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수감자들의 업무 종료를 승인합니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단테가 업무 종료를 알리고 수감자들에게 인사를 건내자, 수감자들 또한 인사를 건내고는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싱클레어는 돈키호테의 뒤를 따랐다.


글쎄, 있는거라곤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과 단순한 사용감이 뭍어나오는 가구 몇 개만 있는 각박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자신의 방보단 유치하고 정신은 없지만 그래도 정겨운 분위기의 돈키호테 씨의 방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돈키호테의 유무였다. 돈키호테가 아니면 썩 마음에 들진 않더라도 굳이 그의 방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으니.


"돈키호테 씨."


"알고 있소. 자, 따라오시게."


돈키호테 씨의 옷깃을 슬쩍 잡으며 이름을 부르니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내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답을 건내온다. 답과 함께 건내진 돈키호테의 손을 붙잡고, 둘은 함께 문을 향해 갔다.


손 하나 잡았다고 심장이 빠르게 맥동한다. 그 마음을 부정하지도 않고, 이미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저, 한순간이라도 더 그 모습을 담고자 눈을 굴렸다. 어짜피 방에 들어서면 실컷 바라볼텐데. 그래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니,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잠시 넋을 놓았더니 금새 문 앞에 도달하였다. 돈키호테가 닫힌 문을 열어 젖히자 익숙한 방의 풍경이 드러났다. 어서 가세나! 앗..! 돈키호테는 신난 듯 속삭이며 들뜬 모습으로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섰고, 자연스레 넘어지려는 몸뚱아리의 균형을 잡고선 늦지 않도록 문을 닫는 것은 싱클레어의 몫이였다.


쿵, 둔탁하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방의 중앙으로 자신을 이끈 돈키호테는 손을 놓고선 빙그르 돌아 얼굴을 마주보며 달려들었다.


"내 그대의 귀여운 얼굴을 보면서 얼마나 품 안에 거두고 싶다는 욕망을 참은 지 아시오 싱클레어 군? 어서 칭찬해주시게!"


"네네~ 돈키호테 씨. 잘하셨어요. 저도 꽤나 열심히 참았다구요?"


품에 와락 달려들어 안긴 돈키호테 씨가 얼굴을 부볐다. 부드러운 볼살과 황금빛 머리카락이 뺨에 스쳐오는 감각이 느껴졌다. 숨을 들이킬 때 마다 레몬향과 오렌지 향이 섞인 향이 폐를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앗, 이럴 때가 아니지. 싱클레어는 정신을 차리고선 어색하게 허공을 떠돌던 손을 거두어 돈키호테에게 둘렀다. 한 손으론 머리를 쓰다듬자, 머리도 좋지만.. 그 손길이 얼굴을 훑었음 하는군. 돈키호테는 맞댄 뺨을 거두고선 눈을 바라보며 뺨을 쓰다듬어 달라며 보챘다. 옅은 미소를 띄고 있는 돈키호테의 뺨을 어루어만지자 손에 보통 사람보다도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역시 부드러우시네요. 계속 만지고 싶을 정도에요."


"그런가? 그렇다면 뺨에 흉을 남기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소."


그러면서 자신의 손에 한 쪽 눈을 슬며시 감고선 얼굴을 부벼대던 돈키호테 씨가 남은 눈 마져 살짝 감고선 배시시 웃으며 옅은 홍조를 띄었다. 


"돈키호테 씨라면 흉터조차 사랑해 줄 수 있는데도요?"


"으으음.. 그래도, 그건 싱클레어 군의 기쁨을 하나 앗아가는 일이 아닌가."


감았던 눈을 뜬 돈키호테가 눈을 데구룩 굴리며 말했다. 게다가 뒤틀린 이단심문관처럼 뒤틀린 얼굴이 되면 어찌하겠소! 그럼 이제 싱클레어 군이 날 사랑해주지 않을거 아니요.. 조금 시무룩해진 얼굴의 돈키호테가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런 돈키호테를 바라본 싱클레어는 양 뺨을 잡고선 양쪽으로 쭉 늘여뜨렸다. 양 뺨을 붙잡힌 채 워하흔게효오오 하며 가슴팍을 통통 치는 돈키호테였다.


