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법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상상력이야.’

 

 기억해?

 처음으로 괴물과 마주한 그 날, 네가 해준 말이야.

 지레 겁먹어 옴짝달싹 못 하던 내 손을 꼭 쥐며 속삭여 줬었지.

 그랬더니 신기하게 두려운 감정이 사라지더라.

 

 이후로도 너는 내가 공포에 잠식되려 할 때마다 상냥하게 웃으며 살며시 손을 내밀어 주었어.

 그럴 때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 체온에 몸을 맡기고…….

 

 하하.

 이렇게 보니 참 한심하네.

 정작 괴물과 싸우는 건 넌데.

 

 그래도 네 도움이 되고 싶었어.

 신비로운 마법을 몸에 두른 너와는 달리 아무런 힘도 없는 나지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커맨드 센터를 자처했지.

 

 내가 작전을 구상하면 너는 그에 맞는 마법을 상상하고.

 네가 마법을 상상하면 나는 지시를 내렸어.

 네 눈부신 빛으로 생긴 그림자에 적이 숨어들면 나는 널 대신해 어둠에 더럽혀지는 것도 마다치 않고 적들을 끄집어냈지.

 

 네가 괴물을 무찌를 탄환이라면 나는 방아쇠.

 네가 빛나는 방패라면 나는 비겁한 저격수.

 

 우리는 좋은 팀이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실제로 그날 이후로 네 마법소녀로서의 실적은 눈에 띄기 상승했고 다치는 일도 줄어들었으니까 말이야.

 

 세상에서 네 이름을 칭송할 때면 나는 몰래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

 아, 다행이야. 네 곁에 더 있을 수 있어. 라면서.

 마법소녀와 일반인이라는 전례 없는 기이한 구성의 팀이었지만 나는 우리가 앞으로도 쭉 함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

 

 응.

 그랬지.

 그랬는데…….

 

“너는 아니었던 모양이네.”

 

 내 눈앞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처참했다.

 한쪽 팔은 어깻죽지까지 잘렸고, 옆구리는 살점이 크게 뜯어져 나가서 칭칭 감싼 붕대 너머로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으며, 두 다리는 프레스기에 깔린 것처럼 으스러져 형태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송장이나 다름없는 그 모습에서 작은 머리와 연결된 인공호흡기의 거친 그래프만이 그녀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 몰골임에도 숨이 붙어 있는 건 그녀가 마법소녀이기 때문이겠지.

 

 나는 한참 동안 가만히 서서 묵묵히 병상에 누워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의 몸은 굳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괴물과 처음 마주한 날의 나처럼.

 

 그날 네가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손을 잡아 주면 네가 일어날까?

 인자한 미소로 살포시 안아주면 네 눈이 뜨일까?

 

“그럴 리 없지.”

 

 인위적이다.

 어떻게 봐도 괴물에게 당한 상처가 아니다.

 

 그녀가 입은 부상은 모두 급소를 빗겨 가 있었다.

 운이 좋다고 하면 편한 이야기겠지만, 시각을 바꾸면 일부러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도록 조정한 것처럼도 보였다.

 설령 기적적으로 의식이 회복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이 남도록.

 

 이는 절대로 괴물의 처사가 아니다.

 괴물은 죽였으면 죽였지 이런 악질적인 힘조절을 할 정도로 지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일까.

 대체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괴물 말고 마법소녀에 적대적인 무력집단이 있었나?

 대체 무슨 의도로…….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 한참을 병실 안에 우두커니 서서 머리를 싸맸다.

 

 

 

 

“그랬던 게 벌써 1년 전이네.”

 

 나 진짜 노력했다?

 널 이렇게 만든 범인을 찾기 위해 1년 동안 부리나케 뛰어다녔어.

 어쩌면 너와 같이 괴물한테 맞섰을 때보다 필사적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너랑 달리 아무런 힘도 없으니까.

 내 빈약한 상상력은 마법이 되지 못하니까…….

 두 발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어.

 아무런 단서도 없이 그날 네가 들렸을 만한 곳을 전부 뒤지고 다녔지.

 경찰한테 애걸해서 CCTV도 보여달라 했어.

 당연히 야단만 들었지만 몰래 침입해서 당시 근처에 있던 차량 번호를 조회해 블랙박스 영상을 얻어봤어.

