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한여름이었다.

오전에 받은 우유를 관물대에 놔두면 오후에는 치즈가 될 만큼 더운 날씨였다.


그런 좆같은 날씨에 시행된 창 전술훈련 때문에 나는 반쯤 맛이 간 상태였다.


내가 있던 충북의 모 탄약창은 존나 넓었다. 부대 크기가 여의도 면적의 다섯 배다.

무슨 소리냐면 상황 발생 직후 진지 투입에만 도보로 40분이 걸린다. 

이것도 훈련 첫날에 중대장이 느리다고 지랄지랄해서 속보로 올라간 거였다.


그래도 올라가고 나니 나름 괜찮았다. 

대공 진지조는 한번 산 타고 올라가면 그날 훈련 끝날 때까지 진지 주변에서 안 움직이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인생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늦은 오후가 되자 기상청 피셜 강수 확률 30%를 뚫고 비가 억수처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대공 진지조는 훈련 도중에 식사 추진을 받는다.

취사병들과 차출된 계원 하나가 대공 진지로 올라오는 길목으로 밥을 갖다 주는 것이다.

그러나 존나게 내린 비로 산길이 미끄럼틀이 되어버리자 저녁은 취사장까지 내려와서 먹으라는 무전이 날아왔다.


나는 아직도 그 무전을 듣고 꽁쳐온 포카리를 땅바닥에 집어던지며 절규하던 맞선임(M60사수)과 

미쳐버렸는지 소대장 앞에서 실실 웃던 동기(미스트랄 운영조) 두 명과

나지막히 "씨발..."이라고 읊조리며 한숨 쉬던 1소대장의 얼굴을 기억한다.


어쨌든 밥은 먹어야 하니 장비 다 챙기고 취사병 새끼들 개꿀 빤다, 설마 밥 먹고 야간에 또 진지 올라가라고 하진 않겠지 등등 노가리를 까며 장장 30분에 걸쳐 철수를 마친 우리들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람 한 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쇠솥 두 개에 한가득 담겨 있는 닭죽이었다.


보통 짬밥은 대량 조리를 할수록 퀄리티가 꼬라박기 마련인데, 이 날은 아니었다.

대충 양반이나 비비고 닭죽 때려붓고 호박이랑 당근 좀 넣어 끓이던 평소와는 달리 이날은 통 안이 닭 반 죽 반이었다.

닭은 그 크기와 식감만 봐도 따로 생닭을 구매해서 넣은 게 확실했고,

무려 손가락 한 마디 만한 전복과 표고버섯이 한가득 들어가 있었으며,

밑반찬으로는 매콤짭쪼름한 오징어 젓갈과 수박, 그리고 그 수박으로 만든 화채가 나왔다.


그걸 보자마자 비에 젖은 우리는 굶주린 들개마냥 허겁지겁 식은 닭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급양관이 체한다고 천천히 먹으라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밥 먹다가 힐끗 고개를 드니 옆 테이블에서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처넣는 사람이 보였다. 

말년 중위 1소대장과 전문하사 3부소대장이었다.

당직 때마다 짬밥 맛없다고 냉동 까던 둘이 왼손에 닭다리 오른손에 숟가락을 들고 걸신들린 것마냥 한 입씩 돌아가며 먹고 있었다.


모두가 나갈 때까지 취사장은 수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후루룩 쩝쩝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날 나는 친할머니가 해준 죽보다 맛있는 죽을 군대에서 세 그릇이나 먹었다.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 같은 최애의 짬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