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Scan the shade





어두운 함선의 브릿지, 삑하고 화상통신이 연결된다. 채널은 U+265D. 일반적인 채널은 아니다. 무려 이변 속에서 무리 없이 통신이 가능한 독자 채널. 고심도와 현실을 잇는 채널은 무수히 많이 있지만, 이렇게 복잡하게 꼬아 놓은 채널의 용도는 단 하나. 들켜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놓쳤다구요? 후, 하등한 해적들에게 처음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지만, 너무하네요.”


붉은 제복을 입은 여성이 팔짱을 끼고서, 검은 장갑을 쓴 손가락을 비비고 있다. 묻은 것도 없는데, 마치 손톱 정리라도 하듯이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털어내면서 꺼낸 소리.


“뭐 이씨, 좆걸레 년아. 한 번만 아가리 놀리면 입에다 로켓런처를 물려버린다?

 네 년이 평소 빨던 좆대가리랑 어떻게 다른지 알려줘?”

“하, 밑바닥에서 쓰레기나 주워 먹는 생태다운 언동이네요. 동지. 이딴 쓰레기들한테 정말 지원을 계속할 거예요?”


동지라고 불린 남자는 콧잔등을 오른손 검지로 매만지다, 옆의 여성에게 손을 펴 보인다. 가만히 있으라는 제스쳐. 읏, 하고 여성이 보랏빛 머리칼을 흔들며 살짝 물러난다.


“⋯⋯로켓런처를 맞았는데도 멀쩡한 가이노이드라⋯. 그거 외형이 어떻게 되나?”

“아이 씨, 발 새끼들아. 기록영상 전달 해줬잖아.”


일 두 번 시키고 있어, 하며 큐컴버는 다시금 영상을 송신한다. 파워드슈트에 내장된 보디캠으로 촬영한 영상. 큐컴버의 시점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은발의 여자아이가 비친다. 마치 어린아이들을 갖고 노는 것처럼, 파일 벙커를 맨손으로 막아낸다. 그런 후에 배나 되는 덩치의 남자를 두들겨 패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움직임. 게다가 지금의 고심도에서 카운터도 아닌데 맨 몸이었다.


매끄러운 스테인리스를 길게 펴 바른 듯한 은발. 그리고 저 푸른 눈. 깊고, 어둡고, 그런데도 밝은 빛. 동지라 불린 남자는 한숨과 함께 영상의 가이노이드를 정의한다.


“⋯⋯호라이즌.”


“호라이즌이 뭔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거구의 남성이 입을 연다. 방금 영상에서 그 호라이즌에게 파일 벙커가 막히고, 두들겨 맞은 남자였다. ‘야, 로치.’ 하고 옆의 큐컴버가 다가오자 그 또한 ‘동지’처럼 손바닥을 펴 보이며 큐컴버를 밀어낸다.


“퓨처 앳 워. 대정화전쟁 시절의 초법적인 프로젝트. 거기서 만들어진 물건이다.”

“퓨처 앳 워? 그거라면 타이탄 어쩌고 하는 거 아냐? 결국 정치 때문에 갈려서 망했다는.”

“그렇지. 안타깝게도.

 세계를 구한다는 명목 아래 정치도, 국적도, 사상도 초월하여 모인 집단의 끝은⋯⋯. 평화가 찾아오면 그 정치에 찣기는 법이지. 무엇보다, 그다음을 너무 이상적으로 쫓았어. 그녀는.”

“잘 아는 모양인데?”

“남들보다는.”


로치(roach)는 팔짱을 끼고서, 씨익하고 웃는다. 헬멧 아래로 가려진 탓에 입은 보이지 않지만 웃었다는 것은 화면 건너편의 ‘동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 더 중요한 걸 찾은 거 같은데. 맞지?”

“⋯⋯.”


‘동지’는 잠시 턱을 괸 뒤, 입을 연다.


“강인공지능 호라이즌은, 실패작이다. 인간에 대한 공격성을 가진 탓에 콜드케이스와 함께 동결되었지.”


“콜드케이스?”

“잠깐만요. 동지! 이 이상은 정보보안에 걸릴 만한⋯!”


