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여제는 정중히 노크를 하고 그녀의 허락하에 방문으로 들어온 자신의 경호대장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니면, 그대의 연인을 보러 온 건가요? 그렇다면 더욱 대범한 일일 텐데요."


침대에 걸터 앉아 있던 여제가 안아달라는 듯 양팔을 들어올리자, 얇은 비단옷이 스르륵 미끄러지며 그녀의 하얀 팔이 드러났다.

위엄과 권위라는 겉옷을 벗고 오직 품위라는 속옷만을 입은 채 사랑하는 사람을 유혹하는 여제의 모습은 일견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다.


"폐하께 개인적인 부탁을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나 경호대장은 상대를 부르는 방식으로 그녀가 벗어두었던 겉옷을 다시 입혔다.


오랜만에 애정을 바라고 있던 여제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실망감이 스쳐지나갔지만, 곧 그녀는 팔을 내리고 허리를 곧게 펴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런 늦은 시간에 찾아왔다는 건, 상당히 중요하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선 꺼내기 어려운 주제라는 것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어떤 부탁인가요?"


"군대를 보내기 전에, 저를 먼저 보내 주십시오."


경호대장은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으나 여제는 그가 말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모아리스.

100년 전 제국에 점령된 지역이자, 30년 전에 경호대장이 태어난 지역이며, 사흘 전에 자유를 되찾겠다며 제국에 반기를 든 지역.


"그대 혼자?"


"예."


여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제국의 사신으로서 적지에 가는 건가요, 아니면 모아리스의 아들로서 고향에 가는 건가요?"


"어느 쪽이든 목적이 같으니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적이라 함은?"


"불필요한 피가 흐르기 전에 항복을 권하고 오겠습니다."


여제는 대답 대신 팔짱을 끼고 왼손 검지로 자신의 오른팔을 톡톡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무표정하게 일정한 간격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그녀의 행동은 그녀가 상대의 제안을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과, 그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포위당해있어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죠."


속내를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한참동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여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그 땅에 도착할 때 쯤이면, 이미 모든게 결정나 있을 거예요."


"서두른다면 양측의 창이 부딪히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반란을 주도한 이들에 대한 처벌은 피할 수 없어요.

과연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놓으려 할까요?"


"본격적인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이 다시 제국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죽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제국은 황제를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황제 혼자서 움직일 수는 없죠.

이미 출정 준비에 들어간 군대를 물리고 반역자들을 다시 받아준다면 의원들의 반발이 엄청날 거예요."


"폐하와 의원들이 제국을 움직이게 명령할 수 있어도, 실제로 움직이는 건 백성들입니다.

무력 대신 자비로써 모아리스를 거두신다면 백성들은 폐하를 칭송할 것입니다."


여제는 거듭된 질문에도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상대 때문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능구렁이 같은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당신을 설득하는 게 몇 배는 더 힘드네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위험한 이 순간에 경호대장이 제 곁을 떠난다는게 달갑진 않기도 하고요."


"불경을, 무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폐하의 길에 장애가 됨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악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를 보내주십시오."


경호대장이 고개를 깊게 숙이며 사죄의 뜻을 내비쳤다.


전임 황제의 의문스러운 죽음 이후, 여러모로 혼란스러워진 황궁을 어렵게 정리 하자마자 터진 반란은 여제의 정치적 입지를 다시금 곤란하게 만들었다.

여제는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반란을 진압해야만 했기에 출병을 서둘렀고, 평소엔 사사건건 그녀를 견제하던 의원들 역시 반란이라는 중대한 사건 앞에서는 괜한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렇기에 굳이 경호대장을 보내지 않더라도 반란을 제압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그가 반군들과 접촉했다가 괜히 일이 더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여제의 입장이 난처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여제는 눈앞의 남자를 믿었다.

경호대장으로서나 연인으로서나 그는 분명 자신을 위해 움직일 남자였다.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여제는 사랑하는 남자의 뜻을 가로막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드세요."


경호대장이 고개를 들자 여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호대장을 향해 다가갔다.


"그대의 요청을 받아들이겠어요. 그 전에..."


여제가 경호대장이 허리춤에 찬 검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경호대장은 주군의 뜻을 이해하고 허리띠를 풀어 그녀가 자신의 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 다음 무릎을 꿇었다.


"그대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관례는 관례니까요."


검을 건네받은 여제는 심호흡을 한 뒤, 검집에서 검을 뽑아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남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당신이 원하는 것입니다.

적을 베어야 한다면 검이 될 것이고, 몸을 가려야 한다면 방패가 될 것이며, 사람들에게 내보여야 한다면 깃발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대가 나의 방패가 되길 원한다."


