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당분간 집에서 쉬시고, 운동은 절대 하시면 안됩니다. 가급적 술도 마시지 마세요."


정오의 햇살이 나른히 내리는 아담한 진료실.

무료한 듯 보이는 의사의 상투적인 말투와 무작위로 파닥이는 나비 그림자 중 내 주의를 끈 것은 당연 후자였다.


'아, 난 왜 이럴까.'


쉬는 월요일, 꽃이 잔뜩 핀 바깥 풍경처럼 화사했던 마음은 자전거가 돌부리에 걸리는 순간 차마 피지 못한 채 져 버렸다.


감히 비행을 시도한 죄로 삼단 접이식 오른팔을 얻게 된 나는 이제 가만히 앉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연휴와 생이별을 강요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 눈에 위아래로 반복운동하며 어떤 의미를 만들고자 하는 의사의 입술은 나비의 날갯짓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셨어요?


"네?"


반사적인 반문이 튀어나왔다.

나비는 사라지고, 상념에서 깨자 의사의 마뜩찮은 눈빛이 콕콕 따갑게 찔러온다.


"주의사항, 이해, 하셨죠?"


"아. 네 뭐 하하 정신이 없네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내 모습에 의사는 익숙한 듯 주의사항들이 적힌 안내서를 건네주었다.


"환자분, 꼭 읽고 주의해주세요. 어긋나면 수술까지 할 수도 있어요. 아시겠죠?"


네.

대답을 한 건지 아닌지.

나사가 하나 빠진 상태로 휘적휘적 진료실을 나와서 처방전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넣고 병원을 나섰다.

사월 정오의 햇살은 나름 뜨뜻하다 할 만한 것이었다.

점심시간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나서는 사람들 중 일부가 화사하게 꾸며 입고 근처 공원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벌써 자리가 많이 찼는지 아예 멀리 벤치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도 보인다.

오늘 계획대로면 피크닉 가방을 들고 저들 사이에서 경쟁하고 있었으리라.


"하...서럽네."


연휴를 날린 자에게도 밥때는 오는가.

팔이 부러지고 온몸 구석구석이 쑤시는 와중에도 야속한 위장이 식사시간임을 알려온다.

빨리 나으려면 뭘 먹어야 할까, 세상만사 모두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머리로도 어느새 적당한 먹을거리를 물색하고 있다.


잠시 서성거리며 공원을 바라보던 나는 곧 주변 식당가로 향했다.

병원 앞 쓰레기통에 처박은 처방전은 이미 관심 밖이었다.

더 좋고 맛있는 특식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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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한 건 좀 안 땡기고...담백한 삼계탕 같은 거 어디 없나?'


사람들이 복작복작한 식당가를 느긋히 걸으며 메뉴를 고르다 보니 피시방 옆 골목길이 눈에 띄었다.

담배 꽁초와 아무렇게나 뱉은 침 자국들이 낭자한 골목은 한낮에도 어둑하니 왱왱 돌아가는 실외기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들어서서 가만히 실외기 뒤에 서 있자니 바깥과 한 걸음 단절된 세상인 것만 같은 짧은 골목이 전부 보인다.

잠시 기다리자 곧 식사가 도착했다.


"야야, 이번 판 ㅈ나 괜찮지 않았냐?"


친구와 통화하면서 한 손으로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물은 청년은 실외기 너머 서 있는 혜연을 보지 못한 듯 했다.


"아니ㅋㅋㅋㅋ그래서..."


어느새 뻗어진 손이 머리에 닿을 때 까지.


"올라간다고 그ㄹ...엇...!"


펄럭,

아무런 전조 없이 갑자기 몸이 작아진 청년은 갑작스런 상황에 겁먹어 얼어붙어 버렸다.

쯧쯧...

굳이 인기척을 내고 나서야 청년의 눈과 마주칠 수 있었다.


"?!?!"


