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착: 다이와 스칼렛

1착: 오구리 캡

코 차이도 나지 않았다.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을 때 오구리 캡이 다가왔다.

 

”대단했어. 만약 너가 실수하지 않았으면 내가 졌을 거야.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

”네...잘 부탁... 드려요.“

 

오구리 캡과 트레이너가 떠나고 자리에는 다이와 스칼렛과 그녀의 트레이너만 남아있다.

적막한 공기가 내려앉았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순간 트레이너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오더니 가볍게 쓰다듬었다.

트레이너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트레이너의 미소가 보였다.

 

”괜찮아. 잘 했어. 스칼렛. 엄청 성장했잖아.“

 

그런 말을 하는 트레이너도 마음이 좋지 못한 것 같았다.

당연하겠지. 트레이너도 함께 노력하고 바라왔으니까.

 

”가자. 일단 가서 실컷 놀자. 너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으니까.“

 

그렇게 내민 손을 잡았다. 마치 처음 계약서를 내밀었을 때처럼 다시 나를 잡아주었다.

 

”그래. 가자. 트레이너.“

 

그렇게 이틀동안 실컷 놀았다.

밥도 먹고 놀이공원도 가고 카페도 가서 수다도 떨었다. 놀 수 있는 만큼 충분히 놀자 패배의 아픔이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안심이 되었다.

이 사람이라면 끝까지 있어 줄 거라고.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역시 계약 해지는 안 하나 보네. 당연하지. 나를 버리고 어딜 가려고.“

 

다행히 레이스가 끝난 뒤에도 계약 해지를 하자는 문자는 오지 않았다.

아마 까먹었거나 처음부터 거짓말이었겠지.

언제나처럼 트레이너실 문을 열자 트레이너가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스칼렛. 여기 앉아.“

 

정말 달라지지를 않네. 그때와 똑같아.

그런 생각을 할 때 트레이너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뭐, 평소처럼 일주일치 계획서겠지.

그렇게 받아든 종이에는 평소와 다른 글자들이 적혀져 있었다. 생각도 못 했던 아니, 어쩌면 절대 받고 싶지 않아 외면하고 있던.

 

계약 해지 동의서

 

이딴 쓰레기를 내민 트레이너는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아니, 평소와는 달랐다.

평소와 같은 미소가 아닌 씁쓸한 죄책감이 들어있는 웃음이었다. 왜? 너가? 실수한 건 난데? 왜 너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건데?

 

”트레이너. 이게 뭐야?“

”약속했잖아. 6월 전반까지 G1에서 우승을 못 시켜주면 계약해지 해주기로. 미안해. 약속을 못 지켰네.“

 

아니야. 잘못한 건 내가...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무언가로 막힌 듯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트레이너는 말을 이어나갔다.

 

”걱정마. 너라면 더 좋은 트레이너를 금방 구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미숙해서 너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한 거 같네.“

 

트레이너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의 눈에서 감정을 느꼈다.

미안함, 슬픔, 아쉬움, 죄책감

 

”그래도 마지막으로 네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봐서 좋았어. 앞으로는 한 명의 팬으로써...“

”누구 멋대로 마지막이라는 거야.“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더니 종이를 찢어버렸다.

 

”어...? 스칼렛?“

 

당황한 트레이너의 모습이 보였지만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놓치면 영영 놓칠 것만 같았으니까. 지금은 참을 때가 아니다.

그대로 트레이너를 들고는 쇼파에 내려놓았다.

트레이너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쇼파 위에 놓인 트레이너는 당황해서인지 얼굴을 붉히며 누워있고 나는 그런 트레이너 위에 올라타있다.

 

”저기... 스칼렛, 이건... 읍!“

 

말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입을 막는 것

서로의 입술을 부딪히자 트레이너의 말이 멈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트레이너와 멀어지자 얼굴이 시뻘게진 트레이너가 보였다.

 

”스칼렛... 이건...“

”바보야, 이렇게 티를 냈으면 좀 눈치채라고.“

”하하... 미안. 눈치가 없었네.“

 

그 미소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그 미소

평소의 트레이너의 미소

 

”계약 해지는 안하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니야? 다음엔 다른 종이를 갖고 와.“

”다른 거...? 아! 하하, 알겠어.“

 

그래도 이 정도의 눈치는 있었나보다. 다행이네.

 

”근데... 이제 비켜주지 않을래?“

”싫어. 이 참에 트레이너가 확실히 내 거라는 걸 각인 시켜야겠어.“

”어...? 어...!“

 

트레이너의 당황한 표정이 눈에 보인다. 이렇게 보니 참 귀엽네.

절대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고 싶지 않아.

 

”걱정마. 끝까지는 안 할 거니까. 같이 살려면 G1 우승해서 돈 벌어야지.“

”그... 그치?“

”그래도 중간까지는 해도 되겠지? 아이는 11명 정도?“

”노...농담이지?“

 

평소에 트레이너가 지어주는 미소를 이번에는 내가 지어줬다.

아무튼 좋은 게 좋은거 아닐까?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야, 얼마 안 지나서 G1 우승도 하고 졸업하고 결혼도 했지. 아이는 아직 4명이니까 오늘도 트레... 아니 남편 좀 끌고 가야지.

힘들어하긴 하지만 아직 7명 남았어.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