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아카마약 1화


아카마약 9화


*


그렇게 옮겨진 자리는 넓은 공터.


그곳의 중앙에 선 하인더는 내게 당당하게 말해왔다.


"우선, 등급 선정 이의 요청에 대한 심사위원으로써 내 대답부터 알려줄게."

"뭔가요?"

"합격이야. 넌 실버 급이 맞아."


팅.


내게 실버등급 모험패를 튕겨주며 그렇게 말하는 모습에 나는 그것을 받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험을 치지도 않고 합격이라니.


괜히 몸을 움직일 일을 덜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고작 합격이라는 말을 전해주려고 이 공터로 나를 부른건가?


눈빛으로 그리 묻는 듯한 내 태도에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그는 '하지만!' 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지부장으로써 내 생각은 좀 다르지."

"···?"

"넌 실버가 아니야. 고작 실버가 아니라, 골드. 혹은 골드 그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다. 내 말이 틀려?"


하인더의 확신 어린 말에 내가 대답의 망설이며 우물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야 맞는 말이었으니까.


동시에 혹시 내 능력이 골드니까 무료로 골드까지 올려준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이 말을 꺼낸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게 아니라면 뭔가 딱히 다른 이유가 존재할 것 같지 않았으니.


미약한 기대감을 가지고 하인더의 다음말을 기다리던 나는 곧 내 귀를 의심 할 법한 이야기가 천천히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궁금하다. 최소 골드. 혹은 플레티넘 이상인 네가 왜 고작 실버 등급 심사 밖에 받지 않았는지."

"그···건."


차마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을 할 수는 없었던 나는 하인더에 말에 입꼬리를 꾸물거리다가 곧 침묵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하인더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용히 자세를 바로 잡던 하인더에게서 갑자기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복장도 어색하기 그지 없고 모험가 패마저 오늘 처음 발급 받는 녀석이 마법사?"


철컥.


허리춤에 걸쳐진 자신의 애병에 손을 올린 하인더가 으르렁! 기세를 들어내며 내게 물었다.


"누가 시켜서 온거냐."


.

.

.


"?"

"···?"

"누가 뭘 시켜요?"

"엥. 너 누구 사주 받고 날 죽이러 온 놈 아냐?"

"아닌데요?"


내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마찬가지로 하인더의 고개도 모로 돌아갔다.


기껏 잡아뒀던 분위기가 봄철의 눈사람처럼 녹아내렸지만 일단 완전히 긴장을 풀지 않은 헛기침을 험험 하더니 내게 물었다.


"그러면 왜 실버 등급 심사만 받은거야?"

"돈이 없어서요."

"아···. 맞다. 그런게 있었지···."


내가 결국 진실을 털어놓자 하인더가 멍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심을 풀기에는 조금 이를 터.


그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었다.


"잠깐.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저 귀족가 사람인데요."

"이름이 뭐길래?"

"이지스 하르펠."

"하르펠···?"


내 대답에 하인더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가 자신이 잘못 들었냐는듯 말을 반복했다.


"하르펠? 그 하르펠? 제국에서 다섯번째로 잘나간다는 후작가문?"

"네, 거기요."

"뭐라고···."


그의 얼굴에 억울함이 깃들었다.


지금 그의 상황을 현대의 속담으로 비유해보자면 암살자라는 쥐를 잡으려고 뒷걸음질을 쳤는데 쥐인줄 알고 밟았던 것이 사실 대전차 지뢰격인 모양이었다.


억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눈동자가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하더니 다시 원래 색을 되찾았다.


"하, 하하하. 거짓말이지?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하르펠의 이름을 가졌는데 아리엔의 성을 가지지 않았을리 없잖아. 하녀야? 아니면 방계쪽인가?"


그의 현실을 부정하는 말에 나는 잠깐 입을 달싹거리다가 잔혹한 진실을 입에 담았다.


"그냥 호적이 파인거에요. 아리엔은 박탈당한거죠."


비쩍 마른 몸. 연고를 알 수 없는 뛰어난 실력. 명망 높은 가문의 사람. 파여버린 호적. 모험가가 되기 위해 찾아옴.


그저 같은 선상에 놓고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얽히면 얼마나 인생이 꼬이게 될지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끔찍한 키워드들.


얼떨결에 그 키워드들을 정면으로 떠안게 된 하인더의 정신이 대략 멍해졌다.