바닥에 떨어진 옷을 뒤지고 있자 도와달라 소리치려던 녀석의 몸이 딱 굳는다. 답답하다.


"바보야. 너도 정신 못 차리는구나."


당황해 상황판단이 흐려져 도망도 못 가는 청년에게서 눈길을 떼고 옷을 뒤지자니 안주머니에 뭔가 잡힌다.

학생증이 바로 보이는 지갑이다.


"흐음~고등학생이 말야 벌써 발랑 까져가지곤 응?"


비웃듯 한 마디 하자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듯 도망가려는 녀석.

불량 고딩을 발로 슥 가로막자 차마 넘지 못하고 뒤로 자빠진다.

어디 보자.

크기도 적당하고, 탄탄해 보이는 몸에 머리도 짧다. 골격이 꽤 괜찮아 보이니 칼슘도 많겠네.

회전초밥 집듯 실루엣만 보고 고른 것 치고는 괜찮은 메뉴가 당첨되었다.


"살...살려..주세요..."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목소리는 언제나 에피타이저로 손색이 없다.

그래도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볼까.

재수도 없는 날. 괜히 심술이 나니 요 귀여운 식사라도 천천히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오랜만에 이건 어떨까.

혀로 가볍게 입술을 축이고 움찔 떠는 점심식사를 살포시 들어올려 천천히 소화과정을 설명하는 거다.

귀찮고 오래 걸리지만 스트레스 해소엔 최고지.


"미안하지만 꼬맹아, 넌 오늘 내 점심식사야."


"히익...!"


점심식사를 붙잡은 손아귀의 아래가 살짝 축축해지는게 느껴진다. 어차피 통째로 먹으니 다 삼키는 거지만, 조금 찝찝하네.

그래도 재미는 포기할 수 없다.


"여기 봐봐. 여기 예쁜 입으로 한입에 삼켜지면."


"으아아아아아!!!!"


"꾸울꺽~목구멍을 넘어서..."


"살려, 살려줘!!!"


"뱃속으로 들어갈거야."


껌껌한 목구멍 속을 마주할 때부터 반쯤 정신이 나가있던 녀석은 이미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이정도면 A급 리액션이다.

싱싱하기 그지없는 횟감을 공수해온 요리사의 마음이 이럴까.

요리할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소화 과정에 따라 청년을 입에서 목으로, 다시 윗배로 내리는데 갑자기 꾸루룩 소리가 우렁차게 고막을 때렸다.


"온천 좋아하니?"


"이런 미친!! 으아아!!"


가볍게 던진 농담은 별로 효과가 없어 보였다.

녀석은 이제 마치 손아귀를 빠져나갈 것처럼 격렬하게 꿈틀대고 있다.


"저런...싫어도 곧 들어가게 될 건데 어떻하니.

그래도 잠깐만 참으면 위산이 온 몸을 노곤노곤하게 녹여줄 테니까 나쁘진 않을 거야."


알아들은건지 만 건지 난리만 치는 녀석.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 녀석을 입가에 가져가 숨을 흡 들이쉬고 트름 소리를 냈다.


"끄으윽-"


잠시간에 침묵이 내려앉자 허옇게 질린 녀석의 얼굴이 드러난다.


"흠흠. 그래서 다른 음식들이랑 잘 녹아서 섞이면 일부는 이렇게 트름이 되어 나올 거란다."


히익...힉...소리로 간신히 숨을 내쉬는 소리 위로 생에 대한 간절함이 가득한 눈동자가 보인다.

소화 과정은 이제 아랫배와 그 아래, 녀석이 다시 세상에 나올 통로만 남았다.


타이밍이 잘 맞았다.

이런 녀석들에게 클라이맥스를 보여주기 직전에 희망을 주면 더욱 맛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다음으로 소장으로 들어가면 이제 담즙이랑 섞여서 녹색..."


신경이 팔린 척 계속 주절거리며 손의 힘을 살짝 풀어 빠져나갈 수 있을 것처럼 살짝씩 손가락이 벌어지게 해 주었다.

