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봄날.


오래되어 희미하게 빛나는 양초 하나만이 조명을 대신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 한 여성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녀 주변에는 사람은 커녕 작은 동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해조차 뜨지 않은 이른시간일 뿐더러,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산속에 위치한 낡은 교회였으니까.


“후우⋯”


여성은 스테인드글라스에 매서운바람이 부딪히면서 나는 살벌한 소리도.

산벌레들이 내는 정겨운 울음소리도.

너무 오랫동안 앉아있어 색이 변해가는 다리도.


그 무엇하나 관심을 주지 않고, 오로지 기도에만 열중했다.


그런 여성의 기도에 하늘이 응답한 것일까.


“아이야.”


교회 안에서, 분명 여성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을 교회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아이야, 내 너의 기도를 들었다.”


여리지만 카리스마있는, 중후하지만 가벼운, 위엄넘치지만 친근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목소리가 교회에 울려퍼졌다.


“무슨⋯”


깜짝놀란 여성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올려다보니, 햇빛처럼 따스하고도 눈부신 빛무리가 천천히 내려오는것이 아닌가.


어찌나 밝은지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으며, 새벽녘인데도 대낮마냥 온 세상이 환해져 있었다.


분명 교회 바깥에선 풀벌레들의 지저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건만.


지금은 시간이라도 멈춘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런 놀랍고도 신비로운 광경을 목격한 여성은, 무심코 입밖으로 한 단어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신님?’

“그렇단다. 아이야, 내 너의-”


하지만, 그렇게 빛무리 속에서 여성에게 내려오던 ‘신’ 의 말은 거기서 끊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툭.


“어, 어어? 힉?!”


교회에 있던 낡은 의자에 그만 빛무리 아래쪽이 걸려버리고 말아서, 빛무리는 물론 안에 들어있던 ‘신’ 까지 그만 튀어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

“⋯”


“⋯안녕히 계세요.”

“아, 아니. 잠깐-”


결국 의도치않게 ‘신님’ 의 실제 모습을 목격해버린 여성- 시아는 그대로 교회를 뛰쳐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야ㅡ


예로부터 깨끗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하얀색 머리카락에, 하나도 날카롭지 않아 보이는 민들레 면류관.


⋯시아의 키에 절반정도 될까말까 한 작은 체구, 앙증맞게 튀어나온 젖살 품은 볼따구.


게다가 작은 십자가가 들어있는 눈동자에 넘어진게 부끄러운지 작게 고여있는 물방울까지.


‘⋯책에선 저런 모습이라고는 안그랬는데.’


ㅡ불경하게도, 신을 귀엽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렇게 새벽녘의 소란 아닌 소란이 끝난 뒤.


시아는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거실에서, 탁자에 몸을 묻은 채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큰일이네.”


새벽에 만난 ‘신님’ 생각에 계속해서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시 그 꼬마아이는 사람을 유혹하기로 유명한 악마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럴리가 없지.”


교회에 직접 나타나기도 했고.


그때 느낀 잡티하나 없이 신성하고 포근한 그 느낌은 악마가 낼래야 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


그것보다도⋯.


“라면이 차가워.”


⋯배고파서 꺼낸 컵라면에, 실수로 냉수를 부어버렸다는 것이.


시아에겐 더 큰 문제였다.


“이게 마지막 라면이었는데.”


시아가 허망한 눈으로 컵라면을 바라보았지만, 눈빛만으로 물이 저절로 뜨거워질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이미 5분이 넘게 지나버려 면발이라곤 퉁퉁 불어버려서, 보기만 해도 식욕이 떨어질 정도였다.


휘적휘적.


결국 퉁퉁이가 되어버린 면발을 의미없이 휘적거리며, 시아는 식탁에 머리를 처박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차디찬 라면을 먹는다는 것은 어불성설.


맛잘알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다.


‘결국 밖에 나가야 하나.’


주말에 나가는 것 만큼 귀찮은 일이 없는데- 라며 고민하던 그때.


-띵동!


타이밍 좋게 초인종이 울렸다.


시아는 무심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토요일 오전 8시 30분.


그렇다면 지금 바깥에 있는 사람은 신문배달부일 것이다.