 의미는 없었지만 말이야.

 

 그 밖에도 지나치는 행인마다 붙잡아서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보기도 하고, 마법소녀에 적대적인 집단을 찾아가 헤집고 다니다가 된통 얻어맞고 쫓겨나기도 했어.

 아마 내가 일반인만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르지.

 

 이런 나를 보고 너는 무모하다고 할까?

 분명 그러겠지.

 하지만 너도 같은 상황이라면 나처럼 행동했을걸.

 어쩌면 훨씬 무모한 짓을 저질렀을 거야.

 너한테는 마법이 있으니까.

 

 그래도 걱정 마.

 드디어 정답을 알아냈거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던가.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더라?

 

“잠시 실례할게.”

 

 나는 그녀가 누운 침대맡에 조심히 걸터앉았다.

 얕게 흔들리는 매트의 진동에도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마치 애써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 쓴웃음이 지어졌다.

 

“참 신기하지. 아무리 마법소녀라고 해도 어떻게 이런 부상을 입고서 살아 있을까.”

 

 마법은 상상력에 기반한다.

 바꿔 말하면, 상상할 수 없으면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소리다.

 그녀는 이런 모습으로도 아직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세상도 매정해. 그렇게나 세상을 위해 헌신한 네가 사경을 헤매는데 뉴스는커녕 작은 기사조차 올라오지 않아. 심지어는 다들 네 얘기만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더라? 마치 너라는 존재를 잊어버린 것처럼.”

 

 아무리 냄비근성이라고 한들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너 말고도 마법소녀는 많으니까…… 그저 흔한 대체재에 불과했던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너는 나의 온기이자 모두를 비추는 태양이었으니까.

 태양은 거기 있어 당연하되 없어지면 도리어 중요성을 깨닫는 법이다.

 

“……블랙박스 있잖아. 아까는 헛수고였다는 양 말했지만 사실 찍혀 있었어. 비록 싸우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너는 분명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지. 뭐, 별일 아니었는지 곧장 돌아오길래 그냥 넘겼지만 말이야.”

 

 어두운 걸 싫어하는 그녀답지 않게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에 무언가 있나 싶었으나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나오는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리고 그 외에는 어떤 영상에도 그녀가 찍히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그녀가 부상당한 원인과 해당 영상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 보는 게 옳겠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마치 의도적으로 몸을 숨긴 것처럼 아무런 영상에도 찍히지 않던 그녀가 왜 그 영상에만 모습을 드러냈을까?

 심지어는 적에게 당해 의식을 잃고 난 이후에도 찍히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면 너는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지. 누가 옮겨준 걸까? 고맙다는 말이라도 전하고 싶은데.”

 

 나는 그녀의 앞머리를 조심스레 쓸어넘겼다.

 손끝으로 미약한 온기가 느껴진다.

 

 사람이 오랫동안 의식을 잃으면 숨이 붙어 있어도 몸이 차가워진다고 한다.

 행동을 하지 않는 탓에 필요 열량이 줄어들고 신진대사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 체온을 유지하려면 담당 간호인이 꾸준히 몸을 움직여줘야 한다.

 

 침대 위에 목석처럼 누워 있는 그녀의 몸은 따듯했다.

 근 1년간 찾아오지 않았는데도 욕창이 없고 냄새도 나지 않는 걸 보니 병원 측에서 적절히 조치를 취해 준 모양이다.

 

 그런 지극정성인 사람들임에도 아직 상처가 낫지 않은 건 그만큼 그녀의 부상이 심하다는 걸까.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싼 붕대를 서서히 풀었다.

 그러자 피가 멎어 군데군데 딱지가 진 살과 뼈가 드러났다.

 절단면은 마치 예리한 칼날로 단번에 자른 것처럼 깔끔했다.

 뼈를 부수지 않고 관절 사이로 딱 도려낸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기억나? 너는 피부가 단단한 괴물들을 꺼렸잖아. 그래서 내가 비교적 연하고 자르기 쉬운 관절부를 노리라고 조언했었지. 싸워 본 적도 없는 문외한의 훈수지만 너는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받아들여 줬어. 그러고는 바로 실현해 보이더라. 이후로는 갑각류 괴물들만 보이면 관절부터 자르고 시작하는 네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지.”

