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Naval Encyclopedia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해군의 수훈함이었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이들이 처음부터 그 이름을 들으면 연상되는 캐슬형 함교를 올린 모습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변천사를 간략하게 알아보자.



1915년의 네임쉽 퀸 엘리자베스. 컬러로 복원된 사진이다.


다른 각도로 촬영된 퀸 엘리자베스. 항해 중인 모습이다.


1910년대에 취역했을 당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은 이런 모습이었다. 연돌이 2개고, 사령탑도 소위 말하는 '삼각형 마스트' 형상이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시점에는 구식 설계로 도태되는 포곽식 부포를 측면에 다수 탑재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 시기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가히 세계 최강의 전함이었다. 다른 전함들이 11~13.5인치 주포를 탑재했을 때 혼자 15인치라는 초월적인 화력을 자랑했고 대응방어도 가능했다. 무엇보다도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자랑은 '세계 최초의 고속전함'이었다는 점이다. 최고 속력 24~25노트(44~46km/h)를 달성했는데 동시대의 다른 전함들이 대부분 21노트(39km/h)에 머물렀던 것을 생각하면 핵펀치를 날려대는 강철의 요새가 속도까지 빠른 것이었다.


드레드노트/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의 함대 결전, 유틀란트 해전에도 이 모습으로 참전했으며(퀸 엘리자베스는 불참) 독일 제국 해군을 상대로 15인치 불벼락을 내려주며 활약했다. 하지만 유틀란트 해전 이후 독일 제국 해군이 소극적인 현존 함대 전략과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돌아서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을 마치게 되었다.



1차 개장 이후의 모습. 사진은 3번 함 HMS 밸리언트.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도래한 전간기,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은 한 번의 대개장을 받게 되었다. 연돌이 1개로 줄어든 것을 제외하면 외형상의 특출난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4번 함 버럼과 5번 함 말라야는 여기서 더 개장을 받지 못했다. 정확히는 말라야는 기관은 교체했으나 외부 구조물 등의 개장을 못 받았고 버럼은 1차 대개장이 마지막 개장이었다.


이 시기에도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여전히 강력한 성능을 갖춘 배였으나 이때부터는 16인치 주포를 올린 전함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최강의 자리에서는 내려오게 되었다. 미국의 콜로라도급, 일본의 나가토급, 영국의 넬슨급이 등장한 시기가 이때다.



2차 대개장 이후의 2번 함 워스파이트. 가장 익숙한 모습일 듯하다.


1934년부터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은 2번째 대개장을 받게 되었다. 이 대개장을 통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하면 떠오르는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캐슬형 함교, 포곽식 부포의 철거 등이 이뤄진 것이 바로 이때. 다만 2번 함 워스파이트는 포곽식 부포를 유지했는데 이건 제1차 세계 대전 시점부터 늘 말썽이었던 기관 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포탑식 부포로 바꾸면 이 문제가 심해질 수 있었다는 듯. 결국 대개장 풀코스를 받은 건 1번 함 퀸 엘리자베스와 3번 함 밸리언트, 2척에 그쳤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4번 함 버럼과 5번 함 말라야는 두 번째 대개장을 받지 못했다. 원인은 늘 그렇듯 비용이었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등장 당시 최강의 성능을 갖춘 군함이었고 그만큼 비쌌다. 퀸 엘리자베스가 당시 기준 300만 파운드, 나머지가 250만 파운드 정도 들었다고 하는데 두 차례의 대개장 비용이 대략 건조 비용과 비슷했다고(...) 한다. 이건 20년간의 물가 상승을 감안해도 엄청난 비용이다. 게다가 당시는 대공황의 영향이 짙게 남아있었고,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지출한 비용도 엄청났던 영국으로서는 이 대개장 비용 자체가 극심한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취역 후 20년이 지난 이 전함들을 킹 조지 5세급 전함들이 전부 취역할 때까지만 주력으로 굴릴 생각이었으나, 후드를 비롯한 주력함 일부가 조기 퇴장하면서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은 현역으로 전장을 지켜야 했다. 이 무렵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은 여전히 강력한 축에 들기는 했으나 더 이상 세계 최고의 전함은 아니었고 자랑이었던 24~25노트의 속력도 이제는 빠르다고 하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영국 해군은 이 전함들을 적절히 운용할 역량이 있는 군대였고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은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그리고 훌륭하게 해내면서 끝내 추축국의 패망에 일조했다. 이런 전함들이 그 뛰어난 활약상에도 전후 영국의 재정난으로 인해 1척도 보존되지 못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