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로의 파견 임무, 평범하게 끝마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철혈의 수장, 비스마르크의 자매함이 지키는 그곳.


아직 구축함의 지휘조차 해본 적 없는 초임인 나로서는, 전함의 지휘를 맡는다는 파격적인 진급 코스라고 생각했다.


비록 보급선은 한 달에 한번 꼴에, 연락선은 반년에 한 번뿐인 기지였지만


큐브 적성능력이라는 것 때문에, 억지로 어린 나이에 지휘관이 되어 다른 인간 병사들을 만나는 것조차 꺼렸던 고아였기에


처음에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자신에게 지휘관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주포를 겨누었던 티르피츠에게서 나와 같은 씁쓸함을 느꼈으니까.


기지를 도망 다니며 잡일을 해내고


요리책을 보면서 간단한 요리를 식탁에 올려놓는 등


더는 우연찮게 그녀와 복도에서 마주쳐도, 함흥차사처럼 도망치지 않게 되었을 때.


"...안전한 장소에서 전투를 바라볼 뿐, '잔혹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 느낌, 이해할 수 있나?"


그녀의 품에 업힌 채, 한바탕 전투를 보낸 밤하늘에 나타난 오로라와 함께.


티르피츠가 언니를 보고 싶어 하고, 내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친누나를 회상하듯.


하얀 머리카락에 미소 짓는 얼굴이 아름다운 북해여왕, 티르피츠의 고독함을 이해하는 동료가 되었다.


그리고 직위에 맞지 않게 공주님 안기로 안긴 채, 유빙을 가로질러 기지로 돌아와서


묘하게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여성, 티르피츠의 방에 처음 들어왔다.


티르피츠의 몸은 차가웠지만, 푹신한 침대에서 나를 안아주는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기에


모처럼 나는 따뜻한 감각을 공유하며, 북해 여왕의 품에 안겼다.


이 차가운 바다에선, 새들조차 서로의 열을 나눈다고 배웠으니까.


티르피츠의 지휘관으로서,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북해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곳이 될 거라고는.


"왜 그러는가... 요즘의 당신은 조금도 따뜻하지 않단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짓을 해버린 것도 전부 당신이 나쁜 것이다.."


때는 공로를 인정받아서 새로운 함선소녀를 건조할 권한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모항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지휘관인 내게 친근하게 굴거나 묻는 말에 대답하는 함선소녀한테 폭력을 휘두르는 은발이 있다고.


그리고 그 은발이 바로 서약함 티르피츠라고.


결국 전출 희망서가 마편함에 쌓이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서약함 티르피츠를 집무실에 소환했다.


'...티르피츠, 요즘 모항에서 이야기가 돌고 있는 은발의 소문 말인데.'


'후후. 이제야 알아봐 주는 건가 지휘관? 감히 당신에게 꼬리 치려던 교활한 암퇘지들을 처단해 준 나를 말이야.'


'아니 꼬리를 친다는 게 무슨 소리야... 그것보다도 함순이들을 린치하고 다닌 게 정말로 너였어? 고작 그런 이유로...?'


생각과 달리 순순히 죄를 실토하나 싶었던 티르피츠.


'...고작 그런 이유?'


그렇게 난 티르피츠를 추궁하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녀의 원망 어린 보복이었다.


그녀는 고위 칸센의 권력으로 내가 건조한 함선소녀들을 전부 전출시켰고, 모항을 다시금 그녀의 감옥으로 만들었다.


"티르피츠! 옷을 벗고 생활하라니, 이것만큼은 도무지 인간으로써 못해먹겠다구...!"


허나 감옥에 갇힌 주체가 뒤바뀌어 있었다.


나는 이곳 북해 여왕에게 사로잡힌 죄수, 오직 티르피츠만을 위한 산제물이 되었다.


"나를 제대로 사랑해 줄 때까지다... 북해에서 차갑게 얼어 죽기 싶지 않으면 나한테 제대로 안기는 게 좋을 거야. ...응, 착해. 많이 추웠지?"


입을 옷도 보일러도 없는 얼어붙은 모항에서 온기를 채울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티르피츠를 통해서만.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따뜻하게 해줄 차례다."


"밥은 내가 만들고, 매일 목욕을 함께 하면서 잠도 같이 자는 것이었다."


"지휘관이 멋대로 내 곁을 떠나지만 않는다면, 결코 얼어붙을 일은 없을 거야."


그녀가 정신적으로 나한테 의존하듯, 그야말로 나 역시 육체적으로 티르피츠에게 의존하게 된다.


"안아 줄 상대가 있다는 건 이렇게나 행복한 것이었나. 지휘관, 당신도 나랑 같은 기분이려나."


내가 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티르피츠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사랑 이야기를 다른 한 귀로 흘리면서

나는 조금 더 그녀의 품 안으로, 온기를 위해 파고는 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