만약 건드리지 않았다면 찔리는 일도 없었겠지만···.


어쩌겠는가.


가만히 있는 폭탄을 굳이 건드려서 정보를 줄줄이 캐버린건 그의 탓이었는데.


소가 뒷걸음질치다 대전차 지뢰를 밟고 날아올라 전술핵을 맞은 듯한 꼴이 되어 이제는 혼마저 쏙 빠져버린듯한 하인더의 모습에 내가 넌지시 물었다.


"아까 제 실력이 골드급 이상이라고 했죠? 그럼 저는 이제 골드인가요?"

"그, 그래. 너 골드해라. 아니 그냥 다 가져가! 제발 진실을 깨달은 억울한 중생인 나를 살려다오!"

"글쎄요. 아마 어디가서 떠들고 다니시지 않는 한 딱히 피해가 가진 않을 것 같은데요."

"절대! 절대 어딜 가서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그렇게 말하며 그가 후다닥 달려와서 내 손을 꼭 잡았다.


으···.


그런 하인더의 행동에 조금 꺼려진다는듯 질색하는 표정을 지은 나는 빠르게 잡힌 손을 빼어냈다.


"그럼 골드패는요?"

"그···건. 내가 따로 말해 놓으마. 실버 등급 심사라길래 등급패도 실버 밖에 안 가져와서 지금은 줄 수 없어."

"언제까지 줄 수 있죠?"

"내일. 내일까지 가져와서 주도록 하지···."


그가 내 날카로운 눈빛에 빌빌거리며 그렇게 약속했다.


이에 내가 만족한듯 살풋 미소지었고 용케도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본 하인더가 툴툴거렸다.


"애초에 골드 등급패는 이런 임시 시험이 아니라 정규 시험으로 모든 역량을 파악하고 올려보내주는게 관례라 바로 주기 까다롭단 말이다."

"그래서요?"
"이게 일종의 월권 행위라는거지!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까 한번만 어떻게 잘 봐달라는 뭐 그런···."


아오···.


그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그냥 마구 흐트러뜨렸다.


심경이 복잡해보였다.


귀족가랑 얽힌 것도 문제인데 심상찮은 비사까지 들었으니 갑자기 어느날 귀족가의 기사들이 '이 곳에 가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가 있다고 들었다.' 라며 들이 닥칠까봐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기도 하고.


물론 전말을 전부 알고 있는 나로써는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대부분 귀족과 엮이면 좋은 꼴을 보는 경우는 잘 없으니 허튼 걱정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중요한건 내가 이 기회를 잘 써먹는 것이겠지.


골드 등급까지 수직 상승을 하게 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돌아섰다.


이제 의뢰를 받으러 갈 생각이었다.


그러고보니 내 등급은 그러면 실버인걸까 골드인걸까?


등급 차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의뢰도 달라질테니 그냥 길드로 돌아가려던 나는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하인더에게 물었다.


"잠깐. 그러면 골드 등급패가 나오기 전까지 저는 실버 등급인가요?"

"어, 어어. 아마 그렇게 될 것 같다. 행정상으로는 미리 골드로 올려놓을거라서 골드 의뢰를 받을 수야 있겠지만 혼선이 생길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실버까지만 받아다오···."

"흠···."


뒤쪽에서 사정사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나는 그냥 알겠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어 주곤 길드로 향했다.


덜컥.


내가 길드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순간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다들 아닌척 하면서도 내심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실버 승급에는 성공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내가 피식 웃으면서 실버 등급패를 들어올려 보여주자 처음에는 무관심, 두번째는 멸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길드 일원들의 눈빛이 한순간에 변했다.


-오오, 오오오!

-내가 뭐랬냐? 무조건 승급한다고 했잖아!

-아씨 누가 실패한다고 했냐?

-자, 돈 다 내놓으시고~

-역배야~ 잘 먹을게~!


심지어 하는 말들을 보면 내 승급 결과를 가지고 도박까지 한 모양이었다.


고작 새로 온 모험가 나부랭이 정도에게 이 정도로 이목이 쏠리다니.


참 모험가는 알다가도 모를 족속들이라며 고개를 회회 도리질 친 나는 곧장 길드 접수처 근처에 있는 의뢰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이언,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의뢰까지 존재하고 있었는데 가짓수로 따지면 브론즈 의뢰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실버 다음이 아이언의 순서였다.


