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그러니까 내일은 휴방이에요. 미팅이 있어서."


-ㅠㅠ아쉽다

-내일 봐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남친 만나러 가는 거 아냐?w

-내일 모래는 오는거지? 기다리고 있을게!!

-오츠마이코!


"모들 오츠마이코! 다들 오늘도 봐줘서 고마웠어! 다음에 봐~"


그 말을 끝으로 잔잔한 음악과 함께 방송 종료 영상이 흘러나온다.


10초 남짓한 영상이 끝나고, 'SEE YOU NEXT!' 문자가 대문짝만하게 나타남과 동시에 생방송이 종료된다.


"후우. 피곤하네."


나는 방송 프로그램을 한 번 더 확인해 오프라인이 되었는지 살핀다. 관련 사건 사고가 종종 일어나기에, 강박에 가깝도록 체크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리고 끝났다는 확신이 들자 재빨리 디스코드를 켜 미팅 서버에 합류한다.


띠링.


"어. 왔네?"

"방금 방송 끝났어?"

"응. 피곤해 죽겠어요."

"고생했네요."

"아. 나도 1시간 뒤에 켜야하네. 씨발. 귀찮아 죽겠어."

"어허. 말 조심."

"뭐 어때. 방송중인 것도 아닌데? 설마 누구 방송킨 사람 있어?"


시끌시끌. 여러 목소리가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것이 꼭 시장바닥 같다.


빨리 쉬고 싶은 나머지 나는 입을 열었다.


"시간 다 되었으니 바로 미팅 시작하죠? 팀장님."

"아. 그래그래. 동기들끼리 떠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넋 놓고 있었네. 그래요. 마이코씨 말대로 바로 미팅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미팅은, 전달사항을 이야기하는 종례 시간의 담임 선생님과 같았다.


사실 별 토론이 필요치 않다. 회사에서 방송 지침을 전달하고, 우리들은 잘 숙지한 뒤에 방송에 잘 적용할 뿐이다.


'하지만 난 그러기 싫은데?' 라며 거부를 해도 되나, 여태까지 했던 대부분의 미팅에선 딱히 회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이제 1달 지난 시점이기에 지난 미팅들은 운운하는 것도 웃기긴 하다만.


"...릴레이 우타와쿠(*노래 방송)는 내일. 그리고 라디오는 수요일이니까 다들 유념해주세요. 아 참! 아카네씨는 조금 더 동기들을 언급하며 테에테에(*꽁냥꽁냥) 분위기를 연출 부탁드립니다. 기수 방침상... 아시죠?"

"...지금도 충분히 하고 있는데."

"알죠. 아카네씨가 노력하시는 거. 하지만 지금보다 조금만, 한두 번만 더 언급해주세요. 컨셉이니 어쩌니 하지만, 어쨋든 여러분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이잖아요?"

"......"


아카네, 메구로 메구미는 운영 측이 꺼낸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순식간에 어색해진 공기에 팀장은 사장한테 배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하하. 어쩌다 꺼낸 농담이 실패했네요. 그래도 저는 항상 여러분들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 억지로 무리할 필요는 없지만, 조금씩만 노력해주시면 됩니다!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면 되죠. 아직 데뷔 1달차인데요 뭐!"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디스코드 퇴장하는 소리가 잇달아 들리고, 나도 피곤한 나머지 프로그램을 종료하려던 찰나.


"마이코씨. 시간 되요?"

"...네. 갑자기 왜요?"

"혹시 괜찮다면, 개인 통화로 해도 괜찮을까요."

"그러시죠."


메구미가 말을 걸어왔다.


미팅 음성 채널을 나가자 곧바로 메구미가 개인 전화를 걸어왔고, 미팅이 끝났음에도 우린 더 통화를 함께했다.


메구미가 따로 연락을 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솔직히 ㅈ같지 않아요? 다 가식이고. 짜고치는 연극이고."


그녀는 아카네라는 활동명을 쓰기 전에 개인세(*회사 서포트 없이 홀로 버튜버 방송하는 사람) 버튜버를 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세카이 라이브'라는 거물 버튜버 회사에 오디션을 붙게된 이후, 그녀는 자신이 넘쳤다. 개인세로 방송했던 경력이 결코 짧진 않았기에 누구보다 더 버튜버를 잘 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죠. 모든게 다 짜여져있고, 다 대본이 있고. 컨셉만인줄 알았는데 대화거리도 다 운영에서 짜주고."


대화를 계속 나눠본 결과, 그녀는 버튜버 업계에 모종의 환상이 있던 모양이었다. 

혹은, 그녀의 천성이 '회사'라는 속박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어느쪽이던간에 기업세로 데뷔한지 1달이 지난 그녀는 불만이 가득 쌓인 상태였고. 나는 그녀의 감정 쓰레기통을 하기엔 제격이었다. 적어도 메구미가 보기엔.


