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남녀 사이에 우정은 없다고. 푸리나는 무명의 이방인에게 연심을, 연심이 계속되어 사랑으로. 사랑은 점차 비뚫어져 자신을 레플리카가 되는지경에 이르렀다.


치오리에게 빼앗긴 사랑을 되찾고 싶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데 치오리는 그런 사랑의 대상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고 짓밟기 까지 했다.


분노를 느꼈다. 푸리나는 치오리에게 살의의 가까운 분노를 느꼈지만 무명이 사랑하는 대상이라 어찌할 수 없었다.


버려졌다면 내가 주우면 된다고. 하지만 푸리나는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치오리가 되기로 결심 했다.


수백 년을 연기 했으니 연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연기를 넘어서 가면을 쓰고 타인의 인생 조차 훔칠 수 있다.


푸리나는 자신을 버리고 치오리의 가면 썼다.


"내가 많이 사랑해 줄게."


표정도 눈빛도 목소리도 이견이 없는 치오리 그 자체였다.


겉모습은 치오리의 코스프레 한 것에 불과 하지만 치오리와 겹쳐 보이며 불쾌한 이질감이 들었다.


귀신을 마주한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려 푸리나를 쳐다본다.


소름이 돋아 몸에 오한이 들었고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치오리가, 아니. 푸리나가 손을 뻗어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 만졌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어루 만지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고개를 저어 소름 돋는 현실에 부정하며 물러났지만 현관문에 막혀 저항할 뿐이다.


"장난이라면 그만둬 기분 나쁘니까."


잠시 푸리나의 눈으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곧장 치오리와 비슷한눈을 하고 일으켜 세웠다.


치오리에게 차이고 나서 이튿날 오라더니 치오리 코스프레 라고. 무슨 장난인 거냐. 농락하는 기분에 분노가 올라왔다.


"장난이라니? 생각해 봤는데 우리 관계 말이야. 조금 더 연장 하는 게 좋겠어. 아직 한 달이나 남았잖아."


어제 이야기 한 상황의 연장선 같았다.


분명히 푸리나가 맞는데 말투도 행동도 전부 치오리였다.


치오리를 연기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치오리 본인 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어제는 내가 심했어. 이리 와 커피 라도 한잔 하자."


"그만해!"


푸리나는 레플리카를 연기 하고 있지만 이질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두렵다. 귀신을 마주한다면 이런 기분이겠지. 지금 느끼는 감정은 틀림없는 공포다.


푸리나를 제지하며 현관문 쪽으로 손을 뻗자. 푸리나가 문을 세게 치며 날카로운 시선은 몸을 양단할 듯이 째려봤다.


"적당히 해. 나 장난 싫어하는 거 알잖아."


"너는 치오리가 아니야. 그냥 연기 하는 거라고!"


이쯤 되면 무언가에 빙의된 사람 같았다.


곧장 나가서 퇴마사라고 불러와야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자 푸리나가 아차 하더니 껴안았다.


"미안해. 겁 주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기 마저 치오리와 같았고 더 소름이 돋는 건 치오리에게 나는 은은한 차향 까지 재현했으니 미칠노릇이다.


치오리의 존재를 훔쳤다면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어제 일로 위로하겠답시고 이런다면 그만해 충분하니까."


"어제? 그래서 사과 했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는 치오리가 아니라 푸리나 라고! 정신 좀 차려!"


"정신은 네가 차려!"


기세에 한풀 꺾이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몸에서 힘을 뺐다.


차분하게 진정하며 생각했다. 그래, 잠깐 어울리고나면 다시 푸리나로 돌아오겠지. 연극을 한다고 생각하자.


"그래, 들어가자 푸리나."


"무슨 소리야? 푸리나는 집에 있잖아. 걔를 왜 찾아?"


걸음을 멈추고 아까부터 무슨 이상한 말을 하냐는 반응을 보이는 푸리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거실로 향하자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하루 만에 푸리나는 자신을 치오리 라고 하지 않나. 방 까지 치오리의 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이 재현되어 있었다.


존재뿐만이 아니라 집의 구조 까지 바꿔놓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푸리나는 행동마저 치오리와 동일 했다.


커피를 건네고 소파에 앉아 잡지를 읽는 모습까지 닮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커피를 내려놓고 이질적인 환경을 둘러본다.


"푸리나, 나 그만 가 볼게 피곤해서…"


"너 아까부터 왜 그래? 수상하네 계속 푸리나만 찾고."


푸리나가 잡지를 내려놓고 일어나 다가왔다.


"둘이 뭔가 있는 거야? 왜 둘이 잠자리라도 가졌어?"


"푸리나는 너잖아."


"하아…… 더위라도 먹은 거야? 계속 상태가 이상하네."