보랏빛 머리칼의 여성이 끼어든다. 다시 한번. 동지는 손바닥을 펴서 가라앉히듯 움직인다. 수면 아래, 헤엄치듯 우아하게.


“대정화전쟁 당시 인류가 이면세계에서 발굴한,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 또는 그 장비들을 이르는 말이다.”

“퓨처 앳 워가 테러로 파괴되었을 때, 다량의 콜드 케이스는 행방이 묘연하게 되었지.”


“그런데, 그 콜드 케이스랑 같이 동결 처리 된 깡통이 털레털레 걸어 다니고 있다?”


로치의 말에 큐컴버가 끼어든다.


“뭐야, 요는 저 씨발년이 콜드케이스인가 뭔가 하는 걸 들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하지. 그리고 물론, 호라이즌 그 자체에도 충분한 가치는 있지.”


“그게, 당신네가 우리한테 협조를 요청할 정도로 기를 쓰고 만들고 있는 마트료, 아니지, 그 그림자 어쩌고 보다 더 중요한 건가?“


로치의 말에 여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밀이었다. 비록 그 사전단계, 밑 준비에 준하는 행위를 그들에게 시키고는 있지만, 정확한 프로젝트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닭 도축업자에게 오늘 저녁에 만들 메뉴가 치킨인지, 스튜인지는 알려주지 않는 것처럼.


“⋯⋯! 너, 해적 주제에. 도대체 어디까지⋯⋯!”


하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동지는 말을 잇는다.


“중요성을 따질 수 없는 문제일세. 굳이 따지자면 또 다른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지. 자네들에게 시제품으로 건네준 위고에 쓰인 프레임과 장갑이 퓨처 앳 워의 타이탄에게서 비롯된 것을 생각해보게.”


“만약 그 인공지능을 사로잡는다면 우린, 그다음을 볼 수 있겠지.”


“네? 그럼 저들을⋯”


“뭐든 상관없어. 합의체. 그 기계 보지 년의 인공지능만 있으면 되는 거지? 팔다리 날아가던가, 상관없고?”


“그래. 그렇지.”


“⋯⋯흐, 기대하고 있으라고.”



통신은 끝난다. 이거 재미있게 돌아가네. 하는 로치의 말에 큐컴버가 옆구리를 찌른다.


“야, 근데 진짜 괜찮냐. 그 아티팩트 도둑맞은 거.”


“흐, 당연히 괜찮지. 어차피 그건 다른 쪽에서 받은 거야.

 어쩌다 그런 걸 주웠다, 정도로 여기까지 연줄을 대놓게 한 것만 해도 충분해.”


“아아, 뭐. 근데 게네들은 믿을 만한 거야?

 그 바이오산업인가 뭔가. 현실세계에서 대규모로 인체실험을 한다고?”


“하, 그거야말로 미친 짓이지. 지금 저 고까운 합의체 놈들이 왜 굳이 우리한테까지

 손 벌려가며, 이 고심도에서 은밀히 ‘실종자’들로 그 지랄을 시키겠어?”


로치가 입에 담은 실종자라는 말에 큐컴버는 웃는다. 그들은 흔히 실종자라고 부르곤 했었다.

고심도의 이면세계에서 LOST 처리된 이들을 일컫는 말. 하지만, 실종에는 이유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 이유로 먹고사는 이들이 그들, 스캐빈저. 지금은 클리너라는 이름의 해적.


“뭐, 우리야. 지금까지 보급도 대주고, 장비도 대주고 좋았다. 이 거지. 중요한 건 선을 잘 타는 거야.

 병신같은 로조처럼 졌다고 그 정신 나간 기계한테 두목자리를 내 줘? 말이 안 되지.

 여기서는 우리가 왕이잖아.”


“하긴, 저 새끼들도 결국 여기까지 내려와서 우릴 칠 순 없지.

 그 잘난 관리국도 손 놓고 있는 마당에.”


“그래 그러니까⋯⋯.”



둘은 웃는다. 그들은 클리너. 이 밑바닥, 그늘에서 모든 걸 깔끔하게 해치우는 청소부.

이 곳에서 죽은 사체는 우리의 것. 그것이 설령, 의뢰받은 물건이더라도. 

