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깔끔한 옷을 입고 상사와 하급자 사이에서 자신의 업무 내의 일을 수행해야 할 것이고
가장이라면 가정을 지탱하기 위한 우두머리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하며 항상 믿음을 줄 수 있어야만 한다.
의사라면 환자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인상과 복장을 갖추고
경찰도 소방관도 교사도 군인도 예외는 없음.
거지나 주정뱅이 조차도 제 배역을 위해 최선을 다 해야만 그 집단 내에서 사람으로 머물 수 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려는 한 그 법칙은 무시할 수가 없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집단에 맞는 옷을 끼어 입고
집단에 어울리는 화법을 구사하고
내가 받은 역할을 수행하며
사회적 동물답게 제 역할에 맞춰 살아가는 게 바로 사람의 삶이다.
귤부인.
만다린은 왜 불행한가?
왜 어째서 그토록 끔찍한 일을 당했다고 여겨지는가?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연극 무대인 집에서
어미로서의 역할을 강탈당하고
내 여자
내 것
나의 욕망을 해소할 대상이라고
가장 소중히 여기던 이들에게 배반당하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머니로서 말하지 못하고
더 이상 어머니로서 다정하게 대하지 못하고
더 이상 어머니로서 집안에서 머물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만다린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그녀의 불행은 거기에서 끝났는가?
단순히 역할을 강탈당함으로서 끝났는가?
억지로 배역을 맡게 된 배우.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 피해자.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을 가장 잔혹한 이야기에 주인공이 되어 휘둘리고 부정당하고 착취당하기에 불행한 것이다.
나는 만다린이 불행한 이유는.
더 이상 한 가정의 어머니도
남편의 아내도
그 무엇도 아닌 욕망의 대상
더 이상 사람으로 살아갈 수 조차 없게 박탈당한 그녀의 인생에 있다고 본다.
만다린의 불행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고
배역에서 밀려 더 이상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게 된 애처로운 이의 단말마처럼
어느 기점을 통해 폭발적으로 숨막히게 굴러떨어져 내린
일종의 재난이라 생각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