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더워어~"



"시원하게 해놓고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여름은 덥다는 말을 내뱉는 게 일종의 시원해지는 방법인 것 같아."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내 말 때문인지 더워하는 기색을 보인다. 스마트폰 날씨 앱에는 최고 38℃라고 적혀 있는데,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깜빡여도 그 표시는 바뀌지 않는다. 말도 안 된다.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기온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집어던지고 에어컨 온도를 한 번 더 낮췄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지만 움직이기도 귀찮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카페~"



"네."



"아이스크림 좀 주라~"



"싫습니다."



카페가 멀찍이서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페는 자기 몫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어서 나의 아이스크림 욕구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한 입만~"



"싫습니다."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와서 신경 쓸 사이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겠지, 라는 것은 더워서 멍청해진 머리로도 알 수 있었다.



포기하고 무거운 허리를 들어 냉장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더위 때문인지 똑바로 걸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서랍을 열고 아이스크림을 집어든 순간, 차가운 감촉이 손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차갑네."



"아이스크림이니까요."



별 것 아닌 독백에 일일이 반응해 주는 것은 그녀 나름대로의 친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왠지 모르게 아이스크림 두 개를 집어 들고 한 개는 카페에 던져줬다.



카페는 놀라면서도 그것을 잡더니, 곧바로 봉지를 뜯었다.



"위험하잖아요. 그리고 음식을 던지면 안 돼요."



"그런 것 치고는 벌써 먹고 있잖아."



"...더워서요."



부끄러움을 감추기라도 하듯 고개를 돌려 아이스크림을 먹는 카페를 보니 왠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밖에 나가고 싶지 않지만, 오늘은 쇼핑을 하기로 약속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로 미루자고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긴 했지만, 무엇을 사러 가는 것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순식간에 없어진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준비를 한다. 일상의 장면이 담담하게 전환되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꿈 같고 묘한 느낌이 든다.



옷을 갈아입고 온 나를 보자마자 카페도 외출 약속이 떠올랐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까?"



"네, 금방 다녀오죠."



"오케이."






=====






땀에 젖은 피부와 셔츠가 서로 달라붙어 기분 나쁠 것 같아서 최소한의 저항으로 흰 셔츠를 택했지만, 효과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것 같다.



카페와 함께 걷고 있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다. 하긴 이런 날씨에 밖에 나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짓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 명도 없는 것은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다. 마치 우리만이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인류인 것처럼, 더우면서도 한산한 거리를 걷고 있다.



왠지 모르게 도시의 풍경도 기시감이 드는 것 같다. 여기가 어딘지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런 생각조차도 사라질 듯이 덥다. 당장 돌아가고 싶다.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가는 거야?"



"따라온 후의 즐거움입니다."



"뭐야, 그게... 그냥 쇼핑하러 나온 거잖아..."



밀짚모자를 쓴 카페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체념하고 조용히 따라갔다.



걸어온 길의 풍경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더웠던 세상이 어느새 차갑고 어두운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그 세상은 어둠과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 이상 뭐가 뭔지 모르겠고, 나는 자포자기한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모든 것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며 감았던 눈이 금세 떠졌다.



암전되는 듯한 시야 끝에, 아까는 없던 카페가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더 이상 놀랄 겨를도 없이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해?"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아, 그래."



일어서서 어딘지 모르게 캄캄한 세상을 둘러보았지만,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긴 어디야?"



"자, 어디일까요?"



"왜 그렇게 대충이야."



"왜 그럴까요?"



대화가 어긋나서 짜증이 났지만, 그마저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카페는 그런 나를 보며 즐거워 하고 있어서, 더 모르겠다.



"그럼 왜 여기엔 아무것도 없는 거야?"



"저와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적당한 말을 듣고, 조금 전까지의 일을 떠올리자 떠오르는 게 있었다.



기억에 없는 집에서 둘이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은 것, 아무도 없는 세상, 모호하고 안개가 낀 듯한 기억, 금방 덮어씌워질 것 같은 의식.



자각하니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는 자각몽이었다. 꿈에 개입하고 있는 건지 개입당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카페와 함께 꿈의 세계에 있다.



물론 이해했다고 해서 뭔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마 그런 의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꿈에서 성격이 바뀌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단편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지금까지의 꿈의 기억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아뇨?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나랑 같이 있어도 재미없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이상한 아이구나"



"저와 함께 있는 당신도 꽤나 이상한 사람이랍니다."




"그런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왠지 짜증나서, 다시 한 번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카페도 내 등에 기대어 앉았다.



등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은 사람의 것이 아닐 정도로 차가웠다. 조금 전에 만진 아이스크림처럼...



"하나, 물어봐도 될까?"



"네."



"왜 나를 가둔 거야... 아니, 가두긴 한 건가?"



"빨리 손을 써야겠다 싶어서."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닌데."



"알아요."



"이런 걸 직접 물어보는 것도 좀 그렇지만, 나를 좋아해서 이렇게 한 거야?"



