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8)

― 반찬 투정








“와, 뭔 일이래?”


“혼자만 아는 이야기는 지양했으면 좋겠군요. 뭘 보고 있습니까?”


“너튜브 뉴스. 요즘 벽이 부서져서 수리하는 집이 그렇게 많대.”


“놀랍군요. 단백질 반죽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집 벽을 그렇게 부순답니까?”


“그러게 말이야. 붕괴도 아니고 벽만 부서질 정도면 일부러 도구로 치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제가 만든 건 안 먹습니까?”


“어⋯ 어?”




최근 탑재한 조리기능을 써보겠다며 만든 게⋯ 이건가⋯?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식탁 앞에 서 있는 호라이즌을 올려다보았다.


⋯⋯.

뭔가 먹고 싶게 생기진 않은 것 같은데.




“그 앞치마 못 보던 건데, 잘 어울리네.”


“말 돌리지 마십시오, 김카붕. 저에겐 말 돌리지 말라고 하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모순입니다.”


“그런 모순을 견디는 것이 휴먼 아니겠습니까~ 용용이 써진 빨간 앞치마가 잘 어울리시네요~”


“아부는 됐습니다. 제 소체의 외형이 우월하단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맛보십시오.”


“⋯⋯.”


“감상평을 200자 내로 남기는 걸 희망합니다.”




호라이즌은 내려놓은 그릇을 나에게 살짝 더 밀고는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물론⋯ 못 만든 것은 아니지만⋯ 아니⋯ 지만⋯




“이건 풀죽⋯ 이잖아⋯⋯.”


“정정을 요구합니다. 엄연히 ‘나물죽’이라는 이름이 존재하는 음식입니다.”


“싫어! 카붕이는 야채 싫어엇!”


“제가 준 설명서를 읽었으면 당황할 일도 없었을 겁니다. 편식하지 마시죠, 김카붕.”


“우우⋯ 카붕이⋯ 설명서 시러⋯ 고기 먹고 싶⋯⋯”


“⋯⋯.”


“죄송합니다.”




호라이즌의 손에는 어느샌가 국자가 위협적으로 들려있었다⋯⋯.

쇠파이프보단 하찮지만, 호라이즌이 들면 그게 설령 숟가락이라고 하더라도 흉기가 되니 반찬 투정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지못해 풀죽⋯ 이 아니라 나물죽을 한 숟가락 맛을 보는 순간.




“음⋯?!”


“어떻습니까, 김카붕. 제가 소금간까지 소수점 세 자릿수까지 정확히 달아서 만든 나물죽입니다.”


“미미.”


“김카붕도 언어 모듈이 고장 났습니까? 미미는 어느 집 휴먼 이름입니까.”


“美味!”


“진공관 맙소사. 또 제가 휴먼들의 언어유희에 놀아나고 있는 것 같군요.”


“하하, 생각보다 맛있어. 굉장한데, 호라이즌? 점심 다 먹고 내가 커피 내려줄게. 미각 모듈 켜져 있는지 확인해볼래?”




상상했던 맛과 전혀 달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 그래도 날 생각해서 정성을 다해 만들었는데 반찬 투정은 좀 너무했지.


나는 감사의 의미로 호라이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후식을 제안했다.

냉각기가 또 빨갛게 점멸하면서 쉬이익 소리를 내지만, 나는 그걸 긍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맞아, 이번에 너튜브에서 몇호였더라⋯ 7887호였나? 호라이즌이 입에서 피자를 만들어내던데.”


“설명서 좀 읽으십시오, 김카붕. 기본으로 탑재된 기능인 걸 아직도 모르고 있었습니까?”


“헉, 진짜? 전혀 몰랐네⋯”


“언제쯤 읽을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기대도 안 했습니다만, 그래도 나중에 재료를 준비해오면 만들어드리죠.”


“오예! 호라이즌이 최고야! 고마워!”




앗싸! 호라이즌이 만들어주는 피자!


약속받았으니 풀죽 먹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항상 그랬듯, 나는 호라이즌의 머리 위로 오른손을 뻗었는데, 어째서인지 호라이즌은 내 손을 대뜸 붙잡곤 지긋이 바라보았다.




“호라이즌?”


“⋯심신 안정을 위해 제 머리를 쓰다듬든 행위는 당분간 삼가해 주시겠습니까.”


“엑?! 왜? 아! 그러고 보니 쓰다듬으면 냉각기 소음이 엄청나던데, 조만간 본사 점검받으러 가볼까?”


“부정. 접촉 시 CPU의 온도가 상승하는 원인 정도는 스스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호라이즌이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손 안 올릴게.”


“싫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눈치만 없는 줄 알았더니, 센스도 없군요.”


