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적한 동네의 꽃집, 빨간 머리를 말아 올린 사장과 한 손님이 카운터 하나를 두고 서 있었다.


“화환 전부 다 해서 5만원입니다.”


“여기요, 늘 감사드립니다.”


“아니에요, 제가 더 고맙죠.”


사장의 이름은 홍련. 예쁜 딸아이 넷을 키우는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말 그대로 평범하디 평범한 자영업자였다.


“하아암..”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킨 그녀는 원예용 가위를 잡고 옆에 놔둔 화분의 잔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흠흠흠~”


콧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게 안, 홍련에게는 이 일상이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다.


기분 좋은 향기를 뿜어내는 꽃들에 둘러싸여 아이들과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 그녀의 소소한 행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행복은 한 통의 전화로 인해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따르르르르릉!


"어머, 미호네?"


장녀 미호의 이름이 화면에 떠오른 걸 발견한 홍련은 손을 앞치마에 슥슥 닦은 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응, 미호야."


[받았다! 아주머니 계세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것은 미호가 아닌 친구 보련의 목소리였다.


"보련이니? 네가 왜 미호 전화를..?"


[지, 지금 당장 이쪽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미호가..!]


보련이 지금 어디인지를 말하기도 전에 홍련은 이미 가게 문을 열고 동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연락을 받고 도착한 곳은 도심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


아침에 밝게 웃으며 현관을 나섰던 딸이 검붉은 피가 말라붙은 파리한 얼굴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죽은 듯이 잠든 모습에 홍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대체.."


"죄송합니다, 골든타임은 맞췄지만 의식이 돌아올지는 저도.."


"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응?"


"그게.."


보련의 말에 의하면 학원에서 돌아오던 중 큰길이 공사중이라 뒷골목으로 우회해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남자들을 만났다고 했다.


"야, 얘네들 괜찮은데?"


"그러니까, 어이 이쁜이들. 오빠들이랑 놀자?"


"왜, 왜들 이러세요.."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긴 해도 보련은 질 나쁜 부류와 어울린 적 없는 모범생, 겁에 질려 벌벌 떠는 그녀의 손목을 남자들 중 하나가 낚아챘다.


"잔말 말고 일로 와!"


"꺄악!"


바로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미호가 휴대폰으로 112를 눌러 경찰을 불렀다.


[경찰입니다, 상황이 어떻게 되죠?]


"여기 불량배들이 저랑 친구를 막 위협해.. 끄악!"


미호는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악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엎어졌다. 남자들 중 하나가 옆구리를 걷어찬 것이다.


"이 쌍년이 짭새를 불러?"


"안되겠다, 밟아!"


그렇게 그들은 가녀린 미호를 마구 발길질했다. 으슥한 뒷골목이라 행인이 그 소리를 듣고 오는 일은 없었고, 설령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남자들 중 하나가 보련에게 칼을 들이대며 위협했기에 도저히 도움을 요청할 순 없었다. 미호가 흘리는 신음 소리는 점차 줄어들었고, 서서히 감기기 시작한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이씨. 야, 얘 죽을 거 같은데?"


"갈아서 아스팔트로 만들면 되잖아, 늘 하던대로."


남자들이 서슴없이 내뱉는 잔인한 말에 보련은 몸서리쳤다. 바로 그때..


"경찰이다! 거기서 뭐 하는 짓이야!"


"씨발, 떴다! 튀어!"


남자들은 도주했고, 골목엔 피투성이의 미호와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보련만 남았다. 보련은 넋이 나간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없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아.. 아아.."


"학생, 빨리 병원 가자. 아저씨가 119 부를게!"


그렇게 둘은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 그런.."


사건의 전말을 듣고 비틀거리는 홍련을 옆에 있던 형사가 붙들었다.


"범인들은, 그놈들 어떻게 됐니?"


홍련의 질문에는 형사가 대신 입을 열었다.


"CCTV 확인해서 바로 연행했습니다. 증거도 명확히 있으니까 빼도박도 못할 거에요."


하지만 그녀를 안심시키는 형사의 얼굴은 전화 한 통에 의해 잔뜩 구겨졌다.


"무슨 소리야, 풀려났다니 왜?!"


[그, 증거불충분이라는데요..]


"말도 안돼! 목격자도 있고 피해자 진단서까지 다 나왔는데 그럼 유령한테 맞았다는 소리가 되잖아!


[저희도 이게 위에서 시킨거라.. 죄송합니다 선배님.]