역시나 녀석은 희망을 본 건지 소리지르는 것도 멈추고 낑낑대며 온 힘을 다해 손가락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어쩜 이리 귀여울까...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숨기려고 입꼬리를 단단히 잡고 있어야 했다.


"이런 씨..ㅂ...으..!!"


마차에 깔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괴력을 발휘했다는 어미의 심정이 저러했을까.

점점 펼쳐지는 척 하고 있던 손아귀가, 어느 순간 힘을 안 주어도 진짜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푸핫!"


"?!?!"


앗. 결국 터졌네.

웃음을 참지 못하고 꽉 쥐어버린 손아귀에 순간적으로 눌려 숨이 막힌 녀석이 컥, 소리와 함께 경악어린 눈빛으로 손을 바라본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순간 발버둥치는 것도 포기한 걸까.

미동도 못하고 가만히 절망스런 표정만 짓는 녀석의 반응이 맛있어보여 미칠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최고로 즐거운 단계가 남아있지.


나는 아랫배에서 손을 떼고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전신거울을 가져와 세웠다.


"벌써 그렇게 힘을 다 빼면 어떻게 하려구? 밤새도록 구불구불 뱃속을 다 돌아다녀야 할 텐데."


그러면서 녀석의 위로 팬티를 슬쩍 내리며 쪼그려 앉자 살짝 젖은 비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마치 쭈그려 볼일을 보는 모습처럼 보였다.

자세 탓에 괄약근이 눌려 살짝 움찔대는 항문과 인간미 넘치는 약간의 요오드 냄새.

미리 털은 깨끗하게 밀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부끄럼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슥, 녀석을 좀 더 가랑이 안쪽으로 밀어넣자 처음으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끄럼에 볼이 상기된 나와는 다르게 이전보다 창백해진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녀석이 거울에 비쳐 보인다.

하아,

정말 귀여워...

나는 녀석에게 소화의 마지막 과정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밤새 영양분을 누나한테 다 주고 나면, 쓸데없는 찌꺼기만 남을 거야."


"흐윽..."


"내일 아침 쯤이면 너는 그...굳이 말 안 해도 알지?"


"싫어...제발..."


"걱정 마. 누나가 위장은 튼튼하니까 마지막은 건강한 모양으로 나오게 해 줄게."


이제 녀석은 발버둥치지도, 소리지르지도 않는다.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그저 빌듯이,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이래서 장난치는 쾌락을 정말 끊기 어렵다.

하아...정말. 그 자그만 활력이, 발버둥이 뱃속을 자꾸만 뜨겁게 만들어 인내심이 줄어든다.

어느새 손은 가여운 점심식사를 입 속에 거의 넣다시피 하고 있었다.


"보다시피 팔도 부러졌으니까 너도 괜히 말썽 피우지 말고 잘 소화되서 낫게 도와주렴."


어두운 목구멍에 다가갈수록 비명이 커지는 것이 들려온다.


"잘먹겠습니다~"


살려달라고, 안됀다고 갈라진 목소리를 내며 다시 꿈틀거리는 녀석을 발부터 혀에 올리니 짭쪼름한 감칠맛이 느껴진다.


앞니로 녀석의 어깨어림을 가볍게 물고 조금씩 혀로 당기니 천천히 입속으로 빨려들어온다.

숨도 쉬기 어려운 압력과 습한 입속 공기가 공포를 극대화시키겠지.


이제 숮제 이따위로 죽을순 없다고, 꿈이라고 현실부정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까 보여준 소화 과정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에일 아힘에 하장시레서 보댜~"


입 속이 가득 찬 채 말하니 발음이 좀 뭉개지기는 했지만 대충 뜻은 전해졌을 것이다.


