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중세 판타지 세계관의 수녀와 남자아이의 비극 순애.

산골 동네의 한 마을.

그리 크지도 않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마을의 사람들은

매번 일요일이면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리곤 했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예배 설교는 아이들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일 뿐이었고,

그런 아이들을 담당하게 된 것이 수습 수녀 에리스였다.


이 장난기 많은 꼬마 개구쟁이들의 말썽은 마을 어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만,

원체 아이를 좋아하는 성향이었던 그녀인지라 금세 아이들을 잘 돌보게 되었다.

부모님이 와서는 아이들이 자기보다 수녀님 말을 더 잘 듣는다고 할 정도.


이 수녀에게는 비밀이 있었는데, 태어날부터 눈처럼 하얀 백발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그 당시에는 백발이면 성녀의 상징으로 여겨져, 

교황청에 끌려가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녀로 교육받고 마족과의 전쟁터로 내몰리는 상황이었기에,

그를 바라지 않은 부모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이 산골마을 수도원장에게

수녀로써 보낸 것. 성녀가 되지 않기 위해서인데, 왜 수도원이냐 하면,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에 따른 것이었다.

더군다나 전선과는 멀리 떨어진 산속이니 위치상으로도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것의 아쉬움을 

아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달래는 그녀였다.

아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놀아주고,

자상하게 대해주는 그녀를 잘 따랐다.


그런 그녀에게도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으니,

아이들 무리와 항상 동떨어져 있던 남자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름은 아벨.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병약한 그는 아이들에게서 외면받고 있었다.

그가 외면받는 이유는 몸 그리고, 

머리카락을 들추면 드러나는 얼굴의 흉측한 화상자국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앉아 

지켜보기만 하는 그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서 하루는 그를 조용히 불러 교회 서재로 데려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돌보아주었다.

아이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호의해 어안이 벙벙해하지만,

곧 마음을 열고 그녀에게 기대기 시작함.

화재로 부모도 잃어, 의지할 곳 없는 그에게,

그녀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이에게는 새로운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는 여전히, 돌봄받아야할 아이일 뿐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연모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꼬마 소년이 알리가 만무했다.

교회의 서재의 책을 둘러봐도, 동화에 나오는 고백같은 것들 뿐이었다.

아쉬운대로 그것들이라도 따라해봤지만, 

그녀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소년은 오늘은 꽃다발을 준비해왔다.

서투른 솜씨였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

서재로 들어가보았지만,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소년은 아쉬운대로 책이라도 읽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년은 흠칫, 하며 잠에서 깨었다.

깜빡 졸아버린 모양이었다.

창밖을 보니, 온통 하늘이 어두웠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일반적인 밤하늘과는 뭔가 달랐다.


"......?"


마을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불길은 서서히 번져 천천히 집들을 집어삼켰다.

비명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왔고,

그 사이로, 날개 달린 악마들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추격했다.

마족이었다. 그것도, 음마의 부류였다.

여자는 동족으로 만들어 버리고,

남자는 식량으로서...잡아먹히고 있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피와 불과 외설스러운 장면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영향에서 수도원도 자유롭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서재의 문을 뚫고

딱 봐도 우두머리로 보이는 음마가 나타났다.


"이래서, 교회의 족속들은 싫단 말이야.

서로서로 윈윈하면 될 것을,

꼭 피를 보게 만들단 말이지."


그녀는 수녀들의 피로 보이는 것을 대충 흔들어 털어내면서,

의자에 걸터앉았다. 

구석에 숨어있던 소년은 엄청난 위압감에 벌벌 떨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죽는 건가?

그러고 보니, 에리스 수녀님은...?


그녀를 생각하니, 머릿속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녀가 저들에게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렇다면...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년은 책장 뒤에 있던 막대기와 십자가를 집어들고 그 음마 앞에 섰다.


"이 악마! 수녀님을 어떻게 했지?"

"...?"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막대기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더더욱이 수도원장조차 당해내지 못한 마족이었으니,

십자가를 들었다 한들, 신성력조차 없는 소년은 그들에게는 모기만도 못한 존재였다.

