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행정구역. 사우스웨스트잉글랜드, 사우스이스트잉글랜드, 그레이터런던, 이스트오브잉글랜드, 이스트미들랜즈, 웨스트미들랜즈, 노스웨스트잉글랜드, 노스이스트잉글랜드, 요크셔험버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베낭여행을 하면 항상 영국은 런던만 관광하고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영국이란 나라가 런던에 상당수의 관광 인프라가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다른 지역의 관광 인프라까지 모조리 패스하고 넘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따라서 이번 글을 시작으로 영국의 지역을 한 번씩은 글의 주제로 선정해보면서 앞으로 영국을 여행할 때 더 많은 선택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시리즈를 시작해볼까 한다.

앞으로 매 글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지도를 탑재한 뒤에 본문을 시작할 것인데,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영국 왕실령-해외 영토 순으로 진행할 것 같다. 꾸준히는 못 올리더라도 한 번 끝까지 달려볼 생각이다.


목차

개요

주요 사건

주요 산업

주요 음식

주요 관광지


개요

(콘월의 위치)


콘월(Cornwall)은 상단 지도에서는 보라색 1번에 해당하는, 잉글랜드 남서부 끝에 위치한 지역이다. 주도는 트루로(Truro)인데 인구가 2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도시다. 콘월 반도 맞은편에 보이는 실리 제도(Isles of Scilly)는 요즘 행정구역에서는 별도의 구역으로 취급되지만, 전통적으로는 콘월 지방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실리 제도도 포함해서 내용을 구성했다.

콘월이라는 이름은 2가지 단어가 합쳐져서 붙은 이름이다. Corn은 뿔(Cornu)을 뜻하는 라틴어가 어원으로, 로마인들이 생각한 콘월의 생김새가 담겼다. Wall은 이방인을 뜻하는 고대 영어에서 유래되었는데, 화자인 앵글로색슨인 입장에선 브리튼인들이 이방인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며 웨일스(Wales) 또한 같은 어원(Wealas)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즉 콘월은 뿔처럼 생긴 땅에서 사는 이방인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셈이다.


주요 사건

이름의 유래처럼 콘월은 옆동네 데본과 함께 브리튼인들의 왕국인 둠노니아(Dumnonia)의 영토였다. 둠노니아는 콘월, 데본을 영토로 삼고 있던 국가였지만 8세기에 웨섹스에 의해서 멸망했다. 이 때부터 웨섹스에 합병된 콘월은 웨섹스-잉글랜드-영국의 영토로서 꾸준히 승계되었다.


(세인트 케번 콘월에 있는 콘월 반란을 기념하는 동상. 토마스 플라망크(좌), 마이클 안 고브(우)가 그 주인공이다)


헨리 7세 시기였던 1497년에는 거대한 반란인 콘월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은 헨리 7세가 스코틀랜드와 전쟁을 하면서 콘월에 막대한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콘월 반란은 한 때 런던까지 진격했을 정도로 강성했으나 뎁트포드 브리지(Deptford Bridge)에서 정부군과 전투를 벌여 패배하며 종결되었다. 결국 실패한 반란이지만 해당 반란과 그 주모자인 마이클 안 고브(Michael An Gof, 본명은 마이클 조셉. 안 고프는 콘월어로 대장장이라는 의미)는 오늘날에도 콘월 민족주의의 상징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정전 당시 실리 제도의 의장이었던 로이 던컨)


본토인 콘월에서는 위의 반란을 제외하면 큰 사건이 없지만 실리 제도에서는 굵직한 사건이 3개나 발생했었다. 첫 번째 사건은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빚어진 해프닝인 335년 전쟁이다. 1651년에 일어난 해당 사건은 청교도 혁명 도중 왕당파 세력의 해군이 실리 제도에 주둔했는데, 의회파와 동맹을 맺은 네덜란드 해군이 왕당파 해군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발생했다. 그러나 왕당파 해군은 곧 의회파에게 항복했고, 네덜란드 해군은 교전을 위해 가던 도중 이 소식을 듣고 본국으로 귀환했다. 실질적인 전쟁은 이렇게 끝난 것이지만 형식상으로는 종전 협정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고, 이걸 1986년에 공식적으로 종결지으면서 형식상으로는 335년이나 지속된 전쟁이 이제서야 끝났던 것.



