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1편: https://arca.live/b/spooky/105790278


첫 번째 관측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났다.

1편에서 썼다시피 시험 기간이었기에 우리는 그깟 귀신 따위에 길게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고, 적어도 중간고사를 보기 전까지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그 형체를 지우고 공부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본 시험에서 나, A, B 모두 꽤나 괜찮지만 1% 부족한 성적을 거두고...

우리는 그 이후로 더 독하게 공부했다. 심령현상 따위가 흔들지 못할 정도로.

잠을 더 줄이는 건 무리였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아예 없애버리는 식으로 시간표를 짰고, 자연스럽게 자습동에 신경쓸 시간 따위는 없어졌으니 그것을 다시 관측할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1학년은 다른 전조증상 없이 괜찮은 성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 관측은 2학년 2분기, 1학기 기말고사 시험기간 초에 일어났다.

나와 A, B는 여전히 기숙사에 있었고 꽤나 열심히 공부해 기숙사에 입성한 절친 C와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하던 D가 멤버에 추가되었다.

여느 때처럼 3시 30분까지 자습을 하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룸메이트들이 외박을 많이 하는 C의 방에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분기마다 한 번씩 방이 바뀌지만, 우연찮게도 우리가 모인 방은 그때 B의 방과 같았다.

폰 수거 당번을 매수해 밀반입한 폰으로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의식의 흐름에 맡기는 고등학생 특유의 헛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C가 홀린 듯 자습동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저거 원래 저렇게 깜빡였었나?"


D는 대수롭지 않은 듯 드라마를 계속 보고 있었지만 나와 A, B는 그대로 몸이 굳어 자습동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습동 3층과 4층은, 그때와 정확히 같은 속도로 깜빡이고 있었다.

그 광경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저거 언제부터 저랬냐...?"

"몰라, 아까 한 30초쯤 전? 나도 유튜브 보다가 발견한 거라."

"원래 저렇게 전부 깜빡였어? 층 전체가?"

"아니? 하나만 깜빡이다가 갑자기 저렇게 전부 깜빡이는데?"


우리는 그때까지도 속 편하게 드라마나 보고 있던 D를 툭툭 쳐서 그에게도 보이는지 확인했다.

당연히, 대답은 같았다. 저거 왜 저렇게 깜빡이냐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슬슬 사람이, 아니 귀신이 나타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역시나 형체가 나타났다.


"허어..."

"저거,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건 맞냐 시발...?"


이 현상을 처음 본 C와 D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반면에 나와 A, B는 이번에는 무섭기도 했지만 흥미가 앞섰다. 그 날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재확인하고 싶었다.

그 용감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를 생각이, 우리를 했어서는 안 될 행동으로 이끌었다.


"...우리 자습동 가 보자."


우리 중 가장 먼저 A가 계획을 입 밖으로 꺼냈다.

당연히, C와 D는 질색을 하면서 미친 거 아니나며 거절했지만, 나와 B에게는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

그 때 아무도 믿지 않았던 이야기를 모두에게 확인시켜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개인적인 호기심.


"난 A, B랑 같이 갈래. 너희 둘은 싫으면 여기서 자습동 계속 보면서, 디코로 우리한테 브리핑 해 줘."

"씹... 저기를 진짜 간다고? 너네는 진짜 제정신이 박힌 거냐..."


그렇게 둘은 여기서 자습동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며 A와 C를 연결하는 디코 통화로 상황을 전달하고, 셋은 자습동에 직접 가기로 결정했다.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건, 지난 수 년간 선배의 선배의 선배들이 개척해 놓은 치킨 수령 루트를 사용하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습동 앞에 도달하자마자 셋은 말문이 막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야... 이거 진짜 사람 짓은 아닌 것 같다. C."

"시발 문 잠금이 해제돼있는데? 완전히 열렸다고. 여기."


분명히 잠겨 있어야 할 잠금장치가 열려 있었다. 마치 우리가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그래도 남자 셋에 멀리서 응원하는 둘이 있으니 엄청 무섭지는 않아서, 들어가서 3층으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자습동 2층에는 학교의 역사를 기념하는 동창회 사무실이 있고 3층과 4층은 교실 두 개와 화장실을 갖춘 자습실뿐이다.

올라가면서 혹시 몰라 동창회 사무실과 2층의 화장실까지 전부 뒤져 봤지만, 사무실 문은 잠겼고 화장실에는 확실히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3층에 올라가자마자, 우리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등은 계속 깜빡이고 있었지만, 인간의 형상이나 실제 인간은 단 하나도 없었다.

4층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뒤져도, 사람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았다.

딱 하나의 이상현상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때까지 그걸 단 하나도 신경쓰지 않았다.


"재미없네. 이거. 막상 오니까 귀신이 쫄아서 도망간 건가?"

"그럴 수도... 존나 겁도 많다. 귀신이."


몇 번이나 뒤졌음에도 나올 기미도 나오지 않는 귀신을 뒤로하고, 우리는 3층 창문을 열어 기숙사 쪽으로 손을 10초 정도 흔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자습동을 나왔고, 그때서야 이상현상의 발생을 알아차렸다.

A의 얼굴이 갑자기 확 굳으면서, 건물을 나오자마자 C와 연결한 통화가 다시 들린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 이거 왜 나오자마자 다시 들리냐...?"

"엥? 애초에 건물 안에서도 계속 너랑 통화하고 있던 거 아니었냐?"

"몰라... 어느 순간부터 하나도 안 들렸나봐. 지금 C가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빨리 나오라고 하는데."

"C랑 D가 나오라고 한다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숙사로 찾아간 우리는,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선, 기숙사로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기숙사 디코 서버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C와 D가 우리를 수십 번은 멘션한 흔적과, "제발 나와" "제발 ㅅㅂ 거기서 나와 미친년들아" "나오라고 제발" 등의 메시지를 마구잡이로 보내 놓은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우리는 핸드폰을 확인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해 위 수십 개의 멘션을 전부 무시해 버렸지만.


C는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우리에게 상황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2층에 도착해서 2층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할 때까지는 통화가 잘 들렸다고.

그런데, 우리가 3층으로 올라간다고 하고 20초쯤 지나고서부터 통화가 물 속처럼 먹먹해지더니 끝내 아무것도 안 들리게 됐다고.

이상하게 느꼈던 C가 D와 함께 창문을 내다본 순간, D는 거의 기절했고 C는 사감에게 들릴 것도 생각 못하고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고 한다.

그 인간 형상은, 우리 뒤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낄낄대는 것처럼 몸을 흔들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가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 때는 뒤에서 밀어내는 시늉까지 했었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 A, B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 다음 날 공부를 아예 망쳐버렸다.

이번에도 학생, 선생님 등 가능한 한 모두에게 말했고, 그때와 달리 인원이 늘어났고 C가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우리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늘어났다.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전부 혹시라도 저 터에서 심령현상을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조사해봤지만, 그 누구도 없었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A, B, C, D는 그때 이후로 심령 현상은 일절 관측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3학년, 수능을 보기 1주일 전에 기숙사를 나왔다. 

후배들의 배웅을 받고, 같은 방 룸메이트 후배들과 아끼던 라면을 마지막으로 먹으며 담소를 나누다, 1학년 후배가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선배님, 원래 저기 자습동 복도 막 깜빡여요?"

"아니 오늘 본 건 아니고... 어제 자습 끝나고 오니까 엄청 깜빡이던데요. 저는 저런 거 처음 봐서."


나는 바보처럼, 그냥 잘 모르겠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 그 날은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