"좋아서... 뭐랄까요? 잘 모르겠네요."



"아, 그래?"



딱히 아쉽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다. 정말로.



"단지 당신만이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태도로 대해줬기 때문에 그게 없어지는 게 싫었어요. 그럼 계속 이렇게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런 수단을 쓰면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당신은 그러지 않으니까요. 이상하게도 포기하고 타협해 주잖아요."



"너무 과한 추측 아니야? 나도 싫은 게 있고, 하고 싶지 않은 것 정도는 있어."



"그럼 지금 당장 저를 밀쳐내고 깨어나면 되잖아요?"



"못 하잖아."



"들켰나요?"



"저항해도 소용없으면 따를 수밖에 없잖아?"



등을 맞댄 채로 대화하는 느낌은 신선하고 어딘지 모르게 현실감이 없어 재미있다. 악의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닐 테니 카페를 부정할 마음이 들지 않았고, 그저 끝없이 이어질지도 모를 독백을 주고받았다.



"여긴 꿈이고, 조금 전의 그곳은 카페의 이상이었다는 거야?"



"대체로."



"그렇게 퇴폐적이고 칠칠치 못한 생활이?"



"그런 엉망진창도 막상 갈 데까지 가보면 가장 멋지게 느껴지는 법이잖아요."



"뭐, 나쁘지는 않았어."



축 처지고, 적당하지만, 확실히 나쁘지는 않은 생활. 아늑함만큼은 지금까지 해온 것 중에서도 유별나게 좋았다. 그 기분은, 이 꿈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그런 삶을 나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현된다면 이런 미래를 누군가와 함께 보내고 싶다. 지금은 그렇게 되었으니 이제 이대로도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럼 이대로 꿈에 빠져 살죠."



"그렇게는 안 되겠지."



"왜요?"



"이건 꿈이지 현실이 아니잖아."



"꼭 현실이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는 건 재미없잖아. 고민하고, 부딪히고, 괴로워하고, 그 끝에 이런 게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이 가상의 이상만 가득한 세상이라면 진심으로 싫어, 그런 건 필요 없어."



어둠에 토해내듯 말했다. 이건 카페의 이상이지 내 이상이 아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편리한 것을 좋아할 수는 없다.



싸우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채로 있는 건 허무할 테니까. 확실히 귀찮은 건 싫지만, 마주해야 할 것에서 눈을 돌린다고 해서 진짜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가짜는 엿이나 먹으라지.



"그래서 나는 이런 일이 계속되는 게 싫어. 이대로 계속되면 너의 손을 쥐고서라도 빠져나갈 거야."



"...그런가요."



"그런 거지."



"그런 확고하고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 모습에 끌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같은 건, 누구에게나 있는 거잖아."



등을 맞대고 앉아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보며 말했다. 기대고 있던 감각이 없어져 돌아선 카페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은 촉촉한 듯한, 애수가 묻어나는 눈동자는 꿈이든 생시이든 달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나는 지금처럼 있을 거고, 그 이상으로 가고 싶다면 거절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카페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날 데려가줘. 그... 너의 이상 같은 것에 말이지."



그 말에 풀렸는지, 카페는 평소와 같이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돌아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요. 그렇게 멋을 내는 당신은 조금 어색하지만요."



"됐어, 이런 말을 할 입장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분위기적으로 그런 게 있잖아. 알다시피."



"네, 정말로 이상한 사람."



서서히 의식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꿈의 주도권이 카페에 있고, 이 세상은 카페가 원하는 한 계속되는 걸까.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만, 카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조금은 특별한 독점욕 때문이라면,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상하게 포기하고 타협하는 게 나니까.



"그럼, 안녕히."



그 목소리에 내 의식은 뚝 끊어졌다.



그런, 한여름의 꿈이었다.






=====






잠에서 깨어나니 평소와 다름없는 트레이너실 천장이 있었다. 멀리서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있다. 시끄러워 죽겠다.



긴 꿈을 꾼 것 같은데,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뜬 직후에도 그 꿈의 경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거기에 나온 여자아이의 얼굴은 이미 흐려져 있었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니 카페가 지루하다는 듯이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 일어나셨군요."



"일어났어."



"푹 주무시는 것 같아서 깨우지 않았어요.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요."



"고마워. 덕분에 피곤이 조금 풀렸어."



"조금?"



"이상하게 피곤한 꿈이었던 것 같아. 뭐랄까, 정신적으로."



"흐음..."



스마트폰을 켜보니 날씨 앱에서 폭염이 지속될 예정이니 수분 보충을 하라는 알림이 떠 있었다. 확실히 최고기온이 38℃라는 어처구니없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해마다 이상기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보니, 지구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런 더운 날에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다.



"카페, 아이스크림 사러 갈까?"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니 이런 이상기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몰려있었다. 얼른 사서 시원한 방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오늘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고 싶다.



그런 날이 있어도 괜찮겠지?



















































































































































































































"그래요. 왜냐하면, 이건 한여름의 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