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선 어떤 일이든 한다.


누구는 손발이 부르트도록 공사판을 전전하고


누구는 무릎이 찢어지도록 물건을 옮기고


누구는 면역력이 떨어질때까지 몸을 굴려댄다.


살아야 하니까, 그게 생물의 본능이니까.


뿌리깊게 박힌 그 생존 의지야 말로, 인간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래서 그녀도 일을 했다.


누군가의 돈을 훔치기도 했다. 누군가의 장기를 꺼내 팔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처럼 돈을 받고 누군가를 죽이기도 했다.


발 밑에 나뒹구는 시체를, 그녀는 내려다보지 않는다.


단지 주변의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짐짓 고민한다.


의뢰자가 말했다. 폐공장에 눌러앉은 부랑자 다섯을 전부 죽이라고.


그래서 죽였다. 하나, 둘, 셋, 넷.


학교를 다닌적은 없지만, 이 정도 셈도 못하진 않는다.


그래, 한 명을 아직 안 죽였다.


그래서 고민중이다.


끽해야 열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저 소년을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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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캐리어 하나를 끌고 거리에 나온다.


방금 전 까지 흠뻑 젖어있던, 살육의 흔적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번화가를 돌아다녀도 그녀를 이상하게 보는 눈은 어디에도 없다.


이따끔 그녀의 용모에 이끌린 남자들이 짐을 들어주겠노라며 추파를 던지는 정도가 끝이다.


그 모든 제안을 거절한 그녀는 꽤나 묵직한 캐리어를 묵묵히 이끌며 통화를 한다.


"전부 끝냈습니다. 시체까지 전부 버렸으니 괜찮을겁니다."


"그래 수고했어. 돈은 늘 넣어두던 사물함에 넣어두지"


그리고 통화를 마친 순간, 캐리어를 살짝 흔들며 속삭인다.


"들었지? 넌 지금 죽은거야. 앞으로 조심해"


캐리어 안 쪽에서 덜그럭 하는, 대답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돈을 찾고, 집에 다다른 그녀는 그제야 캐리어의 지퍼를 열었다.


잔뜩 웅크려 있느라 뻣뻣히 굳은 몸 때문에, 소년은 약간의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군다.


그녀는 그런 소년의 몸을 주물러 줬다. 어느 정도 몸이 풀린 소년에게 그녀는 씻고 오도록 했다.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욕실에 들어갔다. 그 사이 그녀는 적당한 옷을 찾아 문 앞에 내려놓았다.


'나도 참... 이럼 안되는데'


문득 한숨이 나온다. 의뢰를 수행하지 못할 청부업자는 업계에선 매장당해 마땅하다.


그녀도 그 사실을 잘 안다. 수 년이나 이 짓을 해 오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그 규칙을 깨어버렸다. 


왜 하필 저렇게 어린아이가 있어 가지고, 괜한 짜증이 밀려온다.


그다지 인류애가 많은 성격은 아니다. 이전에 알고 지낸 사이라도 의뢰가 들어오면 주저없이 칼을 꽂는 그녀였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뒷세계에서 허우적댄 탓일까, 유독 어린 아이들에게 만큼은 다소 약했다.


오죽 했으면, 버는 돈의 절반 가까이를 고아원에 후원할 정도 였으니까.


그녀는 이런 자신이 싫었다. 당장 오늘도 사람을 넷이나 죽여놓고 이따위 위선이나 부리는 꼴이 너무 역겨웠다.


후우우, 깊은 한숨을 내뿜어 가며 겨우 속을 달래던 그때, 물 소리가 멈추더니 이윽고 욕실 문이 열린다.


"옷 문 앞에 뒀으니 입고 나와"


그 말에 가느다란 팔 하나만 빼꼼히 나와 문 앞을 더듬거리다 겨우 옷을 잡고 들어간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몇 분 정도는 지났음에도 소년은 나오질 않았다.


"저, 저기..."


"뭐야 너, 설마 옷도 제대로 못 입는..."


욕실로 다가간 그녀의 동공이 조금 커졌다.


그녀는 성인 여성들 중에서도 체구가 꽤 큰 편에 속했고


소년은, 또래 아이들 중에서도 유독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그녀도 그 정도는 고려해, 가진 옷 중에선 최대한 작은 옷으로 가져다 주긴 했다.


"...오늘만 그거 입어. 내일 새로 사 줄테니까"


"아, 감사... 합니다."


꾸벅, 인사를 한 소년은 잔뜩 남은 옷 소매들을 어떻게든 접기 시작했다.