침을 들이마신 듯 콜록대며 어떻게든 버티려는 녀석을 꿀꺽, 단숨에 삼키자 식도를 마사지하며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한 느낌도 잠시, 곧 위에 도달한 녀석을 위에 딱 맞는 크기로 변형시키자 꾹꾹대는 느낌만 날 뿐 발버둥이 잠잠해졌다.


"끄윽-"


탄산음료를 마신 듯 시원하게 나오는 트름.

아직 소화는 안 끝났는데

잠잠하던 윗배가 격렬히 꿈틀대는 것을 보니 아침을 굶어서 그런가 위산이 강했구나 생각이 든다.


"쉬...가만히 있어. 꿈틀대봤자 소화만 빨라질 뿐이야."


위산을 잔뜩 들이마신 녀석의 귀에 내 말이 들어갈 리 만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녀석이 잠잠해질 때까지 윗배를 문지르며 자장가처럼 말을 이었다.


"옳지, 말썽피우지 말고....착하다."


슬슬 기력이 다했는지 얌전해진 윗배를 만지는데 낯선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들려왔다.

식사를 마칠 시간이다.


"저기요, 혹시 여기서 키 180정도 되고 바람막이 입은 남자애 못 봤어요?"


뱃속의 점심식사와 똑같이 담배를 입에 문 채 건들대며 걸어들서오는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아뇨, 못 봤어요."


아이씨...이새낀 어딜 간 거야.

그리 중얼거리는 남고생은 별로 먹을 게 없어 보였다.

벌써 본격적으로 소화가 시작되었는지 꾸루룩 소리가 나는 윗배를 문지르며 나는 다시 길거리로 나섰다.


'운이 좋았네.'


오후의 식당가는 사람이 줄어들어 조금 한산했다. 

가게들도 하나 둘 브레이크타임 안내문을 걸어놓기 시작하는 것이 보인다.


"하암..."


돌아가서 쉬어야지.

잠시 한가함을 만끽하던 난 길가에 주차한 채 꾸벅 졸고 있는 택시기사를 깨워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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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낮 동안 부드럽게 녹아내린 이름모를 남자아이의 뼈와 살은 야식으로 먹은 견과류, 과일 따위와 섞여 영양 가득한 죽이 되었다.

혜연의 소장은 다친 곳을 모두 치료라도 하겠다는 듯 밤새 그 영양분을 잔뜩 흡수했다.

녀석은 그녀의 능력으로 압축되며 작아졌지만, 실질적인 영양분은 그대로였기에 아침 즈음에 혜연의 피부가 한층 탄력적으로 변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탄력적으로 변한 것이 피부만이 아니었다는 사소한 문제가 개운하게 일어난 혜연을 아침부터 머리 아프게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뱃살로 먼저 가는구나..."


화장실 거울에 모습을 비쳐보던 혜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어쩌랴. 지옥의 다이어트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혜연은 곧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압력에 따라 변기에 앉았다.


"하아아...튼실해도 너무 튼실했나본데."


풍덩, 퐁.

위장의 열일 덕에 하룻밤만에 소화가 끝난 녀석이 부드럽게 배출되며 물소리를 내었다.

개운하게 볼일을 보던혜연은 오른팔에 느껴지던 불쾌한 통증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역시 잘 먹는게 중요하구나."


좋은 한 끼 고맙다...

잠시 묵념하던 혜연이 고개를 내리자 어제 녀석에게 장담한대로 건강한 황금색 덩어리들이 변기를 가득 채운 것이 보인다.


'그래도 예쁘게 낳아줬으니 나쁘지 않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시원하게 소변까지 보고 볼일을 마친 혜연은 멀끔해진 오른팔을 쓰담아 보았다.

녀석의 영양분으로 예전보다 더욱 튼튼해진 것 같은 기분이다.


마침 병가 때문에 쉬는 날이 늘었다.

일찍 나았으니 더 더워지기 전에 피크닉을 다시 가 봐야지.


달칵.

쿠르륵, 솨아아아....


혜연이 나가고, 화장실은 여느때와 같이 환풍기 도는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