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내딛으면서 길을 따라 걸어간다.

가만히 앉아있는것 보다는 주변을 돌아다녀 보는것이 내가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수 있겠지.


좁은 길목을 지나오자 숲이 눈앞에 나타났다.

바닥을 기고있는 내 기분과 대조되게 날씨가 좋다... 햇살이 밝고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부드럽게 불고 있었다.

세상은 내 고통이나 슬픔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잘만 돌아가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속을 더 무겁게 누르는것 같았다.

...이상한 생각하지말고 길이나 가자. 



오른쪽길은 나무와 풀들로 길이 끊겨있었다.

돌아서려는 순간 나무사이로 무언가 보였다.

...사람이 쓰려져 있었다.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죽은걸까? 다쳐서 정신을 잃은걸지도 모른다.

...이대로 내버려두고 갈길 가는건 뭔가 아닌것 같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돌아서 가까이 다가서보자 눈에 띄는 외상은 없다.

무어라 소리를 내고있는것을 보니 단순히 정신을 잃은것 같다.

휴식이라도 취하고 있는걸까?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무슨 말일까?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던 걸까?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쓰러져 있던 사람은 인기척 때문인지 정신을 되찾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무사한듯 하다.


? 아니 잠시만요


흑의 재판인지 뭔지를 말하는 거라면 난 그게 애초엔 뭔지도 모르는...


말을 내뱉기도전에 얼굴에 주먹이 날라왔다.

싸움하나 해본적 없는 내가 그걸 피하거나 막을 실력이 있을리는 없었고 정통으로 한대 얻어맞자 온몸에 힘이풀리고 정신이 먹먹해지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후속타로 들어오는 발길질에 걷어차이는 부분마다 타는듯이 아파왔다.


온몸이 아프다. 걷어차인 부분이 너무 고통스럽다. 코는 얼얼하고 액체같은것이 자꾸 흘러내린다.

웅크린 상태에서 사지로 발길질을 막았더니 걷어차인 팔다리가 미칠듯이 아프다. 뼈가 부러진것 같다. 


대답할 힘도 없다. 고통 때문에 대화도 제대로 못할것 같다.

...그리고 약해 빠졌단 말을 듣는것은 이걸로 4번째 인것같은데.


본업? 무슨짓을 할생각일까?


본업이 강도짓인가...

하지만 난 방금 받은 소울은 화툿불에 다 써버렸다.

이렇게 뺏길바에 아까 다 써버린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를 젓자 대충 의사는 전달된 모양이다.

...아파서 죽을것 같다. 움직일 때마다 걷어차인 부분이 타오르듯이 아프다.


이번에는 제대로 입을 움직여서 어떻게든 소울이 없다고 제대로 말했다.


아니 지금 진짜 한푼도 없다고...


마가 낀 하루를 보내고 있는건 아무리 봐도 이쪽인것 같은데...


뼈가 부러져서 바닥에 뒹굴고 있는 상황에서 내 목숨값이 실시간으로 깍여 나가는것을 듣고 있으니

몸만큼이나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가고 있는것 같았다...


...섬뜩한 소리다. 이대로 장기밀매라도 당하는건가. 

집에 돌아가겠다고 길은 나선지 몇분도 안되어서 구타당해서 장기가 털려 죽어버리다니. 이렇게 허무한 죽음이 있을까.

첫번째로 죽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것 같은데. 이번에 죽으면 또 아까처럼 다시 살아날수 있을까...


다행히도 단념해 준듯하다. 그년이 누구일까?

일단 얼굴도 모르는 그녀에게 감사를 올렸다.


상대방은 친절하게도 내 영혼의 값어치를 0소울로 계산해준듯하다.

불쾌했지만 반박하려고 해도 뭔가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이 세계에서 내 목숨의 값어치는 정말 딱 그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집이 그립다. 끔찍한 일만 일어나는 이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


...일단은 또 처맞기전에 고통에 신음하며 간신히 질문에 대답했다


일단 긍정했다. 이사람 한테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한다고 해도 원하는 대답을 들을수 있을것 같지도 않다.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패놓고 잘도 그런말을 할수 있는게 참 신기한 정신머리다.

면전에 욕이라도 박아버리고 싶지만 이상태에서 더 걷어차이면 과장없이 진짜로 죽을것 같다.

같잖은 소리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려고 했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것 조차도 마음대로 안된다.


상대방이 뼈가 부러져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든 말든 제 할말만 하고있는 이 자의 이름은 그룬트라고 하는것 같다.

분명 방금전까지 강도와 장기밀매를 하려고 하고있었던거 같지만

그룬트는 자신을 행상인이라고 소개했다.


이놈은 돈이 없다는 말이 뭔뜻인지 모르나? 3번은 넘게 말한것 같은데.

그리고 강도에 장기밀매범이 파는거라고 해봤자 남의 물건아님 남의 장기일테지.

뭐든간에 제대로 된건 아닐것이다.


앞으로 절대 만나고 싶지않다. 있으면 피해갈거다.