음마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수녀들? 그거야...뭐...다 황천길로 보내줬지.

우리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지만, 끝까지 저항하니 뭐, 그럴 수 밖에."


소년의 피가 끓어올랐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앞에 있는 악마에게 달려들었지만,

손짓 하나에 바로 제압당했다.

음마는 꼼짝도 못하고 엎어진 소년을 보고 키득키득 웃으며 대꾸했다.


"저런, 가엾기도 해라. 가만히 숨어 있었다면 목숨은 부지했을 것을.

뭐...안심해. 늙어빠진 괴팍한 수도원장을 제외하고는,

죽이지 않고 여자로서의 기쁨을 알려주었으니까..."


소년은 그제서야 문 밖에서 들리는 추잡한 교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악마! 사람들을 원래대로 돌려내!"

"내가 왜?"


음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아직 자신의 처지를 잘 모르나 보네.."

"?!"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소년의 목덜미를 슥 훑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이상한 감각이 소년의 등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넌 죽게 될 거야. 내 먹이로서 말이지...그래도 영광으로 생각하렴.

다른 음마도 아니고, 음마의 여왕이 직접...그 용기를 봐서.

최상의 쾌락을 맛보게 해줄 테니까.

천국에 가진 못하겠지만...천국을 느낄 수는 있겠지."


음마가 킥킥 웃으며 소년의 동정을 빼앗아가려고 할 때.


"멈춰!"


그녀가 나타났다. 

전투의 여파로 엉망인 꼴을 한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 아이를 놔줘."

"아직까지 타락하지 않고 남아있는 수녀가 있을 줄이야..."


그녀는 더 경고하지 않고, 바로 신성마법을 음마에게 직격시켰다.

음마는 얼굴을 찡그리며 공격을 받아냈다.

그녀가 자신들과 동화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 기운....너, 성녀로구나?"

"당장 그 아이에게서 떨어져!"


그녀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수도원장도, 자매 수녀들도...그녀는 지키지 못했다.

마을의 아이들은 악마들에게 그저 재미로, 살해당하거나...먹이가 되거나...동족이 되어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카일, 소년 한 명 뿐이었다.

그라도 지켜야만 했다.


음마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둘은 마음만 먹으면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걸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피를 보는 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 둘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면서, 음마는 그녀의 공격을 몇 차례 받아넘겼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포기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음마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제 재미없다."

"꺄악!"


음마의 공격에, 그녀는 비명과 함께 책장에 부딪혔다.


"왜들 그렇게 필사적으로 구는지 원...

오늘은 이만 물러나지."

"거기...서, 이 악마! 도망칠 셈이야?"


그녀의 말에 음마는 그녀의 앞에 순간적으로 다가가 턱을 들어올리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 둘쯤 끝장내는 건 일도 아니야...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으라고.

내 변덕 때문에 목숨을 건졌으니, 감사한 줄 알아...

그리고...지켜야할 아이가 살았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크윽..."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도 진작에 깨닫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잘 지켜주라고...그럴 수 있으면 말이지만."


음마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음마가 사라지자마자, 그녀는 소년에게로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아벨!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저 악마가 너에게 뭔짓하진 않았어?"

"저...저는 괜찮아요."


엉망인 본인의 모습은 아랑곳않고,

그녀는 소년을 챙겼다.

아이의 몸을 살피면서, 

그녀는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꼈다.

몸이 뜨거웠다.

감기의 열이 아닌, 다른 열이 오르고 있었다.


"아야..."

"아...♥"


소년의 까진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원래라면 치유 마법을 썼겠지만,

그녀는 그 피를 핥았다.

전신을 달리는 오싹한 느낌에 소년은 몸을 떨었다.

아까 전에 봤던, 외설스러운 장면 때문일까.

본의 아니게 노출이 많이 생겨 버린 

그녀의 모습은 소년에겐 너무 강한 자극이었다.


그녀는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음마가 그녀의 몸에 무언가 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흥분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본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제는 한계였다.