 

 팔에서 시선을 밑으로 내리자 허리를 감싼 샛노란 붕대가 보였다.

 피가 멎은 대신 고름이 져 진물이 스며든 모양새였다.

 팔처럼 신체 부위를 잃은 것이 아니기에 1년이면 회복될 만도 했지만, 워낙에 떨어져 나간 살점이 커서 그런지 다 나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수십 번에 걸쳐 난도질한 듯 난잡한 상흔 또한 회복의 더딤에 한몫했다.

 

“그렇지만 몸집이 커다란 놈들에게는 소용이 없었어. 관절을 노리려고 해도 너무 커서 끝까지 베이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럴 때면 난 옆구리를 공략하라 말하곤 했지. 덩치가 큰 놈들은 대체로 급소가 아니면 반응을 잘 하지 않거든. 특히나 괴물들은 육식동물의 모습을 본뜬 게 많아서 대체로 시야각이 좁아 옆을 잘 보지 못하기도 하고. 그렇게 옆구리의 상처를 중첩해 나가 과다출혈로 잡는 전략이야. 뭐, 이제 와서 말할 것도 없나?”

 

 마지막으로 다리 쪽을 보자 이쪽은 도저히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유압기에 눌린 것처럼 박살 난 무릎뼈는 조각을 맞추기보다 다리를 갈아 끼우는 게 빨라 보였다.

 아마 지금으로선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달거나 휠체어로 생활하는 게 최선이겠지.

 평소 활발했던 그녀인 만큼 거동의 제약은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정작 문제는 발이 빠른 부류였어. 사실 이 부분은 내가 조언할 것도 없이 너도 다리를 먼저 무력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내가 도와준 건 그때마다 적의 약점을 관찰해서 알려준 정도일까? 그런 있으나 마나 한 조력에도 너는 금세 요령을 잡았어. 비록 그게 압도적인 힘으로 무릎 자체를 박살내는 거였지만 말이야. 말했잖아? 너도 나 못지않게 무모한 부분이 있다고. 어쩌면 내가 너한테 배운 걸지도 모르겠네.”

 

 그녀의 다리에서 시선을 뗀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실링팬이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달빛을 반사하며 유유히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상상력이 부족해. 그래서 이렇게 직접 보지 않으면, 누군가가 귀띔해주지 않으면 가능성을 떠올리지조차 못해.”

 

 조용한 병실 안에서 내 목소리와 미미한 바람 소리만이 울린다.

 

“알려줬으면 해. 너는 대체 왜 너를, 스스로를 죽이려 한 거야?”

 

 허공에 무턱대고 던진 물음.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멍청하다지만 너랑 같이 싸운 시간이 몇 년인데 네 습관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어깨도, 옆구리도, 다리도. 다 네가 저지른 짓이잖아?”

 

 스스로에게 가한 위해.

 자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복잡히 얽힌 무언가.

 머릿속의 단서들이 배배 꼬인 실타래처럼 풀릴 듯 풀리지 않는다.

 

 나는 역시 상상력이 부족한가 보다.

 그녀의 입으로 직접 해답을 듣고 싶다.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입술을 깨물고 재차 천장을 보며 외쳤다.

 

“듣고 있지! 너한테 하는 말이라고! 처음부터 쭉! 여기 침대에 쓰러져 있는 녀석이 아니라!”

 

 그녀의 분신? 혹은 평행세계의 그녀?

 모르겠다.

 범인의 정체를 잡았다고 생각했건만, 나는 여전히 정체도, 의도도 알지 못한다.

 

 분명 마법적인 무언가겠지.

 나랑 다르게 상상력이 풍부한 너니까 분명 터무니없는 일을 꾸미고 있는 걸 거야.

 

 그렇지만 우리는 팀 아니야?

 나한테 귀띔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그랬다면 나도 언제나처럼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었을 테고, 또 다른 네가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르는데.

 

 무력감에 손을 떨구자 침대에 뻗은 그녀의 손바닥과 부딪혔다.

 마치 악수하듯 포개진 두 손.

 피부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열기는 아직도 따뜻했다.

 

 나는 한동안 그 온기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먼저 그녀에게 손을 내민 건 지금이 처음이던가.