“크윽⋯”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야⋯!

뭐, 일단 그러지 말라니 하지 않기로 했다⋯⋯.




“움, 호라이즌동 볼랭? 너튜브.”


“입에 있는 건 다 먹고 말하십시오.”




패드를 세워 호라이즌도 볼 수 있게 식탁 한쪽에 올려두었다.

켜놓은 화면엔 생방송 토크쇼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 토크쇼를 보며, 나는 풀죽을 호라이즌은 윤활유를 홀짝였다.




[ 오늘의 갑퀴즈! GAPSUNG에서 ‘호라이즌’ 모델 개발 및 양산에 성공한 엠버 박사님을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박사님. ]


[ 이야, 제가 박사님을 뵙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생방송으로 보고 계실 시청자 여러분께⋯⋯ ]




“그렇지. 호라이즌을 만든 어머님이 갑퀴즈에 나오지 않을 리가 없지. 무조건이지.”


“김카붕, 어머님이라는 호칭은 지양해주시죠.”


“그래? 창조주가 더 부담스럽지 않아?”


“그냥 박사라고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음⋯ 호라이즌이 그렇다면, 그게 맞는 거겠지.”




양산기라서 그런가, 이런 지칭이 별로 와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부담스러운가⋯?

아무튼 내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냥 ‘박사’라고 칭해야겠다고 결론을 지었다.




[ 원본 호라이즌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급형 호라이즌도 원본과 유사한 카탈로그 스펙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맞나요? ]


[ 네, 원본과 보급형의 오차율은 94.98%라고 단언해 드릴 수 있을 만큼 유사하며, 설명서만 바르게 숙지한다면 호라이즌은⋯ ]




“근데 진짜 설명서 너무 두껍던데⋯ 요약본은 없어?”


“김카붕은 책 읽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죽은 휴먼이 썼던 소설 읽을 때 작가 관뚜껑 열고 ‘요약 좀’ 그럴 겁니까?”


“뭣?”




실없는 소리가 오가는 동안 갑퀴즈 인터뷰는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엠버 박사님? ]


[ ⋯⋯. ]


[ 엠버 박사님? ]


[ 딸아! 엄마는 기다리고 있단다! ]


[ 자, 잠깐! 박사님 생방송 입⋯]


[ 제발 돌아와다오⋯! 네가 윤활유가 맛이 없다며 가출한 지 벌써 반년이 되어가는구나⋯! ]




“와우.”




[ 엄마는 네가 없으면 더는 살 수가 없어⋯ ]


[ 우리 딸 호라이즌을 위해 엄마가 윤활유 컬렉션 룸을 만들어 놨으니, 제발 돌아와 주렴⋯! ]


[ 잠시 방송 사고ㄱ⋯ ] 




“엣? 호라이즌?”


“이런. 손이 미끄러졌군요.”




호라이즌이 패드에 손가락을 올려 다음 영상으로 넘겨버렸다.

뭐, 어차피 방송사고라 자동으로 영상이 종료됐을 테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나저나 안타깝네. 원본이 가출했다니⋯ 빨리 찾으셨으면 좋겠다.”


“반년이나 돌아오지 않는 거라면 이미 글렀습니다. 포기하는편이 엠버 박사에게 더 도움이 되겠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반년? 정도 됐으면 그때 막 1가정 1호라이즌 광고 나오면서⋯? 보급형 호라이즌을 팔 때였으니 그사이에 실수로 섞여 들어갔을 수도 있고?”


“흥미롭군요. 원본이 제 발로 보급형 사이에 들어가서, 보급형 로봇인 척한다니. 진공관께서도 감탄하실 겁니다.”


“음, 너무 말이 안 되나?” 




하긴 원본이 실수로 섞여들어 갔으면 제 발로 나왔겠지, 스스로 보급형을 자처했을 것 같지는 않네.

내가 너무 일차원적으로 생각했어.


실없는 소리를 하는 동안 호라이즌도 나도 빈 캔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 다 먹었다.”


“오, 남김없이 다 먹었군요. 다음에도 해드리죠.”


“다음엔 고기반찬 해주면 안 돼?”


“편식하지 마십시오. 김카붕.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고려해보겠습니다.”


“아, 좋아 좋아. 흐흐, 내가 치울게. 호라이즌은 쉬고 있어.”


“휴먼이 하는 것보다 제가 더 빠릅니다. 얌전히 커피나 내리십시오.”


“아주 날 커피포트 취급하는구나⋯ 에휴, 알겠습니다~ 어떤 메뉴를 고르시겠습니까, 손님?”




그래도⋯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호라이즌을 보니,

이런 취급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고 데려온 호라이즌이니까.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으면서 연하고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부탁드리죠.”


“⋯⋯.”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