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며 유선이와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신고했는지 경찰이 와서 상황을 정리 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뒤집어 쓴 인간의 피로 인한 충동과 허기를 참기위해 유선이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떨고 있었다.


지난날 유선이의 팔을 물었을 때 유선이가 지었던 표정을 필사적으로 떠올리면서.


옛 친구가 갑자기 자신을 잡아먹으려 들어서 인지 유선이 역시 작게 몸을 떨고 있었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더러운 인간들! 전부 죽일 거야! 죽일 거라고!”


선율이는 나에게 맞아서 얼굴이 부은 상태에서도 독기 어린 저주를 남기며 끌려갔다.


“선율아….”


끝내 유선이는 그런 선율이를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었다.



현장에서 곧바로 물이 끼얹어지고 몸을 씻어내고 나서 사정청취를 마치고 난 뒤 나와 유선이는 현장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 뒤 갈아입을 옷을 가져온 ‘엄마’랑 몇마디 대화를 나눈 뒤 유선이는 나에게 기운없이 먼저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같이 돌아가자고 했지만 유선이는 힘없이 고개를 젓고는 먼저 가버렸다.


“아주 큰 일이 있었던 모양이네. 괜찮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괜찮아. 피를 뒤집어 썻을 뿐이니까.”


“그 애도 참 고약하구나. 미리 훈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큰일 났을 거야. 그렇지?”


선율이를 때리면서 했던 생각들을 애써 뒤로 밀어넣으며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그보다 유선이는? 괜찮을까?”


“유선이는 보기보다 강한 아이야. 마음속의 나약함도 강인함도 숨김없이 드러내지. 정말 힘든 일이 있다면 찾아올 거야. 그때 잘 달래주렴.”


‘엄마’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는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물었다.


“엄마 때는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났어?”


내 말을 들은 엄마는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어쩌다가 간혹.”


“대처는?”


“사형이지.”


“예방책은 있었어?”


“피에 익숙해지는 것 밖에는 없었어. 그리고 혈액 팩의 관리를 좀 더 엄격하게 하는 정도랄까.”


“요즘에는 혈액팩의 관리가 허술한가 보네.”


“아니, 요즘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거야.”


“그렇게 관리가 엄격하다면 선율이는 어디서 피를 구했는데?”


“사람 몸안에 있잖니. 가득.”


‘엄마’의 말을 들은 나는 가만히 엄마를 바라보다가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 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엄마랑 나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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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이는 멍하니 난간에 기대어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나는 인간이 싫어!’


유선이는 선율이에게 살해당할 뻔했다.


이는 자명한 사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선이는 어딘가 선율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무언가 빼앗을 게 있거나 죽이면 이득이 되는 게 있어서 였다면 유선이도 선율이가 자신을 죽이려 한 걸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인간이 싫어서 유선이 자신을 죽이려 든 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해할 수 없는 동기로 벌인 일로 인해 선율이는 죽을 것이다.


마지막 만남을 피로 덧칠한 채로.


“….”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유선이의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옆을 보자 지난날 만났던 여자가 유선이의 옆에서 싱글거리며 서있었다.


“그냥…. 이것저것요.”


“이것저것? 무슨 이것저것?”


“이것저것이 그냥 이것저것이죠.”


“그래? 무슨 고민인데? 이 누나에게 말해 봐.”


“….”


이걸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좋은 걸까 생각하던 유선이는 곧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났어요.”


“응, 그래서?”


“그런데 그 친구가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흔한 일은 아니네.”


“흔한 일은 아니죠.”


“그런데 너는 멀쩡히 살아있네. 운이 좋은 편인가봐?”


“….”


“그런데 왜 그렇게 죄 지은 표정이야?”


여자의 물음에 유선이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한차례 쓸어내린 뒤 말했다.


“죄 지은 표정이요?”


“응. 그냥 네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일은 아니었던 가지? 한번 말해봐. 들어줄 테니까.”


“그게…. ”


“응.”


“제 친구는 화인이었어요.”


“화인?”


“네.”


“그래서?”


“그런데 제 다른 친구한테 혈액팩을 던지면서 저를 잡아먹도록 유도했어요.”


“혈액팩이 안 터진 모양이네.”