분에 못 이겨 전화를 끊은 형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홍련을 바라보았다.


"풀려났다뇨, 대체 왜..?"


"저, 그게.."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중환자실로 4명이 우루루 들어왔다. 홍련의 남편, 김철남과 다른 세 딸들이었다.


"여보! 미호야!"


"어, 엄마. 미호 얼굴 왜 이래..?"


"미호야, 왜 여깄어..! 일어나..!"


"이게 대체.. 무슨.."


그들 모두 충격받은 얼굴로 중환자실 침대를 부여잡았다.


"말도 안돼, 이런 짓을 하고도 빠져나가다니..!"


분명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의 섭리, 하지만 그놈들은 그걸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는 사실에  범인들이 풀려났다는 걸 들은 가족들은 분노에 휩싸였다.


"이, 일단 진정을.."


형사가 달랬지만 그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특히 딸 철용이는 범인 다시 잡기 전까지는 한 발자국도 못 간다며 떼를 썼고, 엄마 홍련이 타이른 후에야 철남이 다른 아이들과 보련은 데리고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





"후우.."


가족들을 보내고 난 후, 홍련은 미호의 손을 꼭 잡고 중얼거렸다.


"...미호야, 엄마가 너 그렇게 만든 놈들하고 걔들 풀어준 놈들.. 전부 죽여줄게.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알겠지? 우리 딸, 일어나면 맛난 거 해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조금 떨어져서 그 말을 들은 형사의 눈에 순간 낭패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비단 살기 어린 말을 들어서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눈앞의 여성은, 그걸 진짜로 실행할 수 있었으니까.


"...형사님."


"네?"


"혹시 CCTV 영상 좀 봐도 될까요?"


"아, 예.."


형사가 보여준 영상 속에는 범인의 얼굴이 똑똑히 찍혀 있었다.


'이 정도면 알아내긴 어렵지 않겠어.'


그런 생각과 함께, 홍련은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형사에게 딸을 부탁했다. 중환자실을 나서려는데 형사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저, 어머님.."


"네."


"...혹시, 복귀하시는 건가요?"


그 말에 홍련은 이렇게 대답하고 나갔다.


"치울 것만 치울 거에요, 너무 걱정 마세요."





비 오는 어둡고 으슥한 골목길, 한 남자가 오른팔을 부여잡고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비척비척 도망치고 있었다.


"히, 히이.. 살려줘.."


아까 미호를 폭행했던 양아치 중 한 명이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풀려났다며 의기양양하고 있었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 답은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뻐억!


"꾸에엑!"


이빨이 모두 부러져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알알이 떨어지고, 그 위를 핏물이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남자를 친 상대는 검은 우비를 눌러쓰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그놈들 어디야."


"저, 전 몰라요. 서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헤어졌-"


푸욱!  


"아아아악!!"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남자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놈들 어디야."


"흐, 흐으으.."


"그.놈.들.어.디.야."


검은 우비는 양아치의 신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허벅지를 계속 흉기로 찔러댔다.


"하, 한 놈 아버지가 숨겨줬대요."


"둘 다?"


"네.. 네..!"


"그래, 알았어. 그 정도면 충분해."


그렇게 지옥 같던 시간이 끝났다고 생각한 남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가 무섭게 검은 우비는 그의 목에 흉기를 찔러넣었다. 울컥울컥 솟아나오는 검붉은 피가 빗물을 타고 하수구로 흘러가는 살풍경을 바라보며 남자는 꼴사납게 애원했다.


"왜, 왜.."


우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남자의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고 축 늘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 1분도 안 되어 몸이 완전히 무너지자 검은 우비는 후드를 벗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야, 미안한데 가연성 쓰레기 하나만 처리해줄래?"


전화를 끊은 우비는 붉은 생머리를 쓸어올리며 손에 들린 흉기를 바라보았다. 꽃집에서 쓰는 원예용 가위였다.





"...나도 녹슬었나."


우비의 정체는, 다름아닌 홍련이었다.


그 눈은 따스한 어머니가 아닌, 차갑고 날카로운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ㅈ됐다, 위에다 뭐라 보고하지.."


"선배, 무슨 말씀이세요?"


옆에 있던 후배 형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로 말을 걸어왔다.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냐?"


"네, 대체 뭔데 그러세요?"


"아까 만난 피해자 어머니.."


"네."


"...잘나가는 암살자였어."







펙스의 아이는 다시 다듬을 거라 내리고 새거 가져왔스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