매일 같은시간에 와서 신문을 건네주는 척 말 한번 섞어보려는 풋풋한 배달부 소년.


“읏차챠-”


평소였다면 집에없는 척 신문만 받고 넘겼을테지만, 여러가지 일로 머리가 아픈 지금 배달부와의 대화는 좋은 환기거리가 되어 줄 것이다.


“어, 어라?”


하지만 이게 웬걸.


문을 열고 바깥을 둘러보았지만, 사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고, 인기척 또한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여기다! 여기!”


잘못들었나 싶어 문을 닫으려던 시아는, 그 순간 들려온 앳된 목소리에 자연스레 시선을 내리깔았다.


“헉.”


그러자 보이는 것은, 상당히 낯익은 형상의 작은 소녀.


특유의 민들레 면류관과, 반짝반짝 빛나는 십자가 머리핀을 달고 있는 귀여운 소녀.


표정은 성숙했지만, 말랑말랑한 볼따구와 부드러운 눈매에서 다 망쳐버려 결국 나잇대에 걸맞는 인상을 주는 소녀.


바로 ‘신님’ 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시아 본인 키의 절반정도 될까 싶은 소녀가, 방긋 웃으며 시아를 올려다보았다.


신님은 어찌나 작은지 시아를 보기 위해 낑낑거리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다. 


굉장히 불편해보였지만, 신님은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시아 또한 신님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고개를 거의 한계치까지 내려야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신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 난 신이야.”

“⋯”


-쾅!


“어, 엥? 아니, 어째서?!”

“⋯아.”


⋯죄송해요. 방금 너무 그, 완전 구린 웹소설 도입부 같았어서 무심코.


시아는 어색한 웃음으로 말을 덧붙이더니, 천천히 닫았던 문을 열어젖혔다.


“⋯”


신님은 무언가 할 말이 많아보이는 눈치였지만, 굳이 말을 꺼내진 않기로 했는지 입술만 달싹였다.


“⋯신님이 왜 저희 집까지 찾아오신건지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바로 그거다.”


신님이 시아의 볼을 콕 찔렀다.


이에 질세라, 시아도 신님의 볼을 쿡 찔렀다.


시아는 자신의 볼과는 다르게 저항없이 쫀득하게 쑤욱들어가는 손가락을 보고 감탄을 내뱉었다.


묘하게 중독성있네. 라고 말을 덧붙이면서.


“엣휴⋯”


신님은 이번에도 할말이 엄청 많아 보였지만, 가벼운 한숨만 내쉴 뿐.


별 다른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신은 과묵하다더니, 진짠가보네요.”

“그건 이럴때 쓰는 말이 아닌 것 같다만⋯. 아무튼.”


신님은 별안간 팔을 위로 쭉- 펴고는, 짐짓 과장된 몸짓으로 어떤 형상을 만들어냈다.


뾰족한 지붕에 둥그런 몸통.


뭐지.


복언가?


“⋯그런거 아니다.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고, 진짜 문제는 내가-”

“내가?”

“교회에서 쫓겨났단 말이다!”


신님은 정말로 억울한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시아는 무심코 신님의 볼을 다시금 쿡 하고 찌를 수 밖에 없었다.


푸슈- 하고 힘없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귀엽네.


‘그나저나, 교회에서 쫓겨났다라⋯.’


시아는 그 낡은 교회의 목사를 떠올렸다.


뚱뚱하고 욕심만 많은, 목사가 아니라 목석같은 돼지.


교회의 전등이란 전등은 몽땅 팔아치우고 양초로 바꾼 다음, 남은 돈은 모두 고기로 바꿔버렸다고 소문이 파다한 남자.


돈이 많아보이는 사람에겐 친절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불같은 남자.


실제로 목사인게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남자.


재활용안되는 쓰레기.


확실히 100이면 100 비호감인 사람이었지만⋯


갈 곳 없는 어린애를 쫓아내다니, 역시 관상은 과학인 듯 싶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거야. 신이 자기를 모셔야 할 교회에서 쫓겨나다니!”