“아니요. 혈액팩 자체는 제대로 터졌어요. 하지만 저를 구해줬을 뿐이죠.”


혈맥팩이 제대로 터졌다는 말에 여자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흥미롭네. 그 친구 이름이 뭐야?”


“화인이요. 유화인.”


“아직도 통제 훈련을 받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네.”


“통제 훈련이요?”


“응, 그 친구가 너를 아주 아끼나봐. 그렇게 할 정도니.”


“….”


여자의 말을 들은 유선이는 어딘가 기운이 빠진 듯이 말했다.


“지난번에 나눴던 대화 기억하세요?”


“응, 기억하지.”


“저는 분명히 사람과 화인이 화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각했어요. 라는 건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야?”


“물론 아니예요. 다만 자신이 좀 없어졌을 뿐이죠.”


유선이는 두손을 깍지를 끼우며 말했다.


“알아요.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배신이라는 것을. 하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와도 화합을 하지 못한 제가 과연 화합을 주장할 자격이 있는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요.”


유선이의 말에 여자는 유선이에게 말했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한바퀴 돌아서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지.”


“못들어본 말인 것 같은데요.”


“응, 내가 방금 너보고 지어냈거든. 이미 화합의 휼륭한 예시가 바로 옆에 있잖아?”


여자의 말을 들은 유선이는 여자쪽을 바라보다가 살짝 입을 벌렸다.


“화인이….”


“그래, 그 아이는 네 친구 아니야?”


“…제가 어리석었어요.”


“그리고 또 할 말이 있을 텐데? 너, 가끔보면 자아 비대한 거 알아?”


여자의 말을 들은 유선이는 목 뒤를 긁적이며 말했다.


“네, 제가 건방졌어요. 화합의 가치가 제 인간관계에서 완결나는 것도 아닌데.”


“알면 됐어.”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유선이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일단 첫번째로 할 일은 다시 선율이를 만나는 것이다.


용서? 용서는 이미 했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유선이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정했다.


아무리 나를 죽이려 했다고 해도 선율이는 내 친구야.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돌아가자. 일단 돌아가서 탄원서라도 써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유선이는 여자에게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항상 도움만 받는데 성함 하나 모르네요.”


“내 이름?”


여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 이름은 유세은이야.”


<>


유선이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한 일은 바로 나에게 통보 하는 일이었다.


”화인아, 나 선율이를 위해서 탄원서를 쓸 거야.“


“그 애는 너를 죽이려고 했잖아.”


“하지만 아직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잖아. 결과적으로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으니까. 응?”


이건 착한 건지 호구인 건지 모르겠네.


사실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선율이가 죽던지 말던지 신경쓰지 않기로.


유선이를 죽이려 했으니까. 유선이를 위험에 빠트렸으니까.


하지만 유선이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선율이를 구하려 하고 있었다.


“만약에 하지마라 하면 안 쓸 거야?”


“평소라면,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랬을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어.”


“….”


어차피 막아봤자 유선이는 하겠지.


게다가 나는 뇌구조 상 글을 읽을 수도 없으니 탄원서를 쓰는 지도 모를거다.


그렇기에 나는 유선이에게 말했다.


“좋아.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나는 선율이를 위해서 뭔가를 하지는 않을 거야. 난 정말로 선율이에게 실망했으니까.”


“알았어. 뭔가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게.”


“좋아.”


내 ‘허락’을 얻고 싱글벙글 하는 유선이의 얼굴을 보며 언젠가는 저 착하기만 한 성격을 고쳐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방안에 가둬두고 내가 한 요리만 먹이면서….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몸이 여자가 되서 그런지 아니면 몸이 그런 성격인건지 가끔 이런 이상한 생각이 떠오른다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이 사건이 더 큰 사건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날 밤. 비슷한 사건이 곳곳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피를 뒤집어 쓰고 순식간에 주변 화인들에게 물어뜯겨 죽은 사람의 속보가 텔레비전에 뜬 것이다.


한참 뉴스를 보고 있는데 유선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인아! 너도 보고 있어?


“응.”


-내가 자의식 과잉이 아닌거지? 이거 우리가 겪었던 일이랑 비슷한 일 같은데…?


그 밖에도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속보가 쏟아져 나왔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