그녀는 딱히 도와주지 않는다. 소년도 딱히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수 센티씩 다섯 번을 접은 뒤에야 팔을 내려도 손가락이 나오는 정도가 되었다.


분명 내어준건 반바지였건만, 그나마도 밑단을 세번이나 크게 접어서야 발이 온전히 땅을 디딜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채비를 마친 소년이 욕실 밖을 나온다. 


처음엔 그대로 욕실로 이어 들어가려던 그녀였지만, 옷을 벗으려다 비친 소년의 모습에 행동을 멈췄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동공을 어지러히 흐트리며, 안절부절 못하며 몸을 떠는 모습


"그냥 너 편한 곳에 있어. 소파에 앉아 있거나, 피곤하면 침대에 누워 자던가."


"네? 아, 그..."


소년은 자신의 심정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그녀가 조금 두려웠다.


그새 욕실 문을 닫은 그녀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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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감사합니다."


씻고 나온 그녀를 향해, 소년은 제일 먼저 허리를 숙였다.


"뭐가?"


"구,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흐음... 뭐야, 너 걔내들이랑 같이 살던거 아니었어?"


"그렇긴 하지만... 실은 전 그 사람들이 강제로 데려온거라..."


그녀는 상황을 대충 깨달았다.


아이들은 가치가 높다. 여기저기 쓸만한 구석이 너무너무 많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이들 앞에선 경계를 푼다. 그래서 일을 맡기기가 더욱 쉽다.


게다가 어른들 보다 쉽게 감정에 휘둘린다. 그래서 다루기가 너무 쉽다.


심지어 아무렇게나 처리하기도 정말 간단하다. 그래서 뒤끝이 깔끔하다.


그녀가 오늘 몰살한 패거리는 그 자체로는 별 볼일 없는 양아치 집단이다.


단지 이름난 조직들의 심부름이나 하며 콩고물을 좀 받아먹는 부류


그러다 보니 좀 배웠을 것이다. 어린 아이를 이용하는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소년은, 그런 무리들에게 붙잡히고 만 것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그녀가 살인을 저지르던걸 보고도 호의적인 이유가 설명이 된다.


모두를 죽일 때 소년만 살린 시점에서, 소년에게 그녀는 자신을 구하러 온 영웅이나 다름 없을 테니까


그런 소년을 위해서든, 아니면 그녀 자신을 위해서든. 진실은 잠시 묻어두기로 그녀가 다짐한다.


"그래 뭐... 그럼 원래는 뭐 하고 살았는데?"


"그냥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부모님은?"


"안 계셔요..."


그녀가 생각에 잠긴다. 


소년은 죽은 사람이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 만큼은 그렇다.


그런 소년은 원래 길가에 나뒹굴던 거지였다.


부모님도 계시지 않는 천애고아기 까지 했다.


고아원에 맡길 순 없다. 거긴 움직이는 시체를 받아줄 여력은 되지 않는다.


원래대로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 수도 없다.


그럴리는 거의 없겠지만, 혹시라도 누군가 소년을 알아보면 여러모로 골치아프다. 소년은 물론 그녀 자신도.


결국엔 별로 내키지 않는 방법만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뭐 그럼... 딴 나라 뒤져서 너 입양 받아줄 사람 있으면 그때 밀항시켜 보내 줄테니까. 


일단은 우리 집에서 살아. 내 허락 없인 밖에 나가지 말고 쥐 죽은듯이. 알겠어?"


"네? 아... 네!"


소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갑자기 맡게 된 군식구에 조금 골이 아팠다.


"에휴... 밤도 늦었는데 일단 자라. 저 쪽 방에도 침대 있으니까, 넌 거기 가서 자."


"네, 알겠어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숙인 소년은 몸을 이끌고 방 밖을 나선다.


그 사이 접혔던 옷 단은 다시 풀려 바닥에 질질 끌려다녔다.


'으휴...'


피곤했다. 오늘의 일도 그렇고, 앞으로의 계획도 그렇고.


생각은 일단 미루기로 하며, 그녀 역시 침대에 몸을 뉘이려던 그때


그녀의 방 문이 다시 열린다.


"왜?"


"까먹고 말씀을 못 드려서 왔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고사리 같은 손을 모은 소년이 허리를 또 굽힌다.


그리곤 밝은 미소로 그녀를 한번 바라본 뒤, 그제야 다시 방을 나섰다.


그 광경을 끝까지 살펴보던 그녀는, 멍 하니 방 문을 바라보다.


"하... 아하하... 참 진짜..."


결국, 웃음을 조금 터뜨렸다.


그리고 이렇게 소년과 같이살다가 어느덧 마음을 빼앗겨 키잡에들어가는 얀순이얘기 누가 좀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