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일러스트)

1화: https://arca.live/b/tsfiction/105251565

그리고 나서 직후에 내가 아빠한테 불려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서 아빠한테 정중하게 인사했다.
치마폭을 살짝 들어올리는, 귀족식의 인사였다.
그리고서 정중하게 물었다.

“아버지,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물어도 될까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을 걸로 예상하는데, 딸아.”

“진심으로 모르겠어요.”

“그, 노예 말이다.”

드디어 얘기가 들어왔다.

“아버지께서 우려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내가 뭘 우려하는지 너가 어떻게 알고?”

“…아버지께서 무엇을 생각하시는지는, 저도 잘 알아요.”

나는 고개를 최대한 크게 끄덕였다.
안심시켜야 한다. 주인공이니까.
만약에 주인공이 뭐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이 망할지도 모르는데!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 그렇지만 괜찮아요. 애초에 마법도 걸려있고….”

“그놈이 나쁜 마음을 품고 너를 속인다면? 그래도 괜찮냐?”

“안 그럴 거에요.”

“글쎄, 만나기 전까지는 모르겠는데.”

그러더니 아빠가 옆의 시종을 바라보고서 소리쳤다.

“노예를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싶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빠.
믿었는데, 아빠를 믿었는데.

그렇지만 공허한 울림마냥, 퍼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끊쳐질 뿐이었다.

어느새 데려와진 린델의 얼굴이 보였다.
린델은 아무렇지 않게 허리를 숙였다.
조금은 비굴해 보이긴 했지만, 당연한 반응이었다.

“고개를 들어라.”

“예.”

린델의 고개가 들렸다.
약간은 탁 풀린듯한 표정이었다.
찡그리지도, 웃지도 않은 채.
그저 권위에 짓눌린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빠, 그렇게까지는….”

“검을 들어라.”

“아빠!”

“예.”

린델이 목검을 들었다.
그리고, 아빠의 앞에 대치했다.
나는 더 소리지를까 생각하다가, 린델을 바라보고서 그만뒀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건데.

“….”

그리고, 말없는 일격이 린델한테 가해졌다.
린델의 안면으로 거대한 충격이 드리웠다.

-쿵.

“검술이 형편없군.”

“그러니까, 아빠. 아직 한번도 배워본 적이-”

“일어나라.”

그러자 린델이 일어섰다.
코피가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일어선 모습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맞았다.

이번에는 강한 충격이었다.
몸 곳곳을 얻어맞아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나는 마침내 일어서서 달려갔다.
그리고서 린델을 일으켜세우려고 하다가….

‘…안 된다고?’

린델이 억지로 내 손길을 무시하고서 아빠의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목검을 들었다.

“…더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린델의 모습에.
아빠는 머리에 목검을 내리쳤다.

-빠악!

“…!”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니겠지!
나는 기겁하면서 린델한테 달려갔다.
다행히도 기절하기만 했을뿐, 숨은 붙어있는 모양이었다.
안도도 잠시. 아빠는 린델한테 다가갔다.

“성격 이전에 깡은 있구나.”

“그게 반 죽여놓고 할 얘기에요?”

“성격은 나중에 봐야겠지. 그렇지만 호위로써는…. 인정할 법 하겠어.”

“아빠!!!”

나는 소리질렀다.

그리고, 14살 인생 처음으로 떼를 썼다.

“아빠 미워!!”

“뭐, 뭐?!”

“진짜, 진짜 미워!”

그렇게 얘기하고서 린델을 들었다.
그리고서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빠가 나를 못잡게 하기 위해서.

*

*

*

뻐끔뻐끔.

린델의 눈이 껌뻑이다가 떠졌다.
나는 턱을 괴고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던 상태였다.
잘생기긴 더럽게 잘생겼네. 역시 주인공인 걸까.
남자였으면 친구라도 먹었을텐데. 여자라서 부랄친구처럼은 못 되겠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머리카락을 넘겼다.

“주인님….”

“아, 닭살돋아.”

“예?”

“주인님이라고 하지 말고, 리카 아가씨나. 리카님으로 안돼?”

“…리카님.”

“옳지.”

나는 미소지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려서 그런지 꽤나 귀엽게 보이네.
물론, 조카를 바라보는 삼촌같은 느낌으로.

“아프지 않아?”

“…아픈데 견딜만은 합니다.”

“견딜만이라니?”

내가 상처를 꾸욱 누르면서 물었다.
그러자 자동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린델이 소리질렀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프잖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지나치게 솔직한데?”

