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으으... 지금 몇 시지..."

시계를 보니까 오전 11시. 오늘은 휴일이라 어젯밤 늦게까지 게임을 했더니 일어난 후에도 몸이 여전히 찌뿌둥했다.


"언니는 일찍 나갔나보네. 난 밥이나 먹어야.. 어라?"

냉장고를 열어봤지만, 지금은 반찬도 빵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제 식료품을 사 뒀어야 했는데, 하루종일 집 안에서 노느라 그만 깜빡해버렸다... 스파게티 소스조차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상태.

배달시켜 먹기에는 나중에 언니와 먹을 저녁거리도 있어야 하니 우선 마트로 향하기로 했다 





나가기 전에 샤워부터 깨끗이 하고


"아 맞다... 아직 옷 세탁도 안 했구나."

설상가상으로 섬유유연제를 사 두는 걸 깜빡해서 빨래도 잔뜩 쌓여있는 상황. 옷장을 열어봐도 당장 입을만한 옷 한 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 언니 옷이라도, 으으... 이런 건 입을 자신 없는데..."

별 수 없이 언니의 옷장을 빌리기로 했다. 정말로 내키지는 않지만, 언니의 옷 중에 그나마 단정한 것들을 꺼내 본다...


그나마 긴소매에 수수한 흰색 셔츠를 찾아냈지만... 언니 옷 아니랄까봐 상의가 뎅강 잘려 배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안에 덧대 입을만한 옷도 전부 세탁기에 쌓여 있어서 입을 수도 없고...



뱃살이랑 배꼽도 다 드러나는데다가 바지도 헐렁해서 자꾸 팬티를 슬쩍슬쩍 드러냈다.

벨트를 단단히 조이고 어떻게든 배에 힘을 줘 뱃살을 집어넣어 본다.


"후우... 좋아. 금방 갔다 오는거야."

각오를 다진 채 밖으로 나선다. 다행히 날씨가 선선해서 옷이 짧아도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배꼽을 내놓고 밖을 돌아다니는 건 처음이라 민망하지만, 표정관리를 하면서 배에 힘을 꽉 준 채로 마트로 향한다.



"에어컨은 왜 이렇게 세게 틀어놓은 거지..."

마트에 도착했지만, 봄인데도 마트에서는 고객 배려 차원인지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두고 있었다.

겉옷이라도 챙겨올 걸 하고 후회하며, 추위에 떨면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마트에는 사람이 꽤 있어서 신경쓰였지만, 사람들이 내 볼품없는 몸을 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장보기에 집중했다.

계산을 마친 뒤, 찬바람이 부는 마트에서 배를 감싼 채 빠져나온다.


"일단 먹을 건 샀고, 다음에는..."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아까보다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시 뱃살에 애써 힘을 준 채 지나가려는데...



"어?"

순간 어디선가 울리는 꼬르륵 소리. 소리의 진원지는 아무래도 내 배인 것 같았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인지, 추운 곳에서 배를 오래 내놓아서인지 배에서 울리는 소리에 몇몇 사람이 이 쪽을 바라보았다.


당황해서 배에 힘을 줘 보았지만, 드러난 배꼽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볼때마다, 뺨이 점점 붉어지는 게 느껴진다.



장바구니를 꼭 쥔 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달려나간다. 사람들이 이런 볼품없는 내 모습을 봤다고 생각하자 수치심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우으... 흑.. 너무 창피해....."

사람이 없는 공원의 벤치까지 달려 와 주저앉자, 배에 힘이 풀려 말랑한 뱃살이 접질러졌다.

부끄러움도 느꼈지만,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 한 내 모습도 너무 수치스러웠고, 당황해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저만치 누군가가 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눈 같은 새하얀 머리에, 나와 다르게 잘록하고 예쁜 허리를 당당하게 드러낸 미인.

무표정하고 차가운 인상의 미인을 나는 고개를 들어 바라봤는데...


"어, 언니! 잠깐!"

순간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모습을 언니한테 보여주는 건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게 반가웠다.



"응? 아, 서현아!"

내 목소리를 듣고 돌아본 언니는 곧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서현이도 산책 나온거야? 오늘 날씨 좋지~. 그런데 오늘 서현이 옷이..."


"언니! 이건 그, 그게, 저기, 어..."

언니를 불렀지만 막상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나. 그러다가...


"이, 일단 겉옷 빌려 줘!"

일단 급하게 몸이라도 가려야 하겠다는 생각에 언니를 향해 팔을 뻗었다.



당황하면서도 코트를 벗어 건네주는 언니. 재빨리 코트를 걸치고 나서 손으로 차가워진 배를 애써 가려 보았다.


갑작스럽게 코트를 빼앗긴 언니는 장바구니를 넘겨받은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언니에게 갑자기 무례하게 굴었다는 걸 떠올렸다.


"음... 서현이는 언니보다 코트가 더 중요한가보네..."

"아니, 이건 저, 미안. 그게 아니라......"

언니가 시무룩해지자 마음이 찔렸다. 나 같은 게 예쁘고 착한 언니한테 상처를 줄 자격이 있는걸까?


"미안 언니. 내가 소리질러서 놀랐지. 나 너무 이상하지..."

어느새 내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언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가와서 나를 토닥여 주었다.

"언니가 농담한 거야~. 언니는 서현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걸."


"그치만 나, 자주 언니한테 화내는걸..."

"언니는 괜찮아. 서현이가 언니 걱정하고, 또 좋아하는 거 알고 있으니까."

언니의 미소에 다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고, 나는 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언니와 함께하니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아, 깜빡했다! 세제랑 섬유유연제도 샀어야 했는데!"

소동이 있었던 바람에 그만 세탁용품 사는 걸 잊고 말았다. 그렇다는 건 내일도 입을 옷이 없다는 건데...


"서현아, 그럼 내일도 언니 옷 빌려 줄까?"

"이런 걸 또 입어야 한다고? 그것보다 사진 찍지 마!"

생글생글 웃으며 휴대폰 사진기를 켜는 언니. 나는 당황해서 얼른 방으로 달아났지만...


"음~. 그럼 언니랑 다시 나가서 섬유유연제 사러 가자!"

"치, 언니 혼자서 좀 사 와 주면 안 되나..."

방으로 따라 들어온 언니의 몸을 바라보았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예쁜 세로 배꼽까지... 한 배에서 태어난 자매인데 이렇게 달라도 되는 걸까?


나는 인형을 끌어안아 배를 가린 채 볼을 부풀리고 잠시 언니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고민했다. 어차피 배꼽티를 입고 나가야 하는데, 오늘 나가느냐 내일 나가느냐...

잠시 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언니와 함께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