"나는 충성과 용맹으로 당신을 수호할 것이며, 나의 힘은 당신의 영광과 안전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맹약이며, 나의 길이니, 나의 검은 당신의 적을 물리칠 것이오, 나의 방패는 당신의 적을 막아설 것입니다."


"그대의 맹약을 받아들이노니, 나의 신뢰와 기대가 그대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당신의 방패이니, 당신의 모든 희망과 목표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당하겠습니다."


"이로써 우리의 서약이 선포되었으니, 그대는 나의 자랑이자, 나의 영웅이니라."


관례에 따라 전쟁을 앞두고 황제의 곁을 떠나려는 신하에게 서약의 재현을 끝마친 여제는 검을 집어 넣고 경호대장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검을 받아든 경호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여제가 두 손을 그의 어깨 위에 가볍게 올렸다.


"여제로서 당신에게 서약을 다시 받았으니, 연인으로서도 다시 받아갈게요."


그녀는 상대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잠시 당황했던 경호대장은 조용히 자신의 검을 내려놓고 상대의 몸을 가볍게 감싸며 상대의 입맞춤을 받아주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언어도 오가지 않았으나, 그들은 수없이 많은 맹세와 약속을 마음 속으로 나누었다.


입맞춤으로 서약을 교환한 두 사람이 다시 천천히 멀어졌다.

여제는 애틋한 애정을 담은 시선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차는 상대를 바라보다가 그의 품에 안겼다.


"에드릭, 정말로 가야만 해요? 너무 위험한 시기에요.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아요."


"저도 당신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를 위해서 가야만 합니다."


"모두를 위해서..."


남자의 마지막 말을 따라 중얼거린 여제가 상대의 옷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럴 때는 제가 황제라는 사실이 너무 싫어요.

저는 오직 당신만을 생각하고 싶은데, 제 신분은 그걸 허락하지 않네요."


에드릭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연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걱정 마요, 리아나. 황궁의 모두가 당신을 지켜줄 테니까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아나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제가 걱정하는 건 제 몸이 아니라 당신의 안전이에요."


"리아나..."


에드릭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연인의 몸을 조금 더 세게 껴안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녀가 품은 상냥한 불안감을 떨쳐내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곁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생겨난 미안함이 그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


"미안해요, 리아나. 저도 당신의 곁에 남아있고 싶지만..."


"괜찮아요. 저도 당신이 떠나는 게 얼마나 힘든 결정인지 알고 있어요. 그 이유도 이해하고요.

다만, 한동안 당신을 보지 못할 테니 투정을 부리는 것 뿐이에요."


에드릭은 연인의 마음에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그녀는 여제이자 연인으로서 자신에게 크나큰 배려를 해줬지만, 자신은 그녀에게 연인으로서도, 경호대장으로서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고향 땅이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는 것과 조국의 백성들이 피를 흘리게 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기에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야만 했다.


"리아나, 당신이 저를 기다리는 동안, 저는 항상 당신을 생각할 겁니다."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러니 꼭 돌아와요."


"약속할게요. 사랑해요, 리아나."


"저도 사랑해요."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 더 깊게 껴안았다.

에드릭은 자신의 가슴을 타고 미끄러지는 리아나의 따뜻한 숨결을, 리아나는 자신의 귓가에 울리는 에드릭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얻었다.


연인의 온기를 통해 사랑을 재확인한 여제가 천천히 상대의 품에서 벗어났다.


"자, 그럼 이제 가세요. 모아리스로 가서 그들을 설득하세요. 저를 위해서, 그리고 모두를 위해서."


에드릭은 아쉬움과 이해로 가득 찬 여제의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릭,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연인과의 마지막 기억을 되살리고 있던 에드릭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냥, 리아나... 황녀님에 대해 생각을 조금 했습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기사단장이 씨익 웃으며 에드릭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녀석, 긴장했구나.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황녀님이라고는 해도, 아직 열일곱 살인 아가씨니까. 너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다고?

그래도 방금처럼 황녀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선 안 되겠지만 말이다."


기사단장이 황녀와의 만남을 앞두고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부하에게 용기를 넣어주는 사이,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인기척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셨나보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첫 만남이니까 좋은 인상을 줘야 한다?"


고개를 끄덕인 에드릭은 심호흡을 하며 곧 모습을 드러낼 황녀를 기다렸다.

인기척이 가까워지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는 황녀에 대한 예상과 기대, 그리고 추억이 어우러졌다.

바람에 흩날리던 긴 갈색 머리카락, 촛불에 일렁거리던 보라색 눈동자,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던 맑은 목소리, 여제로서는 당당하게, 연인으로서는 사랑스럽게 행동하던 모습...


그리고 마침내, 지난 7년 동안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하던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오랜만이에요, 로웰 경. 그리고..."


기사단장에 이어 새로운 자신의 호위에게 인사를 하려던 황녀가 놀라 말을 삼켰다.