신님은 정말로 억울하고 이해가 안된다는 듯 근엄한 말투조차 내팽긴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래서, 왜 오신 거죠? 설마, 제 집에서 같이 산다는 그런 얘기를 하러 오신 건-”

“눈치가 빠르구나. 바로 그거다.”

“아니, 신님이라면서요. 신님이면 그냥 저기, 그, 뿅 하고 집을 만든다던가, 하늘나라로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니까 어감이 조금 그렇긴 한데.


신은 하늘나라가 집 맞잖아.


“그건⋯ 사정이 좀 있어서 말이야. 부탁할게!”

“어휴.”


시아는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궁금한 것도 많고, 여태껏 혼자 살아서 적적했으니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싶은데.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알아둬야 할 게 있었다.


“신님.”

“응.”

“신님은 그 뭐냐, 정말 신 맞죠?”

“⋯”


신님은 내 말을 듣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내가 지금 뭘 들은거지. 하고 충격받은 듯한 눈빛과 함께.


“아무튼. 뭐라도 보여달라는 거죠. 능력? 기적? 같은거 있잖아요.”

“⋯어떤걸?”


흠.


시아는 턱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


확실하게 신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래.”

“신님은 예언같은 걸 할 수 있나요? 막 미래를 본다던가 하는-”


“⋯”

“⋯”


확실하네.


시아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걸까.”

“에이,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어서 들어와요.”

“⋯실례할게.”


그 말을 끝으로 신님은 챱, 챱. 걸어서 현관 안쪽으로 들어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챱챱소리가 났다.


부드러운 살결과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이 만나서 나는 기묘하고도 특이한 발소리.


그런 특이한 발소리에 무심코 시선이 가는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


시아는 맨발임에도 먼지가 하나도 붙어있지 않아 뽀얗고 깨끗한 신님을 바라보며,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신기하네.


“역시 다르긴 다르네요.”

“⋯갑자기?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집 소개나 해보거라.”


집이 작아서 소개라고 할 것도 없지만요-


-라고 중얼거린 시아는, 신님을 데리고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곳저곳이라고 해 봤자 화장실이나 냉장고의 위치, 비싼 디저트들이 들어있는 비밀 찬장 정도 뿐이었지만.


“다른것들은 대충 알겠는데, 저건 뭐지?”

“어떤거요?”


신님은 손가락을 들어 컵라면을 가리켰다.


“저거 말이야, 저거.”


라면은 퉁퉁불다 못해 우동사리마냥 양이 늘어나버려서, 최후의 단말마를 내뱉고 있었다.


“저건 그냥 라면인데요. 다 불어버린 데다 차가워서 맛도 없는.”

“아멘?”

“라면이요 라면!”


신님은 시아의 설명을 듣고도 흥미가 가시지 않은듯 자꾸만 시선을 컵라면 쪽으로 돌려댔다.


“⋯드시고 싶으세요?”

“아, 아니⋯.”


본인은 부정했지만, 아무리 봐도 먹고싶은 눈치였다.


“그냥 드세요. 어차피 버릴려고 했던 거기도 하고요.”

“오.”


신님은 시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자리에 착석하곤 컵라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뭘 보고있는 걸까.


“시아야, 여기 푸 라면이라 적혀있다.”

“⋯그건 푸가 아니라 신(辛)이에요.”

“신?”


라면 이름이 신경쓰이는지, 신님은 말없이 계속 컵라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조금 바보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라고, 시아는 생각했다.


신님의 얼굴은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에 따라 쉽게 바뀌는 타입이어서, 굉장히 읽기 쉬웠으니까.


“음, 역시 나를 위한 공물임이 분명하구나.”


그리고 실제로도 그 생각이 맞았다.


“맛은 없을거예요. 그거 완전 오래지난데다 퉁퉁불고 차가워서⋯ 엥?”


시아는 제 두 눈을 의심했다. 


손으로 눈을 부비기도 했다.


왜냐하면, 방금전까지만 해도 차가웠던 라면이.


김이 폴폴 나는것은 물론, 탱글하고 쫄깃해보이는 면발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뭣.


ㅡㅡㅡㅡㅡㅡㅡ

아니 이런 틋녀성격시아좀써오라고옥!!!!!!


응애농틋녀신님은 ^이렇게생곃대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