따사로운 빛은-

 

 

“25살까지 동정을 지키면, 남자는 이렇게 되지.”

 

“...허?”

 

 

한 명의 소녀만을 남긴 채 빛은 자취를 감췄다.

 

아까까지만 해도 대머리 아저씨가 서 있던 자리에 백발의 소녀가 나타났다. 허리까지 곧게 뻗은 백발의 머리카락, 기다란 목도리, 새하얀 옷은 마치 어느 학교의 교복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풀거리는 목도리를 움켜쥔 소녀의 손짓은, 아까 넥타이를 움켜쥐던 아저씨의 손짓과 똑같았다. 게다가 나를 바라보는 저 강렬한 눈빛은...

 

싫어도 눈앞에 소녀와 아까의 아저씨를 겹치게 보이게끔 했다.

 

 

“...설마, 47살 동정 아저씨?”

 

“이게 본 모습일세. 중년의 모습은 마법으로 모습을 왜곡시킨 게야. 그래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거든. 사실 마법사라기보다는, ‘마법 소녀’에 가깝지만...”

 

“...아니, 이게 지금 무슨...?”

 

“너무 놀라지 말게. 자네가 다음 달까지 동정을 지킨다면, 곧 나처럼 이렇게 될 테니.”

 

 

꿈인가. 아니, 방송국의 질 나쁜 몰래카메라인가.

 

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고개를 돌려 골목길에 설치된 카메라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바보 같은 일이 현실일 리가 없었다. 

 

눈앞에 아저씨가 갑자기 여자로 변하질 않나, 그런 아저씨가 나보고 마법사가 될 재능이 있다고 하지 않나. 분명 어느 프로그램에 몰래카메라거나 지독한 악몽인 게 분명했다.

 

도저히 찾아도 카메라가 보이지 않자, 나는 그대로 내 뺨을 후려쳤다. 꿈이면 깨라고, 얼른 깨서 내일 아침에 아르바이트 출근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몇 차례 뺨을 후려갈겼지만...

 

 

“확인은 다 했나?”

 

“꿈이 아니야...?”

 

 

부어오른 뺨을 쓰다듬으며 아저씨... 아니, 소녀를 바라보자 소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팔짱을 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말이 안 되잖아...!

 

 

“아,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잖아요! 25살까지 동정인 사람이 그리 적을 리가 없잖아요!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결혼도 30살 이후에 하는 시대에 25살 동정이 그리 적을 리도 없고...! 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사실이라면 이미 진작에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어야...!”

 

“그래, 이 사실이 밝혀진다면 사회는 난리가 났겠지. 하지만... 자네가 나를 만나지 않고 이대로 25살 생일을 맞이한다면, 자네는 이번 달 내로 몽정을 겪을 게 분명하네.”

 

“예? 모, 몽정?”

 

 

갑자기 몽정이라니? 

그 사춘기에 야한 꿈을 꾸며 싸버린다는 그 몽정? 

 

 

“그래, 뒷 세계의 ‘어느 단체’가 마법사의 탄생을 막고 있거든. 사람들은 그저 몽정인 줄 알겠지만, 사실은 진짜로 동정을 뺏기고 있는 걸세. 서큐버스년들에 의해 마법 소녀의 탄생이 막히고 있는 게야!”

 

“...서큐버스?”

 

 

이제 슬슬, 소녀의 말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대머리 아저씨가 미소녀로 변하는 것도 아찔한데, 25살까지 동정을 지키면 나도 저 소녀처럼 된다고 한다.

 

게다가 그걸 막고 있는 것은 ‘서큐버스’라고...

 

 

“허...”

 

 

황당한 이야기에 그저 헛웃음만이 나왔다. 너무 이상한 정보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리기까지 했다. 내가 이마를 짚고 비틀거리자, 소녀가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소녀가 뻗은 손을 잡지 않고 물었다.

 

 

“도대체, 왜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사실 이런 이야기는 남들에게 하지 않는 것이 ‘마법 소녀’들의 철칙이네. 아직 우리는 단체에게 맞설 힘을 모으는 중이거든.”

 

“그러니까... 나도 도와라? 그 서큐버스년들을 쥐어팰 힘이 되어라?”

 

 

소녀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건 우리의 사정일세. 아직 ‘마법 소녀’가 되지 않은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내가 자네에게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자네같이 자상한 사람이 그 단체의 먹이가 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네.”

 

“네...?”

 

 

소녀는 목에 둘러 진 목도리를 움켜쥐며,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내 중년의 모습은 무척이나 볼품없잖나? 대머리에, 비실비실하고, 툭하면 부러질 것 같은 모습... 그 변신폼 때문에 양아치들에게 삥을 뜯기는 건 자주 있는 일일세.”

 

“...그럴 것 같긴 해요.”

 

“후후, 그렇지. 그런데 그거 알고 있나? 그런 볼품없는 아저씨를 구해준 자상한 사람은, 오로지 자네뿐이었다는 것을. 그런 자상한 소년을, 내 나름대로 구하고 싶었을 뿐이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저씨, 아니 소녀는 정말로 내가 그 ‘단체’에게 먹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나름대로 소녀의 선의였던 걸까, 소녀는 다시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뭐, 평생을 동정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야. 게다가 이런 모습으로 변하기까지 하니, 정말 쉽지 않은 생활이 되겠지.”

 

 

“그거 정말 생물학적으로 ‘여자’가 되는 건가요...?”

 

“궁금한가?”

 

 

소녀는 피식 웃고는 팔랑거리는 치마를 꼬집으며 들어 올렸다. 치마에 가려진 무언가가 보일랑 말랑한 아슬아슬한 각도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내 동정 같은 반응에 소녀가 키득키득 웃었다.

 

 

“정말 싫다면 더 이상 권유하지 않겠네. 아니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가? 자네에겐 아직 한 달의 여유 기간이 있으니 말일세. 자네의 생일까지는 기다려 줄 수 있네. 대신 우리의 일은 아무에게도 말을 해서는 안되니 ‘감시’가 붙겠지만...”

 

“......”

 

 

솔직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25살까지 동정을 지키면 ‘마법 소녀’가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법 소녀들의 탄생을 막고 있는 어느 단체의 이야기, 정말 어린이 애니에서나 나올법한 설정이 아닌가.

 

나는 다시금 내게 손을 뻗어 준 소녀를 바라보았다. 밤바람에 흩날리는 백발 하며, 달빛에 비쳐 백옥같은 피부 하며, 이게 정말 47살 동정의 모습인가.

 

절로 나오는 한숨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리며 마른세수를 한 나는, 지친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저는...”

 

 

 

 

대사는 야겜 니하오! 칭호 에서 따왔습니다.



 

심심해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