아직 죽지 않았다면 죽여버리면 된다. 깔끔하게, 모든 것을 청결히. 우리 뱃속에.







그리고, 그 속내를 당연히 수면 위에서는 알고 있다.


“동지.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제가 예견하건대⋯”


“그들이 배신 할 거라고?”


“알고 계셨는다면 왜 굳이 보안에 걸릴 정보까지⋯⋯!”


“하라고 두면 되지 않나.”


“네?”


동지는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선다. 그런 후에 여성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녀가 왜 실패했는지 알고 있나?”

“그녀요?”

“엠버 말이야. 그 초법적인 프로젝트, 퓨처 앳 워를 진두지휘했던 과학자지.”

“글쎄요, 지금 그것 보다⋯⋯!”


그리고서 지나친다. 마치 지난날을 추억하듯, 18년 전의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실패한 일을 계속 붙잡고 있어서야.”


“네⋯⋯?”


“이건 예측의 영역이 아니야. 경험과 감정의 영역이지.

 실패한 것들, 실패할 것들, 모두 알고서 우리는 그 너머로 가야 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단 말이지. 그녀는 그게 부족했어.”


“믿음은 중요한 가치지만, 정도를 넘으면, 혹은 약간 뒤틀리기만 해도 광신으로 바뀌지.

 종교 외에도 마찬가지야. 그래야한다라고 생각이 닿는 순간, 생각이 생각을 가속해서

 현실을 뒤덮게 되지.”


“도대체⋯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동지는 웃는다. 


“자네는 저 해적들이, 궁극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예측하나?”

“⋯⋯”



“아.”



그제서야 여성은 웃는다. 모두가 웃고 있다. 당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서야 남자의 말을 이해했다. 저들은 처음부터 버린 패다. 필요한 데이터는 대강 얻었다. 굳이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혹은, 이미 실패한 가치들을 얻은 것이다. 저들에게 어떠한 이득이 새로이 생기든, 이미 얻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저들의 실패로, 충분히 ‘실패라는 정보’를 얻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음은 청소. 청소는 청소부에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 일인가. 손도 깔끔하다.



“처음부터, 저들이 죽든 살든 상관없었군요.”

“만약에, 저들이 콜드케이스를 손에 얻어도 상관없지. 우리는 초기의 목표를 이뤘으니까.

 협상으로 줄을 타려고 해봤자, 어차피 상대방이 누군지 알고 있지 않나?”

“제프티 바이오 말씀이군요.”

“솔직히, 그들의 일은 좀 의외였네. 리플레이서 잔당이라니, 아까운 인력을 죄다 빼앗긴 거니까.

 그래도 뭐, 어쩌겠나.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현실에서 그런 짓을 하면 오래 못 가지.”

“그들은 좋든 싫든 곧, 파멸할걸세.”



“⋯⋯네, 그럼. 진짜 청소부에게 접촉해 보겠습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깔끔하게 사라지면, 우리를 추적할 수도 없지.

 자네가 고생 좀 하게. 이제 곧, 우리는 진짜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될 테니까.”




웃는다. 모두가 웃고 있다. 그늘 속에서 자신들이 왕이라도 되는 듯 웃고 있다.

그 발치 아래에 누구의 추억이 찣겨져 있더라도, 웃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이 쌓여가도, 웃을 것이다.

그것들에 가치는 없으니까. 이미 맛은 다 봤으니까.











원제

Scan the shade

그늘을 훑는다.

 

-5

 

 

 

 

 

 




새까만 세계였다. 마치, 검은 크레파스로 대충 휘갈긴 듯한 세계. 별도 달도 없다. 대충 휘갈긴 듯한 색채였기 때문에, 애매한 빛이 남는다. 그게 전부. 그 황야를 가로지르는 MA1 험비와 라이트를 제외하면.


노면 도로를 몇 번이나 덜컹거리며 달린다. 바퀴가 검은 땅을 헤집을 때마다 흙먼지가 마치, 폭발재처럼 흩어지고 계속 이어진다. 엔진은 울고, 운전석의 헤더도 울고 있다. 


