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인류에게 있어서, 퍼니싱과의 전쟁이 끝나는 날은 머나먼 꿈처럼 느껴졌었다. 

 손에 넣으려 뻗어도 닿지 않는, 아득하게 높은 곳의 별처럼 한 없이 멀고 빛나기만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 모든 위협은 사라졌다. 더 이상 퍼니싱의 위협은 지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류가 당당히 자신의 손으로 쟁취해낸 위대한 업적이었으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머나먼 여정의 끝이었다. 값비싼 대가를 단단히 치루고 도달한 결말은 모두가 단결하여 이뤄낸 결과였으며, 그것이야말로 지휘관이 원했던 결말이었다. 


 당연하게도 누구보다 앞서서, 혁혁한 공을 세운 그에게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인류의 영웅, 세계의 수호자, 시대를 이끄는 별, 파오스의 전설. 그가 진급식에서 수여받은 수많은 훈장들처럼 그에겐 많은 것이 붙었다. 많은 것이 주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뒤로 했다. 

 지휘관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명예를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렸다.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역한 뒤 공중정원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혹여나 그의 발자취를 알고 있는 이들이 있더라도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알려줄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와 가까이 한 그레이 레이븐 소대 대원들을 포함해, 그와 가까이 지내던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지휘관에게 필요한 건 오롯이 주어진 자신만의 시간이었다. 편안한 휴식과 여유였다. 그래서 그가 전역하겠다고 했을 때, 어느 누구도 그를 말리거나 붙잡지 않았다. 가장 많은 공을 세웠던 것 만큼 가장 많이 고생한 건, 다름 아닌 지휘관이었기에. 

  그렇게 8년이 흘렀다.

 
 지구에 남은 세력들과 공중정원 간의 이해관계, 정치적인 합의는 거의 이루어졌다. 한 때 인간의 흔적만 남았던 폐허들은 하나씩, 천천히 걷히고 다시 도시가 세워지기 시작했으며, 활발하게 개발이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와 닿지 않고 낯설기까지 했던 평화가 드디어 피부로 체감되기 시작했다.

 아, 전쟁이 드디어 끝났구나. 침식체도, 이합 생물도, 적조도, 퍼니싱도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더 이상 고생할 필요 없겠구나. 하고.

  
 그 말대로였다. 지구 위의 인류는 이제 더 이상 무자비한 재해의 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간에 돌던 각박함은 사라졌고, 모두가 서로를 도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이 따스하게 지상 위를 덮어갔다. 이제 자원을 두고 다툴 필요도 없었고, 부족한 식량과 식수에 목메일 필요도 없었으며, 돌발적인 사고에 생명이 무참히 짓밟혀질 일도 없었다. 추위와 더움, 질병과 습기를 인내하며 노숙할 필요도 없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인류는 지상을 차츰 개척하고 발전시켜갔다. 


 그 모습을, 신설된 도시 건물 사이의 아담한 가게 안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인류의 영웅이자 전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그가 차린 아담한 가게는, 정말 의외지만 피자 가게였다. 하고 많은 것 중에 그가 왜 피자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선택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무튼 그는 신설된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피자를 판매하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자아내는 평온한 일상을 바라보며 그것에 자신의 온기를 보태었다.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천진난만히 뛰어노는 아이들, 그리고 그 모습을 인자하게 바라보는 노인들. 활발하게, 미래라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자아내는 지극히 평범하고 따스한 평화와 일상의 모습은 그가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해줌과 동시에, 거대한 보람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지휘관은 더욱 더 피자를 만드는 자신의 손에 마음을 담았다. 지금도 맛있다고 사람들이 말해주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싸우는 게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좀 더 일상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일상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 마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그의 피자는 점점 더 입소문을 타고 도시에 널리 알려졌다. 

 "여기 치즈 피자 하나 주세요!"

 "슈프림 피자 두 판 주문할게요!"


  "네! 손님. 곧 드리겠습니다!"

 가게는 점점 번창해서, 이제 그가 혼자서 많은 손님들을 감당하는 게 어려워질 정도에 이르렀다. 심지어, 그의 가게 밖에선 한 번이라도 피자를 먹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말 그대로, 황금시대에서나 가능했을 법한 일이,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이토록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 그는 땀이 맺혀질 정도로 열심히, 한 마리의 꿀벌처럼 돌아다니며 자신이 구워낸 피자를 손님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 모습은 정말 바빠보였다. 그만큼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눈빛은 활기로 빛나고 있었고, 입가엔 즐거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지휘관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창가 너머에 후드를 쓰고 있는 한 소녀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다. 얼음처럼 차분히 내려앉았지만,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루비빛 눈망울이 타오르고 있는 듯한 눈빛을 가진 그 소녀는, 한 때 자신과 모두를 이끌었던 영웅의 모습을 그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 때였다. 

  "어? 처음 보는 누나네? 누나는 여기 처음 왔어?"

  "응?"