이세계에 존재한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본 사람이라고는 메이벨을 제외하면 눈앞에 이 사람이 처음이다.

애시당초 메이벨도 사람이 맞긴한지 의심이 들지만.

일단은 없다고 대답했다. 왜 묻는 걸까? 찾아서 죽이기려는건 아니겠지.


흑의 재판이란 자들은 하는일을 보면 확실히 좋은 사람들인것 같다.

이곳에 그래도 제대로된 사람들도 있긴 있는 모양이다.


너처럼 살진 않을거다. 라는 말을 조심히 마음속에 담아놓고 그룬트라는 작자에게 빨리 꺼지라는 뜻의 작별인사를 조심히 건넸다.


그룬트가 꺼지고나서 박살난 신체를 조심히 일으키고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진짜 아파 죽을거 같다. 그나마 멀쩡한 사지를 사용해서 부러진 부분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엉금엉금 기어갔다.

일단 화툿불로 돌아가자. 이상태에서는 가만히 숨쉬고 있는것조차 괴롭다.


그나마 신체의 성한 부분으로 땅바닥을 기어가서 기어코 화툿불로 돌아왔다.

화툿불에 도착해서 뼈의 부러진 부분이 닿지 않게 조심히 옆에 누웠다.

부러진 뼈가 어긋나서 붙기전에 부목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에 

불의 온기가 몸에 느껴지자 몸 안쪽에서 뚜둑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고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방금전까지 비명을 참으면서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내던게 거짓말 같이 고통은 말끔히 사라지고 팔다리도 다시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부상이 전부다 나았다.

화툿불옆에서 샬롯이 말한 상처를 치유한다는 말은 이걸 의미한것 같다.

익숙치 않은 감각에 당황하다가 바닥에서 엉거주춤 일어나서 옷에 먼지를 털었다.


고통에서부터 자유로워지자 좀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고작 밖에 나가서 몇분 걸었을 뿐인데 죽기 직전까지 처맞았다.

운이 조금만 더 나빳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까 상점에서 받았던 부러진 검과 나무 방패가 생각난다.

밖을 돌아다니려면 아무래도 제대로 준비하고 나가야 할 것 같다.

검과 방패를 가방에서 꺼내 양손에 들고 다시 건물을 나왔다.


손에 들린 검의 무게감은 낯설었다.

일단 방금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손에 들기는 들었지만. 내가 이걸 휘두른다는것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냥 방금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길 기도하면 좀전보다는 조심히 길을 걸어갔다.


숲길을 벗어나자 폐허 같은곳이 나타났다.

한때 건물이 세워져 있을 자리에는 듬성듬성 벽과 기둥의 일부만이 남아있고 바닥은 풀들로 뒤덮여 있다.


페허로 들어서자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누군가가 서있는게 보인다.

...좀 전의 경험으로 섣불리 다가가는것이 망설여진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무슨 강도같다.

이곳을 지나가려면 좋든 싫든 저 사람의 앞을 지나가야한다.

저자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에들린 방패를 꽉 잡고 조심히 다가갔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도 딱히 죽이려고 덤벼들지 않는 모습을 확인하고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예상치 못하게도 두건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었다.

여자였나?


생각을 입박으로 내버렸나 보다...

심기를 거슬렀다고 죽이러 드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몸이 움츠러 든다.


상냥하게도 방금의 무례는 그냥 넘어가주는듯하다.

말걸었다고 전신의 뼈를 부숴버리는놈과 만났다가 드디어 제대로 대화가 통하는 상대와 만나니 감격스러울 지경이다.


이 나라에 갑자기 끌려 왔냐는 그녀의 질문에 곧바로 긍정했다.

그녀라면 무언가를 알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곳에서 처음만난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는 점이 겹쳐서

나도 모르게 모든 사정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아쉽게도 그녀도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는듯 하다.

그래도 내 말을 의심하지 않고 들어주고 자기가 아는 선에서 대답해준 것 만으로 충분히 고맙다.


흑의 재판... 아까 그룬트란 작자가 말했던 착학녀석들 집단인가보다.

그룬트가 말했던것 이상으로 상식인이다.


이 세계에서 와서 처음으로 들은 칭찬인것 같다. 새하얀 영혼이라... 딱히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한적은 없는데...

그래도 남들에게 피해주면서 산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도 남들에게 피해주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가 섬뜩하게 덧붙이는 말에 살짝 움츠러 들었다.

그녀와 적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당연히 죄를 짓고 살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고

그녀가 나를 처형하러 올 일은 없을것이다.

...아마도


그룬트가 말한 검은머리에 검은옷을 입은 여자는 역시 네아였나 보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목숨을 한번 건졌다.

감사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주변을 둘러보다 마차 틈새사이로 나있는 길을 찾았다.

다른 길은 찾을수 없었기에 그곳으로 들어서자


좀전의 자연과 대조되는 건물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마을이 나타났다.

어느새 하늘에는 우중충 하게 안개같은것이 끼어 주변은 어둑해졌다.

제법 큰 마을이다. 사람도 많이 살겠지.

이곳이라면 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볼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마을안으로 걸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