“아, 나 진짜⋯⋯그려려던 게 아니었거든. 흑⋯흐윽⋯”

“내가 나쁜 거야? 아니지? 그치만⋯”

“아아아아악, 진짜. 진짜. 나만 나쁜 년인 것처럼⋯”

“아니지? 아니야. 맞아. 그래.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어서, 훔쳐서⋯다른 애들이 붙잡히든 말든 뛰었어. 난 쓰레기야. 하하하, 그 자식이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못난 딸이라고 그 때처럼 또 때렸을까?”

“아파. 아빠. 아파요. 왜 우리만 고생해야 해?”

“아, 호라이즌. 부럽다. 부러워.”


조수석에 앉은 호라이즌은 잠자코, 듣고만 있다. 운전을 할 수 있다고, 하다못해 이런 거라도 하고 있어야 괜찮다고 말한 헤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다 좀 괜찮아졌다가도 또 말을 쏟아 낸다. 그 이유가 환각과 환청임을 알고 있는 호라이즌은 차라리 쉬겠냐고 물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라도 외치고 있어야 속이 좀 시원해진다고, 그나마 유지할 수 있다고 헤더는 사양했기에.


그러니까 지켜본다. 그러면서,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헤더의 말에서, 그녀의 인생을 조립할 수 있었다. 괜찮아진 후에는 웃으며 운전을 이어 나간다. 그러다가 얼마 안 가서 또 감정 실린 말을 내뱉는다. 마치, 연기자가 각기 다른 극단적인 상황의 대사를 쏟아내듯이.



“미안해. 미안해요. 그러려던 게 아니었어. 그래도, 마지막으로⋯”

“아니, 내가 왜 미안해 해야 해? 그치? 호라이즌.”

“후우우우우우, 후후후, 후후후, 아 진짜. 자전거는 혼자 탈 수 있다니까.”

“오늘 치킨을 먹을 거야. 아마, 그럴 거야. 아빠가 돌아오시거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본다. 그것만으로도 호라이즌은 그녀의 삶을 엿본다.

이름은 헤더 영. 본래 정비사였던 앵거스 영의 딸.

그녀의 아버지 앵거스 영이 사람이 좋았던 탓일까. 여러 군데 돈을 빌려주는 탓에 늘 가난했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좋아했었다. 앵거스 영의 어머니, 할머니가 침식 증후군에 걸리기 전까지는. 막대한 치료비를 부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몇차례나 되는 주변의 포기 권고에도, 앵거스 영은 정비사를 그만두고 이면 세계 채굴선에 몸을 실었다.



“엉엉, 왜 때리는데. 내가 틀린 말 했냐고. 왜 때리냐고.”



가족을 내다버린 결정에, 아내도, 이윽고 헤더도 그의 곁을 떠났다.

마지막에는 그의 어머니마저도.



“아빠. 이걸 봐요. 나도 모듈이란 거 만들었어. 자동차가 그냥 쭉 가고 멈추고! 어때?”




그 후, 그녀도 마찬가지라면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다.

여자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다지 많지 않다. 다행히 난민캠프 같은 곳은 아니었기에, 공부해서 제대로 된 자격을 가진 정비사가 되었다. 그릴 파티라는 태스크 포스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채굴선 작업자에서 용병이 된 앵거스를 몇 번이고 마주칠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거부했다. 한 번 쌓인 거절의 감정은 그 내막을 알면 알수록, 사정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아빠가.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가.

자기 할머니를 위해서 내린 결정은, 자신과 어머니를 버렸다고 생각했었던 것만큼

되돌릴 수 없는 믿음이 되어있었으니까.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합리화가 지층을 쌓아, 맹신이 되어간다.



“미안해요. 이제, 알 거 같아. 미안해⋯”



하지만, 알고 있다. 간단한 것이다. 실은 버렸다고 표현한 것은 그녀의 어머니. 아내가 답답해서 말한 것에 불과하고, 버린 적 따위는 없다. 우선하지 않았을 뿐이다. 더 힘든 이들을 도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도. 남자는 우직하게 다른 이를 위해 좋은 사람으로 살았다.


다른 이들과 함께 진작에 도망쳤다면 죽는 일까지는 없었다.

기다렸다. 