"돈키호테 씨가 어떻게 뒤틀리든 상관없어요. 그래도 여전히 사랑해줄거니까요. 그러니까 걱정 푸시라니까요?"


그 말과 함께 미소를 건내자 반항을 멈추고선 잠시 바보같이 입을 연 채 가만히 눈을 마주치는 그녀는, 그험 나호 그히 하헷호! 뺨을 늘여뜨리니 말이 제대로 나올 리 없었다. 물론 그런 점이 좋아서 함께하고 있었지만.


"다리도 아프실텐데, 이제 침대에서 편하게 있어요."


뺨을 놓아주고선 마치 거대한 대형견을 들어올리듯 끌어안아 침대로 돈키호테 씨를 배달하려 했다.


"아니, 싱클레어 군?! 자네 언제부터 이리 힘이 강했던게요?


갑자기 들린 돈키호테 씨가 당황하며 내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일을 하면서 경험도 많이 쌓였고.. 다같이 강해진 덕분인거 같아요."


잠시만,


"..돈키호테 씨는 그럼 제가 돈키호테 씨를 들지도 못할거라 생각하신 거에요?!"


괜시리 삐친 싱클레어는 돈키호테를 안아든 손을 흔들었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돈키호테가 싱클레어의 팔을 잡고선, 안! 아니! 싱클! 레어! 구우웃.. 군이! 너무! 말랑하아아아잖소오오옷으아아아아. 나중엔 아예 몸을 털었다. 그 상태로 함께 침대에 나가떨어졌다. 푹신한 침대가 이쯤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 비명조차 내지르지 않고 가뿐하게 버텨냈다.


돈키호테가 배 위에서 안긴 채 싱클레어의 조금 가쁜 호흡에 맞춰 위아래로 함께 움직였다.


"후.. 그거 알아요 돈키호테 씨?"


"그, 이제 안 흔드는게요? 다행이군.. 그래서, 뭘 아냐는겐가?"


"제가 사용하는 할버드 말이에요. 돈키호테 씨보다 무거워요."


"아니, 그렇소? 호리호리하니 그리 무겁진 않을거 같았는데 말이오."


"물론 돈키호테 씨의 랜스에 비하면 가볍긴 해요."


싱클레어가 돈키호테의 머리에 얼굴을 부볐다. 상큼한 향이 더욱 짙게 흘러들어왔다. 간지럽잖소! 간지럽다는 투정을 들은 것도 같지만, 들리지 않는다는 듯 흘려들은 싱클레어는 돈키호테를 더욱 끌어안으며 미소를 보였다.


"시잉클레어어 구우우운! 자꾸 그러면 각방쓸게요!"


아앗, 알았어요.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에서 얼굴을 땐 싱클레어였다. 돈키호테 씨도 자주 그러시면서, 너무하셔. 뾰루퉁해진 기분을 풀고자 싱클레어가 손을 움직였다.


"싱클레어 군?"


..왜요. 퉁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녀가 머리를 젖히며 싱클레어를 바라보려 하였다.


그정도로는 모자라실텐데... 낑낑대며 이마만 보이는 돈키호테 씨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따금씩 노란 눈썹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삐진게요?"


"..아니거든요."


양 손이 옷 안의 돈키호테의 배로 향했다. 말랑거리는 뱃살이 조금은 삐진 마음을 녹이는 듯 했다.


"누가 봐도 삐지지 않았소? 당연히 거짓말이요! 내가 싱클레어 군을 두고 어딜 가겠는가?"


"가는건 저거든요?"


"그거나 그거나 비슷하잖소!"


서로간에 유치한 대화가 오가고, 이내 둘은 웃음이 터졌다. 서로 유치한 만담이 오가는 것도, 이렇게 바보처럼 웃어버리는 것도 참 즐거웠다.


"싱클레어 군?"


"네에, 듣고 있어요 돈키호테 씨."


"혹시 앉아줄 수 있는가? 품 안에 제대로 안겨있고 싶군."


"잠시만요."


읏차, 싱클레어는 돈키호테를 끌어안은 상태를 유지한 채 열심히 몸을 움직여 일어나 벽에 기대어 앉았다. 돈키호테는 그의 품에서 살짝 미끄러져 내려가 반쯤 싱클레어의 가슴팍에 누운 상태로 있었다.


