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ily/105309606?p=1

이전 화


…5월 29일


이 저택에 메리 양이 온 지도 일주일이 다 되었다. 정원에 봉오리로 남아있던 몇몇 장미들도 고개를 든 참이지만 새로 온 메이드와는 좀처럼 잘 맞지 않는다. 나는 요즈음 들어 능력이 유능한 사람과도 여러가지 인간성 차이로 잘 성미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물론 메리 양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요리에는 흠잡을 곳이 없다. 메리 양은 근처 이국에서 유래한 요리 중에서도 프랑스 음식을 특히 잘 안다. 개중에는 내가 모르는 음식도 많아 아가씨의 흥미를 돋구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외형을 봐서는 프랑스 혈통하고는 전혀 무관계해보이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음식들을 배워왔을까? 직접 물어보기도 했지만 본인은 스승에게 언질을 들었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이렇듯 요리라는 분야에 한해서 메리 양은 굉장히 유능하다. 단지 요리가 아닌 다른 부분들에서 놀라울 정도로 헤이해 질 때가 있어서 골치가 아플 뿐이다. 오늘만 해도 아침에 방에서 부스스한 머리를 묶지 않고 그대로 주방에 내려와 나에게 꾸중을 들었다.


“메리 양. 전에 근무하시던 곳에서 이직하시게 되어 아직 익숙치 않다는 사실은 잘 압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한에서 기본적인 예절은 지켜주셔야지요.”


내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메리 양은 머리를 뒤로 말아 올리고, 끈으로 묶어 고정시켰다.


“죄송합니다, 미시즈 웰링턴. 환경이 바뀌니 익숙하지 않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면 모르지만 한 번 저지른 사소한 실수로 추방을 고려할 정도로 악독하지는 않아요. 그저 부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주시길.”


면접 시 기본 매너 상식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매너가 완전히 몸에 배어있지는 않은지 의식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깜짝 놀랄만한 행동을 하는 모양이다.


또한 어쩐지 에밀리아 양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정확히는 어째서인지 메리 양이 에밀리아 양에게 적의를 산 듯 하다. 적어도 나는 에밀리아 양이 메리 양에게 먼저 말을 건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인 숙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있을 때는 그나마 알음알음 대화를 나누는 편이지만 말이다. 그런가하면 엘리아나 양과도 생각보다는 사이가 좋아보이지 않는다. 이쪽은 오히려 메리 양이 엘리아나 양을 피하려 든다. 엘리아나 양은 평상시처럼 웃음을 지으며 다가가려고 하는데도, 메리 양은 그 표정을 거북해하는 듯한 느낌이다.


본래라면 고용인이 어떤 사생활을 보내던 간에, 피츠로이 가의 품위를 떨어트리지만 않으면 나로서는 크게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생활이 직무에 실제로 영향을 끼친다면 큰 문제가 된다. 이 경우에 메리 양은 사생활이 직무에 영향을 끼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나중에 따로 불러 각자 상담을 하도록 하자.


아무튼, 오늘은 일전에 세운 가설을 증빙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일정표를 확인했는데 아가씨에게 어떠한 일정도 없다. 그저 애프터 눈 타임을 마치고, 산책을 한 뒤 들어가서 편히 쉬기만 하는 날이다. 오늘은 내가 계단 측을 일임해서 청소했다. 난간 구석구석에서 사자상의 이빨에 이르기까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닦았다. 만약 다른 메이드가 이곳을 담당하면 건성건성 일을 처리하여 아가씨가 병에 걸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부터 궁금했던 사실이 하나 있다. 과연 아가씨는 어떤 상상을 하며 그 행위를 할까? 이 의문은 수면 위에 낀 안개처럼 내 심상에 남아있다. 전에 하인 치마를 사용하셨다는 점에서 여색 취미를 가지고 있으시다는 점은 확실해보인다. 그렇지만 거리가 거리이다 보니 하인복이라는 사실만을 알아챘을 뿐이지 누구의 옷이라는 점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여색 취향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저택에 거주하는 메이드라면 누구를 골라도 납득은 가능하다. 에밀리아 양? 엘리아나 양? 엘시 양? 가능한 사람을 떠올릴 수록 심상에 낀 안개가 짙어졌다.


…… 만약 아가씨께서 쥐고 있던 옷이 다름이 아니라 내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가능성을 상상하자마자 마음 속 심상에 드리웠던 안개가 걷혔다. 안개 너머로 나타난 존재는 헐벗은 채 울먹이는 아가씨였다. 아가씨는 흰색 코르셋을 한 올 한 올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붉은 색 드레스를 발로 즈려밟으며 내게 다가왔다. 굳은 살조차 배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운 손가락이 내 뒷목을 쓰다듬었다. 아가씨께서는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눈을 비비면서 다리를 흔들었다.