대시와 리타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말만 번지르르하고, 자기만 좋으면 다야? 그럼 나는? 엄마는? 어째야 했는데. 뭘 어쩌란 건데.”




“하하, 하하하. 그만 해. 아파. 아프다고⋯⋯”



그러니까, 쭉 미워했고. 쭉 미안했다.

이제서야, 얼굴이라도. 이미 죽고 없겠지만. 보고 싶다는 마음은 과연 추한 것일까.




“호라이즌. 넌 실패 같은 거 안 했어. 누구보다 사람이야.”


“⋯⋯.”



호라이즌을 부른 그 말은, 지금 옆에 있는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호라이즌은 그녀가 건넨 카메라를 매만진다. 차는 굴러가고 있다. 이렇게 엉망인데, 앞으로 가고 있다. 이 새카만 세상에서 어디인지도 모를 앞으로, 앞으로. 다음으로.



“헤더.”

“헤, 헤헤, 아⋯아⋯응⋯? 왜 그래 호라이즌?”

“운전을 바꾸죠. 좀 쉬는 게 좋아 보입니다.”

“아니, 괜찮아. 나, 이거라도 하고 있어야⋯⋯”


이 말은 벌써 여섯번째다. 그렇기에, 호라이즌은 이 반복을 끝낸다.


“클리너에 대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쫓는 인물과 관련이 있을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옆에서, 편안하게요.”


호라이즌이 그녀를 바라보며, 핸들 위로 손을 올린다. 그런 뒤에 자신이 앉아있는 운전석에 턱을 내리고서, 물러난다. 그 말에, 헤더도 서서히 액셀에서 발을 떼고 있다. 엔진은 여전히 울고 있지만, 속력은 줄어든다.


“어⋯⋯응. 그렇담, 아차! 너 운전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인공지능인 제가 차를 몰면 좀 이상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 싫다. 호라이즌은 그 오만함으로 보여지는 행동이 싫었다.


“아니, 전혀. 아⋯아아아⋯ 하긴, 슈퍼 아스라다같아 보여서 좀 깨긴 해.”


“아스라다?”


“그럼, 잠시만 기다릴래? 아까 함선에서 발견한 게 있거든 가져오길 잘했다⋯⋯.”



헤더가 품에서 무언가 리모컨 같은 것을 꺼내더니 줄을 빼낸다. 계기판 아래를 열어서, 몇 개의 선을 연결하고 있다. 복잡한 것은 없다. 액셀과 브레이크. 두 개면 된다. 어차피 여기서 우회하게 만드는 구조물 따위는 없으니까. 그냥 정해진 방향으로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되니까.


“자, 이러면 운전이라기보다는 그냥 딸깍 같아서 더 나을 거야!”


그런 뒤에 빨간색 버튼과 녹색밖에 없는 리모컨을 호라이즌에게 건넨다.

건네받을 때의 스친 헤더의 보호복 장갑. 사람의 손이라기보다는 물풍선 같은 감촉을 센서가 알리지만, 호라이즌은 그 알림을 넘겨버린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니, 이쪽은 이쪽대로 초기 단계 로봇 같아서 거부감이 드는군요.”


“엑. 어떻게 해? 그럼 그냥 운전할래?”


“아뇨. 이거면 됩니다. 자리를 바꾸죠.”


좌석을 바꾼 채로 험비는 다시 검은 세계를 달린다. 웅웅 울고, 흙먼지를 혜성 꼬리처럼 남기며.

조수적에 의자를 젖힌 채로 반쯤 누운 헤더는 한참을 헛소리를 내뱉다가, 좀 안정되었는지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하고 허탈하게 웃는다. 발작 빈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 점은 호라이즌도 인지하고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한계였는지 모른다.


“헤더. 당신이 그릴 파티에서 이 근처를 탐사할 것을 제안한 무렵부터입니다.”


거의 초반부다.


“아아, 그랬지. 당시에는 어떻게든 이 심도 근처까지라도 가면, 혹시나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 뭐, 대부분은 쿨럭. 쿨럭.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다 붙잡힌 겁니까?”


“응. 알다시피, 여기는 그 사건 이후로 관리국 다이브 금지 구역이야. 3종 침식체가 우글거리고, 이미 중요한 아티팩트도 빠져나갔다고 생각되니까 올 이유가 없는 곳이지.”