"이상한 건 너야. 집 까지 왜 이래?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장난도 적당히 해!"


"장난은 너나 적당히 해."


업어치기를 하는 폼 조차 치오리와 비슷했다.


내동댕이 쳐지고 푸리나가 가슴 위에 발을 올려 상체를 숙였다.


"너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푸리나랑 잤어?"


푸리나가 푸리나랑 잤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


그런데 왜 치오리랑 대화하는 기분이들지.


"치오리?"


푸리나가 일그러지며 정말 치오리가 보였다.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푸리나가 아무리 치오리를 연기하고 따라 해도 푸리나인데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치오리가 보이는 환각을 봤다.


"그래, 치오리 라고 정신 좀 차려. 그것보다 내 질문에 대답해."


"잤어."


거짓말도 하지 않고 말했다. 어차피 푸리나 당사자가 묻는 질문이라


"정식 연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배짱 좋네."


"사고일 뿐이야!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푸리나랑."


입을 다물고 이상한 대화의 흐름에 의문을 품었다.


지금 치오리랑 대화하는 걸로 착각한 건가.


푸리나의 발이 가슴 아래로 내려가 아랫도리를 원을 그리며 부드럽게 문질렀다.


"…내 잘못도 있지. 나 때문에 욕정을 계속 쌓았구나."


"그만해."


"미안해 임시라고 해도 우리는 연인인데 말이야. 남자 친구의 욕정을 해소 시켜 주지 못했어."


푸리나가 바지를 잡아 내리고 빙긋 웃으며 발로 그곳을 문질렀다.


"보기보다 늠름하네. 이쪽은 내 마음에 쏙 드는데. 표정이 왜 그래? 원했잖아. 내가 이렇게 해주기를 바랐잖아."


몸은 반응하고 있어도 마음은 아니었다.


"너는 치오리가 아니니까."


발이 멈추며 푸리나가 싸늘하게 쳐다봤다. 한참을 쳐다보더니 발을 뗐다.


"푸리나는 받아주는 거야?"


"혼란스러워."


"혼란스러워하지 마. 그냥 눈에 보이는데로 받아들여."


푸리나가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 꼿꼿하게 선 그것을 감싸 쥐었다.


"너는 그냥 보이는데로 받아들이고 느끼면 되는 거야."


느릿한 속도로 위아래로 훑는 얼굴은 무표정 했고 시선은 고정하고 있었다.


장갑에 감싼 손의 감촉과 느긋한 손놀림에 야속하게도 아랫도리는 정직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더 빨리해 줄까?"


"왜 이러는 거야?"


"또 그러네, 모처럼 해주는 건데 집중 하라고."


몸이 미세하게 떠는걸 보고 푸리나가 점점 빠르게 흔들더니 고개를 숙여 입안에 머금어 기세 좋게 분출하는 정액을 꿀꺽  삼키며 민감해진 그것을 혀로 이리저리 굴리며 끝부분을 집요하게 빨아. 뽑아내듯이 입을 오므리며 땠다.


첫 경험때 푸리나와 전혀 달랐다. 치오리와 키스 밖에 해 본적 없지만 왠지 모르게 치오리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여기까지."


끝부분에 입을 맞추고 푸리나가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바지를 입으며 엉거주춤 일어나 푸리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무리 봐도 치오리와 눈이 똑같았다.


푸리나의 연기력이 좋다는 거야 알지만 치오리 그 자체가 될 줄이야.


대단하다는 말보다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웠다.


"그렇게 봐도 더 나오는 거 없어."


"그게 아니라. 이제 연기는 그만해."


"계속 헛소리만 하고 있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봐. 내일도 부티크에 가야 하니까 나도 쉬어야 하고."


푸리나가 현관까지 끌고 갔다. 헤어지는 패턴 조차 치오리와 비슷했다.


왜 이러는지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오늘만 이런다면 소름 돋는 기억으로만 남겠지만. 설마 내일이면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치오리 있잖아."


"왜? 자고 가는 건 안 돼."


"미안, 푸리나 내일은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지? 연기 참 잘한다."


그래, 얘는 푸리나다. 자신도 모르게 치오리 라고 착각했다.


"왜 계속 푸리나를 찾는 거야? 둘이 뭔가 있는 거 아니야?"


오싹함을 느끼고 문을 열어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갔다.


"걱정 하지마. 내가 치오리가 될 게 다르다면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아. 네가 치오리가 좋다면 기꺼이 레플리카가 되어 줄게 푸리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상관없어."


공허한눈을 하고 푸리나는 자신이 직접 집필한 대본을 펼쳤다.


치오리의 인생 자체를 복제 한 대본에는 결말을 제외 한 시나리오들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화해 그리고 보상……… 다음 파트는──────


"나는 치오리야, 네가 사랑하는 치오리… 금방 적응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