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눈을 뜨니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장소였다. 쿱쿱한 반지하 방이 아닌 탁 트인 평야.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일반적이라면 푸르러야 할 평야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평야를 물들인 붉은빛의 정체가 피라는 사실은 바로 다음 순간에 깨달았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내 주변은 온통 무언가의 시체가 난도질당한 채 널브러진 채였다.


"이게 무슨…."


화면 속에서나 보았던 내장이 기괴하리만치 깔끔한 사체의 단면 밖으로 튀어나와 풀밭 위를 구르고 있었다.

코가 아릿할 정도로 짙은 피내음이 풀내음을 뒤덮을 정도로 온통 진동했다.

한때 살아 움직였을 무언가의 움직임이 멈춘 채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우, 우욱…."


그 모든 사실을 인식한 순간 도저히 그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바뀌어버린 목소리와 자꾸만 시야를 가리는 은색 머리칼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이 끔찍한 장소로부터 벗어나고자 달리고 또 달렸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피가 튀었다.

사체 덩어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수 차례였다.

그럼에도 시체의 행렬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풍경은 점차 바뀌어 갔다.


풀잎만이 무성하던 평야를 지나치자 어느새 수림이 나타났고, 조금 더 지나치자 공터가 나타났다.

그 공터에는 움막 내지는 오두막 따위가 모여들어 일종의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시체가 보였다.


인간의 시체들이.


"아. 아?"


왜, 사람이, 죽어 있는 거지?


순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음에도 각막에는 그 광경이 제멋대로 각인되어 버리고 말았다.


일전의 생명체와는 달리 흉측하게 그어진 단면.

그 사이로 얼핏 보이는 내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또렷이 보이는,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


그러면서도 오로지 그 눈알만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더는 움직이지 않는 그 눈동자가, 나를, 틀림없이 나를, 또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힘이 턱 풀렸다.

그토록 필사적으로 달렸던 게 무색하도록 몸이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그저 시체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몸을 필사적으로 뒤틀며 물러섰다.

그러다가 문득 등 뒤로부터 푸른 빛이 나고 있음을 깨달았고, 그 빛이 몸을 감싸 안듯 움직임을 보았다.


다음 순간 나는 일상적인 도심의 거리에 내팽개쳐진 채였다.

조금 전까지의 광경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범한 모습이었다.

적어도 거리 자체는 그러했다.


"생환자! 첫 번째 생환자가 마침내 나타났습니다!"

"여자애잖아? 저런 자그마한 애가 대체 어떻게 혼자 살아나온 거지?"

"야 임마 빨리 일어나서 사진 안 찍고 뭐해! 1면 특종감인데! 지금 너만 삼 일 밤낮 샜냐?"

"이번 게이트 사태로부터 생환한 첫 번째 귀환자가 되셨습니다! 그에 대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찰칵!

―찰칵! 찰칵!


감상이 무색하게도 거리는 온통 백색 빛과 소음으로 뒤덮였다.

카메라 촬영 소리와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마이크를 들이대며 던지는 질문들, 그저 구경을 위해 이곳까지 나선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거드는 것까지 합쳐지자 무엇 하나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귓가가 앵앵거리는 와중,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있음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고 있음을.


"으, 아, 아으…."


어쩐지 그 참혹한 광경을 보았을 때 이상으로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그만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한 번 써봤는데 이대로 노피아에 올려도 될까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