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저기. 아가씨. 4천원어치 주세요."

"..."

"저기 아가씨?"

"..."


말대꾸를 하지 않는 나 때문에 짜증이 몰려온 듯하다. 눈 앞의 손님은 점차 인상을 써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말을 했으면 대꾸를 하란 말이야. 풀빵 파는게 뭐 대수야?"

"..."

"...아."


손님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짓을 하자, 쌔함을 느낀 손님은 벌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4천원어치. 두 봉지. 손가락 보이시죠? 2개요."

"......"

"돈은 여기 있어요. 젊은 처자가 딱하게도..."


손님은 그 말을 끝으로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풀빵을 가져갔다.


나는 돌아가며 계속 이쪽을 힐끔 처다보는 그를 보았다.


"..."


다들 그랬다. 방금 전 찾아온 손님은 특별하지 않다.


나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듣지도 못한다.


그리고 풀빵을 판다.


***


바깥을 보았다. 트럭 밖으로 보이는 풍경엔 어두운 칠흑만이 가득했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가까웠다. 인적은 1시간 전부터 툭 끊겼다.


아직 팔지 못한 풀빵이 10개나 넘게 남아있는데...


아쉬웠다. 그러나 장사는 원래 이런 법이다. 한두번 겪은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버너를 끄고, 밀가루 반죽으로 엉망이 된 테이블과 식기를 닦으며, 마감을 위해 정리를 시작했다.


"..."


소독제를 뿌리고 장갑을 벗었다.


손에 땀띠가 스멀스멀 올라와 있었다.


마찬가지로 종종 일어났던 일이다. 날씨와 버너로 트럭 안은 찜질방 부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목장갑과 위생장갑 두 겹을 낀 채 하루종일 풀빵을 굽다보면 땀이 한가득인 건 당연하다.


간지럽네.


찬장을 열어 연고를 꺼내 발랐다. 그럼에도 간지러움은 가시지 않아 결국 긁어버렸다.


벅벅. 이라고 표현하던가. 하지만 나는 손을 긁는 소리가 '벅벅'인지 모른다. 책에서 그랬으니 그러리라, 추측만 할 뿐이다.


벅벅벅.


어떤 발음으로, 어떻게 소리가 나는진 모르지만 적막으로 가득한 세상에 벅벅 소리만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


그렇게 한참을 긁었을까.


"저기요."

"..."

"괜찮으신가요?"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더니 낯선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그렇게 긁으시면 더 안 좋아요. 잠시만요."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손수건에 감싼채로 나에게 건넸다.


차가웠다.


"손에다 대 보세요. 그리고 가만히. 이렇게요."


눈치상 그 물건을 손에다 대보라는 듯했다. 그래서 땀띠가 가득한 손에 올리니 시림과 함께 가려움이 일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

"얼음이에요. 제 손에 들고 있는 커피, 여기서 꺼냈어요. 아! 아직 한 모금도 안 마셨어요. 그러니까 안 더러워요. 손수건도 깨끗이 씼었구요."


내게 뭐라 주저리 설명하는데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나를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전해져 눈을 깜빡이며 감사를 표했다.


"...아. 별 말씀을요. 근데 혹시 괜찮으면 풀빵, 파시나요?"


그녀는 식어버린 풀빵을 가리켰다. 고민이 되었다.


남아버린 풀빵을 판다면 분명 이득이다. 오늘 남은 재고를 다 해치우는 셈이니까. 벙어리지만 장사꾼으로서 이보다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녀가 건네준 차가운 호의가 있다.


손의 가려움을 잠시 잊게 만들 뿐이지만. 다시 가려워질 손이지만 그래도 그녀가 준 호의를 받은 순간 만큼은, 나는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

"어. 장사 끝 아니었나요? 갑자기 이러시면..."

"......"


나는 가스버너에 불을 키고, 찬장에서 밀가루와 냉장고에서 물과 팥을 꺼냈다.


내일 장사를 위한 재료였다.


다시 장갑을 끼고, 단 한 사람만을 위한 풀빵을 굽는다.


그리고 그녀는 가만히 내가 풀빵을 굽는 모습을 지켜본다.


"...맛있겠다."


한치의 군더더기도 없이 풀빵을 재빠르게 구워낸 나는 종이 봉투에 담은 후 그녀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


그리고 그녀는 돈을 건네고 사라졌다.


"..."


다시 정리해야겠구만.


엉망이 된 기구를 처음부터 다시 닦고, 정리한다.


어느새 시각은 11시. 자정을 코앞에 두었다.


불을 끄고 트럭 운전석에 앉아 담요를 깐다.


조수석에 둔 바구니에 담겨있는 돈을 정산하고, 지갑에 쑤셔넣었다.


툭.


나는 돈을 정리하다 떨어진 신분증을 주웠다. 낡은 지갑을 살피니 구멍이 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넣는 주머니에 넣는 수밖에.


내가 가진 신분증은 두 개.


하나는 장애인복지카드. 사진에 있는 남성의 표정이 무척 어두워보인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신원등록증. 복지카드에 있는 남성과 표정은 같지만, 아리따운 여성의 얼굴이었다.


발급일자는 1년전. 성전환병에 걸리고도 1년이 지났음을 의미했다.


쥐뿔도 없는 내게 있는 거라곤, 풀빵 트럭과 이 신분증 두 개.


여성이 되고도 내 삶은 전과 다를 바가 없으니.


그저 나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풀빵을 팔 뿐이다.


"..."


그러고 보니. 손수건을 돌려주지 못했네.


돌려주기 위해선 내일도 이곳에 있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