예외적으로 골드급 의뢰는 총 다섯개. 플래티넘 의뢰는 단 하나만 붙어있었다.


이것들이 이렇게 적은 이유는 골드는 이류 무인 플래티넘은 일류 무인 쯤 되어야지 받을 수 있기에 그렇다.


애초에 그쯤 되는 실력자들은 굳이 용병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디 경호 업체를 차리던 도장을 차리던 혹은 군에 투신하던 어느쪽이든 속하는 편이 더 돈을 많이 벌테니까.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는 그냥 좀 정신이 훼까닥이라 소속에서 받아주지 않는 경우, 그냥 자유가 좋은 경우, 혹은 어떠한 목적이 있는 경우 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지금은 기사단장이 되었지만 전에는 용병이었던 평민들의 전설 아리아가 마지막에 속한다.


이 사실에 나는 게임 속의 아리아를 떠올리다가 한가지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아리아도 하르펠 가문의 기사였던가?'


확실하진 않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지금 보니 후작 가문 주제에 어떻게 제국에도 딱 세명 밖에 없는 소드 마스터를 데리고 있는거지?


"흠···."


내가 침음을 삼켰다.


제국의 소드 마스터는 총 셋이다.


하나는 황실.


황실 제 1기사단장으로써 왕의 보호와 칼로써 활동하는 소드 마스터가 있고 또 다른 소드 마스터는 변경백으로써 최전선에서 마물의 침입을 막고 있는 소드마스터가 있다.


경지에 이르른 그들의 존재는 존재 하나가 군단과 맞먹기에 굉장한 힘이자 권력으로 쓰인다.


그런데 제국에서도 딱 넷 존재하는 공작 가문도 아니고 고작 후작 가문에서 소드마스터를 데리고 있어?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압박이 많이 들어올텐데, 어떻게 버티는거지?"


공작가문도 그렇고 황실에서도 그렇고 대부분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귀족들은 결코 고작 후작가문이 소드마스터를 데리고 있는 꼴은 용납하지 못할 터.


그런데도 멀쩡하게 영지가 유지되던걸 보면 의문 밖에 들지 않았다.


무언가 구린 냄새가 났지만 나는 고민하다가 신경을 껐다.


어차피 나는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내가 의뢰서를 뒤적거렸다.


'아이를 찾아주세요? 아니고. 고블린 토벌? 아니고. 식물 채집.'


"찾았다."


한참돈안 눈으로 빠르게 실버 등급 의뢰를 훑어 보던 나는 그중에서 내가 원하는 의뢰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양쇠뿔버섯을 10개 채집해주세요.'


그렇게 적힌 의뢰서를 떼어내서 가져가는 내 모습에 멀찍이서 나를 유심히 보던 이들이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파티를 짜고 들어가는 의뢰라면 나에게 같이 갈 생각이 없냐고 물어볼 심산이었던 듯 싶었다.


물론 그 생각은 앞으로도 생각으로 끝나겠지만 말이다.


'아직은 파티를 만들 생각이 없어.'


만약 파티에 들어가더라도 단기적으로 한번 정도 같이 가는 것이지 아예 파티에 눌러 앉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아카데미에 가야 하기 때문에 오래동안 용병일을 할 것도 아니었고.


그런 생각을 하며 접수원에게 의뢰서를 내밀자 접수원이 내게 물어왔다.


"어머, 정말 실버등급으로 승급하셨네요? 의뢰 기한은 언제까지로 해드릴까요?"

"내일까지로 해주세요."

"괜찮으시겠어요? 채집 의뢰는 최대 일주일까지 늘리셔도 되는데."

"괜찮아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

"네에~ 그럼 의뢰 접수 되셨구요, 위치는 여기 성문으로 나가서 라테인 서쪽 숲으로 가시면 될거에요."


원래 이런건 잘 알려주지 않는데, 길드에 처음 오신 날에 그런 시비를 겪으셨으니 제가 드리는 작은 선물이랍니다?


찡긋.


그렇게 말하며 내게 윙크 해주는 접수원에겐 미안한 말이었지만 그 배려에도 나는 서쪽 숲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동쪽 숲으로 간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히든피스가 있으니까."


*


이거 쓰다 말았길래 보니까 3화 이후로 념글이 없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 없어서 접었나바


남은 회차 털겸 올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