 이걸 내밀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네 손은 항상 날 구원해줬는데 왜 나는 너를 구할 수 없을까.

 그게 너무나도 불합리하고, 또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버틸 수 없었다.

 

 그렇게 눈을 찡그리던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오늘 아침에 뉴스에서 말하더라고. 최근 1년 동안 괴물로 인한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말이야. 나는 네가 없어져서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네.”

 

 이 세상에 마법소녀는 몇 없다.

 국내로 한정하면 양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

 그리고 그녀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부상 이후로 괴물들이 날뛰기 시작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러나 뉴스에서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괴물들로 인한 피해는 단발적 상승이 아니라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1년 전부터 현재까지 쭉.

 

 이건 명백히 이상한 점이다.

 날뛰는 괴물들에 익숙해져서 피해가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더 늘어날 이유는 없다.

 만약 괴물들의 수가 증가하지 않았다면 이는 자연스레 마법소녀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럼 모종의 의미로 마법소녀들이 은퇴하고 있다는 소리일 터.

 하지만 그런 뉴스는 본 적이 없는데?

 

 언론에서 사실을 은폐했을 가능성은 적다.

 그녀 하나라면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이렇게나 피해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법소녀들의 대거 은퇴를 숨기는 건 불가능하니까.

 

 무언가 이상하다.

 마치 사회 전체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만 같다.

 

“크윽……!”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추론.

 그러나 앞으로는 상상, 어쩌면 공상의 영역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만 한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이번에야말로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인지는 왜곡되어 있어. 그 시작점이라 하면 네가 쓰러진 1년 전이겠지. 아마 모종의 마법이겠지만 그건 쓰러진 쪽이 아니라 공격한 쪽의 네가 벌인 짓일 거야. 그렇지?”

 

 이번에는 대답을 기대한 물음이 아니었다.

 이건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수수께끼다.

 오직 내 상상만이.

 쪼그라들다 못해 퇴화해버린 내 상상력만이 그녀를 구할 수 있다.

 

“왜곡된 정보는 마법소녀의 수. 어쩌면 마법소녀는 이렇게 적지 않았을 수도 있어. 이전 통계를 보면 최소 수십. 네 활약이 독보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백을 넘겼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잊혔을까?

 아니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지만…… 네가 처리한 거 아니야? 1년 전에 너 스스로한테 한 것처럼 말이야. 아무래도 너는 내가 아는 너랑 조금 다른 모양이니…….”

 

 그녀는 마법소녀로서의 활동을 남한테 보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괴물을 잡으러 갈 때면 최소한 영상에라도 찍히지 않기 위해 마법을 걸어 놓곤 했다.

 그러나 1년 전, 블랙박스 영상에는 그녀가 골목길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모습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그게 바로 그녀를 습격한 범인, 즉 또 다른 그녀가 아닐까?

 

“하지만 너는 너를 살려 놓았어. 마법소녀의 수를 줄이는 게 목적이라면 완전히 숨을 끊어놓는 게 안전했을 텐데도.”

 

 단순히 그녀 자신이기에 손속에 사정을 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그녀가 내 생각보다 훨씬 무모하고 견고한 신념이 있다면…….

 숨을 붙여 놓은 것 또한 계산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살려둬야 했던 이유가 뭘까…….”

 

 상상에 상상이 꼬리를 물고 점차 몸집을 부풀려 간다.

 조금만 길을 잘못 들여도 터무니없는 억측이 되어버리는 위험한 사고.

 어렸을 적, 내가 상상하기를 포기했던 건 이러한 억측이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어쩌면 너는 미래의 너인 거 아니야? 미래는 과거가 뒷받침되기에 존재한다고들 하잖아. 네가 존재하려면 과거의 너, 즉 내 옆의 이 녀석이 살아 있어야 하는 거지?”

 

 과거의 자신을 죽이면 현재의 나는 어떻게 되는가.

 시간여행에서 야기되는 수많은 타임 패러독스 중 하나다.

 모르긴 몰라도 함부로 시험해볼 문제가 아님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미래에서 과거까지 온 이유가 무엇인지겠네. 그리고 그건 마법소녀들을 제 손으로 지운 이유와 같겠지.”