그녀는 말도 안되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카일...지금 내가 치유마법을 쓸 힘이 안 남아서...

다른 방법이 있는데...괜찮겠지..?

"네...?"


그래. 이건 치료 행위니까.

괜찮아.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속이면서...

그렇게. 그녀는 타락했다.


"어...어째서 옷을..."

"이..이래야 효율이 좋으니까..."


그녀의 나신을 마주한 소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눈 둘 곳을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녀 또한 첫 경험임에도, 망설임없이 소년의 양물을 집어넣었다.


"흐앗♥ 아...아..."

"히극...."


아래에서부터 퍼져나가는 강렬한 쾌락에,

둘은 몸을 떨었다.

이거, 반칙이잖아....

이런 거 알아버리면...다시는...못 돌아가..

자기들끼리만 이런 좋은 걸 하다니...너무해..


"하아...아...아.."

"?...?..???"


그녀가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방금보다 더한 쾌락이 둘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소년은 사고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했다.

그저 눈물 맺힌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헐떡일 뿐이었다.

소년의 순수한 반응은 타락해버린 그녀의 본능을 더욱 부추기고 말았다.


"아벨...아벨...더..더...원해...♥"

"흐아...그..그만둬...주세요...이런...거..."

"미안...해...참을 수가...없어서..."


지켜야만 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뇌리 속에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드는 죄책감은,

쾌락에 압도당해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긴채,

가녀린 소년의 몸을 탐했다.

어느새 생겨난 날개와 꼬리가...그녀의 현 상태를 말하고 있었다.


"아...으아..."


눈앞의 소년의 녹아버린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가녀린 신음, 부드러운 피부..그의 모든 것이 너무도 달콤했다.

그녀는 완전히 쾌락에 빠져버린 채, 눈앞의 수컷을 더 원했다.

그를 품에 안은 채, 그녀는 허리 놀림을 계속했고, 그의 정을 더 쥐어짰다.


"으아...아..."

"아벨...아벨..."


포식자에게 잡힌 사냥감처럼, 

소년은 그저 쾌락에 몸부림치며 직면한 죽음의 공포에 떨 뿐이었다.

도망은 불가능했다. 

그녀에게서 뿜어져나오는 달콤한 향기와, 

처음 경험하는 엄청난 쾌락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저항할 힘을 빼앗아갔다.

그녀의 팔과, 꼬리와 날개가 소년을 감쌌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소년은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었다.

비쩍 마른 주검만이, 그녀의 품 안에 남아 있었다.


"아아....아아아....."



그녀의 서글픈 비탄이 정적만 남은 예배당 안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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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0년 뒤,

길드에서 집단 실종자 수색 의뢰를 받은 모험자 파티가 이곳을 찾았다.


"여기 분위기가 으스스한데."

"이런 곳에 마을이 있었나?"


마을에 들어선 일행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기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어보이는 마을이었다.

건물도 낡아빠졌고, 버려진 게 아닐까 싶은 수준이었다.


"어, 저기 사람!"


좀 더 들어가 보니, 이 마을의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의 의문점은 더 커졌다.

주민들은 말이 통하기는 하는데, 

어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었다.

마을의 분위기처럼 주민들도 전혀 생기가 없었다.

언데드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나 참, 이거야 원..."

"빨리 끝내고 여기서 나가고 싶어.

여기 진짜 뭔가 이상해."

"그러게. 이번 의뢰 완수는 차치하고서라도 

조사를 건의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들은 탐문하던 중 교회에까지 도달했다.


"그래도 여긴 좀 낫지 않을까?

다른 데도 아니고 교회잖아."

"뭐라도 얻으면 다행이긴 한데..."

"아, 손님이시군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이 근방에서 실종자가 집단으로 발생했다고 해서요..."


자초지종을 들은 수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하지만 저희도 들은 바가 없네요."

"그러신가요, 어쩔 수 없지요."