이 즈음에서 나는 문득 내 감정이 아가씨께서 품고 계시는 변태 성질과 굉장히 흡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도달했다. 사자상을 닦고 있던 손에 혈관이 두드러졌다. 입술이 떨렸다. 사자는 내 얼굴을 노려보며 무언가를 추궁하고 있었다. 감히 네가 그럴 수가 있느냐? 감히 네가 그런 감정을 품을 수가 있느냐?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나는 갈기를 닦던 손을 멈추고 뒷걸음질쳤다.


“미시즈 웰링턴.”


“네. 엘리아나 양.”


나는 동요를 최대한 숨기며 말했다. 엘리아나 양은 평소처럼 싱글벙글 미소를 띄며 말했다.


“저어, 메리 씨도 오셨으니 이 주 휴가를 나가고 싶은데요. 약속보다는 이틀가량 이르지만 괜찮나요?”


“네. 괜찮습니다. 다녀오도록 하세요. 애초에 인력 관리안은 누군가 한 사람이 휴가를 다녀와도 상관 없도록 배치되어 있으니까요.”




…5월 30일


나는 결국 어제 아가씨께서 수음을 하시는 지 보러 가지 않았다. 시계를 품 안에 안은 채 시간을 보낼수록 심상 속에 생긴 아가씨가 더욱 뚜렷해지는 바람에, 나 자신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지조차 모르게되어 가기가 두려워졌다. 심상 속에 있는 아가씨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할 지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일기를 전으로 되돌려 내가 적어온 글들을 읽어보았다. 읽으면서 내가 아가씨에게 정녕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자문했다. 일기 속에는 사체를 빨아먹은 나무. 지베베베벳하고 우는 박새. 잔을 깨트린 아이에 관하여는 적혀있었지만 내가 바라는 답은 적혀있지 않았다. 일기를 집어넣고 잠자리에 들려고 한 때는 이 즈음이다.


“미시즈 웰링턴.”


“엘시 양.”


어제도 자기 전에 엘시 양이 방에 들어왔고, 나는 엘시 양을 환대해주었다. 그 순간 나는 퍼뜩 내가 여성에게 욕정하는 성향인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엘시 양이 잠에 들기 위해 모로 누웠을 때, 나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엘시 양. 아직도 밤이 춥나요?”


“네?”


“전에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서요.”


“아. 네. 조금은요.”


엘시 양은 머뭇거리면서 답했다.


“……정 그렇다면, 오늘은 옆에 오셔도 된답니다. 저도 조금 쌀쌀하네요.”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잠시 뒤 베개 건너에서 이불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등에 따스한 홍차잔 같은 감각이 달라붙었고, 새근거리는 콧바람이 닿았다.


나는 자는 시늉을 하면서 엘시 양을 와락 껴안았다. 엘시 양은 잠자코 내 품 안에서 숨을 죽였다.


나는 엘시 양을 안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살결이 부드럽다. 등은 조그맣고, 어깨는 누르면 물컹물컹한 뼈가 느껴진다. 이 몸을 만져도 나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않는다. 굳이 어떠한 감각을 느낀다고 한다면 이런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하루하루 노동에 종사하는 엘시 양에게 보내는 대견함 뿐이다. 나는 이 몸에 욕정하지 않는다. 이 몸에 욕정하지 않는다. 나는 동성에게 욕정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제서야 별난 고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욕정하지 않는다. 나는 정상이다. 나는 죄를 지은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엘시 양이 내 손에 자기 손을 포갰을 때, 나는 깜짝 놀라 손을 떼어내고 말았다. 갑작스레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댄 듯한 느낌이었다. 더 이상 디뎌서는 안 된다는 반사적인 거부였다. 엘시 양은 상처입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어째서인지 덩달아 상처입었다. 죄의식. 나는 내가 어떠한 행위를 했는지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엘시 양이 말했다.


“손이 따뜻했어요.”


잠시 뒤, 엘시 양이 말했다.


“그런가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조용히 잠에 들었다. 눈을 감고 나서도 내 사정만을 위해 소녀를 상처입혔다는 죄악감이 마음에 계속 남아있었다. 다행인 사실은, 그 죄악감 덕분에 아가씨의 나체를 조금이나마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노블 AI가 뽑은 주인공 =상


너무 어린 감이 있지만 그러려니 혀

돈 없어서 주인공 밖에 못 뽑았어

제목 바꿀건데 고민중

15화 되면 노벨피아에 올릴 생각이다

앞으로 나올 내용 생각해보니 이 수위를 견딜 수 있는 곳이 거기 밖에 없겠더라

플러스 올라가고 나서도 갤연재 안 끊을거니까 안심하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