두 번째 사건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도중인 1707년에 발생한 실리 해군 참사(Scilly naval disaster)이다. 당시 함대 지휘관이었던 클라우데슬리 쇼벨(Cloudesley Shovell)은 지브롤터 함락, 바르셀로나 공격, 툴롱 포위 등 수많은 공을 세웠었다. 이런 그에게 영국 정부는 함대를 본국으로 귀환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하필 대서양의 악천후로 인해 당시 항해에 필수적이었던 천문을 관측할 수 없었고, 풍랑으로 인해 예상보다 북쪽을 항해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항로에서 벗어난 쇼벨의 함대는 실리 제도의 세븐 스톤스 암초(Seven stones reef)에 충돌하게 되었고, 이 중 전열함 3척과 포함 1척이 침몰했다. 이로 인해 사령관 쇼벨을 포함한 1400~2000명에 달하는 해군 장병이 사망했는데, 해당 피해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주요 전투로 입은 피해보다 더 컸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영국 정부는 기술적인 해결책을 고민했고, 1735년 시계공 존 해리슨이 크로노미터를 제작하면서 해결되었다.



마지막 사건은 1967년 발생한 토리 캐니언 호 좌초 사고(Torrey Canyon oil spill)다. 미국 회사인 유니언 오일 소속이었던 토리 캐니언 호는 쿠웨이트에서 영국 웨일스로 향하고 있었는데, 거센 조류로 인해 예정 항로보다 동쪽으로 밀려났고, 그로 인해 어선들을 피해 항해하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하필 그들의 앞에는 실리 해군 참사의 원흉인 세븐 스톤스 암초가 있었는데, 이 암초를 피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줄이고 변침해야 했다. 허나 앞서 언급한 이유로 마음이 급했던 선장은 그대로 돌파해버렸고, 그대로 암초에 박아버리면서 이 저주 받은 암초에 얽힌 또 다른 참사가 나고 말았다.

해당 선박의 원유탱크 18개 중 14개에 구멍이 났고, 기름띠는 길이 30km, 너비 6.5km, 두께는 가장 두꺼운 곳이 46cm라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영국이 모든 생산력을 가동해 1년간 세정제를 만들어도 복구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수치를 보였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 선박을 빼내보려던 네덜란드 구난회사의 작업도 토리 캐니언 호의 기관실이 폭발, 구난회사 직원 1명이 사망하면서 실패했다.

모든 기름을 중화할 수도 없고, 남아 있는 원유도 무사히 빼낼 수 없다는 보고를 들은 당시 총리 해럴드 윌슨(Harold Wilson)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바로 공군을 동원해 토리 캐니언 호를 폭격하고 기름을 불태운다는 것. 네이팜탄을 동원했던 해당 작전은 토리 캐니언 호를 침몰시키고 그 안에 있던 원유 3만 톤을 불태우면서 어느 정도 성공해내었다. 하지만 이미 유출된 원유 7만 톤은 대서양을 향해 퍼져나갔고, 인접 지역인 영국 콘월 해안 190km, 프랑스 브르타뉴 해안 80km가 오염되고 말았다. 피해 복구는 약 10년이나 걸려서 회복되었고, 그동안 해당 지역의 어업과 관광업이 박살나고 말았다.


주요 산업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 발견된 곳은 독일 작센이지만 재료는 오스트리아와 영국에서 왔다)


콘월은 전통적으로 광산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해당 산업의 기원은 무려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독일의 유물인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Nebra sky disc)에 입혀진 금이 바로 영국 콘월에서 채굴된 금이기 때문이다. 주석 또한 주요 채굴 대상이었는데, 산업의 융성함으로 인해 실지왕 존이 1201년에 콘월과 데본의 광부들에게 특권, 자치권을 인정하고, 에드워드 1세가 1305년에 주석 광산 의회 및 법원을 설치했었다. 당시 콘월의 주요 산업을 대표하는 의회인만큼 콘월의 역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의회의 구성원들이 앞서 서술한 콘월 반란의 주동자가 된 것이다.