"오신 김에, 마침 저녁 때이기도 하니 식사하고 가세요."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여행자에겐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부디 대접하게 해주세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일행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의 다른 허름한 건물들과 달리,

이 곳은 깨끗하고 깔끔했다.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네."


수녀가 떠나가자, 일행은 잠시 얘기를 나눴다.


"점심값 굳었네."

"근데 여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여기만 멀쩡한 거 같은데."

"그리고 이렇게 큰 교회에 사람이라고는 저 분 한 명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에이 설마, 뭔가 사정이 있겠지."

"글쎄...."


그 때, 탁상에 있던 잉크통이 굴러떨어졌다.


"야, 신경좀 써라. 이거 깨졌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내가 손댄 거 아닌데."

"뭔 소리야. 그럼 누가 그랬는데. 유령이라도 있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잉크 통 뚜껑이 열리더니,

깃펜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어난 기현상에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 동안, 깃펜은 종이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안녕하세요..제 이름은 아벨입니다...

이 곳에 묶여있는 유령...뭐?! 유령?"


일행은 다시 한 번 경악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깃펜은 계속 글을 써내려갔다.

내용은 20년 전 이곳에서 있던 일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수녀님이 악마라고...."

"그러면 마을이 이상한 게 이제야 이해가 되는데.

다 붙잡혀 있는 거나 다름없는 것 아니야?"

"저 사람들의 신원도 확인해 봐야겠는데.."

"지금 빠져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

이건 우리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큰 사안인 거 같은데."

"그게...맞겠지?"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기라도 한 듯이,

밖에 그녀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따라와주시겠어요?"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식사자리에 동행했다.

그들은 곤혹스러웠다.

이 음식에 독이나 마법이 걸려있는 것은 아닐까?

무슨 해코지라도 당하는 것 아닐까?


"어머, 음식이 입에 안 맞으시나요?"

"아...아뇨. 점심을 너무 늦게 먹어서요."

"그런...제가 너무 무신경했네요. 그럼 조금만 드시죠."


더 이상 손을 안 댈 수도 없어, 

그들은 음식을 한 입 베어물었다.

평범하게 맛있는 가정식이었다.

마법이 걸려 있거나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수녀님...원래 혼자 지내시나요?

여기는 혼자 관리하시기엔 너무 큰 것 같은데."


이왕이면 더 정보를 얻어가고자,

그들은 슬쩍 질문을 던졌다.


"아...수도원장님은 지역 교구장님을 보러 가셨어요.

한동안은 돌아오지 않으실 거에요."

"다른 수녀 분은 없으시나요?"

"다, 다들 교구장님 따라서 연수를 가서요..."


말을 더듬는 것에 거짓말임이 티가 났지만,

그것이 오히려 의문이 들었다.

유령의 말대로라면...눈앞에 있는 그녀는

악마가 확실할 터. 하지만 그렇다기엔 살기도 없고,

거짓말도 너무 티가 났다.

그들은 이상한 점을 굳이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뭐...그럼 외롭지는 않으신가요? 한동안 혼자이실 텐데."

"괜찮아요. 여기, 같이 지내는 아이도 있고 해서요."

"아이요?"

"아, 마침 오네요."


아이치고는 둔탁한 발소리와 함께,

9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수녀에게 달려왔다.


"자, 아벨. 여행자분들께 인사하렴."

"안녕하세요-"


땡그랑-


그 때, 숟가락 몇 개가 저절로 식탁 아래로 떨어졌다.

별 생각 없이 주우려는데, 쪽지 하나가 같이 있었다.


'절대 저 아이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지 말 것-'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은 그들은 황급히 탁자 위로 고개를 올렸다.

하지만 아뿔싸, 이미 그들 중 한 명이 그 아이와 눈을 마주쳐 버렸다.

겉으로는 지금 당장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이미 해가 져버렸네요...날도 늦었고 

밤 산길을 가긴 위험하니 묵고 가시는 게 어떠신지..."

"아..저희는 괜찮-"

"그거 좋네요. 묵고 가죠."


