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원래 예전에 두번째 인간 소재로, 그것도 평행우주 출신에 사령관보다 훨씬 능력이 쩌는 두번째 인간 소재로 챈이 흥했을 때 한번 만들어보려다 보류된 내용이었음.


일반적인 콘문학이나 소설형식이 아니라 각 에피소드마다 한명의 캐릭이 나와 독백 또는 수기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보류되고 내 폴더 어딘가의 텍스트파일로 짱박혀있었음....


이제와서 다시 꺼내는 이유는 그냥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읽는 것보다 같이 읽어보는 것 쯤은 괜찮잖아?


그래서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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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의 수기]




[3527년 6월 11일]

수기의 날짜도... 이렇게 쓰는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곳 시간에 적응해야 하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아니, 우리가 살았던 지구는 망했다.

인류의 흔적, 철충, 별의 아이, 펙스,

저항군...........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우주의 먼지로 사라졌다.


파멸의 시작은 너무나 사소했다.

그저 저항군과 철충이 여느때와 같이 싸웠을 때, 하필이면 철충의 시설 중 지구 핵에서 에너지를 뽑아 쓰는 시설을 잘못 건드린 것이다.


핵이 불안정해진 지구는 당연히 중력도 불안정해졌고, 더 이상 중력을 유지 할 수 없었던 지구는 조금씩 자신의 껍질부터 우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당장 마그마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땅을 하늘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닷물도 용오름처럼 아름답지만 끔찍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한 거대한 물의 벽을 만들며 올라갔다.


핵이 점점 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하자 지구의 자기장도 사라졌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태양풍이 드디어 지표면에 닿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태양으로부터 나온 화염에 불살라져갔다.

누가 보면 마치 정화의 불길이라고 믿을지도...


나를 포함한 오르카 저항군은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오르카호 안에 있던 생존포트에 하나 둘 들어갔다.

이미 오르카호도 붕괴한 중력때문에 우주로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요안나 아일랜드에서 다급한 요청이 들어와서 서둘러 오르카로 복귀하도록 사령관의 지시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소식은 없었다.


우주정거장에서도 오비탈와쳐의 긴급교신이 오는거 같았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뜯겨나간 지각과 멘틀이 우주정거장을 덮치는 것을 봤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나도 발할라 자매들이 안전히 포트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다음 나도 포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폭발음과 뭔가가 파괴되는 소리가 들렸지만 폭발의 충격때문에 의식이 사라져가는 나로선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이 광경이 내가 다시 의식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보게 된 광경이다.


처음엔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해서 단순히 우리를 구하러 온 누군가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바로 지구는 파괴되었고 구인류도, 저항군도, 펙스도 모두 사라진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저것은 듣도보도 못한 우주함대란 것을 알아차렸다.

우주함대라니, 구인류도 그 정도까지 문명이 발전하진 못했는데...


나는 바로 모듈로부터 강력한 경고의 신호를 느끼고 좁은 포트 안에서 당장 해야 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선 포트에서 나와 무기거치대에서 무기를 꺼내기로 했으나....

정신차려보니 내가 몸담고 있는 포트는 우주공간에 홀로 떠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극심한 무력감에 빠진 나는 하염없이 저 우주함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치 나의 생각을 읽고 있는 듯 내가 있는 포트쪽으로 함대에서 나온 집게달린 비행선이 다가왔다.

이윽고 집게를 벌려 포트를 부드럽게 잡고는 이내 저 우주함대 중 가장 큰 우주선으로 데려갔다.


우주선은 멀리서 봐도 무척 거대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훨씬 거대한 배였다.

대형 수송선은 족히 들어간 격납고가 적어도 스무개는 넘어보였다.


잠시 후, 어느 한 격납고에 착률한 비행선은 곧바로 내가 들어있는 포트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놨다.

동시에 나는 느꼈다. 


무수히 많은 인간의 뇌파를.


그리고 보았다.

그리고 나와 같이 살아남아 이 함선에 실려온 저항군 자매들을.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무나 슬펐다.