“하지만 그런 곳일수록, 남은 노다지가 있을까 하고 주변을 탐사한 거지. 실제로 여기서 나왔다고 하는 아티팩트나 유물들은 블랙마켓에도 나돌지 않았고⋯”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경위 이외에는 전혀 상관없는 정황이다. 하지만 호라이즌은 잠자코 듣고 있다.


“운 좋게, 한 몫 건지고서 부상하려다가 습격 당한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일부러? 아니지. 음. 어⋯⋯단어가 잘 생각이 안 나네.”


“천천히 해도 괜찮습니다. 헤더.”


“미끼를 던져둔 느낌이 들었어. 지나다니는 채굴선이나 탐사선을 노린 게 아니라, 그곳에 오게끔.”


“거기에 걸려들었다? 무튼⋯ 콜록, 콜록.”


“그 묘한 작살에 붙잡혀서, 클리너들이 몰려들더니⋯⋯.”


“구조 신호를 보낼 틈도 없이, 다 끌려가게 된 거야. 함선째로.”


“함선째로요?”


“그래. 아무래도, 스캐빈저들은 뭍 위⋯그러니까 현실세계에 부상할 수 없다 보니까, 필요한 자재를 함선째로 조달하고 있는 모양이더라. 그러니 먹어 치우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그런 거 아닐까⋯.”


원이름인 스캐빈저에서부터 클리너라는 이름에 걸맞은 짓이라고 호라이즌은 생각한다. 아예 있었다는 흔적을 없애면 전부 없었던 것이 된다. 그것을 흔히들 실종이라 말하곤 한다. 이면세계에서의 실종 처리. LOST는 곧 죽음. 흔적조차 없다. 깔끔하게 처리하는 그늘 밑의 청소부들.


“선별이라는 것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카메라로요. 도대체 뭘 한 거죠?”


“모르겠어. 이걸로 찍더니, 사람을 나눠서 이상한 기계에 우릴 밀어 넣었어.

 무슨 마트, 멘탈 어⋯응, 모르겠다. 겹겹이 쌓아서, 코어인가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했어.”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 살아남은 건 나 말고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다 미쳐버렸어.

 지금 나처럼 이상한 말을 하다가 죽어버렸지.”


헤더는 담담히 말을 잇는다. 그들에게 대한 죄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호라이즌은 생각한다. 조금 전의 사과는 그것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어떻게 멀쩡한 사람들은 그 배에서 노역을 했어. 그야, 아무리 자동화된 차원 함선이라고 해도 할 일은 많으니까.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싸구려 보호복을 입히고⋯⋯”


“아, 어떻게 도망쳤는지 이야기해야 하지?”


“아뇨 괜찮습니다. 헤더. 말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말씀하시죠.”



호라이즌이 원했던 정보는 없다. 그 카메라에 대한 것. 하지만 구태여 물어보지 않는다. 적어도 이렇게 말하고 있는 와중에는 발작의 증세가 덜해 보인다. 그것만으로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대가는 받았다. 그러면 목적을 완수 해야 한다. 그것만이 호라이즌이, 계속해서 인간을 혐오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기본적인 행동 원리니까.


나는 인간과는 다르다.

받은 것은, 돌려줄 것이며.

입은 손실은 반드시 받아 내야 한다.


너무나 간단한 약속. 규칙, 룰. 하지만 지키지 못하는 이는 수도 없이 많다.



“그냥⋯⋯뭘까, 여기가 그곳이라는 것을 들었어. 아니었을지도 몰라.

 눈앞에 게네들이 관리하는 카메라가 보였고, 항상 있던 이면세계의 틈새가 아니라 안정된 세계라는 걸 알았지. 그냥,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어.”


“카메라를 들고, 개네 중 하나를 찍으니까. 갑자기 침식체가 나오더라.

 놀라서⋯⋯달렸어. 살려달라고 했던 동료들을 버리고.”