(JTBC의 특파원 25시에 출연한 영국 콘월. 후술할 내용 상당수가 영상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20세기 이후로는 광산업이 콘월의 주요 산업으로서 유지되고 있지 않다. 현재의 콘월은 목축업, 낙농업, 어업,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업은 한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 골뱅이 소비량 중 상당수를 콘월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뱅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앞으로는 콘월에 대해 관심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주요 음식


콘월에서는 여러 가지 음식이 유명한데, 스타게이지 파이(Stargazy pie. 일명 정어리 파이)가 이곳의 향토 음식이다. 전설에 의하면 마우스홀(Mousehole)이란 마을이 폭풍우로 인해 기아에 시달리고 있을 때 톰 보콕(Tom Bawcock)이란 사람이 위험을 감수하고 출항해 마을 사람 전부가 먹을 수 있는 양의 정어리를 잡아왔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그 일을 기억하기 위해 축제를 열었고, 해당 축제에서 만든 음식이 바로 이것이다. 충격적인 외관과는 다르게 의외로 먹을 만하다는 평이 많다. BBC 스타게이지 파이 레시피에 적힌 재료로 보아 사프란이 정어리의 비린내를 잡아내는 것이 그 이유인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저렇게 심각한 비주얼을 지니지 않은 콘월의 음식도 있다.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영국식 군만두인 스티(Pasty). 주요 산업 문단에서 설명했듯이, 콘월에서 발달한 광산업으로 인해 광부들의 한 끼 식사로서 발달한 음식이다.


주요 관광지

콘월은 타 영국 지방에 비해 날씨가 온화해서 관광객이 즐겨 찾기에 좋은 동네이다. 그 중에서 유명한 관광지를 꼽자면 다음 관광지들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마라지온(Marazion) 앞바다에 위치해 있는 세인트 마이클스 마운트(St. Michael's Mount). 영국의 몽생미셸에 해당하는 곳이며 과거 어부들을 위협하던 인어들을 대천사 미카엘이 물리치자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는 전설이 존재한다. 원래는 사유지였던 곳이지만 1954년에 마지막 성주가 내셔널 트러스트에게 기증하면서 평범한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내걸은 조건이 단 한 가지 있었는데, 향후 999년간 자신의 후손들이 이곳에 가끔 머물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가끔씩 이 성에 와서 머물다 간다고 한다. 더 자세한 설명은 위의 특파원 25시 영상을 참조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국 남서부 끝을 알리는 랜즈 엔드(Land's End). 영국 자체가 섬나라이다보니 어느 해안가이건 다 땅의 끝인 건 똑같지만 어쨌든 영국 본토 중에서는 이곳을 가장 끝자락으로 취급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정표 뒤편으로 자이언트 코즈웨이마냥 생긴 주상절리가 보인다.



보드민(Bodmin)에 위치한 보드민 감옥. 1779년에 전쟁 포로들에 의해 건설된 감옥으로, 수감자들을 개별 감방에 가둔 최초의 영국 감옥이라고 한다. 150년 동안 운영되면서 50번 이상의 공개 교수형이 이루어진 이 감옥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둠스데이 북(Doomsday Book)을 비롯한 영국의 주요 국가 서류 및 기록들을 보관하는 장소로서도 기능했었다. 1927년에 폐쇄되었던 이 감옥은 현대에 들어서 호텔 및 박물관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중인데, 이 곳에서 죽은 사형수들의 유령이 종종 출현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 때문에 유령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상당히 즐겨 찾는다고 한다.



펜딘(Pendeen) 북쪽에 위치한 지버 주석 광산(Geevor Tin Mine)은 1911년부터 1990년까지 운영된 주석 광산이자 해당 광산을 바탕으로 설립된 박물관이다. 해당 박물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콘월과 서부 데본 광산 경관(Cornwall and West Devon Mining Landscape) 중 하나에도 해당한다.



위에서도 언급한 스타게이지 파이의 고향인 마우스홀(Mousehole). 매년 12월 23일에 톰 보콕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다. 스타게이지 파이를 한 번 먹어보고 싶다면 이곳을 한 번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