눈을 마주친 그녀 혼자서만 여기에 남을 것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녀만 내버려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

나머지 일행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 술 더떠, 그녀에게만 부탁할 것이 있으니 잠시 참회실로 와달라는,

누가 봐도 수상한 부탁을 그녀는 흔쾌히 수락해 버린 것이었다.


"하....젠장. 아까 빠져나갔어야 했는데."

"왜? 딱히 나쁜 사람 같지도 않아 보이는데. 너네가 너무 의심이 많은 거 아냐?"

"넌 그냥 입 다물고 있어."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네. 그럼 너네만 가던지."

"누가 쟤 입 좀 막아봐."


다른 일행들이 그녀를 제압하는 사이,

양피지에 다시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아까의 유령인 듯했다.


".....이름이 아벨...이라고 했던가?

그 아이, 너와 이름이 같던데."


다소 고통스러웠던 질문이었는지,

깃펜은 공중에서 움직이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그건 제가 아니에요. 그녀의 상실감이 만들어낸 가짜죠.

아마...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거겠죠...'

"그래서, 해결 방법은?"

'그 괴물을 해치우는 방법 말고는...없어요.

저도 이런저런 걸 시도해봤지만...전부 소용없었어요.

그리고 그녀 근처에서는 제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부탁드려요. 이 몇년 동안 여러분 같은 강해 보이는 모험자 같은 손님이

온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요...부디 이 악몽을 끝내주세요.'

"하...원래라면 그냥 갔어야 하지만...우리도 휘말려 버렸으니...뭐."


그들은 한참동안 바둥대던 동료를 풀어주었다.


"이런 야만적인 짓거리를 하다니, 돌아가면 다시는 당신들과 상종 안 할 거야."

"그래그래, 이젠 간섭하지 않을 테니까, 니 멋대로 해."


그녀는 방문을 박차고 성큼성큼 참회실로 향했다.

어딘지 한 번도 말해준 적도 없을 텐데,

원래 알고 있는 것처럼 길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뒤로, 거리를 둔 채 나머지 일행이 조용히 따라갔다.


"....나 배고파."

"조금만 참아...일단...그래 내 걸로..."


참회실에는 조용한 말소리가 들려왔고,

이들의 동료가 노크를 하자 말소리가 끊겼다.


"잘 오셨어요."

"바보같은 동료들이 반대하느라 혼났어요.

그래서, 부탁이 뭔가요?"

"피를...조금 주시면 좋겠어요."

"네, 뭐 그거야 어렵지 않죠."


이미 세뇌당한 그녀는 흔쾌히 부탁을 수락했고,

팔을 들이댔다.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피부를 꿰뚫으려는 그 때.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괴물에게 마법이 작렬했다.

마법으로 안쪽 상황을 엿보고 있던 그들은 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되기 전에 개입했다.


"이게 무슨 짓...!"

"해치웠나?"

"미쳤어? 그 말 당장 취소해!"


일격을 맞은 괴물의 상반신이 없어졌지만, 이내 다시 몸을 구성하더니,

이제는 사람의 껍데기를 벗은, 진짜 괴물의 형상으로 변했다.


"앞으로 조금이면 끝이었는데 말이야..."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나.

본모습은 징그럽기 짝이 없네."

"이 눈치빠른 것들...이래서 모험자는 싫다니까.

뭐, 됐다. 모두 죽어서 내 양분이 되어라."


포효와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세뇌당한 궁수가 괴물을 도우려 하자,

도적이 은근 슬쩍 뒤로 숨어들어, 궁수를 기절시켰다.

괴물은 큰 몸이 익숙지 않은 듯 몇 번 공격을 휘둘러도 맞지 않자,

생각을 바꿔 공격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이 벌레 같은 것들!!!"


하지만 흥분한 것인지 빈틈이 생겨났고,

그 생겨난 빈틈에 정확히 공격이 들어가려는 순간,

보호 마법이 괴물을 감싸 공격을 튕겨냈다.


"젠장, 정신 차려! 저 괴물을 당신이 아는 그 아이가 아니라고!"