“격납고로 도망쳐서, 그다음에는⋯⋯.”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마치, 칭얼거리다 지쳐 잠든 아이처럼 헤더는 가슴께에 손을 모은 채 후욱, 후욱. 거칠게 숨 쉬는 소리만을 내뱉고 있다. 호라이즌을 액셀 버튼을 누르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알고 있다. 사무실 소파에 각자 옷을 덮고서 누워있던 두 사람을. 채 뚜껑을 닫지 못한 위스키. 청소한답시고 했지만, 어질러진 테이블. 카스텔라의 바닥지. 새액새액, 드물게 그녀가 가위에 눌리지 않았고. 드물게 그녀가 깊은 잠에 들어있었다. 사무실에는 주백색 전등 불빛 하나. 거기에 젖은 둘의 얼굴. 늘 쓸쓸하게, 식어있던 사무실을 은근히 데우고 있는 묘한 체온. 그 모습을 보고서, 모포를 꺼내었던⋯⋯.


“⋯⋯.”






“헤더. 일어나십쇼.”


“헤더!”


“어? 응?”



호라이즌의 말에 헤더가 일어난다. 뭐야, 하고 고개를 돌린 그 곳. 우측 사이드미러를 보고서 아예 일어서서 고개를 뒤로 돌린다. 빛. 빛이다. 커다란 라이트. 그리고 그 너머의 새빨간 수많은 안광들.


“뭐야, 저거⋯.”


“이제 연구소까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거기서부터의 위치 좌표는 건넸습니다.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호라이즌.”


호라이즌이 액셀 버튼을 더 강하게 누른다. RPM이 치솟으며, 엔진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간다.

헤더는 조수석 머리 받침을 붙잡으며, 호라이즌의 푸른 눈을 바라본다. 그 말뜻은 이해하고 있다.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아뇨. 헤더. 받아야 할 것은 아직 많이 있습니다.

 반드시 데리러 가겠습니다.”


“⋯⋯응.”




핸들을 잡고, 왼쪽으로 돌린다. 최대속도로 달리던 험비가 급선회에 크게 기울어지며, 아슬아슬할 정도로 원심력을 버티다, 겨우 지면에 네 바퀴가 닿는다. 벌컥 하고 열리는 조수석 문으로 누군가 빠져나간 것을 가리며, 방향을 틀어 우측으로 빠져나간다. 쫓아오던 라이트와 붉은빛들은 그곳을 향해서 빠져나간다. 별도 빛도 없다. 있는 거라고는 어설프게 칠한 듯한 어둠뿐.



헤더는 걷는다. 옆에 보이는 연구소 건물. 그녀의 아버지가 탐색하러, 정확히는 탐색 호위를 하러 왔던 곳. 그리고 조금 더 가면 함선이 내렸던 곳. 헬기와 나머지가 대기했던 곳. 일어선다. 바닥을 굴렀던 충격 때문인가 잘 일어설 수가 없다.

아니다. 적어도 일어설 때, 두둑하고 부러져야 할 발목이, 인대가. 둔탁한 소리를 전혀 내지 못한다.

물컹하는 소리. 이미, 녹아버렸다. 오른팔로 겨우 지지하려는 순간 엎어진다.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다. 팔꿈치 아래부터가 말랑말랑하다. 힘을 받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일어섰다. 왼팔로 어떻게든 일어섰다.




눈앞에는 손. 커다란 손. 그래, 우리 공주님. 하고 기름진 손. 기름진 내음. 맛있는 냄새. 거친 체온. 까끌까끌하고⋯⋯.



“하악, 하악⋯.허, 후욱⋯쿨럭⋯쿨럭⋯"



거셌던 손. 아파. 아빠. 아파. 거세게 숨을 들이쉬고서, 내려다보는 눈. 실수했다는 걸 알면서도, 격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녀를 때렸던 손을 붙잡고서 이를 악문 얼굴.


-그딴 말을 해? 할머니잖아!



“허억, 허억⋯우⋯우우우우우우⋯”



일어선다. 걷는다. 걷는다기보다는 헤엄친다.

알고 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잖아. 당신도 실수했잖아.

그러면 나도 실수 할 수도 있잖아. 나도 아프잖아. 보듬어 줄 수 있었잖아.

좀 더, 좀 더, 좀 더, 나를. 사랑해줄 수 있었잖아.


