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니전쟁의 승전으로 영토가 상당히 늘어나게 된 로마공화국이었다.

그렇게 넘치는 국유지를 로마원로원 귀족들이 사유화하기 시작하였음


당연히 이는 고대 로마에서도 불법이지만 법을 만들기때문에 이에 능통한 원로원 귀족들이 편법을 동원한 통해서 국유지를 야금야큼 파먹으며 자기 땅을 늘려나갔다. 


당시  이미 인당 분양받을수 있는 국유지면적은 법으로 제한되어있었다. 그러니 원로원 귀족들은 국유지를 '임차' 하는 눈가리고 아웅식 으로 사실상 종신토록 토지를 노예를 시켜 경작한것이다. 이로서 인당 국유지 보유한계를 우회하며 전쟁포로를 통해 대규모로 유입된 노예를 동원한 광작 라티푼디움이 유행하게됨.


그리고 반대로 로마에 막대한 영토를 안겨준 장거리 장기 원정으로 전쟁기간동안 복무한다고 자기 땅을 비운 농민들은 망하게 됨.


그나마 안망하고 자기 토지로 복귀한 농민들은 노예경영으로 헐값에 대량으로 유통되는

유력자들의 농산물과 가격경쟁에서 패배하게 되고 

농지 경영이 어렵게 되자 그 유력자들에게 돈을 빌리게 되는데 이게 고리대였음


그렇게 부채를 갚지 못하게 된 민간토지 유력자들이 가져가거나 헐값에 매입해 사유화하게 됨

이로서 자유농민은 유력자들의 부채 노예가 되던가 아님 무산자가 되서 도시로 흘러들게되었음

이는 로마 국방력의 약화를 야기함, 고대엔 자기 재산을 가질수있는 자유민이

무장을 스스로 장만해서 참전해야했기 때문에 노예나 무산자가 늘면 그만큼 군인이 줄어들기 때문

이에 그라쿠스 형제가 로마를 위해 목숨바쳐 싸운 자유농민들이 하루아침에 망해서 노예나 무산자로 전락하는 꼴을 볼수가 없었기 때매 농지법을 통해 국유지를 다시 군 복무자들한테 돌려주자고 하였고 곡물법을 통해서 로마정부가 밀을 사서 싼값에 도시 무산자들에게 제공하자고 하였음.

애초에 국유지 사유화는 불법이었기 때문에 명분도 완벽했고 쿠라수스 형제는 호민관으로 선출되었는데 본래 호민관은 그렇게 주목받는 관직은 아니었음. 무려 호민관이 10명이나 있었기 때문. 어차피 호민관 내려오면 원로원에 들어가야 하는 즉 원로원 의원과 집정관으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다들 생각했고 이때문에 2년남짓한 임기를 연임하려는 사람도 적었음. 원로원과 대립각 세워봤자 좋을것도 없고 얼른 호민관 마치고 원로원에 들어가고 싶어했기 때문. 이덕에 연임규정도 없었다.

그런데 이때 쿠라수스 형제는 발상의 전환을 함.  
애초에 호민관과 민회가 생긴 이유가 귀족들의 횡포에 로마평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기위해서 였기 때문에 호민관 특권을 가지고 있었음. 호민관특권은 독립된 입법권,신성불가침권(불체포특권),집정관비토권(거부권행사).독립된 사법권(고발권한)등 막강한 권한임 근데 크라수스 형제는


나 원로원 안들어가고 여기서 끝내겠음 너희들은 아무도 날 이제 막을수 없으셈 ㅋㅋ ㅅㄱ링
을 질러버림


이에 한대 크게 얻어맞고 눈뜨고 자기들 알토란같은 땅과 재산을 가난뱅이 로마시민들에게 뺐들릴 위기에 처한
코너에 몰린 원로원은




타협대신 사자로살기를 선택하고 로마 법에도 없던-엄연히 로마공화국은 고대 도시국가임에도 12표법으로 대표되는 성문법 국가였다-원로원 최종권고(계엄령)를 때려서 민중이 뽑은 민중의 보호자 호민관을 백주대낮에 때려죽임

한줄요약 

마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 아입니까? 깔깔깔


ㅅㅂ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