"평소 존경하던 선배들도 다 이런 짜여진 무대위에 움직이는 꼭두각시였을 뿐이라니. 잔뜩 속은 기분이라 기분이 진창보다 더 더러워. 썩을. 쓰레기들이."


일본의 욕은 한국에 비하면 순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지금 가진 감정이 우리네들 것보다 못하진 않았다.


말에 담긴 표현보다 감정이 더 짙고 어두웠다.


나는 가만히 들어주다가 메구미의 말을 끝기로 했다.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애초에 그런 계약으로 들어왔으니까요."

"...마이코씨는 운영 편이에요?"

"그건 아니고. 그냥 순응하는 쪽이죠. 적어도 꼭두각시 노릇은 돈은 많이 주니까요."


메구미는 차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인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버튜버라지만 회사 속한 이상 저희는 회사원이나 다른 점이 없어요. 운영에서 안건 물어다주는 거 하고, 지침 사항 맞춰서 방송하고... 그렇게 1~2년 동안 구르다보면 혹시 아나요? 메구미씨가 원하는 자유로운 방송을 하게 될지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래도 운영측에 카드를 제시할 순 있죠. 여태까지 한 게 있는데, 이거라도 안 들어주면 그만 둘거라고. 1년을 넘게 투자했는데 여태까지 한 게 아까워서라도 웬만하면 들어줄걸요?"


납득하는 탄성이 이어폰 너머로 들려온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견뎌봐요. 그리고 힘들면 언제든지 저나, 다른 동기 분들에게도 상담하면서요."

"...싫어요. 다 못 믿겠어. 나한텐 마이코 언니밖에 없어요."

"하하... 저 말고 다른 분들도 좋은 분들이랍니다?"

"생각해볼게요."


메구미는 상담에 어울려줘서 고맙다는 감사인사를 끝으로 통화를 끝냈다.


"끝났나?"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금 주변을 확인했다. 완전히 끝났다는 걸 확인한 뒤에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그리고...


"언니 아닌데."


톡. 오른손 검지에 끼고 있는 반지를 두드리자 몸에 변화가 찾아온다.


"피곤해라. 이 모습으로 오래 있는 것도 피곤해."


신체적인 피로는 없다. 마법소녀의 육체는 오히려 넘치는 활기를 주체하지 못해 걱정이다.


다만 정신적으로 무척 피곤해질 뿐이다.


평소와는 다른 성별로, 그것도 정체를 숨긴채 여초 사회에서 몸가짐에 신경쓰는 일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기에.


"내일 휴방이고 미팅도 다 끝냈으니. 내일까진 무슨일 있어도 절대로 전화 안 받는다."


얼마만에 자유일까.


본모습으로 침대에 눕자 천천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애기들 고민 상담에다, 컨셉 가득 담긴 방송에다, 회사 비위맞추며 사회생활도 하고... 이러면 오히려 마법소녀 할 때보다 더 힘들지 않나..."


하지만 통장 잔고는 두둑하겠지.


얼마 전 매니저가 살짝 귀띔 해준 결과, 50만엔 정도가 들어온다고 했다.


아직 신인이고 자리잡지 않았기에 50만엔이지. 점차 코어 팬층이 늘고 연차가 쌓인다면 100만엔은 우습다고 말했다. 회사에 있는 대부분의 버튜버들은 못해도 달에 100만엔은 번다고.


"...1000만원은 못참지."


물론 엔저로 870만원 언저리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캐피탈리즘 호!다.


하지만 이렇게나 좋은 기업세 버튜버를 하면서 그런 고민을 품는 아이가 있다니.


"아직 돈 맛을 못 본 건지. 아님 어린 건지. 웬만한 회사보다 편한데, 돈은 그 배 이상은 버니까.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요즘 애들은...


하고 메구미의 나이를 생각해보니, 진짜 사회 초년생의 나이였다. 이제 22살, 일본 나이론 21살이었으니 내심 그런 고민을 품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개인세로 활동했다고 한들. 아르바이트 하나 제대로 해 본 경험조차 없을 것이다.


나이만 성인일 뿐 아직 어린 나이.


"나는 그 나잇대에 뭐했나..."


끔찍한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애국. 선열. 열정페이. 으윽. 머리가...


닳아버렸던 나에 비해 멋모르지만 때가 덜 탄 소녀는 그래도 귀여웠으니.


"설마 대충 돌려 말했는데, 진짜로 나한테 고민 상담 주구장창 하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나는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날. 메구미에게 부재중 전화가 여러통 와 있다는 사실에 나는 머리를 쥐어싸매야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