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죽고 싶다.

 

무더운 햇빛이 내려쬐는 여름.

아스팔트에서 보기만 해도 뜨거워 보이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뜨거운 여름.

성현은 오늘도 살아가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늘의 할당량을 채우고소위 ㅈ소라 불리는 회사로 돌아간다.

 

너는 지금 입사 몇 년 차인데아직도 이걸 못하냐?”

 

죄송합니다...”

 

오늘도 사람을 괴롭히는 게 삶의 낙인 상사의 말에 꾸벅꾸벅 고개를 조아리며 성현는 생각한다.

 

「죽고 싶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렇게까지 인간답지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여기에 있을 필요가 있나?

 

이 새끼야철 좀 들어라너만 힘들어우리도 다...”

 

매일 8시에 출근하고, 10시까지 야근하고.

심심하면 주말에도 나오라 명령하고.

그러면서 월급은 몇 년 째 동결.

 

나 때는 말이야...”

 

이 지긋지긋한 회사를 지금이라도 때려 치고 싶지만취업 준비를 할 때의 그 지옥이 떠올라 아무 말도 못하는 자신에게 한심하게 느껴진다.

 

“...이제 가서 일이나 해이거 오늘까지 끝내놓고!”

 

...알겠습니다.”

 

오늘도 야근하겠구나.

 

...

 

[...3일 전심야 1술에 취한 40대 남성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 있었죠그 사건의 범인이 지난 날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마의 짓이라 경찰이 판단했습니다이번 달부터 총 5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범인은...]

 

야근을 끝내고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라디오에서 요즘 떠들썩한 연쇄살인마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5명을 잔인한 살해방법으로 죽인 연쇄살인마 탓에 요즘은 어딜 가나 저 이야기가 들려온다.

사람들에게는 공포를 전하는 이야기지만성현에게는 먼 세상처럼 느껴지는 이야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옥이나 다름없기에 성현은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닫았다.

 

 

「죽고 싶다.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편해지고 싶다.

나약한 자신은 절대로 행하지 못할 일을누군가가 해주길 바랐던 탓일까?

새벽 1.

가로등조차 꺼진 으쓱한 골목길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로오직 붉은 보름달만이 환하게 비춰주는 이 골목길에서성현은 그것과 마주쳤다.

검붉은 얼룩으로 가득한 거적때기를 입고은은하게 거리를 가득 채운 비릿한 냄새의 중심에 있는 인형.

탁한 동공을 중심으로 핏줄이 터져나가 붉게 충혈된 눈.

마치 사람보다는 짐승이라 표현할 날카로운 송곳니와 손톱.

그리고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는 행동까지.

그것은사람이 아니었다.

 

으아아...!”

 

푸슉─!!

선혈이 튄다.

그것이 성현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순간성현의 목덜미로부터 힘차게 핏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행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목덜미를 시작으로 쇄골어깨허벅지...

우득─이라는 섬뜩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신체가 원래의 형태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이윽고 마지막에는 유일하게 상처가 없었던 가슴심장 부분을 진득한 피가 흘러내리는 손톱이 도려낸다.

그렇게 눌랄 만큼 조용했던 골목.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발생했을터이다...

 

 

불우한 사고로 인해그것의 습격으로 성현의 목덜미가 물어 뜯겼을 때성현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성현은 겁쟁이다.

「죽고 싶다.」라는 생각 또한그저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 바랐던 원하지 않은 소원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항상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두며살아왔던 성현에게 진짜 죽음이 다가왔을 때성현은 생각했다.

「죽고 싶지 않다.」라고.

「죽고 싶다.」라 생각한 성현에서 불우한 사고가 일어났듯이「죽고 싶지 않다.」라 생각한 성현에게 또다시 불우한 사고가 일어났다.

 

『살고 싶느냐?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져가는 정신 속에서 약간 높은 여자아이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이 또한 하나의 여흥일지니.

 

 

끔찍한 소리만이 들리던 골목이 어느 새 정적만이 흘렀다.

곤죽이 된 핏덩이와그 위에 쭈그려 앉은 피투성이의 괴물.

그리고 그 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를 입고 양산을 쓰고 있는 소녀가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하늘에 떠있는 달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눈과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은색 머리카락.

언뜻 보면 가녀려 보이는 소녀가 한 발자국씩 다가온다.

 

그르릉─

 

그와 반대로 본능만이 남아 동물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핏덩이를 물어뜯던 괴물은 소녀가 다가올 때마다 한 발자국씩 멀어진다.

 

또각─

또각─

 

소녀와 괴물의 거리가 변하지 않던 채로서로의 포지션이 반대가 되었다.

소녀는 자신의 드레스가 피로 물드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며 서서히 핏덩이성현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괴물과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소녀의 송곳니가 핏덩이를 파고들었다.

 

『이제 뒷일은 알아서 해보거라.

 

그렇게 소녀는 소녀의 말소리와 함께 사라졌고사라진 소녀 곁에 남아있던 핏덩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며 피로 이뤄진 작은 호수 속에서 인형이 나타났다.

사라진 소녀와 닮은 긴 은발이 휘날리며자신의 신체와 맞지 않는 피로 범벅이 된 셔츠를 입고 나타난 소녀.

그 소녀를 향해괴물이 분한 듯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유린하기만 했던 포식자는 결국 먹이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