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나와 지혜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얼굴도 눈도 외형도 성별도.


모든 게 같은 일란성 쌍둥이.


다만 신은 공평을 싫어했는지 내 동생과 나는 공평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수학에 두각을 드러냈던 지혜를 보며, 단순히 5분 일찍 태어났을 뿐인 나에게도 부모님은 기대를 키우셨고 나 또한 그 기대에 부응하려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노력으로 동생을 따라 갈 수 있었다.


100점과 100점.


그녀는 완벽한 정답이었고, 나는 생각의 여지가 있는 답이었음에도 선생님은 공평하게 나에게 100점을 주었다.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100점과 95점. 100점과 90점.


점점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성적에 초반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격려를 해주셨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나고, 또 지나고.


부모님의 우리를 향한 비틀린 기대는, 애정이라는 위장을 뚫고 나에게 비수를 날렸다.


"지혜는 ㅡㅡ하는데 너는ㅡㅡ"


시작되는 비교.


처음엔 모든 것을 나보다 잘하는 여동생이 미웠지만, 그녀에게는 죄가 없었다.


그 후로 미움을 돌리게 된 것은 나에게 비난을 쏟아낸 부모님이 아닌 나 자신.


어째서 나는 여동생처럼 할 수 없는 걸까. 어째서 나는...


이렇게 태어난 걸까.


이럴 거였으면 태어나지 않는게 맞지 않았을까.


지혜는 하나도 다니지 않던 학원이 하나둘 늘어나고, 감당할 수 없는 기대와 학업에 짓눌려 더이상 버틸 수 없을때 감정은 터져나왔다.


"지예야. 이게 뭐니?"


"아... 그건..."


부모님이 펄럭이며 내 앞의 책상에 떨어트린 것은 내 성적표였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모자란 내 머리로 내 여동생을 조금이라도 따라가기 위했던 그 결과가.


종이에는 적혀있었다.


평상시의 평균 이하였던 성적에서, 평균이라고, 평범하다고는 할 수 있을 성적이.


내 노력을 지켜봐주었던 교사는 나를 치켜세워주었던 그 성적이.


"이 정도면 잘ㅡ"


"이딴걸 성적이라고 들고 온거니?"


부우욱.


산산이 찢어진 내 노력의 증거물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양 팔랑이며, 쓰레기통 그 깊숙한 곳으로 쳐박혔다.


"ㅡㅡㅡㅡㅡ"


"...아아..."


그 후로 내 마음을 후벼파는 부모님의 높아지는 언성은 노이즈가 낀 것처럼 흐려지며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들리기는 했었지만 내가 애써 들은척하지 않으려했던 것이었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을까.


쾅!


거세게 닫힌 문 뒤로 느껴지는 것은 기나긴 거리감.


불꺼진 방의 구석으로 걸어가, 난 조용히 기대어 앉았다.


지직거리는 세상의 노이즈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와 천천히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물방울 뿐.


"언니...?"


"지혜... 야...?"


하지만, 노이즈 속에서도 지혜의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얼마나 지난지 모를 시간 속에서도, 모든게 노이즈가 껴 제대로 들리지 않던 공간 속에서도.


지혜만큼은, 내 여동생만큼은 내 편이었기 때문에.


나를 보며 손수건을 내미는 저 손과 걱정스러워하는 나와 똑같이 생긴 얼굴.


지금은 너무 기쁘면서도, 착잡하기도 했다.


그녀 앞에서는, 그녀보다는 모자를지라도 당당한 언니이고자 했을텐데.


"왜 울어...?"


"아, 운거 아니야! 알레르기 때문이야! 응. 그런거니까..."


애써 자리를 무마해보려했지만, 언제나 당당했던 언니의 평소와 다른 모습은 지혜에게도 충격적이었나보다.


"흡... 흐아... 나, 나먼저 씻을게...?"


"어... 응..."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갈 때까지도 그녀는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으니.


"하으... 언니도, 그런 표정을..."


내가 떠난 방에서 지혜가 흘린 흥분에 찬 목소리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


지혜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들어갔고, 성적이 모자랐던 나는 내 학업을 고등학교로 끝마쳤다.


지혜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바빠서인지 도통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부모님이 직장을 잃는 일이 일어나고, 실의에 빠진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나는 일을 해야만했다.


나에게 상처만 주었던 부모님이었지만, 그래도 키워준 은혜를 갚기 위해.


그 가시로 가득한 말 속에 살짝이라도 나를 위한 감정이 있다고 믿었기에 난 일을 시작했다.


고졸에 아무런 경력도 특출난 능력도 없는 나를 원하는 회사란 아무데도 없었고, 나를 원하는 곳이라곤 그저 일할 사람이 필요할 뿐인 일용직 뿐.


일하고, 쓰러지고, 일하고, 쓰러지고.


돌아오면 욕지거리밖에 들어먹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래도 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그런 내 인생에 낙이란, 이따금 연락이 안 닿는 지혜는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면,


"너보단 잘 지내겠지!"


하는 부모님의 성질 가득한 말 한마디였다.


지금이 힘들어도, 동생이 잘 지낸다면 난 행복하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부모님은 내게 보여줬던 태도와는 다르게 친구들에게는 괜찮았는지 장례식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흐느꼈다.


내 감정은 여전히 폭풍의 한가운데였다.


부모님을 잃어 슬프면서도, 나를 상처주던 사람이 사라져 후련한.


하지만, 이미 부러졌더라도 나를 지탱해주던 지지대가 사라져서인지 가슴은 공허했다.


이럴때, 지혜가 있었다면.


하지만, 지혜는 식이 진행되는 3일 동안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았다.


***


그 후로도 나는 열심히 노동에 나섰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하루살이의 삶에도 익숙해져 갈 때쯔음, 나는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취직한 생산직 공장. 그곳에서의 약물탓에 한 쪽 눈은 완전히 멀어버렸다.


각종 후유증을 가지게 된 생산직들은 열심히 시위해댔지만, 우리가 얻은 건 잃어버린 시간과 영구적 장애 뿐이었다.


안 보이는 눈을 안대로 가린 채, 나는 금이 잔뜩 간 거울을 바라보며 웃었다.


"지혜야 어때? 이러면 후크 선장같지?


...뭐라니."


거울을 보며 말하면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 내 여동생과 만나는 것만 같아서 생긴 버릇이었다.


"하하..."


이미, 많이 망가져버린 걸지도 모른다.


많이 닳고 닳아서. 더 이상 인생의 톱니바퀴는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여동생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며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갔다.


내일은 여동생을 볼 수 있을거야, 그리 생각하며 눈을 붙였다.


띵동ㅡ


그런 나를 깨운 건 야밤 중의 초인종 소리였다.


이 시간에 올 택배가 없을텐데... 생각하며 난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내가 마주한 것은...


"지혜야...?"


"언니, 나 왔어."


어느새 부쩍 커버린 내 여동생이었다.


와락.


나는 지혜를 껴안고 나도 내가 무슨말을 내뱉는지 모를 정도로 횡설수설하며 흐느꼈다.


그런 내 머리를 지혜는 조용히 쓰다듬어주었다.


어렸을적, 부모님에게 마지막으로 받았던 애정이 느껴지는.


지혜가 재수없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던 걸 구해내고 나서 그녀를 내가 쓰다듬어줬던 것처럼, 그녀는 나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 부쩍 약해진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미소에서는, 어딘가 희열이 느껴졌지만,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


난, 아무 생각 없이 지금의 따뜻함을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