안아 줄 수 있었잖아.



엎어진다. 앞으로 조금. 거기까지 가면 곧이다. 바보 같은 용병. 진작에 도망가면 될 텐데.

돌아올 이들을 기다리다, 통하지도 않는 싸구려 총을 갈기다 죽었다. 1종 침식체 디몰리셔가 내지른 주먹에 오른팔이 통째로 날아가고, 바닥을 구른 뒤에 몇 번이나 기었다. 죽을 수 없다. 아직 죽을 수 없다. 놓친 소총을 들고서, 하나라도 더. 그래야 다른 이들이⋯⋯.



“허억, 허억⋯억, 억⋯⋯. 하아, 하아, 하아⋯⋯콜록, 콜록.”



물속에 있는 것 같다. 액체도 고체도 아닌 물속에 있는 것 같다. 되다만 젤리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그곳까지 간다. 그 남자가 일어섰던 곳으로. 도망가. 일단 물러나. 하지만⋯⋯!



“그랬겠지. 그러셨겠지.”



아직 올 사람이 남았으니까, 좀만 더⋯⋯! 하고 말했겠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뱉는 점에 주저가 없었겠지. 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것을 이룰 능력은 없었겠지.

아, 아아아아.

왜 이리도 구차할까.

왜 이리도 추할까.

왜 이리도 주제넘을까.

왜 이리도⋯⋯.





눈부실까.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요. 아빠. 나 아파. 진짜 아픈데. 흑, 미안해요.

이제서야 왔어요. 이제서야 알았어. 근데, 알죠? 아빠도. 잘못했었잖아요.

나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 결국, 난 혼자서 도망쳤어.


아빠. 나 아파. 죽을 것 같아.

아파. 아빠⋯아아악!



“야이, 쓰레기, 허억. 쿨럭쿨럭. 새끼야⋯⋯! 좋냐? 좋아?!”


“혼자서 그렇게 뒤져버리고, 좋아? 콜록, 콜록, 오우웨에엑⋯”



미안해요.

미안해.

몰랐어.




몰랐단 말이야.

그치만, 아빠도 내가 바랐던 건 몰랐잖아.







“⋯⋯아빠, 난 아직도 아빠가 미워.”












https://youtu.be/zlzzU8JpRqE?si=acPLmEvLw3UJSlaE









“⋯⋯⋯⋯⋯⋯⋯⋯⋯⋯⋯⋯⋯⋯⋯⋯⋯⋯⋯⋯⋯⋯⋯⋯⋯⋯⋯⋯⋯⋯⋯⋯⋯"





그야 이제, 그 말조차 전할 수 없으니까.

그 때의 감정은 그 때의 감정으로 멈춰버렸고.

더는 변할 수가 없으니까. 바꾸고 싶어도 전할 대상이 없으니까.

마치 점프했더니 지면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니까.

이제 어디로 떨어져야 할까 고민했더니 우주 속에 내던져진 것 같으니까.









아빠, 나 이제 죽어.

당신처럼, 멋지게는 아니지만 죽어.


















헤더의 눈가에 은빛이 비친다. 어둠밖에 없는 세상. 흑연이 그린 세계에 잠시 빛이 찾아온다.

이 세계를 그린 이가 잠시 크레파스를 잘못 들이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선명하고, 깊고, 밝은.

푸른 눈동자가 그녀의 눈동자를 비춘다. 가득 메운다. 아직, 아직, 아직.



당신처럼, 멋지게는 아니지만 죽어.



아직,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그 아이는 그녀였다. 아주 달랐지만, 그녀였다. 분명히, 지금은 아닐지 모른다. 그녀처럼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헤더!!!”










아직, 헤더 영의 목숨은 남아있다. 얼마나 구차하든, 얼마나 추하든, 얼마나 혐오스럽든, 상관없이.

그냥 그저 그렇게, 남아 있다. 그냥 그런 것이다.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차량. 뒤쫓는 드론의 총격. 






















































“그래. 호라이즌.”




그녀는 다시 한번, 경계선의 손을 잡는다. 인간 순수의 경계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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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마지막 또는 다다음에서 끝.

컨셉과 가독성 중에서 컨셉을 고르고 후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