"당신..당신들이 뭘 알아요..."

"칫!"


얼마나 지났을까, 치열한 전투 끝에 괴물은 바닥에 엎어졌다.

수녀가 죄책감에 보호마법만 걸어준 것이 다행이었다,

그녀가 더 깊게 이 전투에 개입했다면 상황은 훨씬 더 불리했을 터였다.


"안 돼...아벨...제발 일어나.."

"몇 번을 말하지만...그건 그 아이가 아니.."

"나도 알아요! 안다고!"


그녀의 고함에, 우리는 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악마의 모습이 무색하게, 그녀는 약했다.

자신의 모든 힘을 그 괴물을 유지하는 데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쓰러진 괴물의 몸을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내가 아는 그 아이는 더 이상...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이 괴물이 그 아이가 아니란 것도...잘 알단 말이야.."

"알면서 왜 이런 짓을..."

"기적이...기적이 일어나기를 빌었어.

이 부질없는 짓에도 언젠가 기적이 깃들어서,

단 한 번...잠깐만이라도 좋으니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


구슬픈, 한 맺힌 울음소리에 우리는 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내가 그 아이를 죽였다고요...

지켜야만 했는데...아아...

미안해...용서해줘..."


그녀는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악마가 이렇게 불쌍하게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데."

"....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 하고 싶냐고."


그녀의 힘이 약해진 지금이라면.

어쩌면.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안하다고...용서해 달라고...

나도...나도 많이 좋아했다고..."

"....라고 하신다."

"그게 무슨..."


깃펜이 공중에서 내려와 무너진 잔해에 글씨를 쓰자,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괜찮아. 수녀님의 탓이 아니에요.'

"아벨...아벨? 거기 있는 거야?"

"그가 죽은 뒤로 계속 당신 곁을 맴돌았다더군."


그 말에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미안해...나...나 때문에..."

'괜찮대도.'

"나...나..용서받지 못할 짓을 해 버렸어..."

'용서할게. 끝까지 다른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잖아.'

"그렇지만..."

'수녀님 덕분에...아니...누나 덕분에 나는 구원받았었어.

상황이 이렇게 망쳐진 건...그 악마들 때문이지, 누나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살아줘. 이제 그만 나는 잊고.'

"내가 어떻게..."

'잊어야 해. 나는 이제 망자니까...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니까.'

"............"


그녀는 이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다.


'이제 갈 시간이야.

그래도 결국 잘 풀려서...다행이야.

고맙습니다. 모험자님.

나, 먼저 가서 기다릴게...빨리 오면 화낼 거니까.'


희미한 햇빛이 지평선을 넘어 건물 잔해 사이로 비춰들어왔다.

공중에 떠 있던 깃털펜은 미약한 빛과 함께 천천히...아래로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꽃다발에 있던 꽃잎이 흩날려 바깥으로 날아갔다.

그녀가 소년에게 받은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러니까...천천히 와.'


마지막 글씨를 읽은 그녀는 세상이 떠나가라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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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태가 정리되고 나니,

바깥이 온통 난리였다.

마을을 감싸던 안개는 사라지고,

조종당했던 사람들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 들 중에는 이번 의뢰의 실종자 명단의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부탁이 하나 있어요."

"피 달라는 거면 사양하겠는데. 다른 것도 마찬가지고."

"그런 거 아니에요. 이래뵈도...전 성녀였으니. 그런 짓은 더 하지 않아요."


그녀는 우물쭈물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당신들을 따라가게 해주세요."

"우리야 나쁠 건 없지만, 따라와서 뭐하려고?"

"속죄할 방법을...찾고 싶어요."

".....이미 용서받았잖아."

"하지만 나쁜 짓을 한 것도 사실이잖아요."

"하...뭐, 다시 세뇌만 시키지 말라고."


훗날, 그녀가 서큐버스 출신 치유사의 원조가 되는 것은 그로부터 조금 먼 이야기였다.




아니...원래 생일날 소재글로만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길어져버림...

생일 이틀 지났는데...축하해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