 

 득 드득

 

 어쩐지 천장의 실링팬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굳이 시간을 넘어서 과거까지 온 건 미래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미래는 일반적으로 수렴보다는 확산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즉, 모든 일의 시작점이 1년 전에 있다는 소리야.”

 

 드득 드드득

 

“본인을 앞에 두고 말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너는 매우 대단하거든. 마법소녀 중에서도 가히 독보적이야.”

 

 나는 누운 그녀의 손을 꽉 쥐며 말했다.

 

“특히 1년 전의 활약은 엄청나서 말이야, 같은 마법소녀는 물론 일반인들한테도 동경의 대상이었어.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중 1위가 마법소녀였을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런 너라면 미래에 무언가 대단한 일을 벌이더라도 별로 놀랍지 않아. 어쩌면 마법소녀들로 나라를 만들어 버릴지도 몰라.”

 

 드드득

 

“뭐, 마지막 말은 농담이지만, 그만큼 미래에 마법소녀들이 많아질 가능성은 있다고 봐. 그리고 너는 노골적으로 마법소녀들을 배제하려 들고 있지. 즉, 너는 미래에 너무나도 많아진 마법소녀들을 처리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지금으로 날아온 거 아니야? 겸사겸사 얘가 더 이상 활약하지 못하도록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놓을 겸.”

 

 스스로 말하면서도 수많은 반박이 잇따랐다.

 

 그녀의 성격에 이런 잔인한 짓을 할 리가 없다.

 마법소녀들을 전부 지우는 게 목적이라면 더 과거로 갔으면 될 일이다.

 등등…….

 

 하지만 말이 안 되기에 상상이고 마법인 법.

 

“네가 마법소녀를 이 세상에서 없애려고 하는 이유가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이런 과격한 방식을 택한 이유도 말이야. 하지만…… 그거 실수한 거야.”

 

 나는 그녀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실에는 여전히 실링팬이 돌아가는 소리와 인공호흡기의 미약한 신호음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네가 나한테 말했잖아. 우리의 마법은 상상력이라고.”

 

 천천히 걸어가 인공호흡기 앞에 섰다.

 그러고는 산소 호스를 손에 쥐었다.

 

“그런데 나한테 상상력을 기를 계기를 주면 어떡해?”

 

 다시 생각해봐도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뭐? 미래에서 과거로 찾아와?

 그 이유가 모든 마법소녀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반송장으로 만들면서까지?

 어이가 없지.

 

 나는 가히 자신한다.

 지금의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상상력을 가졌다고.

 

“일단 다음에 보자.”

 

 나는 그대로 손에 힘을 주어 호스를 뜯어냈다.

 

삐이이이이이이-

 

 요동치던 진폭이 멎고 요란한 경고음이 귀를 울리다 이내 모니터마저 꺼졌다.

 동시에 천장의 실링팬 또한 회전을 멈췄다.

 

 나는 그녀의 진짜 목적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나는 오로지 그녀가 누군가를 해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설령 그게 자기 자신일지라도.

 

 나를 수도 없이 구해준 그 따뜻한 손으로 누군가를 해친다니, 그건 너무나도 슬프지 않은가?

 

 아무런 소음도 없이 조용해진 병실 속에서 그녀가 누운 침대로 터벅터벅 걸어가 손을 잡았다.

 붙잡은 손에서는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미래의 너는 손을 내미는 법을 잊어버린 거겠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손을 내밀어줄게.”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을 꽈악 움켜쥔 나는 눈을 감고 그리 읊조렸다.

 

“네가 미래에서 현재로 왔다면 나는 현재에서 과거로 가주마.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그 순간 병실이 새하얗게 빛났다.

 아니, 정확히는 내 몸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정체 모를 빛은 한동안 지속되더니 이내 사그라들었다.

 

“하, 하하……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아까와는 다른 새된 목소리에 놀랄 틈도 없었다.

 인공호흡기의 모니터에 비친 내 모습에 얼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꼭 마법‘소녀’여야 하는 거냐고.”

 

 한때 어째서 마법소년은 없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상상력이 부족해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설마 이런 비밀이 있었을 줄이야.

 

“뭐 됐어. 널 구할 수만 있다면.”

 

 설령 네가 날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네게 내밀 손만 있다면.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상상력이니까.”






 


새벽 감성 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