"음! 이제야 얼굴을 좀 볼 수 있겠군."


"뭐야, 얼굴이 보고싶으셨던 거에요?"


"당연한거 아니오? 그대의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데!"


돈키호테 씨도 마찬가지거든요. 돈키호테는 고개를 들어 싱클레어와 시선을 맞춰왔다. 싱클레어 또한 이에 응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돈키호테도 그에 똑같이 미소로 화답했다. 아, 참 귀여우시다니까. 마음 한 켠에서 몽글몽글하게 솟아오르는 기꺼운 감정에 몸을 맡겨, 나는 돈키호테 씨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후후, 그것이 기쁘다는 듯 수줍게 웃는 돈키호테 씨의 목소리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짧다면 짧은 몇 초간의 시간이 흐르고, 입술을 거두었다.


"뱃살도 좋은겐가?"


"아무래도 말랑하니까요."


"설마.. 말랑하다면 누구든 좋은거요?!"


"그건 아니거든요! 말랑한 돈키호테 씨가 좋단 말이에요."


"그럼 말랑하지 않은 나는 싫은게로군.."


아야야야야야미안하오그만놀리겠소진짜그만둘거요오. 뱃살을 쭉 늘리며 장난에 대꾸하는 싱클레어에 돈키호테가 바둥거리며 한 수 물렸다. 손에 준 힘을 빼고서 다시금 뱃살을 만지작대던 싱클레어는 문득, 떠올렸다.


"도시의 둥지에서 나고 자란 저지만.. 도시의 기술은 참 신기한거 같아요."


"음? 어째서 그런 것이오? 물론 특이점이나.. 신기한 것들이 많긴 하지."


"보통, 생물은 강한 힘을 내려면 근육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도시의 기술은 이런 말랑한 살로도 강력한 힘을 부여해주잖아요."


"하긴.. 덕분에 싱클레어 군도 말랑하니, 최소한 이 점은 고마워 해야겠군!"


"딱딱한 싱클레어는 별로인가요.."


"말랑한 싱클레어 군이 더 좋긴 하오.."


"아 잠, 싱크흐흣, 레어, 구, 아하하하핫, 간지럽, 아, 미안하하학오! 아학, 흑흣, 오늘 왜이리 괴롭히는거요!"


그새 약속을 어긴 돈키호테가 피운 장난에 말랑한 뱃살을 만지던 싱클레어가 손길을 바로 옆구리로 옮겨 잔뜩 간지럽히자, 간지러운 나머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아 저항도 못하는 돈키호테가 버겁게 이야기를 하려 했다. 역시나 그 과정에서 간지럼에 웃음소리가 목구멍을 넘나들었다. 


"돈키호테 씨가 먼저 놀리잖아요!"


"놀린건 아니오! 나는 싱클레어 군을 향한 감상을 솔직하게 말한 것 뿐인데, 근육보단 말랑한 뱃살이 귀엽잖소!"


흥, 돈키호테 씨가 팔짱을 끼며 콧소리를 내었다. 그래봤자 그냥 귀여우신데..


"저도 멋있어보이고 싶단 말이에요."


"섕크 인격의 그대는 멋있다만?"


"아잇, 제가 아니고 섕크 협회의 싱클레어잖아요!"


"그것도 싱클레어 군의 하나의 가능성 아니오!"


아. 잠깐의 탄식이 둘 사이에서 오갔다. 이내 어두운 낯빛을 보이는 둘이였다. 아무래도 직전의 마왕 히스클리프와 ■■■의.. ■■■? 그게 누구지? 둘은 안개가 낀듯한 소름끼치는 기억을 뒤로 재쳐두고, 다시금 마왕 히스클리프의 말로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난 이 세계의 자네만을 바라볼거요. 싱클레어 군. 머나면 별을 위해 눈 앞의 별을 놓쳐선.. 안되는 것이오.."


고민을 끝낸 돈키호테가 답지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싱클레어에게 말을 건내왔다. 저도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바라보는 것이.. 맞는거죠.. 싱클레어도 가벼이 넘기지 않고 진중한 모습으로 그 말을 받아쳤다.