“그게 계약서의 사정이라서,”

“그러면 이제부터는 거짓말 해도 돼.”

“…예?”

“원하는 대로 하라고. 사람한테 비밀이 있어도 괜찮으니까. 아, 그러고보니까.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해?”

“그에 대한 대답은….”

“응.”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라니,”

“친구로써 어떻게 생각한다든가, 나한테 대한 감정 같은 거 말이야.”

“고마움입니다.”

“더 없어?”

“없습니다.”

얼굴이 빨개졌다.
부끄러운 건가, 그렇겠지.
나는 린델의 코를 손가락으로 톡 누르고서 속삭였다.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말해.”

“…예?”

“나 대공녀니까. 못해도 백작가까지는 노예라고 해도 신분 올려줄 수 있지롱.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봐.”

“혹시, 공작가라던가. 그러면.”

“그건 좀 힘들 것 같긴 한데. 아. 상호합의 있으면 돼?”

“상호합의가 있으면 어떤 사람이든 된다는 겁니까?”

“응.”

내가 베시시 미소지으면서 다시 한번 코를 건드렸다.
왜지, 뭐가 이렇게 웃기지.
아! 역시 하렘물 주인공. 주위에 있기만 해도 여자를 홀리는구나.

이새끼, 이거참.

“저….”

“응?”

“상처 다 나은 거 아닙니까?”

“다 낫긴 했을텐데. 정신력에 무리가 갈 것 같아서….”

“혹시, 검술만 좀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검술이라니?”

“…제가 많이 약해서.”

나는 린델을 바라봤다.

“푸흐, 괜찮아?”

“괜찮다뇨?”

“내가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또래 중에서는 가장 강한데.”

“…그러면 제가 감히 뛰어넘을 생각을 품지는 못하겠군요.”

“못 뛰어넘으면 큰일 나는데.”

“예?”

“아니야, 호위라면 강해야지?”

“…예.”

“봐준 거니까, 열심히 하라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랑 같이 대련할 거야?”

“대련 겸 수련으로,”

“좋아. 따라와!”

내가 린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씩씩하게 걸어나갔다.

*

*

*

추태를 보였다.
그 생각이 린델의 머리를 잠식했다.
약함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다시는 그래서는 안 됐다.

리카를 바라보면서 린델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를 우롱했다.
코를 건드리면서 유혹하고, 미소짓고, 그냥 남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마치 강아지를 대하듯 유순한 태도였으나, 사실 생각해보자면 플러팅이 그거랑 다를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만약에, 그녀가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말한 직후에 연심을 묻지 않았더라면.
그 이전에 물었더라면 필시 마음을 들켰을 것이다.
하지만, 직후여서. 다행히도.

린델은 숨을 들이마쉬고 검을 들었다.
목검에 힘이 실렸다.
그리고, 순간 세상이 반전되었다.

리카가 움직였다.
발로 세차게 바닥을 밟았다.
그리고, 하늘이 반전되었다.
검로는 세상을 양단했다. 바람의 결을 두개로 나누었다.
위에서 아래로, 일섬.

이마에 핏줄기 한방울.

린델은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말도 안되게 약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언제 강해지는 걸까.

모기인 상태에서 코끼리를 만나버린 린델이었다.

그러나 대련은 끝나지 않았다.
감을 잡은 리카는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린델또한 최선을 다해서 빠르게 움직였다.
숨이 턱끝까지 차고,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아직 정제되진 않았지만 봐줄만한 솜씨였다.
리카는 미소지으면서 보법을 밟았다.

푸른 기운이 피어올랐다.
냉기가 응축된 마나가 마법을 사용했다.
바닥에 서리가 꼈다. 리카는 공중으로 뛰어올라서 느릿느릿하게 린델한테 검을 휘둘렀다.
검이 충돌했고, 린델은 전율을 느꼈다.

그때쯤이었다.
템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러나.

템포가 빨라지는 것의 정도가, 리카한테는 너무나도 컸다.

-빠각!

목검이 부숴졌다.
리카는 입을 달싹거렸다.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서, 똑바로 서서 미소지으며 애써 말했다.

“처음 치고는 잘했어!”

“….”

“아니, 엄청나게. 그야말로 천재 수준이라니까?”

린델은 리카한테 하고 싶은 말 하나를 삼켰다.
그것은 다름아닌, ‘저한테 뭐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였다.

지키고 싶은 사람보다 약한 현실을.
린델은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