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의 일본은 신형 전함 8척, 순양전함 8척과 여러 구식 전함, 수십척의 순양함, 100여척의 구축함 등으로 구성된 '88함대' 를 구성하여 가상적인 미군의 70%까지 전력을 따라잡으려 했습니다.



당시 최대의 전함 중 하나였던 나가토급 전함이 이 88함대의 결과물이었고, 진주만 공격 당시 주력 항모였던 아카기와 카가도 원래는 88함대의 순양전함, 전함이었습니다.


뽑아내는 배의 체급도 갈수록 높아져 최종형인 '13호급 순양전함' 에 이르러서는 야마토와 동급인 18인치 주포가 올라갈 예정이었죠.


구축함은 너무 많이 뽑을 예정이라 붙일 이름이 없어서 'XX호 구축함' 같이 번호만 붙일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88함대 계획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함께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갑니다.


16척의 계획함 중 실제로 완성된 것은 나가토와 무츠 2척 뿐이었고, 그나마 상술한 아카기와 카가가 항모로의 개조라는 전제 하에 보유 가능해졌습니다. 


물론 미국과 영국도 이 조약 때문에 최신형 16인치 탑재 전함을 콜로라도급 3척, 넬슨급 2척밖에 뽑을 수 없게 되었지만, 일본의 해군력은 미, 영에 비해 약했기에 이는 일본군 입장에선 상당히 뼈아프긴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88함대는 왜 좌절될 수밖에 없었을까요?


간단합니다.


이대로라면 해군 예산 때문에 일본이 망하거든요!



당장 일반회계 기준 일본 국가예산 중 국방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1918년에 36.2%,


1919년에 45.8%,


1920년에 47.8%,


1921년에는 49%까지 올라 거의 총력전 하는 국가 수준의 기형적인 배분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건 당시 일본군이 수행하던 시베리아 출병비용은 아예 뺀 거에요!(이 비용은 특별회계에서 지출)



그리고 전체 예산 중 해군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1918년 이래 20%대나 되었으며, 1921년에는 무려 31.6%에 달했습니다.


저 88함대 하나가 일본 국가예산 3분의 1을 잡아먹는 거에요!


즉 저 16척을 다 뽑겠다고 작정하면 일본 경제는 파멸로 직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소 대미 해군력 70%'를 주장하던 강경파의 여러 반발을 무릅쓰고 미국, 영국 기준 60% 수준의 해군력만 인정하는 워싱턴 조약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주력함 보유비율이 미:영:일 = 5:5:3이었거든요.


당시 워싱턴 조약에 서명한 일본 해군대신 카토 토모사부로(加藤友三郞) 원수는 워싱턴 조약 회의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은 이 제안이 물질적으로 각국의 국민을 소비적인 대(大)지출에서 벗어나게 하며, 동시에 세계 평화에 공헌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일본은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게 된 미국의 높고 원대한 목적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은 기꺼이 이 제안을 수락하며, 우리나라의 해군군비를 철저하게 삭감한다는 결심으로 협의에 응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즉 경제 때문에 88함대고 뭐고 다 GG친다는 발언이 해군대신 입에서 나온 겁니다.


도저히 미국 국력을 따라갈 수 없으니, 60% 수준의 주력함 쿼터를 받아들고 치킨게임을 중단하겠다는 거죠. 일본 경제를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워싱턴 조약을 우회하여 해군력을 건설해보겠다는 일본의 의지 자체는 계속되었습니다.


주력함 쿼터에 걸리지 않는 1만톤 이하의 항모를 만들어 보던가(경항공모함 류조),


구축함, 순양함에 과무장을 하여 수적 열세를 질적으로 만회해보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1만톤 꼼수는 후속 조약인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막혔고, 개함의 우수성도 결국 미국에 따라잡히며 태평양 전쟁에서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결국 근본적인 국력은 극복하지 못했던 거죠.




출처: 야마다 아키라 지음, 윤현명 옮김, '일본 군비확장의 역사, 어문학사, 2014.



후지와라 아키라 지음, 서영식 옮김, '일본군사사 상', 제이앤씨, 2013.




블로그 출처: 무수천의 공간.


https://m.blog.naver.com/minjune98/223250903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