그녀의 반응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린 기사단장 역시 약간 놀란 어조로 부하에게 물었다.


"에드릭, 괜찮나?"


"네?"


에드릭이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자, 황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눈물이..."


그제야 에드릭은 자신의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급히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지만, 이미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 장소에 있는 모두가 당황한 후였기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전하."


"괜찮아요."


황녀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에드릭은 다시 한번 울컥 하고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지난 몇 년 동안이나 상상하고 또 상상해왔던 미소는 그의 기억보다도 몇 배는 더 아름다웠다.

에드릭은 그녀의 미소를 보며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여제 리아나를 겹쳐 보고 있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녀를 껴안고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고, 매일 당신을 생각하며 그리워하고 싶었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은 여제이자 그의 연인이었던 24살의 리아나가 아니라, 17살의 어린 황녀 리아나일 뿐이었다.


"늦었지만, 인사 올리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전하의 경호를 맡게 될 에드릭 메야리프입니다."


친밀감을 표시하기에는 너무나도 먼 그녀를 향해, 에드릭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반가워요, 메야리프 경.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리아나 역시 예의바른 태도로 화답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첫 만남부터 눈물을 흘린 기사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만난 상대와의 거리감을 생각하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물어보겠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호기심을 마음 한 쪽에 조용히 접어두었다.


첫인사가 끝나자 기사단장 로웰은 두 사람의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분위기를 신경쓰면서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정식 서약은 내일 오전에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황녀는 기사단장의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채고 눈치껏 대답했다.


"그렇군요. 저도 아직 할 일이 남아있고, 두 분도 그때까지 준비를 하셔야 할테니 저는 이만 돌아가볼게요."


"너그러움에 감사드립니다."


황녀는 허리 숙여 인사하는 두 기사에게 미소로 화답하고 뒤를 돌았다.


에드릭은 괴로운 마음으로 점점 멀어지는 리아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고백해야 할지, 아니면 숨겨야 할지, 회오리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녀에게 전부 털어놓는다는 선택지는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현 황제가 죽고, 리아나가 황제로 즉위하고, 에드릭이 경호대장으로 승진하고, 에드릭과 리아나가 연인이 되고, 모아리스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에드릭이 그 반란을 막으러 모아리스에 간 사이 리아나가 암살당하고, 에드릭이 그 암살 사건의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는 것까지.

그의 머릿속에는 그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건 그의 망상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그가 다시 살아왔던 삶이 이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미래까지 그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미래는 변해야만 했다.

다른 미래를 전부 바꿀 수 없더라도, 리아나가 죽는 미래만큼은 바꿔야만 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리아나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리아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에드릭, 괜찮아?"


생각에 잠겨있던 에드릭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 네. 괜찮습니다."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려서 놀랐다. 누가 보면 헤어진 연인이라도 만난 줄 알겠어?"


기사단장의 농담에 찔린 에드릭의 심장이 다시 한번 쿡, 하고 아파 왔지만, 에드릭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대답했다.


"그냥,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서 그랬습니다."


로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변방 모아리스에서 황궁의 중심부까지 올라왔으니 그럴만도 하지. 그래도 내일은 울면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널 내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데 그리 약한 모습을 보이니 걱정되네.

안 그래도 황녀님의 경호대장이 엄청나게 무서운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데, 나중에 질질 짜면서 다시 나한테 돌아오고 싶다고 우는 거 아냐?"


과장된 말투로 우스꽝스럽게 농담을 하는 기사단장 덕에 마음이 풀린 에드릭이 웃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경호대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로웰 단장님 아래에서 구르던 것 보다는 쉬웠으니까요."


"...? 쉬웠다고?"


에드릭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낀 로웰이 되물었다.


"아, 제 말은, 쉬울 거란 뜻이었습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에드릭이 급하게 말을 바꾸자 단장이 혀를 가볍게 찼다.


"아직 정신이 덜 돌아왔나보네. 너 정말 괜찮겠냐? 이제 경호대장 만나러 가야 하는데."


"정말 괜찮습니다."


"하긴 뭐, 안 괜찮아도 괜찮아야지. 가자."


로웰은 걱정되는 마음을 부하에 대한 신뢰로 덮어 씌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에드릭은 로웰과 함께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동안 계속해서 자신의 다짐을 되새겼다.

오랜 시간 동안 품었던 그리움과,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미래를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마음 속에서 다시금 타올랐다.


'이번에야말로, 당신의 모든 희망과 목표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당하겠습니다, 리아나.'













알고리즘 타서 오랜만에 디스아너드 보다가, 만약에 디스아너드가 복수물이 아니라 회귀물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망상에 조금 끄적여 봤음.


근데 나는 이 이상 이야기를 풀어나갈 능력이 없으니까 대신 써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