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iler ALERT!


 블랙쉽 ~ 검은 양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헤메고 


 전쟁물을 주로 쓰는 작가인 토미나가 히로시의 작품이다.


 이 작가는 작품을 대개 단권 한권으로 완결짓는 작가기 때문에 히트작이 없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본 적은 없지만, 대부분 단권인걸 보면 작가 자체가 소설을 길게 쓰는 타입이 아닌거 같다. 보통 이런 단권 라노벨을 보고 뒷권이 좀 더 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미 절판된지 오래된 작품이라 중고서점에서 구했을 때는 별 기대를 안했다. 그냥 수녀 표지라서 산거 뿐이었지. 하지만 이 소설은 뒷권이 좀 더 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소설 내용이 완전 맛이 가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루치아 수녀는 교황청에서 탈주한 탈주퇴마수녀다.

 

 주인공 설정에서부터 범상치 않음이 느껴진다. 탈주닌자도 아니고 탈주퇴마수녀라니.

 게다가 탈주퇴마사인 주제에 변장도 하지 않는다. 수녀복을 입고 일본을 돌아다닌다. 금발에 거유 미인이라는 매혹적인 특성 때문에 정체가 탄로날게 뻔한데도 자기 정체를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 강자의 포스가 느껴진다.


 하지만 돈이 없다. 그래서 보호를 명목으로 데리고 다니는 소녀 에리코와 함께 PC방 개인실에서 매일 밤 함께 잠든다. 음식도 값싼 편의점 음식들로 때운다. 그렇게 에리코와 함께 일본을 배회하던 중 수상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다.


 그리고 경찰서에 악마가 나타나 경찰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사실 경찰서장은 이미 악마에게 빙의되어 있었고 루치아에게서 악마 퇴치도구를 빼앗기 위해 체포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악마퇴치도구가 단 하나도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루치아는 이 상황에서도 악마를 쓰러트릴 수 있다며 여유만만하다. 


 루치아는 소변을 양동이에 받아 기도를 한 뒤, 그걸 단숨에 악마에 빙의된 경찰들에게 뿌려버린다.


 


 성직자가 축성한 물 -> 성수

 물이 없을 때는 세례에 침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간의 체액은 성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론상 소변도 성수가 될 수 있다.



 어쨌든 루치아는 성수를 이용해 간단히 악마를 쓰러트린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스타트였다. 


 악마를 쓰러트리고 경찰서에서 약간의 여행자금을 챙겨나온 루치아.

 악마퇴치로 번 정당한 수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분명 훔친거다.

 참으로 RPG용사스러운 감성을 지닌 수녀다.


 루치아는 에리코를 드디어 따뜻한 방에서 재워주고 따뜻한 밥을 먹여줄 수 있겠다고 기뻐한다. 물론 루치아가 구할 수 있는 숙소는 허름하고 낡은 모텔 뿐. 오랜만에 에리코를 따뜻한 물로 씻겨주며 루치아는 감탄한다. 에리코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아름답고 성스러운 존재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존재가 언젠가는 가슴이 크게 나오고 커져버리고 지금의 모습을 잃어버린다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비극인가. 루치아는 잠든 에리코의 향기를 맡으면서 안된다, 안된다, 참아야만 한다... 그렇게 계속 자신에게 되뇌인다.



그래도 일단 루치아는 에리코를 보호하는 역할이니 선은 넘지 않겠지

 얘 일단 수녀고. 그리고 이야기의 두번째 파트에서 탈주수녀 루치아를 잡으러 온 흑발 퇴마사 수녀가 등장한다. "언니, 죽으세요!" 흑발퇴마수녀는 진심으로 루치아를 죽이려 달려들고 루치아가 절박하게 호소한다.


 "어째서 날 죽이려고 하는거야! 너는 날 잘 따랐잖니! 내가 너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거기까지 말하고 루치아는 입을 다문다.

 아... 맞다... 내가 얘 강간했지... 하고.


 

 

그런걸 까먹지마.

루치아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외친다.


 "여자끼리니까 노카운트야! 게다가 넌 억지로 당한거고! 그러니까 넌 틀림없이 순결한 처녀야! 마음만은!"



 육체는 처녀가 아니란 건가.


흑발수녀는 얼굴을 붉히며 더더욱 광분하고 루치아를 죽이려 하나 그때 마침 천사가 나타나 싸움을 중단시킨다. 루치아가 아니면 쓰러트릴 수 없는 악마가 있으니 루치아를 죽이는건 그만둬라고. 흑발수녀는 울분에 가득 차지만 천사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며 루치아를 죽이는걸 포기한다. 대신 루치아에게 악마를 죽이는데 협조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루치아와 에리코 흑발수녀 세사람의 동행이 이어진다.

 흑발수녀는 에리코에게 달라붙어있는 루치아를 보며 말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언니는 저를 잔뜩 귀여워해주셨지요.

 그런데 어째서 이제는 그런 여자에게 빠진건가요!

 제가 에리코보다 훨씬 더 아름답잖아요! 제가 부족한게 뭔가요!

 전 언니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었어요! 언니의 손가락에 처녀를 잃은 것도 싫지 않았다구요! 오히려 좋았어!"



 이 장면은 십대 중반 소녀가 열살따리 여자애를 질투하며 오열하는 장면입니다

 질투심에 빠진 후배를 향해 루치아가 말한다.


 "그치만, 너... 다 커버렸잖아..."


 

 좀 돌려서 돌려서 말할 수는 없던거냐 페도수녀야....

 너무 돌직구잖아


 "어, 언니는 저를 탐했잖아요! 그건 절 사랑한다는 뜻이 아닌가요!"

 "미안해... 그때는 육욕을 참지 못했어...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 난 널 강간한 것 뿐이야!"

 "네?"
 "내가 사랑하는건 에리코 뿐이야!"



 당연히 후배는 광분하며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을거야!"라며 달려들기 시작한다.


 어찌어찌하여 이들은 악마가 있다는 마을에 도착하고, 함께 힘을 합쳐 악마를 쓰러트린다. 모든 사건이 끝난 뒤 루치아는 에리코를 데리고 다시 탈주런을 쳐버리고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ㅈㄴ 얼탱이가 없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뒤가 궁금해졌다.

 정황상 에리코는 아마 악마와 관계된 사악한 존재일테고, 그래서 루치아가 에리코를 보호하고 있는걸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루치아와 에리코와 후배양의 돌아버린 페도삼각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가 궁금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권 라노벨 중에서 매우 드물게 뒷권이 아쉬워지는 소설이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건 내가 B급을 좋아하는 취향이라 그런거고,

 이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읽을 가치가 없는 삼류소설이라는 평판이 일반적이므로 그닥 추천은 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