".. 돈키호테 씨는 두렵지 않으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은 분명 나의 차례겠지. 두렵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오. 나도, 분명 뒤틀리고 말거요. 다들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마주하는데, 본인은 그걸 잘 헤쳐나갈 자신이 없소."


돈키호테가 숨을 들여마셨다.




"싱클레어 군은 두렵지 않았소?"


네? 갑작스러운 되물음에 싱클레어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고는, 숨을 들이마시고선 말을 이어갔다.


"저도 정말 두려웠어요. 그 때 거의 쓰러질 뻔했잖아요? 분노에 집어삼켜져서 정신을 못 차리기도 하고, 그래도 돈키호테 씨 덕분에 정신을 차렸어요."


"그건 조금 미안하다 생각하고 있소! 그리고 이번엔 진지한 얘기란 말이오.."


"알고 있어요. 너무 주눅드신거 같아서 기운내시라고 장난 한 번 친건데.. 기분 나쁘셨음 죄송해요.."


"사과하지 마시오! 그래도 긴장이 풀린건 사실인데 어찌 이 몸이 싱클레어 군에게 화를 내겠소?"


돈키호테가 낑낑대며 뒤로 돌아 싱클레어의 가슴팍에 꼬옥 안긴 채 머리를 부볐다.


"내 그대가 어찌나 사려깊은지 아는데, 부디 사과하지 마시오.. 그럴 때마다 나도 어찌나 마음이 아픈데 자꾸 그러는거요."


킁.. 눈물이 핑 돌았다. 보기보다 감수성이 깊은 돈키호테가 코를 훌쩍이면서 엉망인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 더욱 더 품 안에 파고들었다. 싱클레어는 그런 돈키호테의 맘을 알아챘으나, 그래도 품에서 훌쩍이는 제 연인을 가만히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 것인지, 조심스레 뺨을 잡고선 고갤 들어올리려 했다. 지금은 얼굴 보여주기 싫소.. 킁.. 품에서 뭉게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싱클레어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잠시만요. 얼굴 보고 싶어요. 돈키호테 씨. 마찬가지로 돈키호테 또한 제 연인의 조심스런 부탁을 듣고는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피해오는 그녀의 레몬에 오렌지를 한 방울 섞은듯한 석양의 색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나오고 있었다. 싱클레어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니 죄책감이 들어왔다. 자신의 유약함에 제 연인이 상처받은 것이 썩 유쾌하진 않은 경험이었으니.


그렇게 싱클레어는, 눈에 맺힌 눈물을 엄지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사랑스럽고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그녀를 어루만졌다. 돈키호테도 그에 응해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손길을 즐겼다. 그러고는, 싱클레어가 눈을 감고서 입술을 포게었다. 이게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돈키호테는 그런 제 연인의 모습을 놀라 잠시 커진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고서는, 잠깐의 입맞춤을 즐겼다. 슬프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리는 듯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맞닿은 입술이 떨어지고, 서로의 눈이 맞는다. 킁, 돈키호테가 코를 훌쩍였다.


"미안해요, 돈키호테 씨. 다음엔 조금 더 당당해져 볼게요. 상처받진 않으셨음 좋겠어요."


싱클레어가 돈키호테의 양 뺨을 감싸며 사과를 건냈다. 조금 서늘한, 서투르고도 애정이 물씬 담긴 손길에 돈키호테가 미소지었다. 그 모습은 제법, 우습고도 사랑스러웠다.


"싱클레어 군, 킁.. 내가 뒤틀리면 꼭, 망설이지 말고 패주시오..! 내가 그대에게 그러하고, 우리가 히스클리프 군에게 그러 하였듯이."


"네에, 알았어요 돈키호테 씨."


돈키호테의 기분이 풀린 것을 확인한 싱클레어는 돈키호테 씨, 하고 운을 땠다. 그에 맞춰 돈키호테가 왜 그런 겐가, 싱클레어 군? 하고 맞받아쳤고, 그리고 이내.


"사랑해요."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제 마음을 고백했고.


"나도 사랑하오."


그 말과 함께 조금이라도 그 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꼬옥 안겨오는 그녀를 품에 끌어 안은 채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평화로운 12시간의 자유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