   소녀는 옆에서 말을 건 꼬마를 바라보았다. 그는 방금 산 피자를 한 손에 든 채, 도시에서 처음 본 사람에 대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응. 맞아. 누나는 오늘 여기 처음 왔어."

    "그렇구나! 누나도 여기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사려고 온 거야?"

    천진난만한 소년의 질문에, 그녀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저, 그리웠던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한 번 본 것으로도 마음이 소란스러워졌는데, 뭔가 눈치를 챈 듯한 소년의 천진한 눈을 보자 소녀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어... 응!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이곳의 피자가 굉장히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한 번 사 보려고. 그런데, 점심 시간이라 그런지 줄이 너무 기네.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와야 할 거 같아."

   "그래? 그치만 그런 식이면 저 가게에 오늘 안으로 못 들어갈지도 몰라! 왜냐면 피자 가게 아저씨, 정말 바쁘시거든."

   "...변한 게 없으시구나."

  소녀는 후드 아래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변한 게 없는 사람이라며 씁쓸하면서도 안도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소년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응? 누나, 무슨 말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꼬마야. 저기 아저씨... 여기에 오신 지 얼마나 됐니?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일까 싶어서."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소년은 잠시동안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더니, 곧 떠오른 듯 대답해주었다.

   "어... 이 도시의 기초 인프라가 이제 막 갖춰졌을 때에 오셨으니까... 적어도 3년은 넘으셨을거야. 아마, 그쯤일거야. 나도 그때 쯤 여기 부모님이랑 함께 왔거든... 아...!"

  그때였다. 소년은 뭔가 생각난 듯 펄쩍 뛰더니,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 소녀에게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하면서 골목으로 사라졌다.

  "미안해, 누나! 나 부모님 심부름 있어서, 다음에 만날 수 있으면 또 봐!"


  저 멀리 사라져가는 소년에게 소녀는 손을 흔들며 미소지어주었다. 소년의 모습이 전봇대 너머로 사라질 때 즈음,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지휘관의 피자가게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후드를 조심스럽게 벗고, 루비처럼 붉고 투명한 눈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을 오랜만에 바라보았다. 후드가 뒤로 넘어가며 흘러나온 소녀의 아름다운 검은 머리칼은 안쪽에 붉은 효과가 깃든 머리칼은 흑단과 홍단을 섞은 비단결처럼 도시 속을 부드럽게 어루어만지는 산들바람 따라 살살 흔들렸다.

 다름 아닌, 루시아였다. 지휘관이 전역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레이 레이븐도 해체되었고, 마음껏 세상을 둘러보며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란다며, 가끔씩 모이거나 연락하기로 약속하고 모두와 흩어진 그녀는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녔다. 루나와 알파, 그리고 그 둘을 모시는 롤랑과 라미아와 한 때 같이 다니기도 하고, 알파가 했던 대로 그녀 또한 세상을 눈에 담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휘관을 향한 그녀의 마음은 단 한 번도 희미해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찾아온 것이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따랐던 사람에게.


  몇 시간 후, 마감 시간이 다 되어 문을 닫을 준비를 하던 지휘관은 등 뒤로 문이 열리며 청명한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마감 시간 전이긴 했지만, 손님을 내쫓지 않고 대접하기 위해 인사를 하며 뒤돌았다.

  "어서오세요. 손ㄴ..."

  그러나 그런 그의 눈에 띤 건, 손님이 아니라 루시아였다. 가장 믿고 의지했으며, 가장 오래 함께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반쯤은 놀라고, 반쯤은 반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루시아!"

   "지휘관!"

   곧 그녀는 그를 향해 안겼다. 그 바람에, 지휘관의 몸이 뒤로 쓰러질 정도로 약간 밀려났지만, 그 둘은 서로를 꽉 껴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루시아는 지휘관의 모습을 바라봤다. 8년이란 세월이 흘러, 한창 자신들을 이끌어줬던 그 젊은 모습이 약간 바래었지만, 몸에 가득 배인 밀가루와 기름, 고기와 치즈 냄새도 있었지만, 손이 두꺼워지고 갈라져 있었지만.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그녀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스하고, 상냥하며 올곧으며 굳건한 사람이었다. 그것 만큼은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지휘관... 지휘관... 정말, 정말 보고 싶었어요. 지휘관..."

  "그래. 루시아. 다시 만나서 반가워."

   그 둘은 한참이 지나도록 서로를 껴안았다. 이미 문을 닫을 시간이 한참 흘렀음에도,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듯, 서로를 꼭 안고 보듬으며 그동안의 그리움을 가득 드러내고 있었다. 




#소설 아무도 안 써서 내가 오랜만에 썼다. 그리고 싸우는 거 쓰는 거 내가 감당 못하겠어서 그냥 일상같이 써봤음. 다음편은 나올지 안 나올지 모름. 만약 나온다면 리브랑 세레나 포함해서 다른 애들도 깔짝 나와줄지도.

 #암튼 즐감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