서로 살아있음에 기뻐 서로를 안아주며 그 감정을 나누었으나,

그 수가 너무나 적었다.



발할라 자매들은 발키리, 님프, 베라, 픽시(파트너인 라이언은 보이지 않았다)만이 살아남았다.

스틸라인에서는 마리, 레드후드, 임펫, 하베트롯, 노움, 레프리콘, 브라우니 만이 살아남았다.

호라이즌에서는 용, 네레이드, 세이렌 만이 살아남았다.



이게 살아남은 저항군의 전부였다.



마리가 구출작전에 투입됐던 어느 인간님에게 사령관의 생존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그 인간님은 유감이라는 말과 함께 생존자는 우리가 전부라는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세상이 끝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여태껏 견뎌온 과거가 한순간에 무의(無意)로 돌아가고 우리라는 존재는 다시 아무짝에 쓸모없는 존재로 되돌아갔다.


우는 자매들도 없었다.

슬픔을 넘어 영혼이 바스라졌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다들 빈 껍데기마냥 주저앉아 초점잃은 눈을 우주선 바닥과 마주할 뿐이었다.



이윽고 우주선 안을 울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슬립스페이스? 뭔가를 하니까 승조원들은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때는 나 또한 제정신이 아니어서 방송내용의 뜻을 알지 못했다.


이윽고 격납고와 우주공간을 잇는 게이트가 닫히고 우주선은 천천히 무거운 진동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줄곧 영원히 지킬것이라 믿었던 지구를 떠났다.





그렇게 우리가 한참동안 격납고 바닥에 붙어 영혼없는 인형처럼 있을 때, 멀리서 우리쪽으로 다가오는 육중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발소리의 정체를 본 우리는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도 모듈로부터 전달받은 강렬한 경고신호를 느끼며 즉각 경계태세를 갖췄다.










인간처럼 걸어다니나 인간이 아닌 존재.

인간처럼 행동하나 뇌파가 느껴지지 않는 존재.

두 다리로 딛고 서 있지만 인간과는 다른 구조의 다리.

순백의 미형이 살아있지만 인류의 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전투복.



처음엔 이 함선에 철충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철충도 뇌파가 느껴지기에 그건 아니라 판단했다.



아무튼 그 존재는 점점 더 우리쪽으로 다가왔고 어느덧 우리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인간의 언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스스로를 '카투크 나함' 이라고 소개한 이 존재는 우리를 어딘가로 인솔하기 시작했다.



나함의 뒤를 따라가며 조금씩 정신을 차려가는 우리는 그제서야 이 우주선 곳곳에 인간 외에도 다른 존재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나가는 우리들을 보고 "인간 여자다! 혹시 메탄 좋아해?" 라고 알 수 없는 희희덕거림을 하다 같이 있던 인간 군인에게 머리를 쥐어박히고 한소리를 듣는 키 작은 존재들도 있었다.



어쨋든 나함은 우리를 여러 구역을 지나 거대한 창이 있는 곳에 데려왔다.

그는 "저기로 가면 당신들이 잘 아는 자가 있을 것이다." 라는 한마디를 하고는 이내 돌아갔다.



우리는 의미를 알 수 없어 그저 불안감을 가진 채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는 창밖의 우주를 바라보며 조용히 서 있는 어떤 이가 있었다. 

   















......그 사람이다.......

온몸을 갑옷으로 뒤덮고 얼굴마저 헬멧으로 가렸지만 뇌파로 알 수 있었다.




저항군 시절 우리에게 발견되어 우리와 함께 인류재건을 위해 활동하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사람...



부사령관.............



우리가 그 사실에 다시한번 충격을 받고 몸이 굳어버린 것을 알아챘는지 부사령관은 천천히 몸을 우리쪽으로 돌려 다가오며 말했다.



"이제서야 찾아내서... 미안하다."



그것이 그가 우리와 다시 만나 입을 열어 말한 첫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